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왕궁으로 (49/241)

왕궁으로

"저, 저주라니..."

이미 죽은 주제에 저주라는 말은 불안한지, 포메라가 조그마한 두개골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내게 잡히지 않았다면 너는 강력한 어둠의 군대를 이끌 정도로 강해질 수 있었을 거야. 그런데 그게 너 자신이 아니라면 다 무슨 소용일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넘치는 마력과 강력한 마법을 지녔지만, 너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다른 영혼이 네 몸을 차지한다면 어떨 거 같아?"

"서, 설마..."

포메라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들은 모양이다. 녀석은 소리가 날 절도로 나무 지팡이를 꽉 움켜쥐었다.

"네가 얻은 검은 구슬에는 강대한 어둠의 마력만 들어 있는 게 아니야. 혼자서 한 영지를 멸망시켰던 8서클의 흑마법사 아이자크가 잠들어있다."

"아이자크!"

포메라가 딱딱거리는 음성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이 녀석도 마법사다 보니, 아이자크는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일 거다.

"역시 너도 아는군."

"당연하다. 아이자크는 마법 역사서에도 나오는 흑마법사다."

"그 아이자크가 네가 가지고 있던 구슬에 봉인이 되어있어. 네가 구슬의 마력을 많이 흡수 할수록 아이자크의 힘만이 아니라, 놈의 영혼까지 네 몸에 흡수 될 거야."

"그럴 수가..."

"구슬의 힘을 빌리면, 너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7서클에 오를 거야. 강력한 흑마법을 사용하고, 고위 언데드들을 소환하며 그 순간을 즐기겠지. 그러다가 7서클 마스터에 오르는 바로 그 순간..."

딱딱딱.

포메라가 긴장이 되는 지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봉인이 단번에 풀리면서 아이자크가 네 정신세계에 침입 할 거야. 7서클 때부터 조금씩 침식당한 네 정신세계는 순식간에 놈에게 지배당할 테고, 배고픈 아이자크는 네 영혼을 뜯어먹고, 예전보다 강해져서 나타나겠지."

포메라의 영혼으로 배를 채우고, 그의 신체를 강탈한 아이자크는 이전보다 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나타난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난 이미 6서클 마스터가 되었는데..."

"너는 아이자크의 어둠의 마나를 네가 감당 할 수 있을 만큼만 흡수한 상태야. 더 이상 흡수하지만 않으면 아이자크에게 잡아먹힐 일은 없어."

"그러면 이대로 있으면 내 몸을 빼앗길 일도 없다는 소리인가?"

"맞아. 그런데 넌 정말 그걸로 괜찮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포메라는 이어지는 내 말에 입을 다물었다. 

"괜찮다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넌 당하기만 했잖아, 너를 이용한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지 않아?"

나는 원래 포메라를 단순한 마법셔틀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이 녀석은 훨씬 큰 배역을 맡아줘야 할 거 같다. 

"너는 네 선택으로 리치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야. 놈들은 네가 리치가 되는 것을 노리고 구슬과 책을 준거야. 거기다 네 정신을 느슨하게 만드는 현혹 마법까지 걸었지."

포메라는 이용만 당하다가 몸을 빼앗기고, 영혼조차 먹혀버리는 불쌍한 인물이다. 이렇게 놔두기엔 아까웠다.

나는 아이자크의 그릇으로 선택된 포메라를 반전을 일으킬 조커로 키울 생각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해."

"기본?"

"그래. 마나 명상이다."

마나 명상은 마나에 적응 하고, 마나와 좀 더 친숙해지기 위해서 초보 마법사들이 하는 기본 훈련이다. 

마법사들은 서클이 올라갈수록 마나와 친숙해지기 때문에 2서클이상의 마법사들은 마나 명상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나 명상의 진정한 힘은 마나에 대한 적응이 아니다. 마나 명상에는 영혼을 단련시키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마나 명상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거지 않나."

"아니, 마나 명상의 진정한 효과는 영혼의 단련이다."

"영혼의 단련?"

"그래. 마나 명상은 마법사들의 영혼을 단련시켜서 더욱 특별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 

10년 넘게 마나 명상을 해온 특별한 마법사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으니까. 그 사람이 등장하면서 마나 명상의 진정한 효과가 드러나게 될 거다.

"하라면 해. 어차피 넌 인간의 3대 욕구가 모두 필요 없으니까. 하루 24시간 모두 마나 명상만 해."

"그걸로 나를 타락시킨 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가 있나?"

"물론이지. 네가 할 일은 아이자크의 영혼과 맞붙어도 버틸 정도로 네 혼을 수련하는 거야."

자신을 이용한 놈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 듯 포메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런 다음엔?"

"아이자크가 네 영혼을 먹으려고 할 때 반대로 네가 아이자크의 힘을 먹어버리는 거야."

"무, 무슨..."

"내가 그렇게 만들어 줄게."

내가 이를 드러내며 씩 웃자, 포메라가 흠칫 몸을 떨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너를 아이자크 이상의 흑마법사로 만들어 주마."

**

본체 상태로 마나 명상을 하는 것이 효율이 좋기 때문에 포메라에게 아무도 없는 해안 동굴에 가서 마나 명상을 하도록 지시했다. 

포메라의 상태창을 보니, 나에 대한 호감도가 많이 상승했고, 현재 상태에서 내 말을 믿고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믿고 보내주었다.

"아, 진짜 너무 힘들어..."

포메라를 보내 뒤에 나는 바쁘면서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왕궁에서 내 이름으로 된 초대장이 도착하자, 후작이 왕궁에선 왕궁의 예법을 지켜야 한다며, 예절 교사를 초빙해서 내 예절 교육을 시작했다.

식사 중에서도, 옷을 입고 벗는 것도, 몸가짐과 걸음걸이, 말하는 방법 모든 것을 지적을 받았다. 

"준비는 모두 마쳤느냐?"

"네..."

후작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힘이 빠진 대답을 했다. 출발하는 오늘 아침까지 왕궁 예절에 대한 교육에 시달렸기 때문에 아직도 머리가 멍한 상태였다. 

최근의 일주일은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시간이었다.

"우리 가문은 어느 정도 예절에 자유로운 편이지만, 왕궁에선 조심해야한다. 말과 행동을 하기 전에 3번 생각하고 하거라."

"알겠습니다."

이 말도 벌써 열 번은 들은 소리였다. 후작은 나를 아끼는 만큼 내가 그곳에서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음."

우리 앞에서 마법진을 바라보고 있던 푸른 로브의 마법사가 몸을 돌려서 후작 앞으로 다가왔다.

"저희 차례가 왔습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네."

후작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를 하고 있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며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웅

팔각형의 마법진에 진하게 반짝이는 푸른빛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마법진은 워프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궁으로 워프를 하는 통로를 개방한 것이다. 원래는 위험상의 이유로 닫혀 있지만, 왕궁의 허가를 받아 잠시 동안 열어 놓은 상태였다. 

"유렌, 가자."

"네."

나와 후작, 호위 기사들과 하인들이 모두 마법진에 올라가자. 마법사가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주문에 따라 마법진의 푸른빛이 붉게 변하더니, 원기둥이 되서 우리 모두를 감싸버렸다. 

"잘 다녀오십시오."

번쩍.

마법사의 인사와 함께 순식간에 세상이 변했다. 후작가의 널찍한 정원에서 사방이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알 수없는 장소로 와버렸다.

워프 마법을 이용한 게 아니라, 워프 통로를 이용했기 때문인지 마탑 보다도 부드러운 이동이었다. 

"모두 움직이지 말아주십시오!"

우리가 서있는 마법진을 왕궁 기사와 마법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미리 약속 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지 살피는 중 같았다. 

가운데 있는 문관은 서류를 보며, 사람들을 확인했고, 그의 옆에 있는 마법사는 마법을 사용해서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흠..."

익숙한지 후작은 팔짱을 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윌링턴 록스 후작님 외 20명 확인 되었습니다."

마법사의 말을 들은 문관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우리를 막고 있던 기사들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한 후 길을 만들어 주었다. 

"오랜만이야."

길이 열리자마자, 후작은 이곳의 책임자로 보이는 문관에게 다가갔다. 후작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오래 간만입니다.후작님."

"그래. 잘 지냈고?"

"저야 똑같죠. 뭐."

문관은 후작은 친한 사이인지 만나자마자, 손을 맞잡으며 안부를 물었다. 

"하하하!"

후작과 문관은 무언가를 떠들더니 자기들끼리 웃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예절교육의 여파에 벗어나지 못해서 피곤한 눈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유렌. 이리 오거라."

후작은 가볍게 손짓을 하며 나를 자신의 옆으로 불렀다.

"이 녀석이 유렌일세. 어렸을 때 보고 처음 보지?"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지금은 엄청난 미남이 되었네요. 누가 후작님 아들 아니랄까봐, 후작님 젊었을 때를 꼭 닮았습니다. 하하!"

"후후, 그렇지? 유렌 봐라. 내가 젊었을 땐 너 이상이었다니까."

"하하, 그러네요."

이 말도 자주 듣는 소리라, 가볍게 웃어주었다.

"근데 우리 아들이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네. 자네 혹시 들어는 봤나? 샤크라이 킹 슬레이어, 씨 서펜트 슬레이어란 칭호를?"

"알다마다요. 오크 투사까지 해치워서, 올해에만 벌써 3마리의 대장급 몬스터들을 해치웠지 않습니까. 지금 왕도에는 유렌을 보겠다고 모여든 귀족 여식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하하, 정말인가? 그런데 자네 소식이 느리구만. 하나 더 있다네."

"아, 북벽에서의 일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 일 때문에 국왕 폐하께서도 유렌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저, 정말인가?"

후작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도 시켜주지 않고 내 자랑만 하고 있었다. 

"제가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후작님. 유렌이 제가 누군지 궁금해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하하! 나만 신나서 떠들고 있었군. 유렌, 이 비실비실 한 친구가 왕실의 살림을 담당하고 있는 베일 파비앙 남작이란다."

"살림을 담당하다니요.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조금 전까지 지루함과 창피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듣고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정신이 깨어났다.

"유렌?"

내가 멍하게 있자, 후작이 내 어깨를 만지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유렌 록스라고합니다. 파비앙 남작님."

"아닐세. 자네는 목소리도 멋있군. 여성들이 자네에게서 헤어 나오질 못하겠어."

그의 칭찬 따위는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자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자였다. 

이자는 파비앙 가문의 작위를 이어받지 못하고, 자신의 가문에 있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왜 작위를 이어받고, 왕궁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이자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 베일 포비앙이란 사람이 포메라를 타락시킨 악인들의 연합 세피로스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또 바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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