용암 골렘
“헉... 헉...”
붉은 망치일족의 족장인 테스테인은 오래간만에 입에서 단내가 나는 것을 느꼈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설치해 놓은 강철 문이 부서지기 전부터 시작된 용암 골렘들과의 전투는 1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망할 돌덩이들! 핵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먼저 왼쪽에 있는 놈부터 처리 하라고!”
“그러고 싶어도 바닥이 용암천지라 다가갈 수가 없어요!”
“한 마리씩 나오던 놈들이 뭘 주워 먹겠다고 세 마리가 동시에 온 거야!”
드워프들은 물러나지 않을 의지를 다지며 피가 나도록 둔기를 움켜쥐었다.
“쿠오오오.”
부그그.
용암 골렘들은 외피에서 용암을 뚝뚝 떨어뜨리며, 드워프들이 운신 할 수 있는 공간을 점점 좁히고 있었다.
“끙...”
스톤 골렘이 나타났다면 3마리가 아니라, 10마리가 나와도 진즉에 때려잡았을 거다.
하지만 용암 골렘은 외피에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특징이 있다. 근접해서 물리 공격을 해야 하는 드워프들에겐 최악의 적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용암 골렘 3마리가 동시에 쳐들어왔으니, 드워프들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족장님. 여기서 밀리면 집까지 무너집니다.”
“일단 물러나든, 여기서 끝을 보든 결정을 내리셔야합니다.”
“당연히 물러나는 것은 없다. 죽더라도 이곳에서 끝을 본다!”
“알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을!”
테스테인과 드워프들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마을의 중앙까지 다가온 골렘들을 노려보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배수로가 용암을 흘려주는 아주 잠깐의 시간이 놈들을 잡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지금이다! 모두 공격!”
“우와아아!”
“이 돌덩이들! 붉은 망치일족의 매서움을 보여주마!”
테스테인의 명령을 들은 드워프들이 골렘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파앙!
어디선가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운데서 난동을 부리던 용암 골렘의 움직임이 멈췄다.
쿵.
정지된 상태의 용암 골렘의 오른팔이 툭하고 떨어졌다.
쿠구구구.
오른팔만이 아니다. 좀 전까지 발광을 하던 용암 골렘은 모래라도 된 것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어?”
“무, 뭐야...”
“이게 대체...”
이유도 모른 채 무너져 내린 골렘을 본 드워프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조금 전 까지 용암 골렘이었던 김이 타오르는 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인간?”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테스테인은 무너진 골렘의 뒤에서 인간 남자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마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고 급한 불부터 끕시다. 아니, 용암이구나.”
말을 마친 남자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은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용암 골렘을 향하고 있었다.
파아앙!
파앙!
남자의 양손에서 튀어나간 무언가가 하얀 선을 그리며 골렘들을 뚫어버린 순간.
골렘이 녹아내렸다.
**
용암 골렘들의 정보를 보기 위해 평소처럼 창조주의 눈을 켜본 것뿐이었다.
“어?”
창조주의 눈으로 용암 골렘의 정보를 읽던 내 눈에 골렘의 오른쪽 어깨 안에서 붉은 구슬이 펄떡펄떡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골렘의 핵...”
핵을 찾는 것이 어려워서 문제지. 핵만 찾는다면 골렘 잡기는 누워서 떡을 먹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탁.
아그네스를 백광환으로 바꾼 다음 엄지와 검지사이에 끼웠다.
파앙!
일섬뢰를 운용하여 손가락을 튕기자, 바람이 뚫리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백광환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퍽!
흰색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백광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골렘 안의 구슬을 파괴했다.
스스스스.
핵이 부서진 용암 골렘은 움직임을 멈추더니,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어어...”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붉은 수염의 드워프에게 씩 웃어준 뒤 남은 두 용암 골렘의 핵을 찾아보았다.
한 놈은 왼쪽 가슴, 다른 한 놈은 복부 정중앙에 핵이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파아앙!
파앙!
양손으로 백광환을 날려서 두 마리의 용암 골렘을 동시에 무너뜨려버렸다.
쿠구구구.
내가 손을 내리자마자, 녹아내리는 용암 골렘의 모습은 더 이상 없을 만큼 멋진 장면을 연출해주었다.
스스스.
용암 골렘이 흙으로 돌아가자, 바닥을 태우던 용암들도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헉!”
“아...”
“어...”
골렘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본 드워프들은 숨죽인 채 내 손가락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괜찮으신가요?”
“괘, 괜찮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괜찮으냐는 말에 정신을 차린 드워프들이 내 앞으로 뛰어와서 고개를 숙였다.
“별일 아닙니다. 우리가 남도 아니고.”
“네? 남이 아니라니...”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가장 앞에 있는 붉은 수염의 드워프가 되물었다.
“사실 저는...”
“대공자님!”
기라녹스의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딱 맞게도 뒤에서 기라녹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 마을 문이 왜 부서졌... 사, 사부님!”
“기라녹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기라녹스는 사부라고 외치면서 내 앞에 있는 붉은 수염의 드워프에게 뛰어들었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용암 골렘에게 습격당했다.”
“용암 골렘이 나타나는 건 가끔 있던 일이잖아요.”
“한 번에 3마리가 나타났어. 이런 적은 처음이다.”
“억!”
세 마리라는 소리에 기라녹스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대공자님이 처리해주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자신의 사부의 손을 잡고 있던 기라녹스가 뒤를 돌아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대공자? 너 이분이랑 아는 사이냐?”
“사부님. 이분이 제가 모시고 계신 유렌 록스님이에요. 대공자님. 이분이 제 사부님이시자,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이신 테스테인님이에요.”
“은인께서 남이 아니라고 하신 이유가 있었군요. 이 마을을 맡고 있는 테스테인이라고 합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테스테인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서 내게 인사를 했다.
“유렌 록스라고 합니다. 기라녹스의 사부님이라면 제 사부님이죠. 당연히 도와야 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어...”
내 말을 들은 테스테인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정말 최고의 첫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테스테인 브레드먼]
[특성: 장인의 혼lv5, 집중lv4, 화염친화lv4, 감정lv4, 세공lv4 ]
[호감도: 32 (호감) ]
[현재 기분: 감탄. ]
드워프들은 외부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다. 그런데 만나자마자 호감도가 32라면 최고의 첫인상을 남긴 셈이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모두 나와 은인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건 예의가 아니죠. 빨리 전부 나와!”
테스 테인의 말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드워프들이 내 앞으로 몰려왔다.
“덜렁이 기라녹스를 데리고 있어주시는 분이자, 우리를 구해주신 은인이시다. 모두 인사를 드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은인!”
“아니, 정말 별거 아닙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용암 골렘 덕에 드워프 모두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첫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은인이라는 단어.
드워프들은 은인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은인에는 큰 의미가 있다.
“다행히 크게 다치신 분은 없나 보네요.”
“그래. 건물들은 많이 무너졌다만...”
드워프들을 둘러보던 기라녹스의 말에 테스테인은 자신의 앞에 무너지고, 파괴된 건물들을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골렘이 동시에 3마리가 동시에 나타나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가끔가다 용암 골렘이나 골렘이 덤벼오는 일은 있었지만, 세 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난 적은 처음이야.”
기라녹스의 말에 테스테인이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세 마리라...”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주변에서 마법사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생성된 골렘이라는 뜻이었다.
“혹시 이곳에 마나가 풍부한 보석이나 돌이 있습니까?”
“마나... 아! 얼마 전에 질 높은 최상급 마나석을 구했습니다. 설마 그게...”
“그거네요.”
“이런!”
테스테인이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아시겠지만 자연에서 태어난 골렘은 마나에 반응합니다. 최상급 마나석의 마나에 이끌린 놈들이 동시에 쳐들어 왔나봅니다.”
“하아...”
테스테인은 기가 막힌다는 듯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사부님. 죽거나 크게 다친 사람 없으면 됐죠. 건물이야 금방 고칠 수 있잖아요. 저도 도와드릴 게요.”
“나 참 살다보니, 네게 위로를 받는 날도 오는구나. 그런데 너는 왜 돌아온 거냐? 내보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돌아와.”
“그게 아니에요. 엄청, 엄청난 게 있어요! 진짜 엄청난 게!”
“그 설레발은 여전하구나. 좀 침착하게 말해라.”
기라녹스는 테스테인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신나게 흔들었다.
“대공자님!”
기라녹스가 말로 할 필요 없이, 어금니를 보여주라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들어가서 얘기할만한 곳이 있을 까요?”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테스테인은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쿵.
테스테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신살수의 어금니를 탁자에 꺼내놓았다.
“예전에 존재했던 짐승의 이빨입니다. 이것으로 무기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이빨이라...”
테스테인이 이빨을 보기도 전에 기라녹스를 째려보았다.
“에, 그게 제가 있는 곳에선 화력도 부족하고, 또 제 실력도 부족해서 어쩔 수가...”
“흠...”
테스테인은 한숨을 내쉬고 이빨을 살쳐보기 시작했다. 냉정하게 가라앉아있던 테스테인의 눈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건!”
역시나 감정이 4레벨인지, 그는 이빨을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아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게 무슨 짐승의 이빨입니까?”
“저도 잘은 모릅니다. 그저 예전에 존재했던 짐승이라고만...”
괜히 신살수라는 이름을 썼다가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서 모르는 척을 했다.
“그, 그렇군요. 이런 물건은 생전 처음 보았습니다.”
“이 이빨로 제가 원하는 무기를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물론입니다. 오히려 꼭 제게 맡겨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테스테인의 눈에서 장인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는지, 테스테인이 말끝을 흐렸다.
“골렘들에게서 흘러내린 용암 때문에 지금 사용 할 수 있는 대장간이 없습니다. 대장간을 정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죠. 당연히 괜찮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대장간 정비를 끝낸 후 은인께서 원하시는 물건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테스테인은 말을 하고 나서 바로 밖으로 나갔다.
“어이! 일단 대장간부터 고쳐!”
“아휴, 족장님. 아무리 망치질이 좋아도, 집부터 고쳐야 잠을 자죠. 배수로도 손봐놔야 하고요.”
“진짜 징글징글하다. 나도 망치질을 좋아하지만, 못 따라가겠어.”
“시끄럽고, 은인께서 무기 제작을 부탁하셨으니까. 일단 대장간부터 고쳐!”
드워프들은 테스테인에게 구시렁대다가 내가 무기 제작을 부탁했다는 말에 군소리 없이 대장간을 치우고 정비하기 시작했다.
“나도 준비 좀 해야겠네.”
“네?”
“아린, 혹시 모르니까 마을 앞에서 드워프들을 지키고 있어.”
“대공자님은 어디 가십니까?”
“산책.”
“산책이요? 그럼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기라녹스가 같이 가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옆으로 붙었다.
“됐고, 넌 네 사부님이나 도와드려.”
“혼자 괜찮으세요?”
“내가 애냐?”
“하하, 알겠습니다.”
기라녹스가 씩 웃고서 테스테인에게 달려갔다.
“아린, 부탁할게.”
“네.”
아린에게 다시 보호를 부탁한 후에 마을 밖으로 나왔다.
“골렘은 베일의 짓이 아니야.”
베일이 내 방해를 하려고 했다면 늑대들을 보내거나 자신이 직접 나섰을 것이다.
골렘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아직 놈의 습격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혹시 모르니, 대비 정도는 해놔야겠지.”
**
늑대들의 침입에 대한 대비를 해놓은 다음 다시 마을로 들어가려고 할 때 멀리서 조금씩 가까워지는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구.
사람 한둘이 아닌 집단이 움직이고 있는 소리였다.
“그놈들은 아니야.”
베일의 늑대들은 암살자들이다. 이렇게 대놓고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놈들이 절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제 3세력이라는 생각에 바로 온슬론의 감시탑을 사용해서 청각을 강화했다.
“이제 곧 드워프들의 마을입니다.”
“...네.”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와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숨죽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계속 청각을 집중해 봐도 더 이상의 대화는 들리지 않고, 걸음소리와 갑옷이 부딪치는 철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나무위로 올라가서 온슬론의 감시탑으로 시각을 강화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산을 올라오고 있는 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흰색과 은색이 조화롭게 섞인 아름답고 단단해 보이는 갑옷들을 입은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의 가슴에는 날개달린 여신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성기사단?”
가슴에 여신을 새기고 있는 기사들은 이곳 신성왕국의 성기사단 밖에 없었다.
“음?”
성기사들 사이에는 백마를 타고 있는 분홍머리 여자가 한 명 끼어 있었다.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조주의 눈을 켜보았다.
[이름: 이레아 앨리넌스]
[특성: 성혼(聖魂), 신성적응lv3, 암흑면역lv3, 호이안 격투술 ]
[호감도: 35 (호감) ]
[현재 기분: ]
저 이중인격 성녀가 왜 여길 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