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나비 두 마리 (40/241)
  • 나비 두 마리

    "제기랄!"

    록스 후작은 씨 서펜트를 보고 당황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저주하고 있었다. 

    "크윽..."

    자신의 세 아들 모두가 초록색 액체에 뒤덮여 있는 모습을 본 후작은 피가 나오도록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놈!"

    "키아악!"

    후작은 자신을 놀리듯 혀를 내밀고 있는 서펜트를 죽이기 위해 검을 뽑으려 했지만, 놈은 비웃듯이 울음을 내지르고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교활한 놈이었다. 

    "크윽."

    후작은 독을 맞은 왼팔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뜨거움은 왼팔에서 어깨를 넘어 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마법사! 해독 할 수 있나?"

    "씨 서펜트는 개체마다 독이 다른데, 이건 처음 보는 독입니다. 저희가 해독 할 수 있는 독이 아닙니다!"

    "젠장! 왜 이런 해안에 씨 서펜트가 있는 거야!"

    육지라면, 독을 맞지 않았다면 저런 뱀은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의미 없는 생각일 뿐이었다. 

    콰앙!

    엄청난 진동과 함께 배가 뒤집어 질 듯 흔들렸다. 

    "크윽! 악마 같은 놈..."

    바다 속으로 내려간 씨 서펜트가 배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독으로 선공을 하고, 밑에서 배를 공격하는 영리함에 후작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젠장!"

    후작은 하필이면 아들을 데려온 날 이런 개 같은 일이 터진 것에 하늘이 원망스러워 졌다.

    "어쩔 수 없어..."

    고민을 해봤지만, 답이 하나였다. 후작은 오러를 이용해서 몸에 퍼진 독을 왼팔에 밀어 넣고, 팔을 자르기로 마음먹었다. 

    챵!

    후작은 지금의 상황만큼이나 자신의 애검이 뽑히는 소리가 애처롭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하아..."

    후작이 자신의 왼 어깨에 검을 대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유렌?"

    온 몸에 독을 뒤집어써서 가장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던 유렌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너 괜찮..."

    유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작의 왼팔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웅.

    유렌의 손에서 빛이 나오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타오를 것 같았던 왼팔의 고통이 완전히 사라졌다. 

    "제가 사람들을 구하겠습니다. 후작님은 경계와 방어를 부탁드립니다." 

    후작은 뒤돌아서 걸어가는 유렌의 등에서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해 줄 것 같은 듬직함을 느꼈다.

    **

    씨 서펜트의 독에 맞자. 순식간에 만독자전신기가 5성에 도달했고, 새로운 독과 능력까지 개방되었다. 

    여태까지 나는 독을 그대로 씹어 삼키면서 능력을 성장시켜왔다. 그런 나에게 독을 뿌린다는 것은 ‘옛다 먹어라.’하고 영약을 먹으라고 던져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크으윽."

    "페루, 이쪽으로 와."

    사천당가 특성의 장점 중 하나는 능력이 개방되자마자, 미리 알고 있던 것처럼 바로 사용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팔을 줘봐."

    옆에서 팔을 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페루에게 새로 개방된 흡독지력(吸毒之力)을 사용했다. 

    [흡독지력이 대상에게서 독(씨 서펜트-사혼)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진화골산(眞化骨散)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페루를 고통스럽게 하던 씨 서펜트의 독이 순식간에 내게로 옮겨왔다. 하지만 독을 가져온 게 다가 아니었다.

    "진짜냐..."

    만독자전신기를 운기 할 필요도 없었다. 독이 내게 오자마자 만독자전신기의 운기행공의 순서대로 혈도를 한 바퀴 돌더니, 알아서 단전으로 흡수되었다.

    흡독지력은 흡수한 독을 곧바로 내 내공으로 바꾸어주는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이었다.

    "미쳤어!"

    다만 페루에게 있는 독을 100이라고 친다면 내가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1이나 2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숙련도의 문제 같았다.

    "통증이 사라졌어요! 대공자님이 해독 시켜 주신 거죠!"

    "내가 아니면 누가 했겠냐."

    난 배에 탄 모든 사람의 독을 한 번에 해독시켜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아까운 일을 왜 하겠는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독은 모두 내꺼다.

    콰앙!

    "아악!"

    "크윽!"

    "으억!"

    씨 서펜트가 배를 공격했다.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독의 진행을 가속화 하려는 생각인거 같았다.

    누가 뱀 아니랄 까봐 더럽게 얍삽하다.

    "일단 저 분부터 해독시켜줘야겠지."

    배위에서 누구보다도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유렌?"

    검으로 자신의 팔을 자르려는 후작의 눈에서 후회, 분노, 절망 같은 감정을 느꼈다.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 독을 흡수했다. 

    "제가 사람들을 구하겠습니다. 후작님은 경계와 방어를 부탁드립니다."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후작을 뒤로 하고 배의 가운데로 움직였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지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부터 해독하기로 했다. 첫 번째는 돛대 앞에 주저앉아 있는 마법사였다.

    "지금 배는 너희들의 마법으로 보호하고 있는 거지?"

    "네. 하지만 통증 때문에 정신력을 유지하지 못해서 곧 깨질 거 같습니다."

    "그럼 너부터 하자."

    "이건 해독 할 수 있는 독이... 어?"

    마법사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독을 흡수했다. 마법사는 말을 하다가 고통이 사라진 것을 느꼈는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무, 뭐야! 대공자님. 정말 마법사셨어요?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데..."

    "됐고, 배나 보호해."

    "아, 알겠습니다."

    멍하게 나를 쳐다보던 마법사는 다시 돛대에 붙어서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선원들이 맞겠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조타수와 항해사를 비롯한 선원들을 먼저 해독시켜주었다. 

    페루가 내가 해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콜린이냐."

    첫 번째로 와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 것은 콜린이었다. 

    "그, 그게..."

    콜린은 내게 도움을 구하려니 어색하고 민망한지, 목을 매만지며 바닥만 보고 있었다.

    "안 어울리게, 뭘 망설여. 빨리 와."

    "아."

    피식 웃고 그의 팔을 잡아서 내 앞으로 끌어왔다. 

    "목이지, 보여줘."

    "네."

    시꺼멓게 변하고 있는 콜린의 목에서 독을 흡수하자, 피부가 원래 색으로 돌아왔다. 

    "가, 감사합니다. 형님..."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인사를 듣는 거 같네."

    "아, 아닙니다."

    콜린은 옆으로 빠져서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엔 이전의 좋지 않은 감정들이 사라져 있었다.

    "형님.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어디야?"

    콜린의 뒤에 있던 사람은 라온이었다. 그는 무언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형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라온을 회복시켜주자 그는 고개를 수없이 꾸벅이고 후작의 곁으로 갔다. 

    "대공자님..."

    "너는..."

    다음으로 나온 사람을 보자, 콜린보다도 감회가 새로웠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내 목숨을 걱정하게 만들었던 사람이자, –91이란 경의적인 호감도를 보여준 사람, 연무장에서 상처투성이 얼굴을 보여주며 웃었던 렉카 올리안이 내 앞에 있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빨리 독을 맞은 부위나 보여줘."

    "아, 여기입니다."

    렉카의 오른쪽 어깨에서 독을 흡수하자, 고통을 참고 있던 그의 표정이 풀렸다.

    "대공자님. 감사합니다."

    "그래."

    렉카는 콜린 이상으로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내 모습에 굉장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콜린도 그렇고 렉카도 그렇지만, 이들에게만 이득이 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이들의 독을 먹고 내공이 오르고 있으니, 상부상조와 다를 바가 없다. 

    "다음."

    "부, 부탁드리겠습니다."

    렉카 이후에 온 기사들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거리낌 없이 그들의 독을 흡수해주었다. 

    유렌이 망나니 시절에 괴롭힌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오늘 일로 지금까지 나를 싫어하고 미워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변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촤아악!

    "키아악!"

    "나타났어!"

    "좌측입니다!"

    커다란 물소리와 함께 다시 씨 서펜트가 물 위로 올라왔다.

    챠챠챵!

    캬캬걍!

    "카아악!"

    아까와는 달리 방심하고 있던 것은 씨 서펜트였다. 후작과 기사들은 순식간에 놈의 앞으로 이동해서 날카로운 오러를 날렸다.

    "크르륵!"

    씨 서펜트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하지만 창조주의 눈이 놈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파악했다. 

    "모두 이쪽으로!"

    놈의 이동 방향을 따라 배의 후미로 이동하면서 사람들을 부르자. 후작을 포함한 기사들이 따라왔다.

    이전이라면 내말을 듣지 않았겠지만, 내가 구해줬기 때문인지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따라왔다.

    "이쪽이 맞느냐?"

    "네. 조금 이따가 나타날 겁니다."

    "알겠다. 믿으마."

    후작이 내 옆으로 바다를 노려보며 검을 치켜 올렸다.

    아그네스.

    [또 그거야?]

    아그네스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낸 뒤 두 마리의 나비가 되어 내 손에 내려앉았다. 숙련도 상승으로 두 마리의 혈화접을 동시에 쓰는 쌍화접이었다. 

    "나비가 날아가는 곳에 서펜트가 나올 겁니다. 그때 모두 공격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금 내말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내가 바라보는 곳을 같이 바라보고 있었다. 

    "온다."

    씨 서펜트가 위로 올라오려는 기미가 보일 때 혈화접 두 마리를 놈이 나올 위치를 향해 날려 보냈다.

    펄럭.

    피를 마시는 나비는 거친 파도 따위는 무시하며 바다 위를 우아하게 날아갔다.

    촤아악!

    "키이악!"

    씨 서펜트가 바다 위로 올라와서 미리 준비한 독을 뱉으려 할 때 혈화접 두 마리는 이미 놈의 가슴에 붙어 있었다. 

    덜컥.

    파아악!

    푸카악!

    심장이 내려앉을 것 같은 차가운 기계음이 들리고, 혈화접이 내려앉은 씨 서펜트의 가슴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크라라라락!"

    씨 서펜트의 가슴에는 주먹 만 한 구멍이 두 개나 생겨나 있었고, 놈은 엄청난 고통에 용트림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지금이다!"

    후작의 목소리에 기사들이 전력을 다해서 오러를 날렸다.

    콰아아!

    챠챠챠챵!

    "키악!"

    기사들이 씨 서펜트의 목숨을 끊고 있을 때 나는 아그네스를 다른 것으로 변화시켰다. 

    촤라락.

    퍼억!

    "카악!"

    아그네스를 쇠사슬이 달린 작살로 만들어서 서펜트에게 꽂아 넣고, 온 힘을 다해서 끌었다.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옆에 있는 기사들이 쇠사슬을 잡고 끄는 것을 도와주었다.

    쿵!

    아직 바다에 몸체를 담구고 있지만, 죽어서 걸레짝이 된 씨 서펜트의 상체가 배 위로 올라왔다. 

    "더럽게 크네."

    "으아아. 죽었는데도 무섭네요."

    "대공자님 정말 잘하셨습니다. 씨 서펜트의 시체는 굉장히 귀한 마법재료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래?"

    흥분해 있는 마법사와는 다르게 내가 서펜트를 데리고 온 이유는 간단하다. 먹어치우기 위해서다.

    [흡독지력이 대상에게서 독(씨 서펜트-사혼)을 흡수합니다.]

    [흡독지력이 만독자전신기의 운용을 돕습니다.]

    [흡독지력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진화골산(眞化骨散)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하하!"

    확실히 독을 가지고 있는 본체에서 흡수하니, 사람에게서 흡수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의 내공이 상승했다. 

    택배로 배송 온 영약 덩어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씨 서펜트는 남부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아닌데요."

    "그것만이 아니야. 이렇게 육지와 가까운 곳에서 씨 서펜트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어. 처음 있는 일 일거다."

    "샤크라이 킹도 그렇고, 씨 서펜트도 그렇고 올 해는 별일이 다 있네요."

    저들의 말이 맞았다. 샤크라이 킹도 씨 서펜트도 원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몬스터들이다.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이 확실했다. 

    "어?"

    후작과 마법사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씨 서펜트 머리 옆에 떨어져 있는 구슬이 눈에 들어왔다. 

    "저건 그때의..."

    샤크라이 킹에게서 나온 구슬과 같은 색,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구슬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야. 페루야."

    "네?"

    "저 구슬 안보이냐?"

    서펜트를 만져보고 있는 페루를 불러서 물어보았다.

    "구슬이요? 어디요? 안 보이는데요."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데도 페루는 구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아린에게 물어봤지만 그녀 역시 구슬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 구슬은 나에게만 보이는 건가, 그렇다면...

    [깨져버린 세계의 파편을 습득하셨습니다.]

    파앗

    구슬을 잡자, 전에 보았던 갈가리 찢겨진 하얀 방으로 소환되었다.

    "역시나 또 여기군."

    파삭

    구슬은 이전처럼 벽으로 날아가서 작은 구멍하나를 지우고 사라졌다. 

    [세계의 회복에 일조하셨습니다.]

    [당신의 적성을 파악하여 보상을 제공합니다.]

    [보상 선택 완료.]

    [당신에게 특성 검인(劍人)을 부여합니다.]

    "이번엔 특성을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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