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책과 마도서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 차이지.”
책과 마도서는 둘 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지식이나 능력을 전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책이 그 안에 담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면, 마도서는 그저 펼치기만 하면 끝이다.
마도서를 펼치기만 하면 그 안에 들어있는 능력, 지식, 기예 모든 것이 물처럼 흡수 되서 자신의 기억에 각인 된다.
“그렇다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불리는 마도서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단점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큰 것은 마도서 안에 어떤 능력이나 기억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다.
기사에게 마나를 이용하는 능력이, 마법사에게 오러를 이용하는 능력이 가게 되면 그저 버릴 수 없는 똥이 될 뿐이다.
“하지만 난 상관없지.”
락토르의 강철 성벽의 설명에는 마나로 정신공격을 버틴다고 되어있다. 즉 마법사의 능력이라는 거지만 나하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내공은 어느 쪽이든 모두 이용할 수 있으니까.”
아그네스를 이용할 때나 숨겨진 동굴에 들어갈 때 이미 검증이 끝났다. 내공은 오러로도, 마나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이걸로 확정.”
락토르의 강철 성벽을 따로 빼놓고, 다시 마도서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음, 요리, 수면, 검술, 창술...”
보고에 있는 마도서들의 능력은 청소, 요리, 수면 같은 생활 능력과 검, 창, 활 같은 전투능력이 대부분이었다.
좋은 능력들이지만, 사천당가가 있는 내겐 별 필요 없는 것들이라 뒤로 넘겼다.
“어?”
거의 모든 마도서들을 파헤쳤을 때 내 손을 멈추게 하는 제목이 보였다.
[온슬론의 감시탑]
오러를 사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감각을 2배 확장한다. 기본 감각의 2배를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각이 좋은 사람일수록 더욱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베올러스 왕국의 탐색꾼 온슬론의 능력이다.
“와, 이것도 정신 나갔는데?”
감각을 기본의 2배로 확장한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내 기본 감각이나 탐지 범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감시탑을 사용했을 때 그 2배로 감지 범위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개 미친 사기...”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놀라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거면 돼.”
다른 것을 볼 필요도 없었다. 뒤적거렸던 책들을 다시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뒤 락토르와 온슬론의 마도서를 가지고 보고를 나왔다.
“다 고른 건가?”
“그렇습니다.”
“선택권 2개를 모두 마도서에 사용하다니, 자네도 정말 독특하군.”
국왕이 보고의 문을 닫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불복이 심한 마도서를 2권이나 가지고 온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이런 기회에선 확실성이 있는 선택을 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이지.”
국왕의 말대로다. 마도서의 능력이 보이지 않았다면, 나 역시 절대로 마도서를 고르지 않았을 거다.
“제가 운이 좀 좋은 편입니다. 두 마도서 모두 제게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한참을 뒤적거리던데. 자네, 설마 마도서를 읽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냥 겉표지가 멋있어 보이는 것으로 골랐을 뿐입니다.”
“하하하! 농담일세. 현자라고 불리는 자들도 읽지 못했는데, 그럴 리가 없지.”
국왕은 그저 장난이었지만, 듣고 있던 나는 조금 식겁했다. 농담조차 날카로운 사람이다.
“그래. 자네 말대로 좋은 능력이 나왔으면 좋겠군.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자네와 록스 후작은 바로 돌아가는 건가?”
“네. 예정도 있고, 폐하께서 하사해주신 뿔로 무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아서...”
“아, 그렇지. 그 뿔도 있었군.”
국왕이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면서, 흥미로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완성되면 내게도 보여주게 어떤 물건이기에 자네들이 대련까지 하려 했는지 궁금하군.”
“알겠습니다.”
“자네는 조만간 다시 와야겠어. 마도서에서 좋은 능력이 나왔는지도 알려줘야 하고, 만들어진 무기도 보여줘야 하니 말이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국왕은 내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터질 몇 가지 일을 해결한 뒤 국왕을 찾아가면 또 다른 보상을 줄지도 모른다.
“자네도 알겠지만, 우리 왕국은 외환이 잦은 편이네, 앞으로도 북벽같은 일이 터진다면 꼭 힘을 빌려주길 바라네.”
“당연히 그리 할 것입니다.”
“그래. 이번에 자네와 만나서 정말 즐거웠네.”
“폐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서 예를 표한 뒤 알현실을 나왔다.
“보상이 정말 미쳤어.”
들뜬 기분으로 숙소로 돌아가려 할 때 아는 얼굴이 벽에 등을 기댄 채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공작 각하.”
“설마 마도서만 2권을 가져온 건가? 허, 자네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야.”
“폐하께서도 공작님과 같은 소리를 하셨습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 할 걸세.”
로페르 공작은 내가 들고 있는 2권의 마도서를 의아스레 쳐다보았다.
“폐하를 뵈러 오신 겁니까?”
“아니,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네?”
“내가 전에 말했지 않나. 자네에게 좋은 물건을 줄 거라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북벽에서 떠날 때 공작이 보상을 줄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을 했던 게 기억났다.
“이게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나서, 우리 집의 창고를 모두 뒤집어엎었다네. 후후.”
공작은 능청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내게 검은색 보자기를 내밀었다. 보자기를 잡자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게 뭐죠?”
“예전부터 엘리온의 금고에 있던 물건일세. 장식용이었지만, 평범한 단검이 아닌 것 같아서 자네에게 주고 싶었네.”
단검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검은 보자기를 펼쳐보았다. 여느 단검과는 전혀 다른 것이 그 안에 있었다.
“이런 단검은 처음 보는군요.”
손잡이에서 검날까지 단검의 모든 부분이 유리처럼 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단검을 잡고 있는 내 손바닥의 손금이 보이고 있었다.
단검의 형태가 너무 아름다워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장식용 같았다.
“유리로 만든 겁니까?”
재질까지 반질반질한 느낌이라 꼭 유리로 만든 단검 같았다.
“나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유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네. 겉보기엔 쉽게 깨질 것 같지만, 이 단검은 강철보다도 단단하거든.”
“음...”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백영석 단검]
정령계와 가까이 있는 장소에서만 나타나는 백영석으로 만들어진 단검이다. 쉽게 깨질 것처럼 보이지만, 강도는 강철이상이다. 투척 할 시에는 단검이 주변 환경에 녹아들어서 보이지 않게 된다.
백영석은 엘프의 숲에서도 구하기 힘든 희귀한 물건이다. 그 귀한 백영석으로 누가 이런 예술적인 단검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단한 솜씨였다.
“굉장하군요.”
백영석 단검은 단검 자체의 성능도 뛰어나지만, 자모환처럼 속임수로 사용하기 딱 좋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가?”
“물론입니다. 공작 각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다행이야. 자네에게 보석이나, 돈을 줄 수도 없고, 무엇을 주어야 하나 굉장히 고민했다네. 우리 금고에 있어봤자 썩어가기만 할 테니, 자네가 써준다면 그 단검도 좋아할 거야.”
“신경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공작은 내가 단검을 받고 좋아하고 있는 것에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줄 것도 줬으니, 나도 가봐야겠군. 자네도 돌아가나?”
“네. 뿔로 빨리 무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바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래. 좋은 물건이 나오길 바라네. 그럼, 나중에 또 보세나.”
“네.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단검을 품에 넣고, 공작에게 진심을 담아서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또 문제 생기면 도와달라는 뇌물이야.”
“물론입니다. 언제라도.”
“거기선 그런 일 없을 거라고 해야지. 이 사람아.”
“아...”
“하하, 장난일세.”
공작은 부드러운 웃음을 보이고선 내 어깨를 한 번 툭 치곤 아래로 내려갔다.
“조심히 가십시오!”
공작이 왕궁을 나가는 것을 지켜본 뒤 나도 내 숙소로 돌아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1+1+1+1이잖아?”
방에 들어오자마자,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신살수의 어금니, 마도서 2권, 백영석 단검까지 보상이 미쳐 날뛰고 있었다.
“고생한 보람이 있어.”
사실 큰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더 큰 뿌듯함을 위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왕궁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고 받을 것도 다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후작령으로 돌아왔다.
“하아, 유렌...”
내가 마도서만 2권을 받아 온 것을 듣고 후작은 기가 막힌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마도서에서 투척 능력을 얻은 건 천운이다. 모든 마도서가 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정말 좋은 겁니다.”
“그래. 네 선택이긴 하다만, 좀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 텐데...”
후작은 다시 한숨을 내쉬고 밀린 일을 해야 한다며 집무실로 향했다.
나중에 후작에게 마도서에서 어떤 것이 나왔는지 알려줘서 깜짝 놀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방으로 향했다.
“휴우, 베일 자식...”
방에 들어가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영지로 돌아갈 때 후작은 베일의 얼굴을 보려고 했지만, 베일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내 생각엔 베일이 나를 보면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달려 들까봐, 스스로를 억누른 것 같았다.
“놈과의 전쟁은 확정이군.”
놈은 어떻게든 나를 죽이고, 이빨을 뺏으려 할 거다. 문제는 그의 의도가 세피로스의 의도인지, 베일 혼자만의 의도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겠어.”
사천당가의 성장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템빨로 승부를 봐야 할 것 같다.
마도서도 봐야하고, 이빨로 무기도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능력도 파악해야하고, 옷도 가지러 가야하고 할 일이 많았다.
“그럼 일단 마도서부터.”
잡생각을 털어버리고, 주머니에서 온슬론의 감시탑을 꺼냈다.
탁.
마도서의 오른쪽에 있는 똑딱이 같은 잠금장치를 풀자, 책이 스스로 펼쳐졌다.
파아앗.
마도서안에는 지렁이 같은 문자들이 적혀있었는데, 글자들은 빛을 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특성 온슬론의 감시탑을 획득합니다.]
“아...”
빛이 사라지니,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마도서가 있던 책상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엔 온슬론의 감시탑의 운용법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시험부터 해봐야겠지.”
창을 내다보니, 근무교대를 한 뒤 돌아가는 위병 2명이 보였다.
“딱 좋군.”
먼저 눈에 내공을 집중해서 위병들을 살펴본 뒤, 온슬론의 감시탑으로 시각을 두 배 강화했다.
내 방에서 위병들이 걸어가는 곳까지 거리가 300m는 넘을 것 같은데 그들의 얼굴이 깔끔하게 보이고 있었다.
내공으로만 눈을 강화 했을 땐 위병들의 얼굴이 수채화 같이 보였지만, 감시탑을 사용하니 그들의 이목구비가 확실히 보였다.
“이번엔 청각.”
마찬가지로 내공을 사용해서 청각을 강화한 뒤 온슬론의 감시탑으로 청각을 2배 강화했다.
“아니, 진짜라니까, 맛이 달라.”
“아니, 맥주가 다 거기서 거기지...”
“하! 이래서 고생은 안 해본 것들은, 제대로 된 술맛을 느끼고 싶으면 너는 인생의 쓴맛을 좀 더 봐야 해.”
“지랄한다.”
가까이서 들리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들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이거라면 저격도 가능하겠군.”
시각과 청각을 강화하면 활 이상의 원거리에서도 정확히 저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온슬론의 감시탑은 내 능력이 강화되면 2배로 강화되는 성장형 능력이니, 앞으로 더욱 더 강력한 능력이 될 것이다.
“가져오길 정말 잘했어.”
온슬론의 감시탑을 찾은 자신을 칭찬해주고, 주머니에서 두 번째 마도서 락토르의 강철 성벽을 책상위에 올렸다.
“이건 또 얼마나 놀라게 할지. 궁금하네.”
마도서의 잠금장치를 풀자, 이번엔 노란빛이 내 방 전체를 덮었다.
[특성 락토르의 강철 성벽을 습득하셨습니다.]
메시지를 보며 나는 내 머릿속에 새겨진 락토르의 강철 성벽의 지식을 읽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경악을 했다.
“뭐야, 이거 패시브잖아!”
락토르의 강철 성벽은 마나 홀만 등록을 해놓으면 알아서 정신 공격을 막아주는 상시 적용의 능력이었다.
마나 홀 대신에 단전으로 등록을 하니, 바로 락토르의 성벽이 발동되었다.
“하, 이것도 사기네. 왜 성벽인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