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귀환 (41/241)

귀환

"이제 조금은 알겠군."

하얀 방에 두 번째 왔기 때문에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일단 내게 말을 건 여자는 인간이 아니야."

이곳에서 들리는 여자의 어조는 기계처럼 일정했으며,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적성을 찾은 뒤에 보상을 줄뿐이다. 자동응답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구슬을 볼 수가 없고."

두 번째로 구슬은 나만 볼 수 있으며, 구슬을 줍는 순간 바로 하얀색 방으로 소환된다. 

"아그네스."

세 번째로 이 방에선 아그네스와의 연결이 끊기게 된다.

아그네스와 나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든 대화가 되어야 하지만, 아그네스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내 예상이지만 이곳엔 내 정신이나 영혼만 불려오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주는 보상은 내 적성과 미래를 계산해서 필요한 것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일로 생각이 달라졌다. 

샤크라이 킹을 잡고 얻은 보상과 오늘 씨 서펜트를 잡고 얻은 보상은 너무 차이가 컸다. 

솔직히 말하자면 하늘과 땅차이가 나는 보상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보여주고, 그것을 피할 기회를 준 이전의 보상은 세상 무엇을 주어도 구할 수 없는 전설 급 보상이었다.

"검인이라..."

그에 비해서 오늘 얻은 검인은 이름에서부터 알겠지만, 별로 좋은 특성이 아니다. 

검제나 검성처럼 검술에 엄청난 보너스 능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왜 검의 기본 특성을 주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팟!

"아."

정신이 들자 순식간에 배로 이동해 있었다. 시간이 멈췄다가 흐르는 것처럼 페루가 구슬을 찾던 순간으로 돌아가 있었다. 

"대공자님, 구슬은 찾으셨나요?"

"구슬? 아, 내가 잘 못 봤어."

"그런가요."

페루에게 구슬이야기를 얼버무리고, 뒤로 빠져나왔다. 

"아그네스."

[왜?]

"혹시 내가 부른 거 들렸어?"

[응? 아까 나비로 변한 거 말고는 안 불렀는데.]

"그래?"

역시 하얀 방에선 아그네스와 연결이 끊기나 보다. 그 방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있었다.

"일단 한 번 볼까."

사람들이 씨 서펜트에게 관심이 쏠렸을 때 오랜만에 내 정보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쪽 갑판으로 가서 상태창을 불러왔다.

[이름: 유렌 록스]

[특성: 창조주의 눈, 사천당가(四川唐家), 백독불침(百毒不侵), 천무지체(天武肢體), 검인(劍人)-0% ]

[특이사항: ? ] 

[싱크로율: 78.16%] 

"역시나, 꿈이 아니네. 어? 잠깐. 검인에..."

검인은 많은 기사나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특성이다. 하지만 뒤에 저렇게 퍼센트가 달린 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보통 검인이아니라는 건가..."

그런데 검인 이상으로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보였다.

"저 물음표는 또 뭐야."

이전에 봤을 때만 해도 비어있던 특이사항에 물음표가 생겼다. 

"여긴 정말 알 수 없는 세상이구만."

"대공자님."

서펜트 구경을 끝냈는지, 페루가 다가왔다. 

"후작 각하께서 바로 회항한다고 하셨어요."

"당연히 그러시겠지."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당연히 돌아 갈 거라 생각했다. 

다시 섬으로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렉카를 포함한 기사나 선원, 콜린에 후작까지 모두가 나를 은근히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 시선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서펜트의 공포 때문인지 출항 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하이와 섬에 돌아왔다.

"오,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별일 없으셨습니까?"

"별일 있었지."

배에서 내리자마자 섬에서 기다리고 있던 크라이드가  웃으며 다가왔다. 

"네? 일이 있었어요?"

"씨 서펜트가 나타나서 전부 죽을 뻔했는데 대공자님이 사람들을 구하고, 서펜트도 잡았어요."

페루가 크라이드에게 배에서 있었던 일들을 엄청나게 과장해서 이야기 해주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내가 드래곤과 싸운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역시! 대공자님이십니다! 샤크라이 킹에 이어서 씨 서펜트라니!"

크라이드는 놀라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 신뢰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퍼어엉!

크라이드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포탄이 바다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씨 서펜트의 시체가 너무 무거워서 배에서 바다로 밀어버린 모양이다. 

"우와! 저놈인가요? 진짜 크네요!" 

서펜트 시체를 옮기기 위해 물에 들어가려 할 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대공자님."

배에 탈 때 나를 본 척도 하지 않았던 기사들이 배에서 내리면서 내게 고개를 꾸벅이고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대공자님. 수고하셨습니다."

기사들의 눈빛은 이전과 확연히 다른 색을 띄고 있었다. 

정중하다고 하긴 힘든 인사지만, 나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흠."

이들이 바뀔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반응이 나타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흐흐. 좋네요."

내가 대우를 받으니 기분 좋은지, 페루가 더 신나 있었다.

"크으윽."

"아악!"

"힘 좀 써!"

씨 서펜트의 무게는 정말 엄청났기 때문에 모두가 달려들어서야 겨우 해변으로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후작각하. 서펜트 시체는 마탑에 파시는게 어떻겠습니까? 상처가 많기는 하지만, 바로 잡은 시체에다가, 통짜니까 엄청난 금액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유렌."

"네."

마법사와 서펜트의 시체를 가지고 대화를 하던 후작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 덕에 잡은 것이니, 네가 원하는 대로 하마."

"마탑에 팔고, 그 돈을 좋은데 쓰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번 출정의 사상자에게 먼저 보상을 해주고, 후작가로 돌아가서 고생한 병사들과 기사들을 위해 썼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 진심이냐?"

"물론입니다."

후작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의사가 진심인지,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물론 진심이다. 

뱀을 팔아서 돈을 가지는 것 보다는 그 돈을 뿌려서 이곳에 있는 후작과 기사, 병사들의 호감도를 올리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다. 실제로도 지금 호감도가 올라가는게 실시간으로 보이고 있었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거늘.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마탑에 판매하는 건 자네가 해주게"

"물론입니다. 대공자님의 고귀한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책임지고 제값을 받아오겠습니다!"

내가 해독을 해주었던 마법사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쳤다.

"선장."

"네."

"씨 서펜트가 다시 나올지 모르니, 한동안 주의하게. 다른 어민과 주민들에게도 알려주고."

"알겠습니다."

후작이 선장에게 씨 서펜트에 대한 경고를 하는 동안 우리는 일자로 길게 늘어선 진형을 만들었다.

"그럼 돌아가자!"

"네!"

피곤해서 마법을 써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렇게 진형을 갖추고 걸어서 복귀를 하는 이유가 있었다.

"후작 각하께서 오셨다!"

"우와아아아아!"

"록스 만세!"

"유렌 대공자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하이와 섬을 떠나 마을에 들어가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를 환호하고 있었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천둥과 같은 함성이 울려퍼졌다.

"후작 각하!"

"대공자님! 이쪽 좀 봐주세요!"

"우와아아아아!"

남녀노소,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서 미친 듯이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까지 환호해주는 모습을 보자, 심장이 빠르게 뛰며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후작과 기사들은 사람들의 환호를 즐기듯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병사들도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유렌."

"네."

후작이 살짝 속도를 늦춰서 내 옆으로 왔다. 

"뿌듯하고 기분 좋지 않느냐?"

"사람들의 환호가 이렇게 기분 좋은지 몰랐습니다."

"나는 이들의 웃음, 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싸워왔다. 앞으로는 네가 이들의 삶과 웃음을 지켜 주거라."

후작은 그 말을 마치고, 다시 앞으로 나가서 사람들에게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공자님!"

"왜?"

"후작 각하께서 저렇게 말씀하신 건 대공자님에게 후계자를 주실 생각 아닐까요?"

"고작 시험 한 개 끝났다. 인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후작의 말과 눈빛에서 나에 대한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우와아아아!"

"샤크라이 킹 슬레이어! 유렌!"

"강철마법사!"

"유렌 대공자님!"

샤크라이 킹에 대해 들어서 그런지, 유독 내 이름이 많이 들리고 있었다. 그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손을 흔들어서 응답해 주었다. 

이 마을만이 아니라, 후작령에 속해 있는 모든 마을을 지날 때 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왔고 환호를 해주었다. 

"그때와는 확실히 다르군."

일리아를 도와 오크 투사를 죽였을 때도 아스 성에서 환호를 받았지만, 내 땅을 지키고, 영지민들에게 환호를 받으니 훨씬 큰 뿌듯함과 울컥함이 느껴졌다.

"후작 각하께서 돌아오신다!"

"모두 정렬!"

며칠에 걸쳐 후작령의 마을을 퍼레이드 하듯 돌고나서 후작가로 돌아오자, 입구에서부터 모든 하인과 병사, 기사들이 줄을 맞춰서 대기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다녀왔소."

자신이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가운데에 서있던 카이나가 후작에게 달려와서 안겼다. 

"흐흑, 정말 걱정 많았답니다."

"하하하! 매 년 하는 일인데, 뭘 그리 걱정하고 그러시오."

"제가 도와드릴 일이 없어서..."

"당신이 있어서 내가 마음 놓고 나가서 싸울 수 있는 거요."

"후작님..."

카이나는 후작뿐 아니라, 콜린과 라온을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에휴, 드라마를 찍어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내 방으로 가려고 할 때 후작이 내 어깨를 잡았다. 

"유렌."

"네."

"내일 내 집무실로 찾아오너라."

"알겠습니다."

후작의 진지한 표정을 보니, 무언가 중요한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모두 수고 많았다. 출정에 다녀온 인원 모두에겐 일주일간의 휴가를 줄 것이다."

"으아아아!"

"후작 각하 만세!"

"록스 만세!"

휴가라는 말에 기사, 병사 할 거 없이 모두가 소리를 질렀다.

"내일은 실컷 먹고 마실 수 있는 축제를 열 것이니, 모두 참여하도록."

"우오아아아아!"

"록스 만세!"

이곳의 사람들은 술을 물처럼 마시다 보니, 휴가 보다 축제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았다.

저택으로 들어가니, 씻을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욕탕에 가서 뜨끈한 물에 몸을 지지니, 쌓여 있던 피로가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날은 바로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서 곧바로 후작을 찾아갔다.

후작은 복귀한 이후에 뭘 했는지, 어제보다 더욱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네가 배에서 날려 보낸 붉은 나비는 충격적인 아름다움과 위력을 가지고 있더구나."

"감사합니다."

후작은 혈화접의 위력과 아름다움을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능력이라면 당연히 검을 포기 할 만하지. 이전에 네 말을 들어주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네."

"그래서..."

후작은 책상위에 있던 책 한 권을 가지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나는 네가 검을 알았으면 좋겠다."

"네?"

"내 생각이지만, 너는 앞으로 기사들과 많이 싸우게 될 거 같구나."

이 소설은 마법과 검이 다해먹는 판타지다. 당연히 검을 든 놈과 싸울 일은 수없이 많다.

"검을 배우지는 알아도 알았으면 좋겠다. 이 검술서에는 검술의 기본이 담겨있다. 이것을 읽고 연무장에 가서 기사들의 검을 보거라. 훗날, 검사들을 상대하는데 도움이 될 거다."

"..."

"이건 말 그대로 권유다. 명령이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네가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내 노파심이라고 생각하거라."

"알겠습니다."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이 책을 주었다는 생각에 후작에게 정중한 인사를 한 후 책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마음 써주는 건 고맙지만, 책으로 검을 알 수가 있나?"

딱히 검을 배울 생각은 없지만, 준 성의가 있으니 내 방으로 돌아가면서 검술서를 펼쳐보았다.

"어?"

탁.

너무 놀라서 책을 떨어뜨렸다. 

"이건 또 뭐야..."

**

"아마 펼쳐보지도 않겠지."

록스 후작은 너무도 커버린 첫째아들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비로써 유렌의 인생에 도움이 될 조언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검술서를 준 것이다. 

"그럼, 축제 전에 밀린 일이나 해야..."

쾅!

아무 말도 없이 집무실 문이 세차게 열렸다. 문 앞에는 방금 전에 나간 유렌이 책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뭐, 뭐냐?"

"후작님!"

"어?"

유렌의 얼굴은 씨 서펜트를 잡을 때보다 다급해보였기 때문에 후작은 무슨 큰일이 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유렌의 입에서 나온 말은 후작의 상상과는 너무도 다른 방향이었다.

"책 더 없어요? 체술이든, 검술이든!"

"어?"

유렌은 후작의 책장을 보면서 방금 전에 있었던 믿기 힘든 일을 생각했다.

‘검술서의 내용이 각인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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