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랙커드 (50/241)

랙커드

세피로스는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방의 이름이다. 

대부분의 나방은 징그러운 외형을 하고 있지만, 세피로스는  나비보다도 수려하고, 매혹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검은색 테두리에 밝은 청색으로 칠해진 세피로스의 날개는 한 번 보면 누구라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세피로스를 봤다고 해도 절대 다가가서는 안 된다. 

세피로스의 곱디고운 날개에서는 강력한 환각증상을 만드는 독이 나오기 때문이다.

세피로스는 자신의 독에 중독되어 환각을 보고 있는 동물의 생살을 뜯어 배를 채우고선 유유히 떠나간다.

이 미친놈들 역시 마찬가지지.

세피로스라는 이름의 괴물들의 단체 역시 나방 세피로스와 다를 바가 없다.

세피로스의 괴물들은 겉으로는 좋은 신분과 매혹적인 외모,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뒤에서는 입에 담기도 힘든 악행을 하며 세상을 농락하고 있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름: 베일 파비앙]

[특성: 살귀(殺鬼), 고통내성lv4, 집중lv3, 강철피부lv3, 괴력lv4 ]

[호감도: 0(중립) ] 

[현재 기분: 목을 뜯어먹고 싶음.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나에 대한 호감도는 중립인데, 현재 기분은 내 목을 뜯어 먹고 싶다고 되어 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다.

거기다 저 엄청난 전투 특성을 가지고 허약한 문관의 행세를 하는 것을 보니, 이 자는 세피로스의 살귀 베일 파비앙이 맞았다.

"후작님. 이제 다른 귀족 분들이 오실 시간이라..."

"아, 미안하네. 내가 너무 붙잡고 있었나 봐. 하하."

"아닙니다. 유렌, 만나서 반가웠다. 나중에 보자."

"네. 고생하십시오."

나는 계속 창조주의 눈을 발동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베일의 감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나 후작의 피를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거다.

"파비앙 남작님과는 친한 사이이십니까?"

워프 통로로 지정된 보호벽에서 나오면서 기분 좋아 보이는 후작에게 질문했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지. 대화를 하면 편해진다고 해야 할까. 귀족 중에서 저런 친구는 드물거든. 너도 베일과 이야기를 해보면 알게 될 거다."

"그렇군요."

후작은 그에 대해 큰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놈들.

이것이 세피로스 놈들의 방식이다. 자신들의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줘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 후 언제든지 이용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자신들이외의 모든 인간들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놈들은 연합의 이름을 세피로스라고 지었다.

"파비앙 남작가는 처음부터 베일님이 이으신 건가요?"

"형이 행방불명 됐다더구나. 베일은 끝까지 형을 찾겠다고 했지만, 선대 남작님이 돌아가셔서 어쩔 수 없이 베일이 작위를 이었지."

원래 소설에선 그의 형이 작위를 잇는다. 나는 어떤 필요에 의해서 베일이 그의 형을 죽였다고 확신했다. 

"그럼 왕궁에서 일한지는 얼마 안 되었겠네요?"

"맞아. 이제 2년 됐나? 원래부터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난 녀석이니, 왕궁에 오자마자 능력발휘를 하고 다녀서 금방 적응한 모양이야. 인망이 있고, 능력이 뛰어난 걸로 명성이 자자하지."

등줄기 사이사이로 오싹한 소름이 돋아 올랐다. 

이놈만 변한 건지, 다른 놈들도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만약 후자라면 앞으로의 사건들이 굉장히 힘들어질 것 같다.

"유렌."

"네?"

입술을 깨물며 혼잡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후작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불렀다.

"나는 국왕 폐하께 보고 드릴 준비를 해야 하니, 너는 밖에 나가서 구경이나 하고 오거라."

후작은 부드러운 웃음을 띄우며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도와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훗, 돕기는 뭘 도와. 벌써부터 고생할 필요 없다. 지금 왕도 전체가 축제이니, 구경도 많이 하고, 많이 돌아다니 거라. 모두 경험이니까."

"알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후후, 그래."

후작에게 인사를 하고 내게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역시나 왕궁인지 손님용 방인데도 불구하고, 내 방만큼이나 크고 화려했다. 

"베일, 베일이라..."

침대에 드러누워서 오늘 본 충격적인 인간의 이름을 중얼 거렸다. 

"이유는?"

피에 미친 저놈이 그냥 왕궁에 왔을 리는 없었다. 분명 세피로스 놈들이 무언가를 노리고 베일을 이곳에 보냈을 거다.

"국왕? 왕족? 귀족? 보물?"

놈들이 노릴 만한 것이 너무 많았다.

"저놈들이 그 ‘가짜’를 노릴 리도 없고."

생각을 해도 머리만 아프고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그곳에 가려고 했으니, 의뢰 할 게 하나 늘은 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서 방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짐을 풀러갔는지, 아린이나 페루도 보이지 않았고, 내게 배속된 시녀 한명만 문 밖에 있었다. 

"바람 좀 쐬고 올 테니, 나 찾는 사람들 오면 돌아가서 쉬라고 해줘."

"알겠습니다."

시녀에게 말을 남기고 숙소를 나오자, 색감 넘치는 정원이 보였다. 젊은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자기들끼리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딱히 알아보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대로 정원을 빠져나왔다. 

"후우, 빡쎄네."

왕궁에서 나가는데 검문을 네 번이나 했다. 정문에서 한 번 하는 후작가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음..."

왕도는 이미 축제 중이라,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내 화려한 복장은 꽤나 튀고 있어서 으쓱한 골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아그네스."

[이번엔 또 뭐야.]

"얼굴 바꿔줘."

[넌 진짜 비밀이 많은 인간이야.]

아그네스는 툴툴 거리면서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찰흙을 주무르는 것처럼 꿀렁이던 아그네스는 순식간에 내 얼굴을 감싸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좋네. 마음에 들어."

[당연하지. 누가한 건데.]

거울로 얼굴을 확인하니, 내가 생각했던 대로 적당히 흔하고, 적당히 평범한 얼굴이 되었다.

"이 맛에 산다니까!"

골목 밖에 나오니, 축제를 즐기고 있는 갈색 옷의 청년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안녕!"

외향적이고 많이 돌아다녀봤을 것 같은 느낌이라 길을 묻기 위해 말은 걸었는데 돌아오는 것은 반말이었다.

"길 좀 물어봐도 될까?"

"고럼. 여기 전부 내 구역이거든."

내가 말을 놔도 신경 쓰지 않는다. 축제긴 해도 아직 대낮인데 꽤나 취한 느낌이었다.

"파랑새라는 주점을 알아?"

"...파랑새? 당연히 알지. 내가 거기 단골이야."

청년은 파랑새라는 이름을 듣고 잠시 멈칫거렸지만,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난 그의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가자! 안내해줄게."

그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친구는 정말 운이 좋은 거야. 그 술집이 구석에 쳐 박혀 있어서 대부분은 모르거든."

"그래?"

"아마 10명에게 물어보면 10명이 다 모른다고 할 걸. 크크. 친구의 소중한 시간이 굳었으니까. 맛있는 술 좀 사줘야 해."

"알겠어."

자신의 이름을 톰스라고 한 녀석은 친근한 척하기 시작했다. 나는 녀석의 장단을 맞춰주면서 파랑새로 가는 길을 외우고 있었다.

"여기야. 여기가 파랑새지. 겉으로 보기엔 더러운데 안은 또 괜찮아. 자 들어가자고."

톰스의 말대로 파랑새의 외관은 누더기 같아서 일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들어갈 일은 없어보였다. 파랑새라는 이름이 아까울 정도였다.

"주인장! 나 왔어! 손님도 데려왔다네!"

"흥, 네놈이 데려온 손님이라니. 뻔하겠지."

나무껍질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톰스의 말대로 안은 나름대로 깔끔해보였다. 

10개의 테이블 중 4개가 차 있었고, 나머지는 텅 비어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술집에 4테이블이나 차있는 게 신기한 일이다. 

"어이, 친구. 나 술 좀 시켜도 되지?"

"그래."

톰스는 벌써 카운터 쪽으로 자리를 잡고, 주인장에게 술을 주문하고 있었다. 

"하하, 고마워."

나는 그의 옆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찾던 장소임을 확신했다.

"그래. 이 멍청이가 데려온 호구께서는 무엇을 주문하시겠소?"

"에이, 주인장! 물주님께 호구라니! 친구! 여긴 흑맥주가 맛있어. 헤헤"

톰스가 흑맥주를 시원하게 들이 키고, 킥킥거렸다. 

"그럼 흑맥주 한 잔 그리고..."

내 말이 이어지는 것을 듣고 맥주를 가지러 가던 주인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파랑새는 날지 못한다. 그저 땅에 떨어진 먹이를 주워 먹을 뿐이다.’였던가?"

"푸악!"

조금 전까지 자신들끼리 웃고 떠들던 주점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맥주를 마시던 톰스는 입에서 맥주를 뿜었다.

"저, 저기 네가 ‘길드’를 찾아 온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런 암호는 좀 조용하게 말해야지..."

옆에서 맥주를 뿜은 톰스가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앞을 보니, 주인 역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관없잖아. 지금 이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희 길드원이니까."

좀 전의 분위기가 놀람이었다면 지금은 북극에 온 것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스윽.

턱.

다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내 옆에 있는 톰스는 나와 사람들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고, 주인은 가만히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다리를 흔들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탁.

일촉즉발의 상황, 카운터 옆에 있는 작은 문이 열리고 왼쪽 눈에 안대를 하고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손님... 모셔오라신다."

"음..."

중년인의 말에 나에게 달려들 것 같았던 자들이 모두 자신의 테이블로 돌아갔다. 

"허억, 너, 너 대체..."

톰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술값은 내가 낼 테니, 잘 마시고 가, 친구."

"아..."

넋이 나간 톰스에게 미소를 지어주고, 중년인을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곳은 술을 저장해 놓은 창고 같았는데, 남자가 바닥에 있는 미세한 틈에 손을 대자, 아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내려가시오."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이 느껴져서, 기감을 펼치자 어둠 속에 숨어 있는 5명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일부러 그들이 숨어 있는 곳을 한 번씩 쳐다보자, 모두가 흠칫 놀라는 것이 느껴졌다.

"훗."

숨어 있는 자들을 놀려주며 계단을 내려가다 보니 천장에 빛나는 구슬이 박혀 있는 작은 방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방 가운데 있는 원형 테이블엔 턱을 괴고 있는 붉은 머리의 매혹적인 미녀가 잠에서 막 깬 것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랙커드에 오신 걸 환영해요."

랙커드는 정보를 판매하고 구매하는 정보 길드다. 

세상에 퍼져있는 수많은 랙커드 길드원들이 보내오는 정보를 보완, 분석, 판단해서 신뢰성 있는 정보를 확보한 뒤 의뢰자에게 맞는 정보를 파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정보를 사러왔다."

여자의 반대편에 있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어떤 정보를 원하시나요?"

턱을 괴고 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자, 그 반동 때문인지 테이블위에 놓여 있던 둥근 물체에서 천이 벗겨졌다. 

"아, 이런."

"찍!"

천이 감싸고 있던 둥근 물건은 철창이 촘촘하게 만들어진 작은 새장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쥐가 한 마리 들어있었다.

쥐의 눈은 잘 씻은 까만 콩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털은 흰색과 갈색이 조화롭게 어울려져있었다. 꼬리는 통통하게 말려 있어서 쥐가 아니라 귀여운 다람쥐 같은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후후, 보는 것만큼 귀엽기만 한 아이는 아니랍니다. 하여튼 귀족들의 취향은 독특하다니까요."

그녀는 그 말을 하며 천으로 다시 새장을 덮으려고 했다. 

"잠시만 봐도 될까?"

"뭐, 손님께서 감당하실 수 있다면야."

그녀는 쥐가 있는 새장을 내 쪽으로 밀어주면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나는 지금 눈을 켜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녀석이 어떤 쥐인지, 그녀가 어떤 의미로 감당이라는 단어를 썼는지 모두 알고 있다. 

나는 그녀의 도발을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찍!"

얇고 촘촘한 새장 속에 새끼손가락 하나를 끼워 넣었다. 가운데서 가만히 있던 쥐가 순식간에 달려들어서 내 새끼손가락을 향해 이빨을 세웠다.

"위험해요!"

내가 정말 손을 넣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쥐가 내 손가락을 깨물려는 순간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독(블라인드 마우스)에 중독 되셨습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이 독(블라인드 마우스)의 고통과 증상을 제거합니다.]

"괜찮아. 감당 할 수 있거든."

여자는 내 말을 듣고 아까보다 눈이 두 배는 커졌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즐기며 아직도 날 물고 있는 쥐에게 흡독지력을 사용했다.

[흡독지력이 대상에게서 독(블라인드 마우스)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절맹귀산(絶盲鬼散)이 개방됩니다.]

감당 되니까, 가져가 달라면 가져가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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