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출정 (35/241)

출정

무기고 사건이 일어나고 5일후 후작의 호출로 그의 집무실에 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창밖을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린 후작의 얼굴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잘 왔다." 

후작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씁쓸해보였다. 

"네 덕에 비리를 해결하게 되었으니, 네겐 일이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 불렀다."

"네."

"네 말이 맞았다. 제1 무기고 뿐 아니라, 제 2, 제 3, 식품저장고나 일반 창고까지 문제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관계된 인원도 양손으로 셀 수가 없을 정도다. 내가 잘 모르는 병사나 하인은 그렇다 쳐도,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나를 보좌한 인물들이 관계되었다는 건... 아직도 가슴이 아프구나."

그 말대로 후작의 얼굴엔 어두운 그늘이 져있었다. 

"그래도 비리에 관여된 자들을 잘 알아내셨군요."

"병기관리관과 감찰관이 신기할 정도로 모든 사실을 말하더구나."

그건 내 독의 효과다. 사실 독이 아니라 자백제지만.

"물어본 것은 무조건 대답하고, 물어보지 않은 것 까지 알아서 얘기를 하니, 조사가 굉장히 쉬워졌지. 너무 쉬워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게 자백제의 효과다. 자백제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욱 효과가 좋은데. 그들은 계속 내 기세에 압박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입이 열렸을 거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사실을 밝힌 후 그날 밤 감옥에서 죽었다."

"그..."

그들을 죽게 만든 것은 나였으니, 전혀 놀라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약간 놀란 반응을 보였다. 

"무엇에 죽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손톱이 빠질 정도로 벽을 긁어댔다. 아직도 감옥 벽에는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사정은 모르겠지만, 고통을 느끼고 죽었다면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영지민과 병사들을 돈으로 본 자들입니다. 더한 고통을 느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중독 시킨 독은 와염독이다. 와염독을 내공으로 감싸서 잠복시켜둔 후 나중에 터지게 만들어 두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불타오르는 고통을 느끼다가 죽었을 것이다. 

"음, 네가 혹시... 아니다."

후작은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 계속 입을 움직였다. 

"네 말대로 이번 일에 관계 된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극형에 처해질 거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아... 이번 일로 느낀 게 많다."

후작은 숨을 크게 들이쉰 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후작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대 국왕께 문책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많은 귀족들 앞에서 대놓고 혼났었지. 정말 아프고 정말 창피했다. 하지만 5일전 네게 지적을 받을 때가 더 아프고 더 창피하더구나."

"..."

"네 말에 무엇 하나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핑계조차 댈 수가 없었지. 너는 정론을 말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비까지 준비해 놓았다. 내가 너무 한심해서 잠조차 오지 않더구나." 

그래서인지 후작은 며칠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이번 일을 모두 직접 처리했다고 들었다. 

"부끄러운 아비의 모습을 보여서 정말 미안하다. 유렌."

"아닙니다. 저도 사고만 치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렸잖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하아, 이젠 정말 못 당하겠구나."

후작은 한숨으로 얼굴에 있던 그늘을 털어버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말대로다.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지. 다시 한 번 깨우쳐 줘서 고맙구나."

"아닙니다."

"후후, 너도 출정 준비로 바쁠 텐데 이만 가 보거라."

"네. 그럼."

후작과 잠시 눈을 마주친 후 그의 집무실을 나왔다. 방으로 돌아오니, 페루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공자님. 도착했습니다."

페루는 탁자 위에 병 세 개를 올려두었다. 

"이게 그거야?"

"네. 철갑버섯 꽃에 있는 독입니다."

이번에 페루에게 구해 달라고 한 독은 철갑버섯 꽃이 가지고 있는 신경독이다. 

신경독은 여러 증상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호흡근을 마비시켜서 호흡 마비를 일으킨다. 복어가 가지고 있는 독이 대표적이다. 

어류 몬스터들이 육지에서 호흡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부러 페루에게 신경독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고맙다. 수고했어."

"에이, 아니에요. 그런데 대공자님 혹시 소식 들으셨습니까?"

"뭔 소식을 들어 인마. 주어가 없잖아."

"요즘 밖에서 대공자님 인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인기?"

페루는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독을 받으러 가면서 여기저기 들렸는데 영지민들 전부 대공자님 얘기만 하고 있어요."

"내 얘기? 벌써 소문이 퍼졌어?"

"네! 이번 사건은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봤기 때문에 이미 소문이 다 퍼지고도 남았죠. 들어보니, 사건 터진 다음 날부터 알았다던데요."

이제 페루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겠다. 

"후작가의 숨겨진 비리를 홀로 파헤치고, 자비를 들여서 병사들을 위한 장비를 구입한 유렌 록스 대공자의 이름이 널리 퍼지고 있다니까요!"

"하아, 무슨..."

"대공자님이 후작님 앞에서 누구보다 병사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신 명언은 술집에서 건배를 할 때마다 나오고 있어요."

"헛소리."

"진짜에요! 제가 영지에 가서 보고 말씀드리는 거잖아요."

페루는 내가 믿지 않는 게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렸다. 

"정말로 대공자님 인기 장난 아니에요. 예전처럼 마을에 가서 대공자님보고 망나니라고 하면 몰매 맞아 죽을 걸요."

"정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나는 망나니로 이름이 퍼져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한 번에..."

"진짜라니까요. 지금까지 말로만 병사니, 영주민이니 하며 챙기지. 직접 신경 쓴 사람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대공자님이 병사들을 위해 비리를 밝히셨죠. 사비로 갑옷과 방패를 사셨죠. 안 좋아할 수가 없죠. 병사들이 영지민이고 그들의 가족도 영지민인데."

아직도 믿기지 않았지만, 페루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거짓말 같지가 않았다. 

"알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대공자님 칭찬을 들으니까 제가다 뿌듯했어요. 곧 왕국 전체로 소문이 퍼질걸요."

페루는 정말 기뻐보였다.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 이제 수련하셔야겠네요. 저는 나가있을 게요."

"오, 이제 눈치도 좋아졌네."

"헤헤! 나가볼게요."

페루를 내보내고 바닥에 앉아서 독이 든 병을 잡았다. 

"기분 나쁘진 않네."

병사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스스로 화가 나서 움직였는데 영지민들이 모두 좋아해준다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잠시 명상을 통해, 마음을 차분히 한 후 병을 까서 독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독(철갑버섯 꽃)을 섭취하셨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독(철갑버섯 꽃)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해곤사창(海鯤死槍)이 개방됩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이 독(철갑버섯 꽃)의 고통과 증상을 제거합니다.]

신경독의 증상을 참기위해 이빨을 깨물었지만, 백독불침 덕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배속이 조금 뜨거울 뿐이었다. 

곧바로 만독자전시기를 운용했다. 고통이 전혀 없으니, 집중력의 낭비 없이 짧은 시간에 모든 독을 내공으로 바꾸었다. 

"백독불침 개꿀이네."

지금까지 독을 먹으면 항상 끔찍한 고통이 찾아와서 흡수하고 나서도 두통이 있었지만, 오늘은 너무도 상쾌하게 끝났다. 

새로 개방된 독을 볼까.

[해곤사창(海鯤死槍)](신경)

바다에 사는 전설의 영물, 곤을 죽이는 창이라는 뜻으로 극미량으로도 인간을 죽일 수 있으며, 독살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많은 양을 투입 할수록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망에 이른다.

이 독은 양을 조절해서 천천히 죽일지, 즉사를 시킬지 까지 정할 수 있는 완벽한 암살용 독이다. 읽으면서 내가 내 능력에 소름이 끼쳤다. 

"어? 잠깐만. 이게 아니잖아."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해곤사창보다 아랫단계의 독을 개방하기 위해 갑옷버섯 꽃을 먹은 건데, 단계를 건너뛰고 갑자기 그 위에 있는 중급의 독이 개방되어 버렸다. 

"나쁜 일이 아니긴 한데... 왜지?"

생각해볼만한 이유는 만독자전신기가 중급에 오른 것 밖에 없었다. 

내공심법이 중급에 올라서 중급의 독이 배워진 거라면 내공심법의 성취가 올라 갈수록 상위의 독을 개방하기 더 쉬워질 거다.

그렇다면...

"페루야."

"네!"

밖에 있던 페루가 바로 안으로 들어왔다. 

"너 주머니 열어봐."

"네?"

페루는 별말 없이 자신의 마법 주머니를 열었다. 

"엑? 왜 이러세요!"

페루의 주머니에 금화를 쏟아 넣었다.  

"이걸로 독 사와라."

"또요? 거기다 이렇게 많이요?"

"그래."

어차피 남는 게 돈이고, 백독불침 덕에 독을 흡수하는 건 물 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출정 전에 돈 빨로 만독자전신기 5성에 도전해봐야겠다.

**

"하아..."

"대공자님."

독을 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결국 5성을 달성하지 못했다. 아쉬움에 한 숨을 쉬는데 옆에서 페루가 부르고 있었다. 

"왜?

"저희 너무 초라한 거 아니에요?"

페루의 말에 양옆을 둘러보았다. 내 좌우에는 번쩍이는 은빛갑옷이 물결치고 있었다. 그들은 콜린과 라온이 데려온 기사들이다. 

나와 콜린, 라온은 출정식을 위해서 제 1 연무장에 모여 있었다. 

"너무 차이나는 데요. 우리 괜찮을까요?"

콜린과 라온의 기사들 사이에는 마법사나 베테랑으로 보이는 용병들 까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옆에 있는 페루와 뒤에 서있는 아린과 크라이드가 전부였다. 

비교하기 싫어도 비교 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기사들이 오겠다는 걸 왜 거절 하셔서..."

내가 인기가 생겼다는 페루의 말이 진실인지, 나를 도와주겠다는 기사나 용병들이 꽤나 있었지만 거절했다. 

어떻게 전투를 할지 결정했기 때문에 딱히 다른 사람은 필요 없었다. 

"형님!"

오른쪽에 있는 라온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이 많은데도 녀석은 웃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풋."

이번엔 왼쪽에 있는 콜린을 보았다. 녀석은 나와 내 부하들을 보고 입가에 비틀어진 미소를 띄웠다. 

"저 자식 덜 맞았네."

옆으로 조용히 빠져서 콜린의 뒤에 섰다. 

빡!

"컥! 어떤 새끼야!"

손바닥으로 콜린의 뒤통수를 후렸다. 

"나다. 이 새끼야!"

"이익!"

콜린은 나를 보고 이빨을 부서져라 깨물었다. 

"그거 말해야지."

"무얼 말이오."

"안 되겠네. 출정 다녀와서 타작 좀 다시 하자. 이번에는 운다고 안 봐줘."

"으득... 위대하신... 형님."

"허약한 아우야. 물고기한테 얻어맞았다고 질질 짜지 말고."

"으으..."

더 놀리고 싶었지만, 후작이 오는 것이 보여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길게 말하지 않겠다."

후작은 단상에 오르자마자 입을 열었다.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연무장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 곳에 내가 있을 것이고, 가장 앞에 내가 있을 것이다. 어디든 함께하겠다. 나와 같이 우리의 땅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

"우와아아아!"

"이야야야!"

"윌링턴 후작님. 만세!"

"록스 만세!"

후작의 말에 병사들이 목청 높여 함성을 내질렀다. 

"싸워라가 아니라, 싸우자라... 괜찮네."

자신이 앞장 설 테니, 믿고 따라오라는 짧지만 뜨거운 연설이었다. 

"대공자님. 저희가 출발할 차례입니다."

"그래."

후작의 연설을 듣고 지정된 장소를 향해 이동했다. 병사들은 세 명의 후계자 후보에게 똑같이 나누어졌기 때문에 배정받은 병사들을 이끌고 목적지로 이동했다. 

출발한지 이틀이 지나서야 내게 지정된 방어지형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내가 사수해야 하는 곳은 바닷가 앞에 지어진 성벽 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볼라크 몇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화살만 날려도 방어는 쉽지 않나?"

"그렇게 쉽지가 않습니다. 대공자님."

성벽을 관리하는 관리자 한스가 대답했다. 

"이제 며칠 후면 바다 전체가 볼라크로 꽉 찰 겁니다. 그 녀석들이 밀어닥치면 성벽이나 문까지 부서지죠.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그래?"

"네. 그래서 말인데 대공자님... 지원은 더 오는 거죠?"

한스는 간절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지원?"

"볼라크들은 방패가 있기 때문에 화살을 쏴도 문 앞까지 파고듭니다. 벽과 문이 부서지지 않도록 성벽 밖으로 나가서 몬스터들을 처리해야하는데 기사가 5명뿐이면 절대 못 막습니다."

"5명 아니야. 이 사람은 기사가 아니라 날 감시하러 온 후작님의 집사고, 얘는 내 집사야."

"그 , 그럼 기사는 3명뿐인가요?"

한스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기사가 3명이고 자시고, 싸우는 건 쟤 혼자 할 거니 걱정 안 해도 돼."

"저요? 저 혼자요?"

아래를 구경하고 있던 크라이드가 화들짝 놀라서 내 앞으로 달려왔다.

"어, 너 혼자."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제가 어떻게..."

희죽 웃으며 크라이드의 갑옷을 두드렸다. 

"네겐 잠재된 능력이 있어. 그 능력 내가 끌어내주지."

몬스터 학살자, 버서커를 깨울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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