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각인 (42/241)
  • 각인

    내가 소설 속 특성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단언 할 수 있다. 사천당가는 주인공의 특성과 비교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 개사기 특성이다. 

    검술을 씹어 먹을 암기와 독이 있는데 검술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하니까, 대충 훑어보기만 해야지."

    예의상 책을 한 번 훑어보고 후작에겐 본 척을 할 생각이었다. 지금 내 머릿속은 새로 얻은 진화골산을 시험 해볼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 저자는 카볼이라."

    책의 중간을 펼쳐 보았다. 예상외로 책에서 튀어나올 것처럼 현실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밑에는 자세에 대한 설명이 적혀져 있었다.

    "진짜 잘 그리긴 했네."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 5장 용조세(龍爪勢)라고 적힌 페이지의 그림과 설명을 다 보고 책을 덮으려고 할 때였다. 

    [창조주의 눈에 예속된 천안이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 5장 용조세를 각인합니다.]

    [특성 천무지체로 인하여 용조세를 재현하실 수 있습니다.]

    "어?"

    눈앞에 뜬 메시지를 보고 손에 힘이 빠져서 책을 떨어뜨렸다. 

    "이건 또 뭐야..."

    책의 그림과 설명만 본 것뿐이지만 내가 본 페이지에 있던 용조세라는 검로를 그대로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설마..."

    페이지를 넘겨서 뒷장을 보았다. 그곳에는 용조세 제 1 변형 검이라고 적혀있었다. 방금 전처럼 그림과 밑의 설명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창조주의 눈에 예속된 천안이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 5장 용조세 제 1 변형 검을 각인합니다.]

    [특성 천무지체로 인하여 용조세 제 1 변형 검을 재현하실 수 있습니다.]

    "실화냐..."

    책만 보고 검술을 익히는 사기급 능력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이게 진짜라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

    "어디 그럼 시작해 볼까."

    후작에게 부탁해서 그의 서재에 있는 검술서 5권을 가지고 방으로 왔다. 후작은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이 기쁜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책을 빌려 주었다.

    "일단 보던 책부터 봐야겠지."

    바로 책상에 앉아서 왕국 기본 검술서를 펼쳤다. 1장 기본자세인 정각세(正人勢)부터 18장 반격자세인 호와세(虎渦勢)까지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읽어버렸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네."

    책에 적힌 검술이 18장까지라서 적어보이지만, 장마다 응용검술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많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모든 내용을 각인 시키고, 책을 덮자 눈앞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을 모두 체득하셨습니다.]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이 특성 검인에 예속 됩니다.]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검인 속에 검술이 들어가는 건가."

    왕국 기본 검술이 검인에 예속 된다는 말은, 앞으로 배우는 검술은 모두 검인에 들어간다는 소리 같았다. 

    "책을 하나 더 읽어보면 알 수 있겠지. 그렇지만 그전에..."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시험 해봐야 할 게 있었다. 내가 정말 왕국 검술의 진의를 얻었는지를.

    "아그네스."

    [왜?]

    "검으로 변해줘."

    [엉? 재능은 쥐뿔도 없어서 검 안 쓰는 거 아니었어? 웬일이래?]

    "시끄럽고 빨리 변해."

    [흥.]

    아그네스는 툴툴거리면 내가 머릿속에 그린 이상적인 검의 형태로 변했다. 

    "후우..."

    심호흡을 한 뒤 검의 가드부분을 내 허리높이로 맞춰서 자세를 잡았다. 1장의 기본자세를 10초간 유지 한 뒤, 2장으로 넘어가서 검을 머리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부웅!

    이전과는 다른 호쾌한 감각에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검에 어떤 뜻을 담아야하는지, 내공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어떤 근육을 움직여야 하는지 까지. 나는 크라시스 왕국 검술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훙!

    후웅!

    휘두르는 검에선 수십 년간 검을 수련한 것 같은 능숙함이 배어나왔고, 움직이는 자세는 교본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책 한권을 읽은 것으로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을 완벽하게 펼쳐냈다.

    "후..."

    [야!]

    검술을 모두 마친 뒤 뿌듯함을 즐기고 있을 때 아그네스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왜?"

    [너, 너, 너! 대체 뭐한 거야!]

    "뭐가?"

    알면서 모르는 척 가볍게 대꾸했다. 

    [아니, 어떻게 된 거냐고! 네 신체가 특이해서 다른 사람의 자세를 따라할 수 있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뿐이었잖아!]

    아그네스는 한 번 보고 다른 사람의 자세나 기술을 따라하는 천무지체의 능력을 말하고 있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형(形)뿐이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의(義)를 담고 있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아그네스는 정말 놀랐는지, 귀여운 목소리가 깨질 정도로 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너 진짜 이상해!]

    아그네스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 능력을 스캔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 말도 안 돼, 갑자기 검에 재능이 생겼다고?]

    "거참, 재능이 생길 수도 있지 왜 이렇게 난리야."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재능이 1인 사람이 성장을 해서 2가 될 수는 있지만, 너는 아예 0이었다고! 이건 씨도 안 뿌렸는데, 꽃이 핀 경우야!]

    아그네스의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 이제 나는 겉껍데기가 아닌 뜻을, 의를 가지고 있는 검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너 정말 정체가 뭐냐?]

    "유렌 록스."

    [크으윽!]

    "하하하!"

    이제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다. 

    특성 검인을 얻음으로써 내게 검의 재능이 생겼고, 그 검의 재능이 창조주의 눈에 속해 있는 천안과 연결 된 것이다.

    사기 눈깔인 천안은 그림과 글만 보고도 검술의 진정한 묘리를 내 머릿속으로 때려 박아줬고, 사기 신체인 천무지체는 그것을 그대로 재현해 낸 것이다. 

    "크크크!"

    [웃는 것도 사악해 졌어.]

    믿기 힘든 기연과 우연의 조합에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은 어디보자, 록벨름 검술? 저자는 안 적혀 있고..."

    록벨름 검술이라는 책을 펼쳐보았다. 책에 적인 그림이나 설명을 보니, 방금 본 왕국 기본 검술보다는 책의 퀄리티가 상당히 떨어져보였다.

    "응?"

    한 페이지에 있는 자세를 모두 보았는데 아무런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왜 안 나와?"

    그 다음 장을 읽어보았지만 역시 아무런 상태창이 뜨지 않았다. 

    "되는 책이 있고 안 되는 책이 있나?"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시험 삼아 록벨름 검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0.01% 상승합니다.]

    "무슨! 경험치가 1000배 차이가 나냐!"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서를 본 것과 마찬가지로 경험치가 올랐지만 차이가 너무 크게 난다. 10%와 0.01%라니.

    "큭, 다음 책."

    록벨름 검술서를 뒤로 던져버리고, 후작에게서 가져온 다른 책을 읽어 보았다. 

    "이것도 안 나오네."

    세 번째 책에서도 자세에 대한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경험치 메시지가 나타났다.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0.02% 상승합니다.]

    "에휴, 그럼 그렇지, 그게 다 되면 사기지."

    경험치 차이도 너무 컸고, 자세도 각인 되지도 않았다. 내 생각엔 책의 퀄리티 차이거나, 저자의 차이 같았다.

    "그렇다면 카볼의 책을 찾아야겠네."

    검술서를 정독해서 검인의 경험치를 0.01% 올리는 것은 너무 시간 낭비다. 첫 번째 책의 저자인 카볼의 책을 찾기 위해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푸악!"

    책상 위에 다리를 올리고, 차를 마시던 사서가 나를 보고 차를 뿜었다.

    "안, 안녕하십니까!"

    "이야, 꿀 빠네."

    "크윽, 죄송합니다!"

    지금은 축제가 진행 중이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지네 집 안방처럼 편하게 있었나 보다.

    "저, 정말 죄송..."

    "됐고, 검술서는 어디에 있지?"

    "이쪽입니다."

    사서는 어깨를 덜덜 떨면서 나를 안내해주었다. 

    기사 가문이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텐데, 후작가의 이름 때문인지 상당히 크게 만들었다. 건물 디자인 자체가 책을 보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 식 같았다. 

    "이곳에 있는 것들이 검술서 입니다."

    "그럼 여기서 저자가 카볼인 책들을 찾아줘."

    "알겠습니다."

    "나는 이쪽을 볼 테니, 왼쪽을 봐줘."

    "제가 혼자 찾아도 됩니다."

    "시간 아까우니까, 나도 찾을게."

    내 앞에 있는 책장을 전부 뒤져도 카볼의 카도 나오지 않았다.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앞에 있는 검술서를 펼쳐보았지만 역시나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혹시 이거 맞나요?"

    사서가 책 한 권을 가지고 다가왔다.

    "전부 뒤졌는데 나오는 건 이거 하나네요. 로벨 왕국 기본 검술, 저자 카볼 맞나요?"

    "로벨 왕국?"

    "지금은 없어졌어요. 예전에 멸망한 나라죠."

    "그래? 어쨌든 고마워."

    "아니에요. 또 시키실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사서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책을 펼쳐보았다.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과 같은 그림과 같은 필체였다.

    "내 예상이 맞기를."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1장인 기본자세 로엔을 모두 읽자, 다시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창조주의 눈에 예속된 천안이 로벨 왕국 기본 검술 1장 로엔을 각인합니다.]

    [특성 천무지체로 인하여 로엔을 즉시 재현하실 수 있습니다.]

    "역시! 카볼의 책만 되는 거야!"

    대체 카볼이 누구 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책을 만들어낸 건지 궁금해졌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읽자."

    다시 책에 머리를 박았다. 로벨 왕국 기본 검술도 18장까지 있었기 때문에 모두 읽으니, 상당한 시간이 지나갔다. 

    팔랑.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다시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로벨 왕국 기본 검술을 모두 체득하셨습니다.]

    [로벨 왕국 기본 검술이 특성 검인에 예속 됩니다.]

    [특성 검인으로 인하여 나누어져 있었던 크라시스 왕국 기본 검술과 로벨 왕국 기본 검술이 다시 하나의 검으로 합쳐집니다.]

    [미완(未完)의 제왕검(帝王劍)이 생성 되었습니다.]

    [잊혀진 제왕의 검 2/18]

    [특성 검인에 미완의 제왕검이 예속됩니다.]

    [특성 검인의 경험치가 15% 상승합니다.]

    "미완의 제왕검이라니! 이게 왜 나와!"

    이거 그 미친놈이 쓰는 검술이잖아!

    **

    카볼의 책을 더 찾으려고 도서관을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다시 후작을 찾아갔다.

    "잘 왔다. 너도 축제에 얼굴 좀 비춰야지"

    후작은 축제에 가려고 하는지, 겉옷을 입고 있었다. 

    "혹시 카볼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십니까?"

    "카볼? 그 책을 쓴 사람을 말하는 거냐?"

    "네."

    "검술의 정석을 쓴 후라켄도 아니고, 책의 저자를 알 정도는 아니지."

    후작은 이 책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뿐이다. 

    "그럼 이 책들은 어디서 찾으신 거죠?"

    "네가 들고 있는 로벨 왕국 검술과 마찬가지로 도서관에서 찾았다."

    후작이 이 책의 가치를 알았다면 책을 도서관에 놔뒀을 리가 없었다. 이 책들의 진정한 가치는 이 세상에서 나만 알 수 있었다. 

    "일 하기 싫어서 도서관으로 도망갔다가 발견했지. 후후."

    "그럼..."

    "아마 네 할아버지, 혹은 그 이전부터 있었을지도 모르지. 보면 알겠지만, 꽤나 오래된 책이니까."

    그럼 이 책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누구도 모른다는 거다.  내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었다.

    "유렌, 책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가자."

    "네?"

    "이번 출정의 영웅은 너다. 축제장에서 사람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 네."

    후작을 따라 축제 장소로 향했다. 이미 한창 진행 중인지 멀리서부터 시끌벅적함이 전해져왔다.

    "후작각하와 대공자님이 오셨다!"

    "우와아아아!"

    "후작 각하!"

    "록스! 록스!"

    "유렌 대공자님!"

    나와 후작이 나타나자, 병사들이 모두 일어나서 록스의 이름을 외쳐댔다. 이번 축제의 비용을 씨 서펜트를 판 돈으로 한다는 것을 들었는지, 후작보다 내 이름이 더 많이 들리고 있었다.

    "유렌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샤크라이 킹 슬레이어! 씨 서펜트 슬레이어! 유렌!"

    그건 그렇고 슬레이어라, 그 사이에 또 새로운 칭호가 생긴 것 같다.

    "음?"

    뿌듯한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내 눈을 사로잡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가 축제장을 향할 때 그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저 사람은..."

    왠지 저 사람은 책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커다란 가위를 가지고 정원으로 가고 있는 그를 따라가서 말을 걸었다.

    "잠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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