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데드 킬러
"대, 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건가. 단검을 맞고 듀라한이 사라지다니!"
로페르 공작이 혼이 나간 표정으로 듀라한이 녹아 없어진 성문 앞을 보고 있었다.
"저건 마법이 아닙니다. 마나의 움직임이 없었어요..."
"신성력도 아닙니다. 대체 뭐가 일어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쪽에 배치된 마법사와 신관 역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내 손가락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단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흐음."
침착한 척하고 폼을 잡고 있었지만, 나도 화골산을 처음 써봤기 때문에 엄청 놀란 상태였다.
생각했던 대로 화골산은 성수(聖水) 뺨 싸다구를 날려버릴 정도의 사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공작님. 해가 뜨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공격 명령을 내릴 준비를 하실 때입니다."
"으음. 그럼 동문을 잘 부탁하네. 그리고 나중에 얘기 좀 하세나."
"알겠습니다."
로페르 공작은 성벽을 내려가면서도 연신 나를 뒤돌아보았다. 내 능력이 어지간히 궁금한 모양이다.
챠앙!
"전투를 개시하라!"
산에 눌려있던 태양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자, 로페르 공작은 검을 뽑아들고, 성 밖을 넘어 산이 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내었다.
"우와아아아!"
"으아아아!"
공작의 목소리에 각 문 앞에 있는 기사와 병사들이 검으로 하늘을 찌르며 함성을 내질렀다.
"시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우웅
내 명령을 들은 신관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자, 성벽을 두드리던 언데드들 위에 반짝이는 빛의 그물이 생성되었다.
"파이어 익스플로젼!"
마법사는 신관 옆에서 주문을 영창한 뒤 신관이 만들어놓은 신성력의 그물을 향해 태양같이 이글거리는 화염의 구를 날렸다.
콰아아앙!
쿠쿠쿠궁!
신성력이 코팅된 화염의 구는 성문 앞을 막고 있던 수십 마리의 언데드들을 한 순간에 몰살시켜버렸다.
마법과 신성력이 잠시 동안 합일되는 현상을 이용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성문을 열어라!"
쿠구구궁
돌가루가 떨어지면서 동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다른 방향 역시 성문이 열리고 기사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성벽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로페르 공작을 보았다. 그는 북문을 향하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한다는 뜻 같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고 성문 아래로 바로 뛰어내렸다.
"돌격!"
"우아아아아!"
"으아아아!"
내 명령에 성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우와아아!"
"가자!"
"더러운 언데드 놈들!"
푸삭!
파삭!
성문 앞의 언데드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성벽에는 아직도 많은 언데드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최약체인 좀비라 병사들도 어렵지 않게 처리 할 수 있었다.
"키에에엑!"
하지만 내 앞에 있는 구울은 겉모습을 제외하곤 좀비와는 전혀 다른 몬스터였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구울]
좀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좀비와는 존재 자체가 다른 언데드 몬스터. 병사 이상의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피부는 나무껍질처럼 단단하다. 구울의 이빨과 손톱에는 죽은 자의 저주가 담긴 시독이 묻어있다.
기술: 피부 강화(보조), 시독(특수)
"키아악!"
구울이 내 얼굴을 노리고 손톱을 뻗어왔지만, 가볍게 피한 뒤 놈의 팔을 잡고, 흡독지력을 사용했다.
[흡독지력이 대상에게서 독(시독)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역혈곡(易血哭)이 개방됩니다.]
이곳을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흡독지력은 시체인 구울에게서도 독을 흡수해 낼 수 있었다. 순식간의 구울의 시독이 내 내공으로 바뀌고 새로운 독이 개방 되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득 좀 봐야지. 근데 역혈곡이라니, 이름부터 소름 돋네."
"키에에엑!"
퍽!
자신이 뭘 뺏긴지도 모르는 구울은 살점이 덕지덕지 묻은 이빨로 내 목을 노렸지만, 내가 놈에 줄 수 있는 건 화골산이 듬뿍 담긴 비수뿐이었다.
"키기..."
"움직이지도 못하는군."
비수가 박힌 구울은 몸을 움직이지도 못 하고, 부들부들 떨다가 순식간에 몸이 녹아서 사라졌다.
"마비가 되는 건가."
화골산이 발라져있는 무기에 몸을 맞으면, 언데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듀라한도 머리에 비수가 박힌 다음 움직이지 못하다가 사라졌었다.
"진짜, 말이 안 나올 정도로 개사기네."
"으아아!"
"죽어라!"
기사와 병사들에게 좀비들을 맡겨놓고, 나는 구울만을 노렸다.
병사들에게 위험한 구울을 제거하면서, 독을 흡수하는 것은 님도 보고 뽕도 따는 1석 2조의 상황이었다.
"대공자.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은 모두 처리했소."
"저희 쪽도 처리가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구울을 죽이고, 화골산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 레븐 백작가의 키론 기사단장과 카록스가 다가왔다.
"부상자는 있습니까?"
"구울의 손톱에 당한 병사들이 있습니다."
병사들에게 구울은 상대하지 말고 기사에게 맡기라고 말했는데 좀비인줄 알고 공격하다가 당했나보다.
"부상당한 병사들은 어디 있죠?"
"저쪽입니다."
구울의 손톱에 당했다는 병사를 찾아갔다. 좀비와는 달리 구울의 독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빠르게 해독 시켜 주어야한다.
"크으윽!"
"으윽!"
꽤나 상처가 깊은지 병사들의 얼굴이 조금씩 검게 변하고 있었다.
우웅.
흡독지력을 사용해서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독을 모두 흡수 해주었다.
"뭐, 뭐야..."
"순식간에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헉!"
옆에서 무릎을 꿇고 신성력을 사용하려던 신관이 입을 쩌억 벌리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독만 사라진 거지, 부상은 그대로니까. 막사에서 쉬도록."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공자님!"
"신관님. 가시죠."
"아, 네..."
신관은 얼빠진 얼굴을 하고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는 부상자 막사를 나와서 다시 키론과 카록스에게 갔다.
"공작님이 정오가 되기 전에 숲을 넘어 달라고 부탁하셨으니. 잠시 정비 할 시간을 가진 뒤 바로 출발하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10분간 정비!"
"10분간 정비 후 다시 출발한다!"
10분간의 정비가 끝난 후 경계를 하면서 어둠이 깔린 숲으로 들어갔다.
"꾸에엑!"
"키에엑!"
들어가자마자 숲 전체에 퍼져있던 좀비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투 준비!"
"네!"
좀비는 병사들도 충분히 싸울 수 있는 놈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좀 더 넓게 기감을 펼쳤다. 내 기감에 좀비와는 다른 존재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좌측에서 구울입니다!"
"젠장! 뒤로 빠져!"
"으아악!"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좀비들에게 가 있을 때 좌측 뒤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있던 구울 다섯 마리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슈우욱!
퍽!퍽!퍽!퍽!
"키기이..."
"키익!"
화골산이 발라진 비수를 맞은 구울 5마리는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사용해보지 못하고 달려들던 포즈 그대로 멈춰버렸다.
"머, 멈췄어."
"살았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기사와 병사들이 너무 놀라서 혼비백산하고 있을 때 나는 보법까지 사용해서 초고속으로 구울들에게 이동했다.
철그렁!
"으, 아깝다."
화골산의 미친 능력에도 단점이 있었다. 너무 빨리 녹아버려서 구울 5마리 중에 3마리밖에 독을 흡수하지 못했다.
"저, 저기 유렌님."
"네?"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마법사가 말을 걸어왔다.
"그거 신성력이나 마법 아니죠?"
"물론 아니죠."
"그럼. 그 단검에..."
"비밀입니다."
씩 웃으면서, 내게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를 지나쳤다. 그는 내 허리춤에 있는 비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아..."
그는 내 힘을 연구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 거다. 하지만 시체가 사라지는데 그가 뭘 어쩌겠는가. 마법사는 허무한 표정으로 구울이 녹아버린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그럼 다시 출발할까요?"
"네."
키론 기사단장이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면서 앞으로 나섰다.
"끼기긱!"
"우측, 해골병사들입니다."
"전투준비!"
해골병사들은 살아있는 자에 대한 지독한 원한을 가지고,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해골이라..."
지금까지 만난 언데드들은 살덩이들이었다. 해골에겐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해골병사의 뼈에 박아버릴 생각으로 단검을 날렸다.
슈우욱!
카각!
단검에 담긴 힘이 너무 강했기 때문인지, 단검은 해골병사의 갈비뼈를 뚫고 날아가 버렸다.
"기긱..."
하지만 그렇게 스쳐지나간 것 만해도 효과가 있는지, 해골병사의 움직임이 멈추더니, 잠시 뒤 뼈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래도 먹히네..."
스쳐도 사망이란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였다. 화골산은 언데드에게 만큼은 드래곤 브레스급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자잘한 언데드들을 처리하면서 숲을 돌파해 나갔다. 2시간 정도 지나자, 숲이 끝났는지 앞쪽에 밝은 빛이 보이고 있었다.
"숲이 끝났습니다. 이제... 헉!"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병사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키히히히히!"
"캬햐햐햐햐!"
"스, 스펙터입니다!"
숲을 나오자마자, 열 마리가 넘는 스펙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필! 저런 놈들이!"
"후우, 쉽지 않겠습니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스펙터]
공중을 날아다니고, 벽을 통과 할 수 있는 언데드 몬스터. 평소에는 대부분의 물리공격을 무시하지만, 오러와 신성력에는 약하고, 마법에는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 마법 방어(보조), 정신 지배(마법)
즉, 지금 놈들을 공격 할 수 있는 것은 오러와 신성력 뿐이었다.
"마법사님, 신관님."
"큭, 스펙터는 마법에 저항이 강합니다. 전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제가 축복을 걸고, 신성력으로 놈들을 묶겠습..."
슈아앙!
저들이 상의를 하고 있을 때 나는 단검에 내공과 독을 가득 담아서 스펙터에게 날렸다.
"키아악!"
내공 역시 스펙터에게 통하는지, 투명했던 놈의 몸에 바람구멍이 났고, 화골산 덕에 놈의 움직임이 멈췄다.
"키..."
4.5초가 지난 뒤 스펙터가 담배연기처럼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대체 저 단검이 뭐 길래..."
"말도 안 돼..."
스펙터가 사라지는 것을 본 신관과 마법사는 혼이 나간 것처럼 질겁해있었다.
"저 똥파리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단검 하나에 스펙터 하나, 공식처럼 단검 12개로 우리 앞에서 까불던 스펙터 12마리를 모두 산화시켜버렸다.
어떤 몬스터도 한 방에 죽으니, 적을 한 방에 죽이는 치트키를 쓰고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언데드 킬러..."
내 뒤에 있던 누군가가 홀리듯이 중얼거렸다. 왠지 이번 전투가 끝난 후 내게 새로운 칭호가 붙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뭐, 어찌됐든. 저희가 제 1 수비벽에 가장 먼저 도착했네요."
"네. 공작님은 일단 기다리라고 하셨는데..."
"그럼 여기서 대기하죠."
우리는 열려 있는 제 1 수비벽 문 앞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쿵.
쿵.
쿵!
"무, 뭐지."
벽 안에서 대지가 진동하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쿠아아아아!"
놈은 4m가 넘는 크기에 녹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손에는 한 방에 집을 부술 것 같은 거대한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오, 오우거!"
"오우거다!"
"아니야. 저건..."
오우거는 맞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온 몸의 살이 뜯겨져서 새하얀 뼈가 보이고 있었고,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크르르!"
가장 소름이 끼치는 건 놈을 둘러싸고 있는 어두운 오라였다.
"어둠의 부활! 역시 예상대로 이번 일의 배후는 흑마법사였어요!"
신관이 언데드 오우거를 보고, 모두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둠의 부활은 사자를 생전의 모습으로 되살리는 흑마법이다. 사자가 생전에 강하면 강할수록 부활했을 때의 힘이 더 강해지는 마법이다.
"후, 멍청한 놈. 어둠의 부활에 힘을 쏟고 있었군."
이번 일의 원흉의 한심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스토리가 변했는데 일이 어려워진 게 아니라 훨씬 쉽게 해결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쿠아아아!"
"으아악!"
"오, 옵니다!"
우리를 발견한 오우거가 미친 듯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원래 오우거의 속도보다 배는 빨라보였다.
슈웅!
오우거에게 비수를 날렸다. 오우거는 지시라도 받았는지, 비수를 거대한 몽둥이로 막으려 했지만, 그 행동은 상정 내였다.
슈욱!
"쿠륵!"
곡사로 던졌기 때문에 비수는 오우거의 몽둥이를 여유롭게 피해서 그의 다리에 박혔다. 비수가 박히자마자 오우거의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쿠악!"
"어, 어..."
"온다!"
"피해!"
달려오던 관성에 의해서 넘어진 오우거는 우리 바로 앞까지 굴러왔다. 놈은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그 큰 덩치에 무색하게 봄눈처럼 녹아서 사라졌다.
"맙소사..."
"세상에나..."
"오우거가 사라졌어."
혼이 나간 것 같은 이번 감탄사는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들린 게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자, 로페르 공작과 카일, 다른 쪽에서 올라온 기사들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다 오셨네요. 바로 들어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