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굴
갑자기 결혼이라고? 이 딸바보가? 이상한데.
물론 나와 일리아는 혼약이 잡혀있지만, 그건 소설에서 결국 파기 된다. 미래가 달라졌기 때문에 예측이 힘들긴 하지만 이렇게 결혼을 말하다니, 무언가가 이상했다.
레이언은 주인공이 일리아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고, 영웅소리를 듣고 작위를 받아도 그녀와 주인공이 서로 좋아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런 인간이 일리아의 목숨을 한 번 구해줬다고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니, 평범한 일은 아니다.
거기다 그는 얼마 전까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파혼시키려고 했던 사람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나를 시험하고 있는 건가.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름: 레이언 마르쿠스]
[특성: 강철근성lv4, 수검(守劍)lv4, 괴력lv3]
[호감도: -10 (약한 비호감) ]
역시, 레이언 마르쿠스는 나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좋아하지도 않는다. 저 –20인 호감도가 이번 일덕에 엄청나게 오른 게 분명하다. 원래라면 호감도가 바닥에 박혀있겠지.
레이언은 상남자지만, 딸을 무엇보다 아끼는 딸 바보다.
그럼 여기서 대답은...
"저는 지금 당장 결혼을 해도 상관없습니다."
"풉! 야!"
내 말에 식사를 하던 일리아가 입안에 있던 스프를 밖으로 내뱉고 얼굴이 벌게진 채 나를 불렀다.
"그렇지만 자네는..."
"하지만! 저는 아직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지난 날 망나니로 살았던 세월 덕에 사람들은 여전히 저를 냉정한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레이언의 후작의 말을 끊었는데도, 그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계속 말하라는 듯 그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일리아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고 생각을 바꾼 후 록스의 후계자가 되겠습니다. 그 후에 그녀를 데려가겠습니다."
물론 뻥이다. 여자 때문에 그렇게 바뀌다니, 나는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일리아와 레이언의 마음에 들었는지 분위기가 좀 더 풀어졌다.
"호오..."
레이언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약간 미소를 짓고 있는 거 같았다.
"그런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런데 자네 동생들은 천재로 이름이 알려졌지 않나. 특히나 둘째는 록스의 역대급 천재라고 불리던데? 자네가 그를 제치고 후계자가 될 수 있나?"
"물론입니다."
후작이 나를 자극하고 시험하는 질문에 넘어가지 않고 망설임 없이 대답을 내놓았다.
"크하하하!"
레이언 후작이 오늘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웃고 있는 거 같았다.
"괜찮군. 괜찮아 보여."
후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스푼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한 가지만 더 묻지. 자네는 마법사인가?"
"아닙니다. 어쩌다보니 소문이 그렇게 났더군요."
"그럼 그렇지. 록스가 마법사일 리는 없겠지. 그럼 자네가 가진 게 무슨 능력인지 알려 줄 수 있나?"
"마도서의 기술을 익혔습니다."
어차피 밝혀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게 록스 후작에게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역시 마도서인가, 마법사가 아니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직접 보지는 못했다만, 일리아의 얘기를 들어보니 대단한 능력이라 하더군. 좋은 기연 얻은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레이언 후작은 내가 검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텐데도 딱히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강하기만 하면 뭐든 가리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자네가 오기 전에 윌링턴에게 연락이 왔었네."
"네?"
"자네 소문이 벌써 록스까지 들어갔더군. 누군가 통신 마법을 사용해서 그에게 알려줬겠지."
후작의 귀에 내 소문이 들어가는 건 예상했던 바다.
"후작님께선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네가 이곳에 오면 바로 연락해달라고 했네."
"그럼 통신 좀 쓸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네."
후작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쳤으면 일어나지."
"네. 잘 먹었습니다."
후작의 생각을 파악하느라 신경 써서 그런지 뭔 맛으로 스프를 먹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자네가 했던 말들 마음에 들었네. 그 말대로 되기를 기다리고 있겠네."
후작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게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여주고 식당을 떠났다.
후, 그래도 성공했군.
후작은 내 장인이라는 역할보다, 훨씬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나중을 위해서 그에겐 계속 점수를 따 놔야하는데 오늘은 꽤나 성공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심어 놓은 거 같다.
일리아는 의중을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후작을 따라 식당에서 사라졌다.
쟤는 또 왜 저래.
"유렌 공자님. 통신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식당을 나오자, 레기는 3층에 있는 통신실로 안내해주었다. 그곳에 있던 통신 마법사에게 얘기해서 록스 후작가의 통신실로 연결을 했다.
[록스 후작가입니다.]
"마르쿠스 후작가입니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이곳에 유렌 록스 공자님이 계십니다. 윌링턴 록스 후작님과 통신을 원하고 계십니다."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통신은 컴퓨터 모니터 같은 것에서 나오는 상대를 바라보며 하는 화상 전화 같았다. 내 앞에 있는 모니터 같은 것에서 록스가의 마법사가 보이고 있었다.
잠시 뒤 삐 소리가 들리더니 화면에 록스 후작이 나오고 있었다.
[유렌! 이 자식!]
"죄송합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다행히 아무 곳도 없습니다."
[편지에 무기를 사러 간다는 놈이 왜 오크들과 전투를 했다는 거냐!]
"죄송합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어쩌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오크 투사라니! 그놈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데!]
록스 후작도 내 명성이 올라간 것을 들었을 텐데, 그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는 오직 내 걱정만을 하고 있었나보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의 걱정에 코끝이 아리기 시작했다. 이런 걱정 얼마 만에 받아보는지 모르겠다.
[하아, 네가 괜찮아 보인다는 보고는 들었다만, 직접 듣고, 직접 보고 싶었다. 너를 찾아가고 싶었다만...]
"..."
록스 후작이 이렇게 까지 걱정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네가 일리아의 목숨을 구하고 오크 투사의 목숨을 끊었다고 하던데 정말이냐?]
"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어찌됐든 다행이구나. 무기는 구했느냐?]
"무기도 구하고 사람도 구했습니다."
[사람?]
"네. 뛰어난 대장장이를 구했습니다."
후작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네 이야기는 이곳에 와서 천천히 듣기로 하지. 언제 돌아올 생각이냐.]
"모래 쯤 돌아가겠습니다."
[모래라, 그럼 잘됐구나. 네 동생 좀 데리고 오너라.]
"예?"
**
"갑자기 뭔 동생들을 데려오래."
윌링턴 록스는 세 명의 아들이 있다. 나를 제외한 다른 두 명의 동생들은 각자 다른 기사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자기가 직접 부르면 될 텐데."
후작은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면서 나에게 동생들을 모두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거 같았다.
다음날 아침, 나를 잡아두려는 일리아와 레이언을 윌링턴 후작의 핑계를 대며 뿌리치고 마르쿠스 후작가를 나와서 후작령에 있는 산을 올라갔다.
"길이 나있어서 편하네."
"그렇죠. 여긴 사람들이 많이 다니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이라 그런지 풀도 없고 걸리적거리는 돌도 없어서 산을 편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기라녹스, 여기 와봤어?"
"물론이죠. 대장간을 열기 전에 왔습니다."
나는 기라녹스와 같이 산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그는 이곳에 와본 듯 익숙한 걸음으로 산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대공자님도 소원을 빌려고 오신 건가요?"
"소원? 아니, 나는 보물을 찾으러 왔지."
"보물이요?"
"그래."
기라녹스와 잡담을 하면서 천천히 산을 올라갔다. 관광지라 그런 건지 지나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보물이 남아 있을 까요?"
"물론이지. 세상엔 비밀이 많거든."
"아! 도착했습니다. 대공자님. 저기가 신룡굴입니다."
산의 중턱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거대한 동굴 앞에 줄지어서 서있었다.
"여전히 사람 많네요."
이 신룡굴은 용신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동굴이다. 실제로 동굴은 드래곤이 살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거대한 입구를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승천한 용신에게 여러 가지 소원을 빌기 위해 온 것이다. 기라녹스도 이곳에 와서 대장간이 잘되기를 빌고 갔을 거다.
"여긴 아니지."
"네?"
"저긴 다 헛거고 가짜야."
"가짜라니..."
이들처럼 소원을 빌러 온 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줄에서 떨어져서 동굴의 오른 쪽으로 돌았다.
"대공자님 어디가세요?"
"말했잖아. 저긴 헛거라고 우린 보물 찾아야지. 어디 쯤 있을라나."
동굴 주변을 천천히 돌면서 내가 찾는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반달 모양의 구멍을 찾으면 되는데...
한참을 돌았는데도 내가 찾는 형태의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뒤로 돌아가려고 생각할 무렵 반달이 살짝 돌아간 형태의 구멍이 눈에 보였다.
"저건가?"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 한 후에 구멍에 손을 집어넣었다.
달칵!
안에는 손을 걸 수 있는 손잡이 같은 게 있었는데 승용차 문을 당기는 느낌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당겼다.
덜컹!
쿠구구.
"우왁! 이, 이게 뭐죠?"
손을 대고 있는 나만 알 수 있을 정도의 약간 진동이 벽에서 느껴지더니, 벽에 사람 한 명이 지나 갈만한 사각형의 구멍이 나타났다.
"대공자님 이 구멍은 대체!"
신룡굴에 소원을 비는 사람들은 그냥 평범한 구멍에 절을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저 구멍은 용신은커녕 구렁이와도 인연이 없다.
"이 곳의 진정한 보물은 여기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