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강철의 마법사 (25/241)

강철의 마법사

불빛이 점점 다가오며 그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장님, 저희 지금 도착했습니다!"

"무, 무사하셨군요!" 

우리에게 접근해 온 것은 횃불을 들고 있는 두 명의 기사였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큰일이었습니다."

그들에 친근한 인사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싸우지 않고 도망쳤다가 전투가 끝난 것을 보고 뒤늦게 왔다는 것을. 

"어디 갔다가 온 거지? 신호탄이 터진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저, 저희가 너무 멀리 까지 나갔습니다. 중간에 오크들에게 습격까지 받아서 그것을 물리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들의 말에 일리아는 차분하게 그들의 복장을 쳐다보았다. 

계산과 달리 기사의 수가 적었던 게 이놈들이 도주했기 때문이었군. 

이들은 분명히 오크 투사에게 죽는 기사를 보고 겁에 질려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들의 복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병사들은 어디 있지?"

"오크들이 너무 많아서 전멸했습니다. 보호해주고 싶었지만 강적이 있었습니다."

"안내해라."

"예?"

일리아의 말에 기사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다시 와서..."

"상관없다. 병사들이 죽은 곳으로 안내해라."

"먼 곳입니다. 지금 그곳에 가면 오늘 안에 아스성에 도착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안내하라고 말했다."

일리아의 말에 기사들은 이빨을 꽉 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네요. 여기 지도를 봐주세요."

앞에 있던 기사가 지도를 보여주려는 듯, 일리아에게 다가갔다. 

와! 뻔하다. 뻔해.

"저희가 싸운 게 바로 이 부분인데..." 

컁!

"크아악!"

기사가 지도 밑에 숨긴 단검으로 일리아의 목을 노릴 때 미리 준비해 놓은 아그네스로 그의 손목을 날려버렸다. 

"아아악! 내 손, 내 손이!

그는 피가 줄줄 세어 나오는 손목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오크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는 놈들이 오크의 녹색 피는 하나도 묻어있지 않고 사람의 피만 덕지덕지 묻어 있군." 

"크윽!

일리아의 말을 들은 다른 기사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제, 제발 살려주세요!"

"병사들은 어떻게 했지?"

"저, 저 자식이 모두 죽였습니다! 우리가 도망친 것을 봤으니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하면서 모든 병사들을 죽였습니다!"

기사는 아직도 손목을 부여잡고 있는 기사를 가리켰다. 

"개소리 하지마라! 네놈도 웃으면서 같이 죽였잖아! 어딜 혼자 빠져나가려고! 네놈이 나보다 더 죽였잖아!"

손목이 날아간 기사는 오러로 출혈을 멈춘 후 무릎 꿇은 기사를 씹어 먹을 뜻 쳐다보았다.

"일리아님, 저희 프뎅 가문은 대대로 마르쿠스 가문을 섬기는 종가지 않습니까! 이번일은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무릎 꿇은 기사는 일리아 앞에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제발 한 번만 용서 해주세요! 이번 일만 넘어가 주시면 아버님께 말씀드려..."

푸칵!

그에게 다가간 일리아는 망설임 없이 기사의 목을 베어버렸다. 

"아아악! 살려..."

푸욱.

그녀는 뒤로 돌아서 손이 날아간 기사의 목을 검으로 내리찍었다. 

챵!

목을 뚫고 땅에 박힌 일리아의 검이 부러져버렸다. 그녀는 반 토막 난 검을 뒤로 던지면서 말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와, 겁나 시원한 여자네.

**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일리아는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돌아가서 병사들의 시체 회수 작업을 진행했다. 

본인도 상당히 지쳤을 텐데, 그녀는 숲을 돌아다니며 한 명의 병사 시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도망친 기사들은 병사를 죽이고 강에다 던졌는지, 기사들에게 당한 병사의 시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의 시체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결국 아스 성으로 돌아왔다. 

"우와아아아아!"

"영웅들을 환영해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 분들 만세!"

"오크 투사를 물리친 영웅이다!"

우리가 아스성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들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이유는 간단했다. 카-루다의 시체를 가져간 마법사들이 놈의 정체를 오크 투사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오크 투사가 등장하면 인간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적은 손실로 투사를 잡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욱 칭송을 하고 있었다.

"철혈기사님 만세!"

"저분이 홀로 오크 투사에 맞서신 일리아 님이야!"

"철혈기사 만세!"

"철혈기사님 이쪽 좀 봐주세요!"

"아름답습니다. 철혈기사님!" 

철혈기사란 일리아였다. 철혈은 오크 투사에게 홀로 덤벼서 상처를 입히고 죽을 위기에서도 물러나지 않은 그녀에게 붙은 명예로운 기사의 이름이었다. 

철혈기사라는 별명은 소설과 똑같네.

"강철의 마법사님!"

"유렌 공자님!"

"마법사님 잘생겼어요!"

"강철의 마법사님! 고마워요!"

이번에는 여자들의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강철의 마법사래. 풉]

‘아그네스 조용히 해.’

[마나는 쥐뿔도 없는데 마법사. 푸풉]

‘이자식.’

강철의 마법사는 어이없게도 나였다. 저 별명들이 만들어진 이유는 살아남은 병사들의 목격담이다 보니, 내가 마법사로 불리게 되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강철을 다루는 마법사로 보였나 보다.

"유렌."

"응."

환호성 속에서 계속 아무 말하지 않던 일리아가 나를 불렀다. 

"두 번이나 구해줘서 정말 고마워."

"당연한 거잖아."

"네가 오지 않았으면 어제 그곳에서 죽었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를 떨고 있었다. 

"이젠 절대 당하지 않아. 내가 가장 위에 설 거야.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어."

이제 진정한 그녀는 진정한 재능을 개화하고 검후라는 특성에 어울리는 기사가 될 것이다. 

"유렌 우리 집으로 가자."

"뭐?"

"아버지가 너를 꼭 데려오라고 하셨어."

이건 당연히 예상하고 있는 전개였다. 주인공 대신 내가 가는 일일 뿐이다. 

그럼 간 김에 그곳에 있는 거나 털어야겠네.

원래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보물을 털려고 했지만, 겸사겸사 마르쿠스 후작령에 있는 숨겨진 보물을 털기로 정했다. 

"가 줄 거지?"

"아..."

"안 갈 거야?"

단단해 보이던 일리아가 어제부터 계속 내게만 부드럽게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뭐, 구해줬으니, 호감도가 많이 오르긴 했겠지.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이름: 일리아 마르쿠스]

[특성: 경국지색(傾國之色), 검후(劍后)]

[호감도: 45 (호감) ]

얘, 마지막에 봤을 때 비호감 아니었나. 몇 번 구해줬다고 이렇게 올라가나. 미연시가 이렇게 쉬웠나. 

"후작님이 부르셨으면 가야지."

"그래!"

아스 성에서 마르쿠스 영지까지는 가까웠지만, 전투의 피로 때문인지, 마르쿠스 후작이 시킨 건지 후작가의 마법사들이 나와서 우리를 후작가로 공간이동 시켜주었다. 

"우리 영지 오랜만에 오지?"

"그렇네."

나는 이곳에 와본 적 없다. 처음이다. 

후작 가는 다 지랄 맞게 넓네. 관리를 어떻게 하나 몰라.

"대, 대공자님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네요." 

뒤에서 기라녹스의 어이가 없어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도 처음 록스 후작가를 봤을 때 기라녹스와 비슷하게 놀랐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마르쿠스 후작가도 록스가에 못지않게 넓었다. 이곳의 정원도 록스가처럼 넓었지만 식물들의 종류가 달랐다. 이곳과 록스의 기후가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쪽이야."

나는 일리아의 안내를 따라 저택으로 갔는데 록스가의 저택이 전형적인 대저택의 형태라면, 이곳은 아파트 같았다. 

난 이런 설정을 한적 없는데 대체 누가 다 맞춰놓은 거지. 

소설이 알아서 설정을 맞추는 듯, 이곳은 특이하지 않은 게 없다.

"유렌 록스 공자님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자 줄지어 있던 집사와 하인들이 줄지어 인사를 해왔다. 

"저는 집사 레기라고 합니다. 공자님은 이쪽으로 오시죠."

"조금 이따가 보자."

일리아는 내게 손을 흔들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일단 이방에서 씻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시 샤워부터 시작하는 군. 

대욕탕에서 몸을 씻은 후 바로 옆방으로 끌려가서 옷을 맞췄다. 제단사는 내게 약간 큰 예복을 순식간에 사이즈에 맞게 맞춰주었다. 

이제 불려가서 밥 먹겠네.

나도 이젠 귀족의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다음에 무엇을 할지 알 수 있었다.

집에선 매일 치레인 스프, 나와서는 대충 때웠고, 어젠 육포만 씹었으니, 이곳에선 귀족 같은 화려한 식사를 할 거 같아서 기대가 되었다.

"유렌 공자님 식당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집사 레기를 따라서 1층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안에선 향긋한 냄새가 풍겨지고 있었다. 

식당은 거대했지만, 마르쿠스가의 직계들만 이용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식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유렌 록스, 레이언 마르쿠스 후작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이미 후작과 일리아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귀족예법에 맞게 후작에게 인사를 올렸다. 

"너무 격식 따지지 말고 앉거라."

"네."

후작의 반대편은 뭔가 부담스러워서 일리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일단 고맙다는 말부터 해야겠지."

"네?"

"네 약혼자 이전에 내 딸이다. 딸의 목숨을 구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후후."

레이언 마르쿠스는 당당한 것을 좋아하는 상남자다. 겸손  보다도 남자다움을 보여주어야 호감도가 오를 거다. 

"이렇게 보니, 정말 달라졌구나.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거늘, 너에게는 통용되는 말이 아니구나."

"노력했습니다."

"그래. 그게 중요하다."

후작은 내가 마음에 드는지, 나와 일리아를 번갈아보며 은근한 미소를 보였다.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집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요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드디어 왔군. 그런데 뭔가 냄새가 익숙한데. 설마...

집사장이 그릇의 뚜껑을 열자, 익숙한 비주얼의 음식이 보였다. 

"아..."

"하하, 어제, 오늘 고생했으니, 마르쿠스가 특제 치레인 스프를 준비했네. 이것만 먹으면 피로와 근육통이 모두 깃털처럼 날아 갈 걸세."

"아..."

내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레이언의 말이었다. 마르쿠스 영지의 특산품들을 먹고 싶었는데, 눈앞에 있는 건 수 없이 먹었던 스프다. 건더기와 색이 조금 달라보였지만, 그게 그거다. 

"유렌, 마르쿠스가는 전투에서 돌아오면 무조건 특제 스프를 먹거든. 맛있을 거야."

가끔 먹는 너야 맛있겠지. 난 여기에 독까지 넣어서 먹는 놈이거든!

"하하, 그래. 맛있겠네."

나는 사회인의 필수품, 억지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후우..."

그래도 배는 고팠기 때문에 수저를 들어 올리던 나는 후작의 말을 듣고 수저를 떨어뜨렸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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