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화골산 (43/241)

화골산

"대공자님. 제게 말씀 하신 겁니까?"

그는 클로버 모양처럼 둥그렇게 깎인 나무를 손질하기 위해서 정원 가위를 들어 올리다가 멈췄다.

"네. 잠시 시간 좀 내주실수 있나요?"

"허허, 물론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더니, 정원에 끝을 벗어나 외곽에 위치한 아담한 집으로 안내했다. 매일 정원을 지나다녔지만 이런 곳에 집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음..."

그는 들어와서 차를 끓이고 있었고, 나는 그의 집을 둘러보았다. 관리를 잘했는지 집안은 먼지하나 보이지 않고 깔끔했다.

"고용인 저택에 살고 계시지 않나봅니다?"

"네. 저는 이곳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식사만 그곳에서 하지요. 아,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군요."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름: 폴레인 록스]

[특성: 쾌검lv4, 오러변화lv4, 검명(劍鳴)]

[호감도 : 56(상당한 호감) ] 

[현재 기분 : 약간 당황스러움.]

내가 찾아 간 사람은 첫 외출을 할 때 정원에서 봤었던 정원사 할아버지였다.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외출을 다녀와서 자료를 뒤진 후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정원에서 얻은 태인화를 말려서 우린 차입니다.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차에서 햇볕에 담은 것 같은 포근하면서도 부드러운 향이 풍겨 나왔다.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오셨는지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폴레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작은 할아버지... 맞으시죠?"

"후..."

웃고 있던 폴레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입으로 가져가던 차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윌링턴이 말해주었느냐?"

순식간에 분위기가 변했다. 인자한 웃음을 보이던 정원사 할아버지에게서 세상을 내리누를 패기가 솟아나고 있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윌링턴 후작이 아니라, 이 사람이다.

폴레인 록스가 록스 최강의 검사다.

"아뇨. 제가 알아냈습니다. 작은 할아버지."

그의 기세는 무척이나 무거웠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쳐 먹은게 몇 갠데 기세만으로 꿇리겠는가, 여기서 밀리면 사천당가가 통곡을 할 거다. 

"허허, 정체를 들킨 늙은이의 심술을 부려봤는데, 표정하나 변하지 않다니. 정말 달라졌구나. 네 나이에 따라올 자가 없겠어."

폴레인은 기세를 풀고, 다시 인자한 할아버지의 얼굴로 돌아왔다. 

"이전에 너와 만났을 때 하룻밤 사이에 네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기세를 흘렸는데, 그 때 알아챘나 보구나."

폴레인이 말하는 시기는 내가 만독자전신기 중급에 올랐을 때다.

"네. 그때 보통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행방불명되신 작은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는 알기 힘들었을 텐데?"

"이런저런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사실 창조주의 눈으로 이름을 보고, 록스 후작가의 가족관계가 적힌 서류를 찾아봤을 뿐이다.

"후후, 그런가. 여러모로 놀라게 하는 구나."

조금 당황해 보이던 폴레인은 여유를 가졌는지, 미소를 지으며 차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왜 이곳에서 정원사를 하고 계신 거죠?"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왜 정원사 일을 하며 혼자 살고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늙은이가 갑자기 나타나면 다들 귀찮게 생각 할 게 뻔하지 않느냐. 네 아비에게만 말하고 취미삼아 정원을 가꾸고 있단다."

"후작님이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말렸지. 하지만 내가 윌링턴보다 고집이 강하거든. 후후."

"그럼 행방불명인 기간 동안은..."

"제국에 있었다."

과거를 생각하는 지, 폴레인이 약간은 서글퍼 보이는 눈을 허공을 쳐다보았다.

"너희는 좀 특이하게 됐지만, 록스는 항상 장자가 가문을 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록스의 후작은 형님이 될 테니, 그냥 떠나기로 했다. 왕국에도 있기 싫어서 여행을 다니다가 우연히 제국의 귀족과 친구가 되었다."

"그렇군요."

"지금이야 평화로운 시기지만, 그 당시에 제국은 메릴 왕국과 전쟁 중이었지. 그 친구의 설득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덕에 돈, 명예, 지위 많은 것을 얻었다. 그 때는 제국의 후작이 돼서 형님을 찾아갈 생각에 들 떠 있었어."

무거운 어조로 말을 하던 폴레인이 한숨을 쉬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제국은 메릴 왕국의 왕도를 점령한 뒤 죽일 필요 없는 수천의 민간인을 몰살 시켰다. 그 때‘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 너무 늦은 후회였어. 그 길로 다 때려치우고 제국을 나왔다. 다행히 결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련도 없었지."

지금도 그때 일을 후회하고 있는지, 그의 눈동자가 회한으로 물들어 있었다.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지 않느냐? 윌링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네게 하게 되다니, 참 신기하군."

"아닙니다.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자에서 일어나서 폴레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해준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자. 네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냐?"

"혹시 카볼이라는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카볼? 모르겠군."

"이 검술서를 쓴 저자입니다."

"그 검술서는..."

폴레인의 검술서를 가져가서 펼쳐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서관에 가져다 둔 책이구나."

"아!"

혹시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정말 그와 관계가 있었다니 기대감에 심장이 거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 책을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예전에 후작가 정문에서 책을 팔고 싶다고 매달리던 아이가 있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절실해보여서 내가 사주었지."

"아이요?"

"그래. 지금쯤이면 네 나이쯤 됐겠구나."

책을 팔려고 하는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라니, 우연같지 않았다.

"아이가 불쌍해서 사주긴 했다만 내겐 필요 없는 책이라 도서관에 가져다 놨단다."

폴레인이 우연히 구입한 책을, 후작이 우연히 발견해서 내게 주었다. 그런데 그 책이 나만 알 수 있는 특별한 책이다?

머리에 총을 맞은 게 아닌 이상 이건 우연이 아니다. 특히나 얼마 전에 얻은 검인 덕에 더욱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혹시 그 아이에 대해 기억나는 부분이 있나요?"

"흠, 오래 돼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 구나. 다만 머리색이  검은색인 건 기억난다."

"검은색..."

이곳은 판타지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검은 머리색이 흔하지 않다. 특징이 될 만한 머리색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검은 머리색이라.

머릿속에 한 인물이 스쳐지나갔다. 

"설마..."

**

폴레인과 대화를 끝낸 후 내방으로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게 있는 것은 미완의 제왕검과 봉인 되서 쓸 수 없는 잊혀진 제왕검 두 개."

미완의 제왕검은 내가 설정한 검술이지만, 잊혀진 제왕의 검은 내가 설정한 게 아니다. 

"내가 미완으로 만들었으니, 이 세계가 설정을 맞추기 위해 알아서 완성된 제왕의 검을 만들어 놓은 건가."

미완의 제왕검으로 이름을 정한 이유는 그냥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게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완성된 제왕의 검을 만들어놓고, 찾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왕검의 봉인을 풀려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각 나라의 기본 검술서 16개를 찾아야 한다. 너무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에휴, 모르겠다. 책을 구하면 좋고, 못 구하면 못 구하는 거지. 조급한 마음은 독이야."

솔직히 사천당가가 있기 때문에 책을 구하지 못해도 별로 아쉬울 게 없었다. 

"내가 진짜 쓰고 싶은 기술은 제왕검이 아니라, 만천화우(滿天花雨)니까."

아쉬운 마음으로 잠겨있는 만천화우를 보다가, 아직 진화골산의 정보를 보지 않은게 생각났다.

무협 소설을 본 사람이면 화골산을 모를 수가 없다.

누군가를 죽이고 난 뒤 그것은 은폐하기 위해서 시체에 화골산을 뿌리는 장면은 항상 나오는 장면이다.

나는 화골산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좋은 물건을 왜 시체처리에만 사용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쉽단 말이지, 시체에 뿌려서 녹는다면 그냥 뿌려도 강력한 무기가 될 텐데."

뼈와 살을 녹일 정도면 그냥 뿌리거나, 기구를 이용해서 뿌리면 굉장히 위협적인 무기가 될 텐데, 항상 시체 처리에만 이용하는 게 답답했었다.

"어디..."

[진화골산(眞化骨散)](특수)

화골산의 개량형으로, 시체뿐 아니라, 혼백까지 녹일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가지고 있다. 피와 접촉 할 필요도 없이 시체에 위에 뿌리면 5초도 지나지 않아서 뼈와 살이 녹아 없어진다. 오로지 시체에만 효과가 나타난다.

"참 진자가 붙어서 그런가, 녹는 시간이 5초 밖에 안 걸리네. 어? 시체에만 효과가 나타난다고? 뭐 이런 망할 독이 다 있어!"

생각보다 훨씬 별로인 진화골산의 능력에 한숨을 쉴 때 이곳이 판타지 세계라는 것이 생각났다. 

"시체에만 사용, 혼백을 날림... 이게 그대로 적용이 된다면..."

최강의 화골산 사용법이 뇌리를 스쳤다. 

"이거 초대박이잖아!"

**

후작이 준 일주일의 휴가는 나에게도 적용되었지만, 나는 일주일의 시간을 모두 수련에 사용했다.

오전에는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하며 성취도를 높였고, 점심이후에는 암기를 날리며 숙련도를 올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검을 휘둘렀다.

"강해지는 게 눈에 보이니,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수련을 하면 조금씩이라도 결과가 바로 나타나니, 수련을 하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거기다, 이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강해질 수 있을 때 강해져야 해."

이미 이 세계의 스토리는 산으로 가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살아남을 수 있게 여유가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를 해 놔야 한다. 

"대공자님."

"페루?"

저녁 수련을 끝내고 땀을 닦고 있을 때 저택에 있어야 할 페루가 헉헉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헉, 헉! 후, 후작 각하께서..."

"천천히 말해."

"후우, 후작 각하께서 대공자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냥 걸어오지. 왜 그렇게 뛰어왔어?"

"집사님이 급하다고 하셨어요."

지금부터 한 동안은 평화로운 시기다. 후작에게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예상되는 부분이 없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휴가 중에 미안하구나. 급한 일이라."

"아닙니다. 휴가도 끝났으니까요."

후작의 얼굴은 나무껍질처럼 굳어 있었다. 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무슨 일입니까?"

"휴우..."

후작은 무언가 걸리는 게 있는지 머뭇거리고 있었다. 

"후작님?"

"엘리온 공작가가 수비하는 북벽이 어제 뚫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북쪽을 수비하는 엘리온 공작가가 밀리게 되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게 내 스토리였으니까. 하지만 북벽이 뚫리는 건 내 소설에 없는 내용이다. 

벽이 뚫리기 전에 주인공과 조력자가 나타나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게 원래의 스토리였다.

"하아..."

이제 하다하다 주인공이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 

"지금 북에서 내려오고 있는 몬스터들은 이전의 놈들과 다르다고 한다."

알고 있다. 원래 북쪽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오우거 같은 대형몬스터지만 이번엔 죽지 않는 괴물들까지 같이 나타났을 거다.

"북벽과 가장 가까운 제 1 수비벽을 버리고, 제 2 수비벽에 모든 병력을 집결시켜서 한 번에 밀어낸다고 하더구나."

후작이 내게 이런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에게도 지원요청이 왔다. 네가 가주었으면 좋겠구나."

주인공이 어디서 꿀 빠는 덕분에 진화골산의 개사기 능력을 보여줄 시기가 빨리 다가왔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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