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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기사 학교 (29/241)
  • 기사 학교

    크란시스 왕국의 북부는 강력한 대형몬스터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그곳을 지키는 엘리온 공작가에는 최강이란 칭호가 붙어 있었다.

    엘리온 공작가의 특징은 왕국에서 유일하게 찬란한 은발과 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지금 그 특징을 가진 남자가 내 눈앞에서 밝게 미소 짓고 있었다.

    "유렌 록스님 맞으신가요?"

    "그렇습니다만." 

    "하하하, 그렇게 경계하실 거 없습니다."

    그는 평범하지 않은 귀족스러운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저는 이곳에 학생으로 있는 카릭 엘리온이라고 합니다."

    역시 그는 엘리온 공작가의 둘째인 카릭 엘리온이었다. 

    "들어보니 콜린을 찾으시는 것 같군요."

    "맞습니다."

    "저는 콜린의 친구고 같은 클래스라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데 안내해 드릴까요?"

    좋은 느낌은 아니다. 이 녀석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꺼림칙했지만, 거절하기도 애매했기 때문에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친구의 형은 제 형이죠. 이쪽으로 오시죠. 가는 길에 학교 안내도 해드리겠습니다."

    카릭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쪽에 있는 문을 열었다. 그리곤 어서 오라는 듯 웃으며 문을 잡고 있었다.

    "기라녹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올게."

    "네. 다녀오십시오." 

    기라녹스가 웃으며 로비에 있는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카릭을 따라갔다. 

    "혹시 이곳에 대해서 알고 계십니까?"

    "아뇨. 잘은 모릅니다."

    "가는 길에 심심하니까, 설명이나 해드릴까요? 이곳에서 신분은 먹히지 않습니다. 지위, 계급도 소용없죠. 통하는 것은 오직 실력뿐입니다."

    "그렇습니까."

    "네. 그리고 콜린은 저와 같은 최상위 클래스인 마스터 클래스에 속해 있습니다. 마스터 클래스는 훗날 마스터가 될 인재를 육성시키기 위해 엘리트들만 모아 놓은 곳이죠."

    기사 학교에 대해 알려준다더니, 지 자랑만 하고 앉았다. 역시나 첫인상은 어디가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정말 대단하네요."

    귀찮아서 그냥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소문을 들었는데요."

    "소문이요?" 

    "네. 유렌님과 일리아 마르쿠스님이 오크 투사를 잡았다는 게 진짜입니까?"

    "그게 벌써 왕도까지 퍼졌습니까?"

    "유렌님이나 일리아님이나 두 분 다 유명하시니까요. 거기다 오크 투사가 보통 몬스터도 아니니. 소문이 바람같이 퍼진 거야 당연한 일이죠. 말씀하는 것을 보니, 소문은 사실인가 보네요."

    "네. 사실입니다."

    이제 와서 감출 것도 아니기에 솔직하게 말을 해주었다. 사실이라는 말에 카릭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정말 마법을 배우신 건가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마법사는 아닙니다."

    "하하, 역시 그렇군요. 너무 궁금해서요. 아, 유렌님과 대화가 재밌어서 지나칠 뻔했네요. 여기입니다. 콜린은 이곳에 있을 겁니다."

    카릭은 나에 대해 무언가를 아는 건지, 역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들어가시죠."

    카릭은 체육관 같아 보이는 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컁!

    캬컁!

    쾅!

    콰광!

    안은 연무장인지,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계속해서 들리고 있었다. 

    "카릭님!"

    "카릭님. 금방 돌아오셨네요."

    "카릭님 같이 수련하시죠."

    카릭이 들어가자, 안에서 세 명의 여기사들이 그의 앞으로 우르르 달려왔다. 

    "하하, 나중에 콜린은 어디 있어?"

    "네? 아까 카릭님이 데리고 교수님께 가시지 않았나요?"

    "이런,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 보네."

    이 자식이...

    지가 콜린을 데려가 놓고 나를 연무장에 데려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시비라도 걸고 싶은 건가.

    "아, 죄송합니다. 돌아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안 왔네요."

    카릭은 미안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전혀 미안한 표정이 아니었다. 

    "카릭님 이분은 누구시죠?"

    "아, 이분은 콜린의 형님이신 유렌 록스님이야. 얼마 전에 일리아 마르쿠스님과 함께 오크 투사를 잡으셨지."

    "우와!"

    "그러고 보니 콜린님과 닮으셨어요."

    "강철의 마법사라 불리시는 분이시군요." 

    "소문 들었어요! 유렌님!"

    이곳저곳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기사들이 내 앞으로 몰려왔다. 

    이 자식들 뭐야. 분명히 나를 좋아하지 않을 텐데, 왜 이렇게 오는 거야

    "그런데 유렌님은 마법사가 아니라고 하시더군."

    "네? 그럼..."

    "내가 예상한 대로 우리처럼 몸을 쓰는 사람이라는 거지."

    카릭은 지 혼자 나에 대해 분석까지 했는지, 예상이란 단어를 쓰고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다.

    "그럼 기사수련을 받으신 건가요?"

    "단검을 던졌다고 들었는데요?"

    "오크 투사를 끝낸 것은 철로 된 나비라고 하던데 그건 뭔가요?"

    "자, 그만, 그만! 유렌님이 불편해 하시니까. 그만들하고."

    이곳의 분위기는 카릭이 조종하고 있었다. 계급이 없다고? 웃기는 소리다. 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엘리온 공작가라는 후광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었다. 

    "유렌님 이 친구들이 이렇게 궁금해 하니, 실력 한 번 보여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게 이놈의 본 목적이었나 보다. 

    카릭은 내 힘을 가늠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내 힘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소문을 거짓이라고 생각 하고 있을 지도 몰랐다. 

    원래 귀족들의 세계에서 강한 몬스터를 혼자 잡은 척하는 것은 꽤나 유명한 방법이니, 녀석의 의심이 이해는 갔다.

    "실력을 보여주라니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다. 

    "유렌님께 대련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련이라, 예상대로군.

    "대련이요?"

    "네. 유렌님도 록스 가문이시니까 알고 계시겠죠. 기사들은 검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소리를."

    "네. 들어봤습니다."

    "멜라이."

    "네. 카릭님."

    카릭은 뒤에서 구경하던 덩치 큰 기사를 불렀다. 멜라이라 불린 남자는 키가 2m는 되어 보이는 거구의 청년이었다. 

    "멜라이가 저희 중에 딱 중간 실력자거든요. 이 친구와 검의 대화를 한 번 해주시겠습니까?"

    "오!"

    "유렌님과 멜라이의 대결인가!"

    "기대되는 걸!"

    바람잡이가 아주 제대로다. 카릭과 쫄병들은 현대로 오면 사기꾼으로 잘 살아 갈 것 같은 놈들이었다. 

    "좋습니다."

    나도 천무지체로 바뀐 내 신체 능력을 파악하기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대련준비는 금방 끝났고, 기사들은 나와 멜라이를 주변을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었다. 

    "단검을 쓰신다고 하던데, 검을 들고 계시군요."

    "네. 이걸로 하겠습니다."

    나는 벽에 걸려있던 수련검 하나를 가져와서 들고 있었다. 내가 살을 뺄 때 사용하던 수련검과 비슷해서 마음에 들었다. 

    "자, 오십시오."

    멜라이는 나와 같은 수련검을 들고 덤비라는 듯 웃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천천히 걸어가서 검에 내공을 가득 담아서 그대로 내리쳤다. 

    후우웅! 

    검을 내리칠 뿐인데,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착륙 할 때의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훗, 그걸론..."

    딱!

    "컥!"

    멜라이는 내 검을 막기 위해 머리위로 자신의 검을 들었지만, 내 힘에 밀려서 자신의 검으로 본인의 정수리를 가격했다. 

    "켁."

    자신의 검에 정수리를 얻어맞은 멜라이는 혀를 축 내민 채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아..."

    "어..."

    "으..."

    너무도 어이없는 장면에 구경하던 기사들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 카릭도 이런 일이 발생할 줄은 몰랐는지,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하... 이거 참 멜라이가 너무 방심을 했나 봅니다. 이거 참..."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정신을 차린 카릭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다시 앞으로 나섰다. 

    "죄송하지만, 한 번 만 더 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죠."

    뭔가 상황이 재미있어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룰라."

    "네."

    이번에는 나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잘생긴 남성이 앞으로 나왔다. 팔다리가 길쭉길쭉 한게 유연한 움직임을 보일 것 같았다.

    "룰라는 멜라이보다 강한 중상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룰라 방심하지 말고 제대로 해야 해. 멜라이 봤지?"

    "절 저런 근육돼지하고 비교하시다니, 섭섭합니다."

    "그래. 미안해. 후후."

    다시 사람들이 뒤로 빠지고 나와 룰라만이 가운데에 남았다. 

    "가겠습니다."

    룰라는 친절하게 경고까지 해주며 내게 돌진했다. 멜라이보다 강하다는 게 진짜인지, 그의 돌진은 꽤나 민첩했다.

    후우웅!

    나는 멜라이를 기절시킬 때처럼 검을 내리찍었고 룰라는 무릎을 굽혔다가 피면서 검을 올려쳤다. 

    딱!

    퍽!

    검과 검이 부딪친 순간 룰라의 검은 멜라이 때와 똑같이 내 검에 담긴 힘에 밀려서 주인의 이마를 내리찍었다. 

    룰라 역시 멜라이 처럼 뒤로 자빠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아예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멜라이야 방심했다고 쳐도 룰라까지 똑같이 당하니, 이제 기사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대, 대체..."

    "으음..."

    "자, 장난 아니지?"

    그들의 눈동자는 처음 겪는 이상 현상에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요새 기사학교는 허접들만 키우나?"

    내가 혼자 중얼 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사람들이 움찔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하하하! 이거 진짜 세 번째 말씀드리기 좀 쪽팔린데 유렌님도 몸이 덜 풀리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정말 마지막입니다. 이번엔 제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실망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기다리던 게 왔군. 너 잘 걸렸다. 이 자식아. 자다가 이불을 박차게 만드는 흑역사로 만들어 주마.

    "좋습니다."

    "하하, 역시 록스가의 대공자! 시원시원하네요."

    나와 카릭은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슈욱!

    카릭은 진지한 표정을 지은 후 말도 없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이전의 두 명보다 확연히 빠르고, 민첩했다.

    이 자식 오러까지 쓰고 있네. 

    그는 아주 얇게 만든 오러를 두른 채 나를 노리고 있었다. 너무도 능숙한 활용이라, 실력이 떨어지는 기사들은 오러를 사용하는 지도 모를 정도였다.

    슈아앙!

    카릭이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나는 그것을 막지 않고 소룡지보로 회피한 후 카릭을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후우웅!

    검을 내리찍을 때 나는 기괴한 소리가 또 나왔다. 카릭은 그것을 보고, 자신의 검을 약간 틀어서 들어올렸다. 

    검 흘리기, 카릭은 적은 힘으로 상대의 강한 힘을 받아내는 고급기술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딱!

    쿵!

    "캭!"

    천무지체가 알아서 그의 검 흘리기를 파훼해버렸다. 예상하지 못한 공격에 카릭 역시 자신의 검에 마빡을 얻어맞고 부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기절해버렸다. 

    "니들 뭔데."

    나는 이들의 한심함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입을 열었다.

    내 주위에서 모여든 기사들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카릭이 부추기니까 분위기를 맞췄을 뿐 오히려 나를 싫어하고 있었을 거다.

    그런데 멜라이, 룰라에 이어 마스터 클래스라는 카릭까지 일격에 기절을 시켰으니, 기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청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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