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후계자 선정 (33/241)

후계자 선정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후작이 우리 세 명을 한꺼번에 부른 이유는 후계자 선정을 위한 것이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록스가는 장자가 작위를 잇는 가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후계자는 유렌이 되었어야 했지. 나도 유렌보다 어릴 때 후계자에 선정되었으니까."

후작은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유렌은 귀중한 시간을 너무 낭비했다. 그래서 콜린 네게 후계자 자리를 주려 했지만, 늦게나마 유렌이 정신을 차렸지. 이젠 내가 결정하지 않겠다. 너희들이 스스로 후계자의 자격을 보이 거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전례가 없는 일이다보니, 몇 가지로 나눌 생각이다. 일단 첫 번째 시험은 영지 수호다."

후작은 잠시 말을 멈추고 창을 바라보았다. 

"너희도 알겠지만, 성체가 된 몬스터들이 해안가로 올라올 시기가 멀지 않았다. 빠르게 퇴치하지 않으면 영지민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되는 정말 중요한 일이지."

"아..."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지 않고 콜린과 라온을 살펴보았다. 반응을 보니, 이 둘은 이미 이 내용을 알고 있었다. 카이나가 가르쳐줬을 거다.

"즉 첫 번째 시험은 몬스터 퇴치다. 너희들은 세 곳의 전장으로 나누어 투입 될 것이다. 그곳에서 자신들의 실력 발휘를 해보도록."

"평가는 어떻게 내리는 겁니까?"

"내 개인 집사 세 명을 너희에게 붙일 것이다. 그들이 너희를 객관적으로 관찰해서 내게 보고를 할 거다."

"흠..."

후작은 믿지만 카이나나 카록스가 무슨 술수를 써올지 모르니, 내게 붙을 집사에게도 신경을 써놔야 할 거 같다.

"이번 시험에선 너희는 너희가 사용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해도 된다."

"모든 것이요?"

"그래. 개인의 무력 뿐 아니라, 너희가 모아온 세력, 재산, 인맥까지 모든 것을 사용해도 된다." 

"그래도 되는 건가요?"

라온이 의문투성이의 얼굴로 후작에게 질문을 했다.

"너희는 기사가 되려는 게 아니라, 후작이 되려는 거다. 우리는 무가이니, 무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후작이라는 자리는 그것이상으로 중요한 게 많다. 너희 능력이 된다면 다른 곳의 기사단을 빌려와도 상관없다. 무슨 수를 쓰든 최고의 실적을 쌓아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후작은 할 말을 모두 마쳤는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하인들이 음식이 가져오기 시작했다. 

"출정은 한 달 후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도록."

"네!"

**

"몬스터 토벌이라..."

록스 후작령은 남부의 바닷가를 지키는 영지이기 때문에 많은 몬스터들이 바다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배를 타고 나가는 건가 생각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성체가 되서 해안가로 올라오는 몬스터들을 막아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라온은 거의 지원을 못 받겠지."

후작은 콜린과 라온 모두에게 기회를 줬지만, 카이나는 확실하게 승리하기 위해서 한 명에게 몰아주기를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이기겠지만."

침대에 누워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 밖에서 페루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들어와."

"헉!"

페루는 노크를 하기도 전에 내가 부르자, 깜짝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어, 어떻게 아셨나요?"

"걸음걸이로."

"귀신이시네요."

페루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앞으로 왔다.  

"출정 준비 안하시는 건가요?"

"딱히 뭐 할 게 있나."

"다른 공자님들은 벌써 움직이고 계세요. 특히 둘째 공자님은 다른 가문 기사들의 지원을 받는다고 하던데요."

"그래?"

"별로 관심 없으신가 보네요. 이번 일 엄청 중요한 거 아닌 가요? 후작가 전체 난리가 났는데..."

페루는 당사자인 나보다 본인이 더 급해보였다.

"후작님은 최고의 실적을 쌓으라고 말씀 하셨거든."

"실적이요?"

"그래. 그 말은 기사단을 빌리든, 혼자 무쌍을 찍든 많은 몬스터를 잡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나는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나 혼자 힘으로 무쌍을 찍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가요?"

"카이나에게서 다른 명령 떨어진 건 없어?"

"아! 앞으로 독을 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후후, 역시 그런 건가."

후작의 모든 관심은 세 명의 아들에게 가있다. 이런 때에 문제가 발생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으니, 독을 풀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나보다.  

똑똑.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어보는 발걸음 소리였다. 

"들어와."

"대공자께 인사드립니다! 수련기사 크라이드입니다!"

크라이드는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방을 울릴 정도로 목청을 놓였다. 

"오랜만이야."

"계속 찾아뵙고 싶었지만 이제야 뵙습니다!"

"네게 말도 하지 않고 내 소속으로 넣어서 당황했겠네."

"아, 아닙니다! 대련을 했던 대공자님이 저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크라이드는 누가 봐도 진실이라고 느낄 만한 순박한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저는 아직 실력도 모자라고, 후원자도 없어서 기사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님이 저를 선택해주셔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크라이드의 말대로 원래 스토리에서 그는 록스의 기사가 되지 못한다. 내 선택으로 그의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행이네. 그럼..."

쿵!

황금 주머니에서 기라녹스에게 구입했던 화염정령의 대검을 꺼냈다. 

"헉!"

"이건..."

"네 검이다. 군주는 자신의 기사에게 검을 하사하는 전통이 있다더군. 너의 힘과 능력이라면 이 검을 다룰 수 있을 거야."

화염 정령의 대검의 손잡이를 크라이드에게 넘겨주었다.

"저, 저는 아직 수련기사신분인데 이런 것을 받아도 될지..."

"팔 아프다. 빨리 받아."

"감사합니다."

머뭇거리던 크라이드는 결국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화아악!

"으악!"

"무, 뭐야."

크라이드가 검을 잡자마자 검에서 붉은색 화염이 그의 전신을 덮어버렸다. 

"부, 불인데 전혀 뜨겁지 않아요. 그냥 따뜻한데 이게 뭐죠?"

"화염 정령의 검이다."

"화염 정령이요?"

"그래. 검의 무게는 어때?"

"좋아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딱 좋아요."

"잘됐군."

그는 검의 시험을 통과한 거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제대로 들고 있지도 못 할 테니.

"앞으로 검과 꾸준히 대화를 하도록 해."

"대화 말인가요? 알겠습니다." 

정령의 호의를 받아 검의 진정한 힘을 끌어낼지, 그저 단단한 검으로 쓰일지는 이제 그에게 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꼭 기사가 되어, 목숨 걸고 대공자님을 수호하겠습니다."

크라이드는 고개를 수십 번 넘게 숙이고 돌아갔다. 

"정령의 검이라니, 좋겠네요."

"너도 나중에 괜찮은 거 있으면 줄게. 아, 그전에 돈부터 갚아야겠지."

페루에게 빌렸던 마법 주머니를 돌려주었다. 

"아, 감사... 헉!"

별 생각 없이 주머니를 열어보던 페루가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이, 이게 뭡니까?"

"말했잖아. 몇 배로 돌려주겠다고."

"몇 배가 아니라, 몇 십 배 인데요?"

"나한테 투자하면 그 정도 수익은 먹고 들어가는 거야."

"와, 대체 무슨 도박을 하고 오신건가요?"

이 녀석은 여전히 내가 도박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나보다.

"정, 정말 받아도 되는 건가요?"

"네 나이에 상당한 돈을 모은 것을 보면, 분명 돈이 필요한 곳이 있겠지. 그걸로 해결 할 수 있으면 좋겠어."

페루는 암살자임을 감안하더라도 나이에 비해 굉장히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돈을 모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 이거라면... 해결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페루는 고개를 숙인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를 조금 들썩이는 것을 보니, 흐느끼고 있는 거 같았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이름: 페루] 

[특성: 하독lv1, 재빠른 몸놀림lv2] 

[호감도: 61 (높은 호감) ] 

[현재 기분: 감동.]

감동이라, 역시 이 녀석도 무언가 힘든 일을 숨기고 있었다. 

호감도와 기분을 보니, 이제 이 녀석에게 사실을 말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페루는 완전히 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초독은 완전히 해독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페루는 소매를 들어 얼굴을 한 번 닦았다. 

"나중에 일이 해결 되면 모두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꼭 말해. 그리고 이거 받아라."

"이 돈은 뭐죠?"

"이건 의뢰금. 내가 말하는 독을 구해줘."

"알겠습니다."

페루에게 내가 필요한 독들을 말한 후 밖으로 내보냈다. 녀석도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사라졌다. 

**

"대공자님."

"훈련 지금 끝난 거야?"

"네. 오늘은 조금 길어졌습니다."

저녁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린이 찾아왔다.

"그런데 대공자님 검은 언제 배우신 겁니까?"

"검?"

"기사 학교에서 단검이 아니라, 검으로 후보생들을 이겼다고 들었습니다."

"아하, 그거 그냥 휘두르면 되던데, 검이란 게 참 쉽더라고."

정말 솔직하게 말한 거다. 천무지체의 신체능력과 창조주의 눈 덕에 그냥 휘두르기만 해도 알아서 검술이 된다. 

"..."

하지만 아린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싸늘한 표정을 보니 호감도가 내려간 것 같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됩니다.]

[이름: 아린]

[특성: 쾌검lv2, 명경지수(明鏡止水)lv2, 오러 적응lv2]

[호감도: 51 (높은 호감) ]

[현재 기분: 재수 없음.]

호감도가 내려간 건 아니지만, 현재 기분에 적힌 것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잘난 척 좀 했다고 재수 없다니...

"아린 네게 줄게 있어."

"줄 거요?"

탁!

주머니에서 바람정령의 세검을 꺼내서 탁자위에 올려두었다. 

"이건..."

"내 기사가 될 너에게 주는 검이야."

"검이라니, 제가 받아도 되나요?"

"물론."

아린은 떨리는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슈아앙!

창문도 열어 놓지 않았건만, 아린의 머리카락과 옷이 바람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위에는 작은 알갱이 같은 것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게 바람 정령인가.

"이, 이게 뭐죠. 대공자님? 제 주변에서 바람이 나오고 있어요."

"그거 바람의 정령이야."

"네?"

"그 검에 바람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뭐라고 하는 지 들려?"

"네. 제가 마음에 든다고 하는데요."

검에게 제대로 인정을 받은 모양이다. 인정받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귀신소리만 들린다고 했으니.

"그 녀석들과 친해지면 이전 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아린은 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 휘둘러보고 싶은데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아린은 당장 검을 휘두르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아린이 자신의 나이에 맞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물론."

"검을 하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 이것도 가져가."

"이건 뭐죠?"

"빌린 돈."

아린은 주머니를 열어보고 눈을 휘둥그레 떠서 나를 보았다. 

"너무 많은데요?"

"투자했으면 남는 게 있어야지."

"하지만..."

"아아, 됐어. 검 휘두르고 싶다며 빨리 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린은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갔다. 창을 보니, 그녀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좋은가."

**

일주일이 지난 후. 

기라녹스가 공방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아 보이네. 전에 있던 곳보다 나은데?"

"대공자님. 오셨습니까?"

화로를 점검하고 있던 기라녹스가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때? 괜찮아?"

"대공자님 덕분에 주위에서 모두 잘 챙겨주십니다."

"그럼. 다행이고."

잘 먹고, 잘 지냈는지, 그의 얼굴엔 살짝 살이 올라있었다.

"네게 샀던 두 검의 주인을 찾아주었어."

"네? 대검하고 세검이요?"

"그래. 두 검 다 주인을 받아들인 모양이야. 둘 다 정말 마음에 들어 하더군. 나중에 데려올게."

"정말입니까? 다행이에요.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실패는 무슨! 그것들은 주인을 선택하는 명검이야. 엄청난 거라고!"

기라녹스는 너무 기뻐서 힘이 빠진 건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감사합니다..."

"내가 고맙지. 그런 좋은 검을 만들어주었으니."

"그런 말을 처음으로 들어서 그런지 뭐든지 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나네요!"

기라녹스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전 뭘 하면 되나요?"

"이렇게 생긴 무기를 열개 만들어 줘."

아그네스를 내 머릿속에 있는 사천당가의 암기로 바꿔서 보여주었다. 

"일반적인 단검과는 모양이 다르네요. 완전한 투척용 무기 같아요. 손이 많이 가겠는데요."

"맞아. 오직 투척을 위해서 만들어졌지."

그에게 보여준 암기는 사천당가 암기술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형태의 무기였다. 

"출정까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그전까지 되겠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할게."

"그런데 저어..."

암기를 만지작거리던 기라녹스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대공자님께는 꼭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서..."

"무슨 소리지?"

"후작가 무기고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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