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주인공은 나서야 제맛 (23/241)

주인공은 나서야 제맛

"늦었어."

"제길! 대체 무슨 일이!"

우리가 신호탄이 터진 곳에 도착해서 본 것은 오크와 병사들의 시체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갑옷이 깡통처럼 찌그러진 채 죽어있는 기사의 시체도 있었다. 

"말도 안 돼!"

"왜 기사가 죽어 있는 거야!"

"오크 따위에게 오러를 쓰는 기사가 죽었다고?" 

오크는 그리 강한 몬스터가 아니다.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기사 한 명이 수십 마리의 오크도 베어버릴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그런데 이곳에 난자되어 있는 기사의 시체가 있는 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으로 신호탄이 터진 곳은 어디야!"

"남쪽입니다."

"일단 이곳에 표식을 남겨둬, 나중에 시체를 회수하러 와야 한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남쪽으로 이동한다. 성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경계를 하며 움직이도록."

"예!"

일리아도 당황한 얼굴이었지만, 서둘렀다가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을 주의하고 있었다. 

"대공자님,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닌가요?"

"걱정마라. 여기선 안 죽어." 

"여, 여기요? 그럼 어디서 죽는데요!"

기라녹스는 위험을 탐색하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괴물은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을 테니, 남쪽으로 가도 만나지는 못 할 거 같군.

"죽여!"

"오크 따위가 오러를 뚫다니!"

"기사님이 당했어! 도망쳐!"

"저 괴물은 뭐냐고! 크아악!"

청각에 내력을 집중하니 전투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듣지 못했는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일리아, 조금 더 빨리 움직이자."

"안 돼. 경계 없이 움직였다가는 위험해."

"지금 싸우는 소리가 들리고 있어. 습격은 없을 거야."

"뭐?"

일리아와 기사는 아직도 소리를 듣지 못 하는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소리가 잦아들고 있어, 전투가 거의 끝났군.

챠앙!

"모두 전투준비!"

한참을 더 가서야 전투 소리를 들었는지 일리아가 검을 뽑아들었다. 

챵!

챠앙!

그 모습을 본 기사와 병사들도 무기를 뽑아들고 그녀를 따랐다. 

"기라녹스."

"네."

"앞으로는 내 곁에서 붙어있어."

"네!"

내 예상대로라면 이번에는 전투가 없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기라녹스에게 경고를 해 주었다.

"전속력으로 달린다!"

"네!"

일리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뛰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까지 참은 게 용하다. 일리아는 달리면서도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소리를 들은게 신기한 건가.

"뭐야..."

"또 다 죽었잖아."

"이번엔 기사 두 명이 죽어 있어..."

우리가 달려가서 본 광경은 서쪽에서 본 것과 같은 시체들이었다. 숲이 휘저어진 것을 보니, 오크들이 움직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제기랄!"

"더러운 돼지 새끼들이!"

"으아아악!"

병사들은 쓰러져있는 전우들을 보고 이성을 잃었다. 당장이라도 숲에 뛰어들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일리아는 아직 한 가닥 숨이 붙어 있는 병사를 무릎에 뉘었다. 

"쿨럭! 오, 오크들을 쫓는데 반대편에서 습격이..."

병사는 죽어가면서도 어떻게든 정보를 전하려고 하고 있었다. 

"오크들이 습격을 해봤자. 기사를 이길 수는 없어! 기사가 두 명이나 있었는데 왜 당한 거야!"

그녀의 말대로 뒤에서 바로 찌르지 않는 이상 오러를 쓰는 기사들은 평범한 오크에게 당하지 않는다. 

지금 기사들은 각조마다 1명에서 2명씩 배치되었는데 우리가 본 것만 벌써 3명이 죽었다. 평범한 오크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뒤, 뒤에서 습격한 오크들은 피부 색이 달랐습니다."

"피부 색이라고?"

"놈들은 붉은 피부를 가진 오크들이었습니다."

"레드 오크! 하지만 레드 오크라고 해도 기사를 이기지는 못해. 저들은 정규 기사라고!"

역시 일리아도 레드 오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기사들은 레드 오크를 여유 있게 상대했습니다. 기사님들은 갑자기 나타난 쌍검을 든 오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쌍검? 오크가 쌍검을 들고 있다고?"

"네. 붉은 피부에 쌍검을 들고 다른 오크보다 2배는 커보였습니다."

놈이다. 평범한 오크보다 두 배는 큰 덩치를 가지고, 칼날 대검 두 자루를 쓰는 오크 투사 카-루다가 오늘의 보스 몬스터다.

오크 투사는 전투에만 강한 게 아니라, 전략에도 강하다. 놈은 지금도 정찰을 돌리면서 자신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기사들만 노리고 있을 거다. 

"전열을 가다듬는다. 창병은 앞으로!"

"네!"

"최대한 빠르게 다음 위치로 넘어간다!"

"알겠습니다."

벌써 기사가 3명이나 죽었기 때문에 일리아의 냉정함도 무너졌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만이 보이고 있었다. 

카-루다가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내 생각엔 남은 기사는 많아봐야 6명을 넘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전멸이야. 주인공이 일리아에게 했던 말이라도 해볼까.

"일리아."

"뭐야?"

나는 옆에 있던 일리아를 불렀다. 

"일단 빠진 후 신호탄을 쏴서 병력을 모아야 해."

"뭐?"

"어떻게 봐도 각개격파를 당하고 있잖아. 이대로라면 승산은 없어. 빨리 병력을 모아야 도망칠 기회라도 생겨."

"제길..."

일리아는 자신의 붉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만 좀 하십시오!"

그녀의 뒤에 있던 기사가 내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 같은 방해꾼 때문에 지금 이사단이 난 거 아닙니까!" 

기사는 동료의 죽음에 이성을 잃은 듯 아무 잘못 없는 내게 소리치고 있었다. 

"정말 상황파악을 못하십니다. 당신은 가만히 계시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주인공은 여기서 쌍욕을 먹었었지. 나는 그것 때매 고구마 먹인다고 욕먹었고. 기억나네.

"당신이 전투에 대해 뭘 안다고..."

"입 닥쳐."

"커억! 무, 무슨"

나는 단전에서 만독자전신기의 내력을 불러 일으켜서 그를 집어삼켰다. 

"끄으으...수, 숨이..."

내 무거운 기세에 기사는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못 하고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내력의 압박에 그의 눈은 충혈 되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유렌?"

"주제를 알고 나서라."

"커헉! 헉!"

내가 내력으로 만든 기세를 풀어주자, 기사는 땅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유렌, 너 대체..."

기사 옆에 있던 일리아도 약간이지만 내력의 파동을 느낀 듯 깜짝 놀란 것 같다.

"일리아, 한 명이라도 살리려면 지금이라도 중앙에서 신호탄을 쏴야해." 

소설 속에서 일리아는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며 주인공의 말을 듣지 않는다. 지금의 그녀가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다.

"전원 전속력으로 처음 위치로 이동한다."

"네!"

내게 뭔가를 느꼈기 때문인지 원래 소설과는 달리 일리아는 조언을 받아들였다. 

"네 말이 맞아. 냉정한척 했지만 냉정하지 못했어. 이렇게 당했다면 일단 모인 후에 퇴각하는 게 맞겠지."

일리아는 여전히 가장 앞에서 움직였다.   

"대, 대단하시네요. 대공자님."

"뭐가."

"다들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혼자 앞으로 나섰잖아요."

"됐고 빨리 뛰어."

"윽! 네."

일리아 옆에 있는 기사는 달리면서도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나를 쳐다보진 못하고 주변을 힐끔거리고 있다. 

"도착했습니다."

"청색 신호탄을 터트려!"

"네!"

슈우웅!

퍼엉!

우리는 처음 위치에 도착한 후 모이라는 뜻의 청색 신호탄을 터뜨렸다. 

"무사하겠지?"

"시간상으로 볼 때 저희가 목격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다들 살았을 겁니다."

"제발..."

멍청한 소리다. 내 생각대로라면 지금 남은 기사는 여기를 포함해도 4명이다. 만약 오크 투사가 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이곳에 있는 기사 2명이 전부일 거다.

"저, 저기 옵니다. 그런데..."

한 병사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병사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 뒤에는 대량의 오크들이 그들을 쫓고 있었다. 

"전원 전투준비!"

일리아의 외침에 모두 무기를 잡았다. 

"대, 대공자님."

"걱정 말고 뒤에 있어. 아그네스!"

나는 기라녹스를 내 뒤로 보내고 아그네스를 불렀다.

[몇 백 년 만의 실전이네!]

"난 첫 실전이야."

첫 실전이지만, 가슴은 뛰지 않았다. 이곳이 끝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창병 앞으로!"

일리아의 말에 창을 들고 있는 병사들은 덜덜 떨면서 앞으로 나갔다. 

"유렌 이쪽으로 와!"

일리아는 지시를 내린 후 나를 자신의 뒤로 불렀다. 

"괜찮아."

"뭐?"

휘이익!

병사들의 바로뒤를 쫓고 있는 오크를 향해 아그네스를 던졌다. 

펑!

퍼펑!

단검은 병사를 추적하던 오크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그 뒤에 있던 오크의 머리에 박혔다. 일격에 두 마리의 오크가 뒤져버렸다. 

[꺅! 오크의 피 냄새는 여전히 역겨워!]

"유렌? 너 방금 그건..."

나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왼손에 들린 단검도 던졌다. 

퍼펑!

두 번째 단검 역시 오크 두 마리를 죽였다.

‘아그네스 돌아와.’

나는 아그네스를 회수한 후 계속 단검을 던져서 오크에게 쫓기는 병사들을 구했다. 

"유렌, 대체 그건 뭐야. 단 한 발도 빗나가지 않았잖아."

내 암기술을 본 일리아는 가득이나 큰 눈이 뛰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대, 대단합니다!"

"그런 신기는 처음 봤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단검의 위력과 정확도에 모두 놀랐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야, 왜 기사는 아무도 없어."

"쌍검을 든 붉은색 오크에게 당하셨습니다."

"제길 또 그놈이야?"

우리에게 온 조도 카-루다에게 당했다. 무언가가 바뀌었는지 오크 투사가 더 활발하게 활동했나보다. 

"저놈인가."

오크무리의 끝 쪽에 머리하나가 더 큰 붉은 색의 오크가 튀어나와있었다. 양손에는 대검이 한 자루씩 들려있었는데 검에는 뜨거운 피와 살덩이들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뭐야. 저 괴물은... 저게 오크라고?"

일리아가 오크 투사의 투기를 느낀 듯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유렌, 미안해. 널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일리아는 이곳에서 아무도 살아남지 못 할 거라 생각했는지, 내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크르륵!"

"크아아아!"

"크라라라!"

수십 마리의 오크와 레드오크들은 우리의 앞에서 함성을 지르며 겁을 주고 있었다. 

"모, 모두 죽을 거야!"

"으으으!"

"으아아아. 살고 싶어!"

오크들의 투지에 비해 병사들은 이미 죽을 거라 생각했는지, 더욱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라! 진형을 만들어! 너흰 마르쿠스의 병사들이다! 이길 수 있다!"

일리아가 억지로 사기를 올리려고 했지만, 병사들은 이미 공포의 늪에 빠져버렸다. 이대로라면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전멸이다. 

중간에 나서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군. 

우웅

아그네스를 야구공 정도 크기의 검은색 구슬로 변화시켰다. 

"첫 개시다. 흑철폭(黑鐵爆)!"

슈우웅!

퍽!

나는 흑철폭을 던져서 오크들의 중앙에 있던 레드 오크의 얼굴을 맞혔다.

"크륵?"

흑철폭에 맞은 레드오크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너 뭐하냐?’라는 눈으로 나를 보았고 주변의 오크들은 나를 비웃듯이 크르륵 거렸다. 

"많이 웃어둬 이제 못 웃을 테니."

딱!

나는 그 말을 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흑철폭의 전신에서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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