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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상어의 왕 (37/241)

상어의 왕

크란시스 왕국 최남단에는 하이와라는 아름다운 섬이 있었다. 경치도 좋고, 육지와 거리도 가깝지만 이곳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유는 딱 하나, 하이와는 남부 전역의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소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오늘의 하이와는 생지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쪽으로 빠진다! 처리해!"

"알겠습니다!"

퍼석!

피로 물든 검날이 볼라크의 머리를 꿰뚫었다. 볼라크를 처리한 보병은 곧바로 복귀해서 진형을 맞추었다. 

파악!

"보병은 뒤로 빠져라! 만타르다!"

"보병은 뒤로 빠져라!"

가오리의 모습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몬스터, 만타르를 일검에 가른 록스 후작이 외치자, 그의 부관이 복명복창을 했다. 

"기사와 창병 앞으로!"

보병들은 복병복창을 하며 뒤로 빠졌고, 기사와 창병이 앞으로 나왔다.

퍼퍽!

파삭!

기사들이 앞에서 만타르을 제거하고, 도망치는 몬스터들은 창병들의 긴 사정거리를 이용하여 처리했다.

기사와 병사들은 미리 계획된 대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며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휴우..."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만타르를 베어버린 후 후작이 투구를 벗자, 부관이 땀을 닦을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매년 겪지만 정말 끝이 없군. 다른 곳에 비해 몬스터는 약하다고 하지만, 수가 미친 듯이 많으니..."

"북부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저희도 만만치 않죠."

"훗. 그렇지."

후작은 얼굴에 맺힌 땀을 모두 닦고 부관에게 수건을 되돌려 주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콜린 공자님과 라온 공자님은 이곳과 마찬가지로 쉴 틈 없이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두 분 다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훌륭한 전과를 올리고 계십니다."

"다행이군. 유렌은?"

"그게... 대공자가 계신 지형이 원래는 몬스터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몬스터의 씨가 말랐다고 합니다."

"뭐?"

다시 투구를 쓰려고 하던 후작의 움직임이 멈췄다. 

"처음에 100마리 정도의 몬스터가 한 번에 나타난 것 말고는 자잘하게 한두 마리씩만 나타났다고 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10년간 그곳을 관리해온 관리자도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합니다."

"흠..."

몬스터가 없다면 좋아해야 하건만, 너무도 특이한 일이라 후작은 오히려 불안함을 느꼈다.

"후작 각하! 샤크라이가 나타났습니다! 서쪽입니다."

후작이 생각에 잠겨 턱수염을 매만질 때 관찰임무를 맡고 있던 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

"샤크라이!"

샤크라이가 나타났다는 말에 쉬고 있던 기사와 병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마리냐!"

"8 아니, 10마리입니다."

"10마리나?"

"남쪽에서도 옵니다. 볼라크 200여 마리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이쪽이 먼저 도착합니다!"

"전투 준비! 병사는 모두 남쪽으로, 수룡기사단은 모두 서쪽으로 이동하라!"

"병사는 남쪽으로, 수룡 기사단은 서쪽으로 이동!"

"이동!"

후작의 명령에 병사와 기사들을 물 흐르듯이 이동해서 진형을 갖추었다.

후작이 샤크라이와 병사들을 떼어 놓은 이유는 간단했다. 병사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기사들도 샤크라이의 일격에 목숨이 위험한데 놈들에게 병사들은 종이인형일 뿐이었다.

"샤크라이를 혼자서 상대하지 말고, 전략대로 한 조에 한 마리씩 맡아라! 놈들은 굉장히 위험한 몬스터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도록!"

숙련된 기사라면 혼자서 샤크라이를 상대할 수 있지만, 이곳엔 기사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런 기사들을 위해서 후작은 미리 조를 짜주었다. 

"알겠습니다!"

촤아악!

바다에서 나온 샤크라이의 몸에서 파란색과 초록색의 반짝임이 있었다. 이미 보조능력을 발동하고 온 것이다. 

"공격!"

후작은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가장 먼저 샤크라이에게 달려들었다. 

**

부아아앙!

벌떼가 우는 것 같은 묵봉의 회전 소리에 한스와 병사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슈우욱!

성문 앞에 살혼연이 깔리는 것을 확인 한 후 돌리던 묵봉을 샤크라이들을 향해 던져버렸다. 

부아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에 샤크라이들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키아악!"

"카아악!"

상어는 청각기관이 굉장히 좋은 생물이다. 뛰어난 청각이 평소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묵봉의 소리에 의해서 샤크라이들의 움직임이 둔화되어 버렸다. 

퍼컥!

"키이익!"

가장 앞에 있던 샤크라이 세 마리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묵봉의 톱날에 머리가 잘려나갔다. 

"키아아악!"

상위의 몬스터답게 나머지 샤크라이는 소음을 견디면서 묵봉의 칼날을 피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삭!

"칵!"

묵봉에 닿지도 않은 것 같았던 샤크라이의 몸통이 종잇장 처럼 찢겨졌다. 그 옆에 있던 샤크라이는 아예 목이 떨어져 나갔다. 

칠흑의 톱날 아래엔 얇고 길쭉한 반투명의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톱날을 피했다고 생각하게 만든 후 보이지 않는 칼날로 목숨을 뺏는 것이 묵봉의 속임수다. 

부아아앙!

묵봉은 순식간에 샤크라이 6마리를 죽이고 몬스터들의 가운데로 날아가고 있었다. 각도로 봤을 때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묵봉의 능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파캬캬컁!

묵봉이 샤크라이 집단의 가운데에 위치했을 때 주먹을 움켜쥐어서 터트려버렸다.

파바바박!

"키아악!"

"케에엑!"

"카아악!"

고속으로 회전하며 날아가던 묵봉이 터지자, 그 조각은 수십 개로 나뉘어져서 근처에 있던 샤크라이들에게 탄알처럼 박혀버렸다. 

"크아아!"

"카아악!"

샤크라이들은 파편에 맞고 서도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성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커윽!"

"카악!"

하지만 샤크라이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지더니 한 마리씩 쓰러졌다. 호흡이 가빠오는 듯 샤크라이들은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고 거친 호흡을 하고 있었다. 

"끝이군."

묵봉의 칼날에는 신경독 해곤사창이 듬뿍 담겨져 있다. 신경독이 상처에서 직접 작용했기 때문에 그 효과가 매우 빠르게 찾아온 거다.

"키으으."

"크으으..."

조그마한 파편이라도 맞은 샤크라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바닥에 몸을 뉘었다.

처음에 올라온 볼라크들은 살혼연 때문에 성문 앞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었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샤크라이는 6마리 밖에 되지 않았다. 그 6마리도 살혼연에 중독되었기 때문에 곧 자신들끼리 싸움이 일어날 거다. 

전투는 끝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숫자 잘 셌어요?"

뒤에서 입을 쩌억 벌리고 있는 필로를 불렀다. 

"아, 아..."

"어어어..."

필로와 한스는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나를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 둘 만이 아니라,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도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들은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고, 잠시 사고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대공자님!"

이제야 깨어났는지 크라이드가 성벽을 올라왔다. 

"샤크라이가 나타났다고 하던데요!"

"저기 있어."

"억!"

크라이드는 바닥에서 빌빌대고 있는 수십 마리의 샤크라이를 보더니, 뒤로 물러났다. 

"이, 이게 어떻게 된..."

"너희들이 상대 해 볼래?"

남아 있는 샤크라이는 6마리, 샤크라이를 상대해 보는 것은 아린과 크라이드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 같아서 살혼연을 모두 제거해 주었다.  

"조금 있으면 지들끼리 싸울 테니까, 1:1로 싸울 수 있을 거야. 한 마리씩 붙잡고 싸우면..."

촤아악!

아린과 크라이드를 보고 있을 때 바다에서 무언가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 들어왔던 소리지만 소리의 크기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 대공자님..."

크라이드의 떨리는 손가락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저게 뭐야..."

2.5미터 아니,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샤크라이가 육지로 올라와서 죽어있는 샤크라이들을 보고 있었다. 

놈의 양 팔과 가슴에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기이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오른팔엔 거인의 척추를 뽑은 것 같은 뼈로 된  칼을 들고 있었다. 

"샤, 샤크라이 킹!"

"뭐?"

필로가 떨리는 양팔을 움켜잡으며 말을 했다. 

"록스가의 문헌을 정리하다가 본 적이 있습니다. 3m가 넘는 신체에 왕의 문신, 그리고 뼈로 만들어진 창검. 적혀있는 그대로입니다. 저건 샤크라이들의 왕이에요!"

"난 저런 거 만든 적 없는데..."

필로의 말을 듣고 다시 샤크라이 킹을 쳐다봤을 때 놈과 눈이 마주쳤다. 붉게 타오르는 눈은 분노 그 자체를 담고 있었다. 

쿵!

샤크라이 킹은 곧바로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가볍게 발을 굴렀을 뿐인데 놈은 10미터씩 쭉쭉 움직이고 있었다. 

"아린, 크라이드. 해볼래가 아니라, 해줘야겠다. 남은 샤크라이 너희 둘이 알아서 처리해. 나는..."

샤크라이 킹은 순식간에 성벽 밑에 도착한 후 양 발을 굴러 뛰어 올랐다. 놈은 단숨에 성벽을 넘어 내 머리위에 있었다. 

"이놈을 상대해야겠어!"

"히익!"

"허억!"

필로와 한스, 옆에 있던 병사의 뒷덜미를 잡고 성벽 아래로 뛰어 내렸다. 

콰아아앙! 

"크아악!"

샤크라이 킹이 공격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착지만 했을 뿐인데,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징그러울 정도의 힘이었다.

"쿠아아아!"

콰앙!

샤크라이 킹은 나를 노리고, 다시 한 번 아래로 뛰어내렸다. 잡고 있던 사람들을 뒤로 던지고 샤크라이 킹의 착지를 피했다.

"대공자님!"

"나 신경 쓰지 말고 너희 할 일을 해!"

나를 부르는 아린에게 할 일을 되새겨주고, 샤크라이 킹에게 독을 뿌렸다.

"역시나 저항력이 강해, 바로 박히진 않는 군."

몬스터가 강할수록 독에 대한 저항력도 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야 독의 효과가 나타날 거 같다.

콰아앙!

쿠쿠궁!

샤크라이 킹이 들고 있는 뼈칼은 보이는 것 만큼이나 공포 그 자체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땅이 부서져 나간다.

창조주의 눈 덕분에 공격 방향이 보이지 않았다면 벌써 열댓 번은 맞고 죽었을 거다.

"네가 나올 줄은 몰랐다만, 그래도 준비는 해 놨거든!" 

샤크라이 킹의 공격을 뒤로 회피한 후 허리띠에 꽂아 넣은 10개의 암기를 꺼냈다. 기라녹스에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암기였다. 

챠아앙!

빛조차 반사되지 않는 검은색 암기 10개와 아그네스는 변화시켜 만든 백색의 암기 2개 총 열두 개의 암기를 양손에 들었다.

[십이지비(十二支匕)]

슈아앙!

12개의 암기, 십이지비가 빛살처럼 샤크라이 킹에게 날아갔다. 

"크아아아!"

부우웅!

화아앙!

샤크라이 킹은 뼈칼을 미친 듯이 휘둘러서 암기를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십이지비는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서 샤크라이의 전신에 틀어박혔다. 

직사와 곡사의 완벽한 조화였다. 

"키아아악!"

샤크라이 킹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놈이 눈알 전체를 검게 변화시키며 이상한 능력을 쓰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끝났으니까.

콰아앙!

"크아아!"

눈알의 색이 바뀐 샤크라이 킹의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30초를 채 가지 못하고 점점 느려지더니, 아예 움직임을 멈췄다.

"키익! 키아악!"

샤크라이 킹의 상태는 너무도 이상했다. 한쪽은 상처가 썩어가고 있었고, 한쪽은 피부가 녹아내렸고, 또 다른 곳은 검은 피가 흘렀다. 샤크라이 자신은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제야 독이 먹혔군. 진짜 터프하네.

샤크라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열두 개의 암기에 모두 다른 독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맞은 상처에서 즉시 작용하는 치명적인 독이.

"카아아..."

포스있게 등장한 것과는 달리 12개의 독에 중독된 샤크라이 킹의 모습은 처량 그 자체였다. 무릎을 꿇은 채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음..."

주변을 둘러보니, 한스, 필로를 비롯한 모든 병사들이 마네킹처럼 얼어있었다. 그들은 믿기 힘든 모습을 보고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슈욱.

나름 한 종족의 왕이니, 고통을 덜어주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아그네스를 검으로 바꾸었다. 

"잘 가라."

샤악!

내공까지 사용해서 단숨에 샤크라이 킹의 목을 베어버렸다. 

탁.

떨어져 나간 샤크라이 킹의 머리에서 작고 투명한 구슬이 튀어나와 내 신발에 부딪쳤다.

"구슬?"

[깨져버린 세계의 파편을 습득하셨습니다.]

구슬을 줍자, 귓속에 메마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세상이 흰색으로 가득 차 버렸다.

"여긴 뭐야..."

순식간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하얀 방에 와있었다. 방은 깨진 유리창처럼 곳곳이 갈라지고 찢어져 있었다. 

"어?"

갑자기 샤크라이 킹에게서 나온 구슬이 떠오르더니, 왼쪽으로 날아갔다.

파삭!

갈라져 있는 벽의 구멍에 구슬이 스며들자,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구멍 하나가 사라졌다. 

"대체 이게..."

[세계의 회복에 일조하셨습니다.]

[당신의 적성을 파악하여 보상을 제공합니다.]

처음에 들렸던 여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보상 선택 완료.]

[죽음을 보여주는 미래의 눈이 선택되었습니다.]

[당신의 첫 번째 죽음을 재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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