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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줄기의 변화 (22/241)

줄기의 변화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야."

일리아 마르쿠스, 내 약혼자이자 검후의 특성을 가진 경국지색의 미녀가 찬란한 갑옷을 입은 채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왼쪽 가슴에 망치가 새겨진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줄지어서 서 있었다. 

"이분은 누구시죠?"

일리아와 같이 걷고 있던 잘생긴 남자가 나를 보고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유렌 록스, 록스 가의 대공자이자. 제 약혼자입니다."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나를 소개해 주었다. 

"아, 그 록스의..."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잘생긴 남자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런 곳에서 록스가의 대공자를 뵙다니, 신기한 일이군요. 저는 마르쿠스 후작가 소속 강철 망치 기사단의 제 5 부조장을 맡고 있는 머스크 말론이라고 합니다."

자기 이름 앞에 덕지덕지 명칭을 가져다 붙인다. 간단히 말하자면 좆도 아니라는 거다.

잠깐, 머스크 말론이라고 했지. 그리고 여기는 아스성의 분수. 설마!

나는 즉시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수백, 수천 번이나 상상했던 인물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젠장, 늦었어. 왜 잊고 있었지. 이 순간이었다니!

분수, 아스 성, 그리고 머스크 말론 저 셋을 보니 확실히 기억이 났다. 지금 이곳은 원래 일리아와 주인공이 마주치는 교차점이었다.  

기사단의 길을 막아서 죽을 위기에 처한 아이를 주인공이 구해주면서 트러블이 발생하고, 일리아가 그 싸움을 말리면서 주인공과의 인연이 발생한다. 

하지만 일리아가 나를 보고 먼저 움직여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사단의 앞길을 막을 아이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주인공도 그냥 구경을 하며 이곳을 지나가 버렸다. 

지금까지와는 내가 조금씩 변화시킨 것과는 달라, 스토리의 큰 줄기가 달라져버렸어. 

"유렌, 뭐하는 거야."

내가 생각을 하는 동안 머스크는 계속 손을 내밀고 있었나 보다. 아직도 웃는 얼굴로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놈 지금 나를 죽이고 싶겠지.

"유렌 록스다."

여기선 강하게 나가야 했다. 내 거침없는 인사를 들은 머스크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부조장, 잠시만 얘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먼저 출발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일리아는 기사들을 먼저 보내고 내 팔을 잡고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유렌 여긴 왜 온 거야?"

"장인을 찾으러 왔어."

"장인이라니? 대장장이를 말하는 거야?"

그녀는 내 말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록스 후작가에도 뛰어난 장인은 많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내 사람을 찾고 싶어서."

"미리 얘기했으면 도와줬을 텐데."

"괜찮아. 좋은 사람 찾았거든."

일리아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얘가 정말 네 약혼자 맞아?]

‘그래’ 

[이 여자 뭔데! 넘쳐흐르는 재능이야! 재능이 그릇을 부수고 나올 것 같아!] 

아그네스는 일리아의 재능을 읽었는지 호들갑스러운 목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그래, 이 여자는 나중에 최강자 중 한 명이 되지.

"그럼 이제 돌아갈 거야?"

그녀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했다. 

원래의 스토리라면 일리아는 출정나간 곳에서 거대한 위험을 만나고 연을 쌓은 주인공에게 구해지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과 인연이 끊긴 지금이라면 그녀는 죽게 될 거다. 

어쩔 수 없군. 그녀를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일리아, 너는 어디 가는 거지?"

"아스 성 근처에서 오크들에게 습격당한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어서, 우리에게 정찰 및 토벌 명령이 내려왔어."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그녀는 이대로 나가면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일리아 부탁이 있어."

"부탁?"

"그래. 네가 가는 곳에 나도 데려가 줘."

"뭐?"

일리아가 내 의도를 파악하려는 듯 고개를 모로 틀고 나를 보았다. 

"왜 따라 오려는 거야?"

"나도 수련하는 입장이잖아. 실전을 보고 싶어. 네 실력도 보고 싶고."

"그렇겠네. 딱 그런 생각이 들 때 일거야. 위험하지는 않을 테니 상관은 없지만, 후작님께 말씀드리지 않아도 괜찮을까?"

일리아는 후작에게 보고하지 않고 가는 걸 걱정하고 있는 거 같다. 

만약 후작에게 보고가 들어간다면 나는 이곳에 억류 될 거다. 보고만은 막아야 한다. 

"괜찮아. 위험하지 않고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유렌, 너 그 사이에 뭔가 또 변한 거 같네."

그녀는 내공을 느끼지 못 해서, 내 변화를 모를 텐데 내게 뭘 느끼는 거지.

"뭐 괜찮겠지. 가자."

"고마워."

일리아가 이렇게 쉽게 결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가 제 5조의 조장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 하지만, 이번 일이 끝나고 그녀는 제대로 된 기사로 인정 받게 된다.

"아, 나 내 장인 좀 데려갈게."

"어디 있는데?"

"저기."

나는 걱정하는 얼굴로 주변을 계속 두리번거리는 기라녹스를 가리켰다. 

"아, 유렌님!"

"왔구나. 정리는 다 끝났어?"

"네. 덕분에 깔끔하게 정리했습니다. 하하."

기라녹스는 그 사이에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는지, 편안하게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이 네가 선택한 장인이야?"

"맞아."

"헉!"

기라녹스는 일리아를 보고 신음을 내뱉었다. 아그네스처럼 재능을 본 게 아니다. 오직 그녀의 화려한 외모를 보고 터진 감탄이다. 

"저, 저기 유렌님. 이분은?"

"내 약혼자."

"헉! 역시 대단하십니다!"

기라녹스는 어제 아그네스를 보았을 때 보다 더욱 놀란 거 같았다. 남자라면 어쩔 수 없지. 

"가면서 얘기하자. 기사와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래. 기라녹스 따라와."

"네."

기사들과 병사들은 아스 성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리아는 다른 기사들에게 나와 기라녹스도 따라 간다는 말을 했다. 

"조장님. 저희는 놀러가는 게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오크라도 방심하면 위험합니다. 우리에겐 저들을 보호 할 여유도, 이유도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기사들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지, 일리아에게 거칠게 항의를 했다. 아마 저들의 눈에는 낙하산 조장이 연애나 하려는 것으로 보일 테니, 그럴 만 하다.

"조장은 접니다. 이대로 가겠습니다."

"음..."

"하지만."

일리아는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솔직히 나보다 멋있는 거 같다.

"그만하고 출발하죠. 일리아 조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억울하면 조장이 되어야죠."

뒤에서 팔짱끼고 지켜보던 머스크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말은 노골적으로 일리아를 깎아 내리고 있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일리아는 신경 쓰지 않고 먼저 앞으로 나섰다. 남들이 뭐라고 하던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일리아의 명령으로 부대는 성을 나섰고 나와 기라녹스는 중간쯤에 껴있었다. 

"저기 유렌님?"

"앞으로는 대공자라 불러."

"네. 대공자님. 사람들이 너무 눈치를 주는데요. 제가 둔감한 편인데도 이정도면..."

"신경 쓰지 마. 면상보고는 아무 말도 못하는 머저리들이니까."

저들은 내 신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앞에서는 아무 말 못한다. 그저 뒤를 살짝살짝 보면서 지들끼리 떠들 뿐이다. 

네 시간정도 이동했을 무렵 선두가 멈췄다. 제일 앞에 있던 일리아는 모두가 보이는 위치로 이동했다. 

"이곳이 사람들이 오크들에게 습격당한 지점이다. 앞으로는 언제든지 오크와 조우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도록. 항상 전투태세를 갖춰라."

"네!"

"예."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에 비해, 기사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심각하군. 

"지금부터 조를 나누고 사방으로 퍼져서 오크의 부락을 찾는다. 발견하면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말고 뒤로 빠져나와서 신호탄을 터트리도록."

"네!"

일리아는 즉석해서 기사와 병사들을 여덟 개 조로 나눈 후 정찰을 명령했다. 

대단하네. 지시도 빈틈이 없고, 단호해. 

일리아는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더 한 시원한 성격이 매력적이었다. 

"유렌, 우리도 가자."

나와 기라녹스는 당연히 일리아의 조에 속해 있었다. 

주인공이 나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아직까지는 소설과 비슷하네. 

우리 조는 북서쪽 숲을 향해 걸어갔다. 각 조마다 추적에 능한 병사가 있었는데 우리도 그 병사의 뒤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 했나?"

"오크의 흔적은 분명히 있지만 너무 지저분하게 널려있어서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이상하네요."

"계속 추적해줘."

"네."

추적해봐야 소용없다. 오크들은 이미 우리가 자신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시간만 끌고 있으니까.

우리는 그 이후로도 한참을 돌았지만, 허상을 찾는 것처럼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여전히 흔적이 너무 난잡합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되돌아간다. 뒤를 견제하면서 움직이도록."

"네!"

날이 점점 어두워졌기 때문에 일리아는 우리가 처음에 온 곳으로 되돌아가기를 명령했다. 

이제 시작이겠네. 

내가 앞으로의 일을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슈우웅!

펑!

슈우웅!

펑!

펑!

펑!

이곳저곳에서 연속적으로 신호탄이 터졌다. 

이제 시작이군.

"뭐지?"

"신호탄이 터졌습니다."

"지금 몇 개가 터진 거야!"

모두 당황하고 있을 때 일리아는 침착하게 부관에게 폭죽의 개수를 물어보았다. 

"다, 다섯 개가 터졌습니다."

숫자도 못 세냐. 네 개다 인마.

"신호탄이 터진 곳 중 가장 가까운 곳은?"

"서쪽입니다."

"지금부터 서쪽으로 간다. 경계를 늦추지 말고 천천히 움직인다."

"네!"

우리는 서쪽에서 터진 신호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무조건 내 쪽으로 와."

일리아는 중간으로 와서 내게 말을 전한 후 다시 앞으로 나갔다. 

"그래 갈게."

내가 안가면, 너 죽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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