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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중급 달성! (18/241)
  • 중급 달성!

    여태까지 내가 익힌 독들인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독이었다면 이번에 익힐 독은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맹독이었다. 

    독사에게서 추출한 독을 모은 스네이크 마인드를 먹음으로서 개방되는 분혈작(噴血酌)이 그것이었다. 

    "저기 대공자님?"

    "왜?"

    페루는 마법 주머니에서 스네이크 마인드가 들어 있는 작은 유리병을 꺼내며 나를 불렀다. 

    "이거 한 방울로도 되게 위험한 독이에요."

    "알아."

    "정말 드실 건가요? 이건 전에 드린 독들보다 훨씬 독한데요."

    "안다고 인마."

    페루는 뭔가 불안해하면서 독이든 병을 꺼냈다. 

    "으음..."

    페루는 걱정이 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녀석은 내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죽으면 지도 죽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이 녀석 아직도 초독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군.

    탁.

    "이게 전부입니다." 

    "시킨 대로 다섯 병이군."

    "네."

    대략 500ml 정도의 양이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이걸 사왔습니다."

    페루는 가방에서 색이 다른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이건 뭐야.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불개구리의 독]

    불개구리는 천 마리 중에 딱 한 마리만 독을 가지고 태어난다. 독을 가지고 태어난 불개구리가 무리의 수장이 되며 가지고 있는 독으로 무리를 보호한다. 불개구리의 독에 중독되면 내부에서부터 몸이 타들어가는 지독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와 이건 상상이 안 되는데, 엄청 아프겠다.

    "아시겠습니까?"

    "불개구리 독이네."

    "하아, 진짜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페루는 내게 감탄을 했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사실 저도 써보지는 못 했습니다. 비싸기도 하지만 물량도 거의 없어서 한 번 구입해 보았습니다. 괜찮았습니까?"

    "그래. 잘했어."

    나는 그사이에 불개구리 독으로 얻을 수 있는 독을 찾아냈다. 

    [와염독(蛙炎毒)] - 불 개구리 독을 섭취함으로써 개방.

    오늘 치사성의 독 두 개를 개방 할 수 있겠네. 

    "일단 너는 밥 가져와라."

    "밥이요?"

    "당연하지. 빈속엔 술을 안 먹듯이, 독도 먹으면 안 되는 거야. 독술사라는 놈이 그것도 모르냐?" 

    "그, 그런가요?"

    "그니까. 푸짐하게 차려와라."

    "네."

    페루는 주방에 가자마자, 곧바로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엄청 빠르네. 근데 너 뭐하냐?"

    "예?"

    페루는 푸짐하게 치레인 스프 2인분을 가지고 왔다. 

    "내가 푸짐하게라고 했으면 스테이크, 빵, 치킨 이런 거 가지고 와야 할 거 아니야."

    "아린님이 대공자님께는 치레인 스프만 드리라고 인수인계를 해주셨는데요."

    "큭..."

    아린, 이 녀석.

    "그럼 바꿔올까요?"

    "됐다. 시간 아까워. 너는 이제 나가봐라."

    "네? 제가 안 도와드려도 되나요?"

    "어떻게 도와주게?"

    내 말에 페루는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지,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전혀 없네요."

    "그래. 그럼 뭘 해야겠냐?"

    "나가야겠네요."

    이 녀석 전에 봤을 땐 괜찮아 보였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멍청해 보이지?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은 내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 하게 하는 거야. 그걸로 충분해."

    "알겠습니다. 누가와도 막아보겠습니다."

    페루는 맡겨 달라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 그럼 나가봐. 내가 나가기 전엔 그 누구도 들여보내면 안 된다."

    "네. 걱정 마세요."

    페루가 나간 후 나는 만독자전신기를 켜 보았다. 

    [만독자전신기(萬毒磁電神氣)] - 3성 18%

    그때 이후로 계속 올리고 있지만, 지지부진해. 역시 독을 먹어야 쫙쫙 오르는 건가.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오늘 먹을 독은 정말 위험하니 긴장되기는 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3성에 오른 만독자전신기를 믿는 것 밖에 없었다. 

    파팍

    나는 치레인 스프에 모든 독을 부어버렸다. 

    독 때문에 그릇 녹는 거 아니냐. 

    예상과는 달리 독들은 스프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별 변화가 없어 보였다. 

    "휴우, 약간 떨리네."

    시간을 끌면 더 못 먹을 까봐, 눈을 감고 스프를 홀딱 마셔버렸다. 

    스프를 다 마시고 딱 5초, 5초 만에 반응이 왔다. 

    "크윽!"

    지독한 고통 두 개가 동시에 찾아왔다. 전신이 가닥가닥 끊어지는 통증과 오장육부가 지져지는 고통 두 개가 느껴지고 있었다. 

    크아악!

    고통이 너무 심해서 정신을 잃을 뻔 했지만 다른 고통이 다시 내 정신을 깨워줬다. 고맙고도 지랄 맞은 순환이었다. 

    이를 악물고 계속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했다. 

    [독(스네이크 마인드)을 섭취하셨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독(스네이크 마인드)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분혈작(噴血酌)이 개방됩니다.]

    [독(불개구리의 독)을 섭취하셨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독(불개구리의 독)을 흡수합니다.]

    [와염독(蛙炎毒)이 개방됩니다.]

    감은 눈 사이로 메시지가 정신없이 올라갔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정신을 빠뜨릴 여유가 없었다. 

    집중력이 단 한순간이라도 무너진다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 

    고통을 꾹 참으며 계속 내공심법을 운용하자, 점점 통증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점점 집중력을 높여서 독을 흡수해 나갔다. 생각을 줄이면서 내공과 독의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시간을 잊고 계속 내공심법을 운용하고 있을 때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알림이 들렸다. 

    [만독자전신기(萬毒磁電神氣)가 4성에 도달했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중급의 단계에 올랐습니다.]

    [상승의 경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잠겨있던 일부 능력이 개방 됩니다.]

    [하급 독과 암기술의 숙련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

    [특성 백독불침(百毒不侵)을 습득했습니다.]

    무아지경에서 깨어나자, 여러 개의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으악! 너무 많아서 다 못 봤는데.

    일단 확실한 것은 만독자전신기가 4성에 도달 했다는 것이다.

    독들이 너무 지독해서 만독자전신기 4성에 오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있었지만 정말 올라가다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에 뜬 게 백독불침이었지. 

    백독불침은 백가지 독이 내게 침범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제 웬만한 독을 먹어도 아프지도 않고 중독 증상도 없을 거다. 계속 독을 먹어야 하는 내 입장에선 최고의 특성이었다.

    고통의 날들이여 안녕!

    "그건 그렇고 배고프네."

    밖을 보니, 벌써 저녁이 된 듯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한나절이 지났다는 건데 생각 보다는 빨리 독을 흡수 한 거 같았다. 

    "페루!"

    밖의 문에서 페루가 서 있는 것이 느껴져서 그를 불러보았다. 그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디어 나오셨군요. 너무 나오시지 않으셔서 들어가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페루는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사이에 뭔 짓을 한 거지.

    "고작 한나절 가지고 뭘 그렇게 허둥지둥 대."

    "네? 한나절이요? 전혀 아닙니다."

    "뭐가?"

    "대공자님, 3일 만에 나오셨어요."

    "엥? 삼일?"

    "네. 대공자님께 독을 드리고 지금이 3일째에요."

    삼일이라니, 솔직히 한나절도 아니고, 밥 먹을 시간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페루의 말이 사실이라면, 3일 동안 흡수 할 정도로 독이 독했다는 거겠지. 특히나 불개구리 독은 정말 심했어.

    "그럼 너 그동안 계속 문에 서있던 거야?"

    "그래야죠."

    갑자기 코끝이 찡해졌다. 페루의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이유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덜덜 떨고 있는 거 같고.

    빨리 가서 쉬라고 해야 할 거 같다.

    "너 한 일주일 쉬었다가 와라."

    "네?"

    "3일간 잠도 안 잤으면, 몸이 많이 상했을 거다. 가서 푹 쉬고 와."

    "괜찮아요. 3일 밤새는 것쯤은."

    페루가 걱정 말라는 듯,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쉬라면 쉬어. 밤샘의 후유증은 서른 넘어서 온다."

    "서른이요? 대공자님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되셨잖아요."

    "아! 후작님이 말씀 하셨었어."

    나도 모르게 현실에서나 할 법한 말이 나와 버렸다.

    "솔직히 저도 기절하기 직전이라. 대공자님 말씀대로 쉬었다가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아니, 3일 안 잤으니까. 4일간 쉬었다가 와라."

    "그렇게까지는 안 쉬어도 됩니다."

    "됐고, 명령이다. 끝."

    페루는 내 말이 진심인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진심이니까, 가봐. 푹 쉬고 와라. 외출해서 놀고 와도 좋고."

    "감사합니다. 그럼 몸조리 잘 하시길."

    "그래. 페루."

    "네?"

    "수고했고 고맙다."

    페루가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빨리 가서 자라."

    "엑!"

    페루가 또 머뭇거리며 어쩔 줄 모르고 있어서, 밖으로 밀어버렸다. 

    "일단 식사는 올려 보내겠습니다!" 

    "그러네. 밥은 먹어야지."

    페루는 내게 밥을 가져다주고 쉬러 가려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까 중급에 올랐다고 했지."

    아까 본 메시지 중에 만독자전신기의 중급에 올랐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이제 무협으로 따지면 어딜 가도 무인소리를 들을 실력이 됐다는 거다.

    "이젠 그것을 가지러 가도 되겠군. 언제까지 단검만 던질 수는 없지."

    사실 지금도 몇 가지 암기의 설계도는 내 머릿속에 있었다. 하지만 내 똥 손으론 암기를 직접 만들 수도 없고, 이곳엔 암기를 만들 섬세한 장인도 없다. 

    "하지만 대신할 물건은 있지. 흐흐"

    주인공에겐 미안하지만, 녀석이 초반부에 사용하는 무기를 내가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주인공은 그것을 초반부에만 사용하다가, 다른 용도로 바꾸게 된다. 내가 가져간다고 스토리에 큰 차이는 없을 거다.

    똑똑.

    "대공자님 식사를 가지고 왔습니다."

    "들어와."

    페루는 쉬러갔는지, 하녀가 식사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왜 치레인 스프지?"

    "페루님이 대공자님이 3일간 굶으셨으니까, 체하시지 않게 스프를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열 받지만, 틀린 말은 아니군.

    스프라고 해도 3일 만에 먹는 음식이라, 천천히 씹어 먹었다. 

    "다 드셨으면 그릇을 치워드리겠습니다."

    "고마워. 그리고 하나 만 더 부탁하지." 

    "네. 말씀해주십시오."

    "후작님께 내가 뵙고 싶다고 전해 드려."

    "알겠습니다."

    아무리 내가 대공자라고 해도 아무 때나 후작을 찾아가서 만날 수는 없다. 미리 알현 신청을 해야 했다.

    3일간 안 씻었다는 생각에 욕탕에 가서 씻고 오니, 나른한 게 한숨 자면 딱 일 것 같았다. 

    빨리 침대에 몸을 던지려고 내방에 돌아갔는데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 돌아온 거야?"

    "네. 오후 쯤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외부로 훈련을 나갔다 온 아린이었다. 

    "어땠어?" 

    "상당히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기사자격을 얻게 될 거 같습니다."

    "벌써?"

    "단장님이 잘 챙겨주셨고, 운이 좋았습니다."

    "잘됐네."

    이제 나도 알 것 같다. 그녀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지만, 지금은 기뻐하고 있었다. 

    "좀 전에 2집사님이 오셔서 내일 오전에 허가가 났다는 말씀을 하고 가셨습니다. 혹시 후작님께 알현을 신청하셨습니까?"

    "맞아."

    "알현한지 얼마 안 되시지 않았나요?"

    맞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외출 한다고 보고하려고."

    "아, 오랜만에 마을에 가시게요?"

    나는 물욕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보물 좀 챙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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