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1+1+1 (54/241)

1+1+1

“후...” 

유렌보다 먼저 연무장에 나온 다르는 귀족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베일의 섬뜩한 눈동자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베일은 지적인 모습을 연기하고 있지만, 실제론 맨손으로 갑옷과 검을 부수고, 사람의 생살을 뜯어 죽이는 살육에 미친 살인귀다. 

일이 잘못되면 저 살인귀의 분노가 자신에게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르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 베일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유렌 록스...” 

유렌은 최근 왕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이다. 강력한 몬스터들을 여럿 잡았고, 로페르 공작이 직접 북벽 탈환의 1등 공신이라고 말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유렌은 왕국을 울리는 강자였지만, 다르는 자신이 패배 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내겐 코비스의 궁술이 있으니.” 

다르는 베일에게 받은 마도서로 코비스의 궁술이라는 고대의 궁술을 익혔다. 

코비스 궁술의 신비로운 능력들은 평범한 수련 기사였던 다르를 파쇄의 궁사 다르로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 베일이 가져다 준 정보를 보고 유렌의 전투방식까지 분석했기 때문에 절대로 질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이제야 왔군.” 

왕실 연무장의 서쪽 입구에서 유렌이 여유로운 표정을 한 채 건들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우와아아아!” 

“유렌 공자님!” 

“샤크라이 킹 슬레이어!” 

“씨 서펜트 슬레이어!” 

“언데드 학살자!” 

유렌이 등장하자마자, 관객들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함성을 즐기듯 관객들에게 양손을 흔들어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런 망할 놈이!’ 

가득이나 자신들의 일을 방해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데, 늦게 나와 놓고 환호에 응답까지 해주는 유렌을 보자, 다르는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화를 꾹 참고 유렌에게 손을 내밀었다.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유렌은 싱긋 웃으며 다르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다르는 유렌과 악수를 한 후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벌렸지만, 유렌은 가만히 선 채로 히죽 웃으며, 다르를 보고만 있었다. 

‘저놈이...’ 

다르는 유렌이 자신을 무시하고, 여유를 부리는 것 같아서 더욱 화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오늘 대결을 펼치실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국왕의 앞에 있던 남자가 사회를 보는지, 연무장에 있는 모두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를 내었다. 

“먼저, 오크 투사, 샤크라이 킹, 씨 서펜트를 잡는데 그치지 않고 북벽의 언데드까지 몰아낸 록스의 대공자 유렌 록스!” 

“우와아아아!” 

“유렌님!” 

“몬스터 슬레이어!” 

“언데드 학살자!” 

사회자가 유렌을 소개하자마자,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유렌은 다시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음은 수백 미터 거리에서 오크의 눈을 맞추는 백발백중의 궁술, 갑옷을 부수고 뼈를 뚫어버리는 파괴의 궁술, 강인한 뼈를 두르고 있는 본 렉스를 화살만으로 잡은 파쇄의 궁사 다르 카스테인!” 

“우와아아아!” 

“궁사의 희망!” 

“파쇄의 궁수!” 

다르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환호를 무시하고, 유렌만을 노려보았다. 

“이것은 대련입니다. 서로의 목숨을 뺏을 정도의 공격은 즉시 패배로 간주합니다. 그럼 준비하십시오!” 

뿌드득. 

다르는 사회자의 말대로 유렌을 죽일 수는 없지만, 한동안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만들어 놔야겠다고 생각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시작!” 

대련의 시작과 동시에 유렌이 왼쪽으로 네 걸음 움직인 후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다르는 그의 중지와 엄지사이에 엄지손톱만한 쇠구슬이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검이 아니라, 쇠구슬인가? 내가 작은 물체를 맞추지 못할 거라 생각하다니, 멍청한 놈!’ 

다르는 유렌이 자신의 화살에 대한 대비로 단검이 아닌, 구슬을 가지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구슬을 피하고 활을 쏘는 것이 나은 선택이었지만, 다르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생각으로 유렌이 잡고 있는 쇠구슬을 조준했다. 

파아앙! 

피잉! 

유렌이 쇠구슬을 튕기는 순간, 다르도 끝까지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풀었다. 

쩌정! 

구슬과 화살의 부딪침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거대한 충격음이 연무장을 흔들었다. 

“크큭.” 

유렌의 알량한 생각을 비웃으며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려던 다르는 자신의 이마 앞에 무언가가 와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빡! 

정신을 잃었다. 

** 

“어쩜 이리 예상대로인지, 한심할 지경이군.” 

혀를 길게 빼놓고, 눈을 뒤집은 채 정신을 잃은 다르를 쳐다보았다. 

[이름: 다르 카스테인] 

[특성: 코비스의 궁술, 명사수lv2, 환검lv2, 오러 적응lv1] 

[호감도: -87(혐오) ] 

[현재 기분:... ] 

“기절해서 기분은 나오지 않네.” 

이번 대련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내 생각대로 움직였다. 

“어제 대련을 신청하자마자 느꼈지.” 

이틀 전 다르 앞에서 대련이라는 말을 했을 때 느꼈다. 다르는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자라는 것을. 

그를 도발하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귀족들의 환호에 손을 흔들었고, 다르가 움직이며 자세를 잡을 때도 여유를 부리며 가만히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 다르가 화살로 내 구슬을 맞출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 움직여주었다. 

내 도발에 넘어간 그는 자신의 능력하나 발휘 못 하고 흙바닥에 포근히 누워있었다. 

“이, 이게 대체...” 

위에서 보고 있던 국왕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가장 먼저 달려 내려왔다. 

“폐하.” 

국왕의 뒤에는 호위 기사들이 오고 있었는데 그들 역시 제대로 보지 못했는지 국왕의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관객석에 있던 후작이나 로페르 공작들도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르는?” 

“기절했을 뿐입니다.” 

국왕은 오자마자 쓰러진 다르의 상태를 먼저 걱정했다. 

“그, 그럼. 다행이군. 그런데 자네 대체 무슨 마법을 사용한 겐가? 왜 갑자기 다르가 쓰러진 거지?” 

“마법이 아닙니다. 그저 암기를 이용하는 한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암기를 이용하는 방법?” 

국왕에게 대답을 하고나서 옆에 떨어져 있는 쇠구슬을 주워왔다. 

“어?” 

“두 개?” 

“두 개잖아.” 

이들의 말대로 내 손에 있는 구슬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어, 근데 이 구슬들...” 

“크기가 조금 달라.” 

“하나는 조금 크고, 하난 조금 작군.” 

“그게 비밀입니다.” 

내가 던진 두 개의 구슬은 사천당가의 암기로 자모환(子母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밀?” 

“큰 구슬을 어미 구슬이라 하고, 작은 구슬은 아들 구슬이라 합니다.” 

“호오, 어미와 아들이라...” 

암기에 대한 이야기에 흥미가 있는지, 사람들이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먼저 어미 구슬을 던진 후에 곧바로 아들 구슬을 뒤따라 던집니다. 그러면 큰 어미 구슬에 가려서 작은 아들 구슬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군!” 

“크기를 이용하는 방법이라니!” 

“상대의 방심을 노리는 수로군! 크하하!” 

내 말을 이해했는지, 국왕이 무릎을 치면서 크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어미 구슬을 막거나, 쳐낸 상대는 바로 뒤에 오는 아들 구슬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게 됩니다. 이 자처럼...” 

예시 대상이 된 다르는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줄도 모르고 편안하게 기절해 있었다. 

“그런 방법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어. 대단하군.” 

국왕은 자모환이 재미있었는지, 흥분해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단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훌륭한 방법입니다. 비겁하다고 말하는 자도 있겠지만, 대결은 대결. 방심한 자는 목이 날아가는 게 맞습니다. 이자도 유렌 공자가 힘 조절을 하지 않았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저는 멋진 한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는 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국왕의 호위 기사 단장이 이렇게 말해주니, 굉장히 고마웠다. 그 덕인지 국왕의 호감도가 쭉쭉 상승하고 있었다. 

“대결이나 결투가 빨리 끝나면 대게는 재미없는데, 이렇게 흥미를 줄 수 있다니, 훌륭하네.” 

“아닙니다.” 

국왕의 말에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단검 하나로도 다르를 이길 수 있었지만, 내 의도대로 국왕의 관심을 받았으니, 또 다른 성공이었다. 

“그런데 구슬 하나를 날리는 것으로 봤는데, 어떻게 두 개가 날라 간 건가?” 

“그게 이 방법의 두 번째 비밀입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기 힘든 비밀입니다.” 

“비밀이라, 하하하! 하긴 모든 것을 알면 재미가 없겠지. 알겠네.” 

국왕이 기분 나빠 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잘 봐준 모양이다. 

“흠.” 

주변을 둘러보니, 후작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고, 로페르 공작 역시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휘익!” 

“멋있습니다!” 

“역시 명성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군.” 

다른 귀족들과 관객들도 환호를 내지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은 기절해있는 다르와 평온한 표정 속에 용암 같은 분노를 꾹꾹 눌러 참고 있는 베일뿐이었다. 

“아들 한 번 정말 잘 키우셨네요.” 

“하하, 그렇지? 조금 늦게 정신을 차린 대신, 지금은 아주 복덩이가 됐다니까.” 

“정말입니다. 이젠 마음 놓으셔도 되겠어요.” 

“그럼. 그럼. 하하하!” 

베일은 잘됐다고 하면서 후작과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의 기분을 본 나는 등줄기 전체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현재 기분: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의 목을 뽑아버리고 싶음.] 

원래 현재 기분은 나에 대한 것이 나와야 하는데, 베일은 정신이 거의 나가버렸는지, 나뿐만이 아니라 이곳의 모두를 죽이고 싶어 했다. 

베일하곤 결국 붙어야겠지. 

내간 원하던, 원하지 않던 조만간 베일하고는 싸워야 할 것 같았다.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겠어. 

“대공자님!” 

페루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페루는 내게 손가락 세 개를 보여주고 있었다. 

“3초인가, 생각보다는 시간이 걸렸네.” 

** 

대련이 끝난 다음날 

국왕의 호출에 의해서 알현실로 불려갔다. 

“푹 쉬었는가?” 

“네. 딱히 피곤하지는 않았습니다.” 

“하하, 그렇겠지. 그렇게 빨리 끝이 났으니. 아, 다르는 일어났다네. 전혀 부상이 없는 것을 보니, 자네가 힘 조절을 잘한 모양이야.” 

“다행입니다.” 

국왕은 만족스레 웃으며 다르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보고를 열어 주시려고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크으. 역시나 시원시원한 대답 마음에 드는군.” 

국왕은 전형적인 상남자 성격을 가지고 있다. 괜히 핑계대고 주저하는 것은 그의 호감도만 떨어뜨릴 뿐이다. 

“맞네. 줄 것은 확실하게 주어야지.” 

국왕은 옥좌에서 내려와서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이전처럼 주문을 외워서 왕실 보고를 열어주었다. 

촤아악! 

황금빛의 보고가 다시 한 번 눈앞에서 열렸다. 이걸 두 번이나 보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후후, 한 번에 3개라니, 왕국 역사상 자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걸세.”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가서 골라보게, 2개 일세.”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국왕에게 예를 표한 뒤 보고에 들어갔다. 

“흠...” 

어제 쉬면서 보고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솔직히 보고에 있는 대부분은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딱 한 종류는 내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도서.” 

고대의 기예나 능력이 담겨있는 마도서들은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될거다. 

“하지만 문제가 있지.” 

마도서는 펼쳐서 그 능력이 자신에게 새겨질 때 까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어제 내게 얻어맞은 다르 역시 검을 수련하다가 마도서의 궁술을 얻고 활로 전공을 바꾼 녀석이다. 아마 마도서는 베일이 줬을 테고. 

거기다 별 쓸데없는 것들도 있으니. 

마도서엔 전투기술만 있는 게 아니다. 요리나 제작, 청소까지 별의별 내용이 다 있다. 잘못 걸리면 생활력만 늘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생각해 봤다. 모든 것이 보이는 내 눈이라면 마도서가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후...” 

한숨으로 긴장을 털어버리고, 마도서가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큭!” 

마도서를 보자마자, 양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레이크의 바다 수영법] 

파도, 부유물, 여러 가지 변화와 몬스터까지 수많은 위험을 가지고 있는 바다에서 안전하고 빠르게 수영을 할 수 있는 키락 왕국의 돌고래라 불리던 레이크의 능력이다. 

마도서의 이름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 모두 내 눈에 보이고 있었다. 

“정말 미쳐버린 능력이군.” 

내 능력이지만 정말 사기라고 생각하며 레이크의 바다 수영법을 아래로 내렸다. 

“아!” 

마도서들을 훑어보다가 너무 놀라서 순간 손과 정신을 동시에 멈췄다. 

[락토르의 강철 성벽] 

자신의 보유하고 있는 마나로 정신공격을 방어 할 수 있는 강철의 성벽을 세운다. 많은 마나를 보유 할수록 강한 정신 공격을 버틸 수 있다. 키락 왕국의 골렘이라 불리던 락토르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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