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아스 성 (20/241)

아스 성

똑똑

"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같은 약한 진동조차 없이 들어가고 나서 10초 정도 지났을 뿐인데 노크소리가 들렸다. 

우와, 진짜냐.

밖으로 나가니, 좀 전에 봤던 초록 로브의 미녀 마법사는 사라지고, 파란빛이 도는 로브를 입은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스 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벌써 도착한 건가요? 아무 것도 못 느꼈는데."

"편안한 워프감이야 말로 저희 마탑 최고의 자랑이죠."

워프감이 뭐야, 승차감대신 워프감이라고 한 건가.

"저 문을 열고 나가시면 바로 아스 성입니다."

로브 입은 아저씨는 깔끔한 자세로 문을 가리켰다. 

"즐거운 여행되시고 또 이용해주세요."

서비스 정신과 고객 대응이 백화점 같았다. 마탑주가 교육을 아주 잘 시켰다. 

딸랑

문을 당기고 밖으로 나갔다. 서쪽에 치우친 마을답게 록스후작령의 마을과는 양식이 달라보였다. 

"오."

양쪽에 쭉 늘어서 있는 가게들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시장터를 방불케 했다.

"사람 무지 많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평범한 주민들도 많았지만 검, 창, 활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반 정도는 될 정도로 많았다. 

무기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스 성은 땅의 온도가 높아서 화로의 온도를 높일 수 있고 주변에 좋은 광석을 캐낼 수 있는 광산이 많이 있어서 대장장이들이 몰려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흠, 여기가 대장장이 거리군."

먹자골목처럼, 음식 대신 이곳은 양쪽 모두 대장장이들로 꽉꽉 차있었다. 하지만 내가 찾는 대장간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간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유니콘 대장간.’ 딱히 위치에 대한 이야기는 적지 않아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어 노가다로 찾는 수밖에 없었다. 

"없네."

대장장이 거리를 한 바퀴 돌아봤지만, 유니콘 대장간은 보이지 않았다. 

딱 한 바퀴만 더 돌아볼까.

다시 대장장이 거리를 돌아봐도 유니콘의 유자도 발견 할 수 없었다. 

"저기요."

"네!"

더 이상은 시간낭비 같아서 대장간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유니콘 대장간을 아시나요?"

"유니콘 대장간인가요?"

여성은 생각을 해보는 듯 손가락을 턱에 가져다 대었다. 

"일단 여기 대장장이 거리에는 없어요. 아스 성은 여기저기에 대장간이 널려있으니, 다른 곳에 있지 않을 까요?"

"네. 감사합니다."

아스 성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여기저기 대장간을 찾아보았지만, 유니콘 대장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아, 밤이 됐네. 정말 드럽게 넓다."

밤이 되도 대장간의 철을 두드리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거리는 오히려 더 활기차진 것 같았다.

"아, 짜증나네."

무언가를 찾는데 발견 못하는 경험이 있는 사람을 알 것이다. 너무 답답해서 화장실도 가기 싫어진다. 지금 내가 딱 그 기분이다. 

미니맵 같은 게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이런 식으로 찾아서는 피로와 스트레스만 늘겠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여관에 가서 쉬려고 할 때 골목에서 붉은 불길이 타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긴 안 가봤는데 딱 저기 까지만 가볼까."

골목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대장간이었다. 너무 작아서 그런지 간판조차 없는 곳이었다. 

깡!

깡!

대장장이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대장장이를 놔두고 진열 되어 있는 무기들을 보았다. 보는 눈이 없는 내가 봐도 무기들의 질은 상당히 뛰어나 보였다. 

"흠."

검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양날의 무게 중심이 같아야 한다는 건데 들어보니, 양쪽의 무게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쿵.

"아!, 죄송합니다. 손님이십니까?"

검을 내려놓는 소리에 대장장이가 내 존재를 알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유니콘 대장간이라고 아십니까?"

"유니콘 대장간이요? 그럼 대장간은 없어요."

"없다고요?"

"네. 유니콘은 나중에 제가 쓰려는 이름이거든요. 아직은 간판을 내걸 형편이 못 돼서 안 쓰고 있지만요."

대장장이는 쑥스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대장장이 방금 쓰려는 이름이라고 했지. 

나는 주인공이 아그네스를 가져가는 시기보다 빠르게 이곳에 왔다. 그래서 유니콘이란 간판이 없이 구석에 박혀 있던 거였다. 

드디어 찾았다!

"무기들 좀 봐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여기 진열된 검들은 자신 있는 물건들입니다."

그의 말대로 진열되어 있는 무기의 질들은 뛰어났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혹시 다른 물건은 없나요. 좀 낡고 녹슨 물건들이요."

내가 아그네스에 대해 서술을 할 때 분명히 녹이 슬고 공짜로 줘도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검이라고 서술했다. 그 모양을 찾아야 한다. 

"녹슨 무기를 찾다니, 별나시네요."

대장장이는 웃으면서 뒤쪽 문을 열고 무기가 가득 담긴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나중에 떨이로 팔려고 못 쓰거나, 손님에게 내놓기 힘들 것들, 안 팔리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떨리는 감정 때문인지 손가락 끝도 같이 떨리는 것 같았다. 

상자 안에는 검뿐만 아니라, 단검, 도끼 등, 별의 별 무기가 다 있었다. 

내가 아그네스에 대해 서술 할 때 분명히 조금 짧고 녹슨 검이라고 했어. 여기에 그런 물건은 이거 하나 뿐이야. 

나는 아그네스로 추정되는 검을 잡아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군.

내가 만약 주인공이었다면 아그네스가 내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아그네스는 스스로 말을 하는 에고 소드니까. 

"그건 제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어디서 온지도 모르게 창고에 있었습니다. 버리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놔두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의 말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아그네스가 미세하게 내뿜는 유물의 기운이 이 대장장이에게 영향을 미쳐서 버리지 않고 놔둔 것이다. 

"이거 제가 사죠."

"이걸 사신다고요?"

대장장이의 놀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그네스 옆에 있던 얇은 세검에서 약한 바람의 기운을 느꼈다. 분명 착각은 아니었다. 

"이건..."

"그건 제가 예전에 만든 건데 뭔가 저주를 받은 건지, 검을 쥐면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파는 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다. 저주 같은 하찮은 게 아니었다.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바람정령의 세검]

바람의 정령 실프의 가호가 깃들어 있는 검이다. 자신들의 장난에도 굴하지 않는 열정적인 대장장이에게 호감을 느껴 그의 검에 자신들의 가호를 넣어주었다. 

발동 시 효과: 공격속도 증가, 이동속도 증가, 예기(銳氣) 증가.

이 자식 대체 뭐야! 

"이, 이거 직접 만드셨다고요?"

"네. 그렇긴 한데 만들고 나서보니 이상해서요. 만들 때는 정말 모든 것을 바쳐서 만들고 역작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의 물건들을 창조주의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벽에 장식처럼 기대어 있는 대검에서 눈이 멈췄다. 

[화염정령의 대검]

화염의 하급 정령 샐러맨더의 가호가 깃들어 있는 검이다. 화로속의 샐러맨더가 감동할 정도의 집중력을 보인 대장장이의 무기에 자신들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발동 시 효과: 근력 증가, 체력 증가, 중기(重氣) 증가

정령이 깃든 무기를 두 개나 만들었다고?

두 개라면 절대 우연이 아니다. 이 대장장이는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이 검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그것도 보기와는 다르게 실패작이라."

"실패작?"

"네. 만들고 보니까, 검이 이상할 정도로 무거워서요. 아무도 사지 않아요. 힘이 센 사람도 겨우 들 수 있을 정도라 무기로써 가치가 없어요."

아니다. 그건 모자란 인간들이 검을 만져서 그렇다. 자격이 주어진다면 검은 힘을 빌려줄 거다.

이 대장장이 보통이 아니야. 기본 실력도 뛰어난데다가 특수 능력도 있는 게 분명해. 

[창조주의 눈을 발동합니다.]

[이름: 기라녹스]

[특성: 마병창조(魔兵創造), 화염친화lv3, 집중lv2, 정교lv2]

[호감도: 14(관심) ]

전혀 모르는 녀석인데, 특성이 네 개라고? 거기다 레벨 없는 특성 마병창조라니, 이름만 봐도 엄청난 특성임을 알 수 있다. 

기라녹스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먼저 가지는 게 임자지.

"이거 3개 살게요."

나는 정령검 2개와 아그네스로 추정되는 낡은 검을 올려놓았다. 

"그것들은 전부 불량입니다만, 정말 괜찮으신가요?"

"괜찮습니다. 얼마죠?"

"그럼 2골드만 주세요. 그 낡은 검은 그냥 드릴게요."

기라녹스는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무기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200골드를 줘도 못살 물건들을 2골드에 사다니 수지  맞은 정도가 아니다.

하지만 난 거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장사가 잘 안되시나 봐요."

"그렇죠. 위치도 구석에 있고, 제 실력도 모자라다보니, 손님이 오셔도 그냥 구경만하시다 가시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제 스승님이 항상 부족하다 하셨는데 정말이었어요."

기라녹스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말을 했다. 

"당신은 자신의 무구를 많은 사람들이 쓰기를 원하겠죠?"

"당연하죠! 제 꿈이 제가 만든 무기를 기사님들이나 영웅들이 써주시는 건데요!"

이러면 얘기가 빠르지. 

"그러면 혹시 고용 되실 생각은 없습니까?"

"고용이요?"

"네."

나는 기라녹스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능력도 마음에 들고, 저런 능력을 가지고 겸손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스승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잘 키웠다.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도 당황스러워서요."

"그렇겠네요."

나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럼 일단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남방을 수호하는 무적의 창, 록스 가의 유렌이라고 합니다."

나는 일부러 폼을 잡으면서, 있어 보이는 말을 했다. 

"로, 록스! 아,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는 곧바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세요."

내가 팔을 잡고 들어 올리려고 해도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닙니다. 이게 편합니다. 제발 말 편하게 해주세요."

"하아, 일어나야 대화를 할 거 아닙니까."

기라녹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게 이세계의 귀족의 힘이다. 

나야 아직 한국에서의 삶이 익숙하니 모르는 사람을 보면 존댓말부터 나오지만, 여기 귀족은 평민이면 나이가 어떻게 되든 일단 말을 까고 시작한다.

"그럼 편하게 하지."

"네! 부디."

"너를 내 대장장이로 쓰고 싶다."

기라녹스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다. 의문투성이의 얼굴이다. 

"왜 저 같은 모자란 대장장이를 데려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여기서 대화를 잘 골라야 하겠지. 

"내가 너를 고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특별한 재능이다."

"재능이라뇨. 제게 그런 것은..."

"내겐 보인다. 네가 특별한 재능을 개화 하는 모습이."

재능이라는 말에 그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두 번째는 마음가짐이다."

"마음가짐이요?"

"그래. 오늘 대장간을 돌며 수많은 무기들을 보았다. 좋은 검도 많이 보았지. 균형, 날카로운 날, 무게 중심 다 좋은 무기들이었다. 하지만 네 검에는 다른 게 보였어."

"다른 거라면..."

기라녹스는 내말이 기대됐는지, 귀를 쫑긋 새웠다. 

"네 검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손잡이에 있는 매듭이 정말 정교하고 정성이 들어있었다. 여태 봤던 모든 무기들 중 최고였어."

"아!"

기라녹스는 자신의 재능을 칭찬할 때 보다 마음가짐을 칭찬할 때 더 기뻐보였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매듭이 있는 이유는 무기를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용도지. 네가 얼마나 손님을 생각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아!"

내 말에 기라녹스는 감탄을 했는지, 네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유렌님은 정말 소문과 다른 분이시군요."

"뭐, 망나니라는 소문?"

"아, 그게..."

"하하, 괜찮아.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젠 달라. 실망하지 않을 거다."

내가 웃자, 기라녹스는 조심스럽게 따라 웃었다. 

"결정했습니다. 따라가겠습니다."

"정말인가?"

"네."

그의 결단력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서 보여주지."

"네?"

"이거 이젠 내꺼지?"

나는 그에게 산 녹슨 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물론이죠."

원래 나는 이것을 가지고 가서 다른 곳에서 혼자 개방할 생각이었지만, 마음이 바뀌었다. 이 녀석 앞에서 보여주기로.

검을 역수로 쥐고 내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떨어뜨렸다. 

우웅!

피를 먹은 검은 점점 생기를 띄며 검명(劍鳴)을 울렸다.

"깨어라나, 만변(萬變)의 유물 아그네스."

부우웅!

아그네스는 태양이라도 된 듯 거대한 빛을 머금기 시작했다. 

[아그네스의 봉인을 홀로 풀었습니다. 아그네스가 2단계 개방을 해제합니다.]

이건 또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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