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화, 황태자가 죽었다고? 그것도 오늘?"
"저도 좀 전에 들었어요."
"아, 그래서 사람들이 암울해보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뭔가를 떠들고 있었구나."
콜린은 수도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있는 아인스 제국은 대륙의 중심이자, 나라의 정점에 서있는 곳이다. 제국의 황태자라는 것은 거짓말 좀 보태서 곧 대륙의 주인이 될 사람이란 건데 그런 사람이 죽었으니, 사람들은 그 여파를 걱정하는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말 운도 없네. 우리 언제 쯤 집에 갈 수 있냐."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콜린은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팍 쓰고 의자에 앉았다.
"누가 황태자를 죽인 거지?"
"그건 아직 밝혀진 게 없습니다."
"황태자는 황궁에 있잖아. 그곳에서 황태자를 죽인다는 게 가능해?"
콜린이 이상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어났으니."
"라온, 그럼 황태자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아?"
"저도 소문 식으로 들은 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황태자는 매일 새벽에 검을 수련합니다."
"수련?"
황태자가 왜 죽었는지를 물었는데 수련이야기가 나오니 콜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런데 지금은 황태자의 약혼녀가 이곳에 와 있거든요. 우리나라의 공주 아닌 공주님 아시죠?"
"아, 그분이 여기 와 계셔?"
"네. 황태자는 그분에게 자신의 수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새벽부터 그녀를 불렀고 수련장에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라온은 말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수련을 마치고 약혼녀에게 다가가던 황태자의 발밑에서 날카로운 돌기둥이 솟아올라서 황태자를 꿰뚫어버렸다고 합니다. 바로 옆에 있던 신관이나 마법사들이 어떻게든 살리려고 했지만, 심장이 부서져서 즉사했다고 합니다."
"그거 마법이잖아. 황궁이나 왕궁은 함부로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어 있을 텐데."
"그래서 지금 마탑의 탑주들도 황궁으로 불려가고 아주 난리가 났다고 해요."
"황태자가 자기 집 안방에서 그것도 약혼녀 앞에서 죽다니, 무슨 일이냐. 대체."
콜린은 불쌍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후우..."
라온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황태자를 누가 죽였는지, 왜 죽였는지, 그 암살자가 어디에 있는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내가 알고 있는 소설의 상황과 다르다. 소설에서 황태자는 새벽에 죽지 않는다. 약혼녀 앞에서 죽는 것은 그대로지만, 그는 대낮에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다가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황태자를 죽인 방법이 그대로 라는 것은 범인도 그대로 라는 뜻이기에 범인을 확정 할 수 있었다.
범인이 속한 단체는 황태자 암살을 시작으로 대륙 전역에서 여러 사건 벌이며 어둠 속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시간이 상당히 당겨져 버렸다.
이대로 스토리가 진행되면 다 죽어. 나와 주인공이 성장 할 시간을 벌어야 해.
원래라면 내가 죽을지 모르니 그러거나 말거나 놔뒀을 테지만, 천무지체를 얻고 창조주의 눈의 레벨이 올라서 일까, 마주쳐도 죽지는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콜린, 라온."
"네"
"...네. 위, 위대하신 형님."
"저기 둘째 형님, 그거 대체 왜 하시는 겁니까?"
라온은 대체 뭔 짓을 하냐는 듯 콜린을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묻지 마라..."
콜린은 한 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은 우리 네 명의 출국 신청을 해놔. 록스의 이름이 있고, 우리 모두는 알리바이가 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형님은 뭘 하시게요?"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다."
"여기 처음 오신 거 아니에요?"
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처음와도 갈 곳은 있지. 라온."
"네."
"수도에서 괜찮은 여관 이름 불러봐."
"용의 눈물, 거인의 신..."
"용의 눈물 좋네. 너희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기라녹스 괴롭히지 말고."
"엑?"
"어딜 가시는데요?"
그들에게 답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오늘 새벽이라고 했으니, 이미 빠져나와서 술집에 있겠지."
마탑의 탑주를 부르고, 모든 사람들의 통행을 막아도 소용없다. 암살자는 이미 황궁을 빠져나와서 술집에 있을 거다.
아무도 없는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아그네스.’
[으윽! 왜?]
팔찌로 변해있는 아그네스를 불렀다. 아그네스는 자다 일어났는지, 졸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얼굴 변화시켜줘.’
[뭐? 너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아그네스에겐 소유자의 얼굴이나 신체를 변화시키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그래서 무기가 아니라, 만변의 유물이라 불리는 거다.
‘왠지 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진짜 너 정체가 뭐야!]
이건 아그네스가 주인공에게 반해서 알려주는 특별한 능력인데 내가 알고 있으니, 그녀가 놀라는 게 당연했다.
우우웅.
아그네스를 두 개로 분열 시킨 다음 하나를 얼굴에 대고 내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아그네스는 물처럼 변해서 내 머리 전체를 얇게 감쌌다.
"어디."
나머지 하나의 아그네스를 거울로 변화시켜서 얼굴을 비춰보았다.
"역시 아그네스. 넌 대단해."
[흐, 흠. 그걸 이제야 알았어?]
거울엔 유렌의 얼굴은 사라지고 흔해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변화를 끝낸 후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깐만."
"저요?"
길을 지나가고 있는 하인 복장의 소년을 불러 세웠다.
"혹시 풀랑베르쥬라는 술집 알고 있니?"
"풀랑... 아! 거기 돈 많은 분들이 많이 가시는 곳 아닌가요?"
"맞아."
"알고 있어요."
"거기 안내해 줄래?"
"아, 제가 좀 바빠..."
녀석의 말이 끝나기 전에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던졌다. 소년은 금화를 받자마자 걸음을 옮겼다.
"뭐하세요. 이쪽이에요."
와 태세전환 속도 봐라. 크게 될 놈이네.
"여기에요."
소년을 따라서 15분 정도 걷다보니, 화려해 보이는 건물이 나타났다. 건물에 마법을 사용했는지 벽 하나하나에서 고급스러운 빛이 나고 있었다.
"그래. 수고했다."
"그런데 여긴 귀족이나 돈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그대로는 못 들어가실걸요."
"그래?"
건물 옆에서 기다리다가 플랑베르쥬에서 나가는 귀족하나를 발견했다. 술집에서 일하는 하인이 밖까지 배웅을 하는 것을 보니 귀족이 확실했다.
‘아그네스’
[알겠어.]
아그네스로 내 얼굴을 그 귀족과 똑같이 만들었다. 옷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조금 끌다가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어? 베루 자작님. 또 오셨습니까?"
"조금 더 마시고 싶어서."
"하하, 그렇죠. 그런 큰일이 생겼으니, 더욱 마셔야 기분이 풀리죠."
그의 말에 대충 대답해 주면서 중간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역시 룸이 없군. 구멍 많은 설정을 해놔서 다행이야.
"그럼 마시던 걸로 가져 올까요?"
"그래."
하인을 보내고 모든 청각에 내력을 집중했다.
"마탑에서도 확인했대, 그게 마법이 아니라고."
"정말?"
"그래. 마나의 움직임이 없었다고, 자신들도 모르는 현상이래."
"그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 많은 상인으로 보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귀족들은 눈치가 보여서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흑, 흑."
"그만 우시고, 이것 좀 드세요."
"나한텐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눈빛을 하더라고..."
"정말 못 된 사람이네요."
"그렇지? 나 같은 사람을 차다니, 정말 정신을 놓은 게 맞다니까."
우측 끝 접대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그럼 오늘 차이신거에요?"
"그래. 그 눈빛만 봐도 알았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저 여자를 좋아하는 구나."
"그럼 고백도 안하고 그냥 나오신 거에요?"
"아니, 그 남자 죽였어. 흑흑."
여성은 계속 흐느끼면서 말을 하고 있었다.
"후후, 또 그런 장난을 치시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 법이에요."
"그래?"
"네. 꼭 좋은 사람을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정말? 역시 너랑 이야기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니까."
찾았다.
내가 찾던 자가 바로 저기서 흐느끼고 있는 여자였다. 아니 여자도 아니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니까.
[엔비, 황태자와 재밌게 즐긴 모양이네.]
나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고 있는 그녀에게 전음을 보냈다.
콰앙!
푸아아악!
전음을 보내자마자, 흐느끼고 있던 여자, 엔비가 있던 테이블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술집에서 핏방울로 이루어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엔비의 옆에 있던 접대부 뿐 아니라 근처에 있던 상인들까지 돌기둥에 온 몸이 터져버린 것이다.
꿀꺽.
이렇게 바로 날뛰다니, 나 살아 돌아갈 수 있으려나.
"누구냐."
아주 낮은 엔비의 읊조림이지만, 천둥이 치는 것처럼 귀에 울렸다.
"히이익!"
퍼엉!
문을 열고 도망치려던 상인의 발밑에서 돌기둥이 튀어나와 상인뿐 아니라, 문과 건물까지 부숴버렸다.
"어떤 놈이냐고!"
엔비의 손에 닿자 그의 옆에서 덜덜 떨던 상인의 머리가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젠장!
욕설을 내뱉으며 미리 준비하고 있던 독들을 엔비에게 사용했다.
[약한 마비독을 사용합니다.]
[연장독(聯腸毒)을 사용합니다.]
[분혈작(噴血酌)을 사용합니다.]
[와염독(蛙炎毒)을 사용합니다.]
"뭐야?"
엔비는 자신에게 뭔가가 투입됐다는 것을 알았는지, 양손을 들어올렸다.
콰아앙!
"네 놈이구나"
"큭!"
독을 사용하며 눈을 마주쳤기 때문인지 엔비가 나를 알아보고 돌창을 날려 왔다.
콰콰콰쾅!
엔비가 손으로 바닥을 내리치자, 지진 난 듯 땅이 갈라지며 수십 개의 돌창이 올라왔다. 소룡지보를 사용해서 돌창을 피하면서 아그네스로 만든 검을 휘둘렀다.
컁!
컁!
컁!
내성 때문인가 독의 발동이 너무 늦는데!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엔비(envy)]
[특성: 칠죄종-질투(Invidia)]
[호감도: -99 (살해 충동)]
[현재 기분: 사지를 꿰어 죽이고 싶어 함.]
현재 기분은 창조주의 눈의 레벨이 오르면서 나온 새로운 능력이다. 확인해본 결과 저건 지금 나에 대한 생각을 나타낸다.
즉 지금 엔비는 나를 돌창에 꿰어서 죽이고 싶은 것이다.
"젠장!"
너무 얕본 것 같다. 사실 경비대가 오기전까지만 버티면 내 승리라고 생각했는데, 돌창을 딜레이 없이 날려댄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소룡지보와 창조주의 눈의 흐름파악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돌창에 꿰어서 죽었을 거다.
"어떻게 나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놈은 절대 이곳에서 살아나갈 수 없다."
쾅!
엔비가 발을 크게 구르자, 땅에서 솟아오르는 창이 더욱 빨라지고 엔비 본체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창조주의 눈 덕에 움직임은 알겠지만 속도의 차이 때문에 버티기 힘들었다.
"끝이다!"
엔비의 거대화 한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라 왔다. 무슨 짓을 해도 피할 수 없다고 생각 할 때 엔비의 움직임이 돌연 멈췄다.
"크윽! 네놈 내게 무슨 짓을!"
[약한 마비독 –0:01]
약한 마비독이 이제야 들어갔다. 그것도 딱 1초 동안. 정말 운 좋게 터진 마비독 덕에 목숨을 건졌다.
부아앙!
나는 가지고 있는 검에 내공을 가득 담아서 엔비를 향해 내리쳤다.
푸칵!
"크아악!"
엔비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제대로 공격이 들어간 것이다.
"어, 어떻게! 인간들의 허접한 오러로는 내 몸을 베지 못할 텐데!"
엔비는 뒤로 물러난 후 이를 갈며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이미 인간의 그것을 벗어나 있었다.
"죽여주겠어. 죽여주겠어! 커억!"
이제야 나머지 독들이 엔비에게 들어갔다. 하지만 엔비와 나의 레벨 차이에서 오는 저항력 때문인지 모두 오래가지 않았다.
"대체 뭐야!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글쎄다."
속으론 식은땀이 흘렀지만, 일부러 여유 있는 척을 했다.
"크으윽! 커억!"
짧은 시간이긴 해도 독 자체는 들어가는지 엔비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크아아악!"
엔비는 독에도 쓰러지지 않고 다시 돌창을 날려 왔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확연하게 느려져 있었다.
"너무 아파... 흐흐흑"
엔비가 갑자기 주저앉아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여성체였던 엔비는 순식간에 2m가 넘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시발, 여기서 2페이즈가 발동 된다고?
"크하하하!"
독은 여전히 작용되고 있었지만, 엔비는 광기 넘치는 웃음을 지으며 내게 돌진해왔다.
후우웅!
콰콰콰쾅!
돌창과 엔비의 속도가 2배는 빨라졌다. 이곳에 있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라서 넓은 대로로 빠져나왔다.
우우웅!
다른 곳으로 도망치기 위해서 뛰려고 할 때 내 눈앞에 엔비의 주먹과 창이 동시에 나타났다.
젠장, 끝이다.
죽음을 느낀 순간, 귓속에서 청아한 알림이 들렸다.
[진정한 죽음의 위기, 상승의 경지가 발동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