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작과의 내기 (2)
우웅
내공이 주입된 단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 가까운가, 하지만 상관없겠지.
단검이 제 힘과 속도를 내기에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괜찮을 거 같았다.
휘아앙!
내공이 충만하게 깃든 단검을 볼라크의 옆구리를 향해 던졌다.
퍽!
빗살처럼 뻗어나간 단검은 두부를 가르듯, 볼라크의 살을 파고들어갔다.
"키에엑!"
볼라크의 고통에 찬 비명이 연무장을 울렸다.
"켁!"
"응?"
한 방에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추가로 단검을 던질 준비를 마쳤는데, 볼라크는 그대로 쓰러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나 과녁은 약점이 맞는지, 단 한 발로 볼라크의 숨통이 끊어졌다.
"음..."
환호도 없고, 야유도 없다. 세상에 소리가 없어진 듯, 연무장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모든 관객들이 헛것은 본 듯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구경하던 후작을 보았다. 그의 표정과 반응도 다른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린은... 그래도 평온하군.
이곳에서 아린만 놀라지 않은 듯 역시나 평소의 표정이다.
짝!
짝!짝!짝!
갑자기 누군가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에 호응하듯 이곳저곳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대단해!"
"와!"
"우와아!"
요즘에 호감도가 많이 올라간 덕인지, 지켜보던 하인들이 내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반면에 기사들은 의심어린 눈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호감도는 올리고 봐야해.
"너, 너... 어떻게 한 것이냐."
후작이 부들거리면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잘 겨냥해서, 잘 던졌어요."
"그건 당연한 거고! 이 자식아!"
후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를 높였다.
"그게 다에요."
"이익!"
후작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다.
"인정 못 한다."
"네?"
"볼라크가 고작 단검하나에 죽다니, 말이 되질 않아!"
"허어, 천하의 록스 후작 각하가 한 입으로 두 말 하시는 건가요?"
"끄응."
후작은 어떻게든 내 승리를 인정하기 싫었나 보다. 내가 볼라크를 죽인 것을 완전히 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후작 각하."
"왜!"
자신의 소환수를 보던 마법사가 후작을 불렀다.
"이 녀석 단 한 군데 비늘이 벗겨진 곳이 있었는데, 대공자의 단검이 그곳에 박혀있었습니다."
"알아! 그래서 인정 못 한다는 거다. 완전 운이잖아!"
역시나 후작은 내가 그곳을 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약점을 노렸든, 인질을 잡았든 이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크윽..."
후작은 여전히 인정하기 싫어하고 있었다.
"한 번만 더 하자."
"네?"
"딱 한 번만 더 해서 네가 이기면 진짜 인정하겠다."
이 아저씨 애들도 아니고, 땡깡을 부리네.
"아니, 끝난 건 끝난 거죠."
"다른 약속이다."
"다른 약속이요?"
"그래. 만약 네가 이긴다면 네가 무엇을 원하든 소원 하나를 들어 주마, 그리고 네가 진다면 원래대로 검을 배우는 거다."
후작은 마음을 결정한 듯, 조건을 말했다.
"좋아요. 하죠."
볼라크 하나 더 잡는 거야.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어떤 기사와 붙어보겠느냐?"
"네?"
갑자기 후작이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기사라뇨?"
"나는 볼라크와 붙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네가 싸울 사람은 기사란다."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아, 나도 당연히 이기라는 말은 하지 않아. 그냥 네가 기사의 검을 뚫고 한 방 먹인다면 인정해주마."
후작은 내가 당황하길 원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별 상관없었다. 내겐 비밀 무기가 있었으니까.
"아! 기사하고 하면 너무 불리하니까, 수련기사로 뽑아주마."
"인심써주셔서 아.주. 감사합니다."
기사여도 상관없는데, 수련기사면 더 편하겠네.
후작은 오늘 밤 침대에서 이불을 박차며 후회 할 선택을 저질렀다.
"그럼 날짜는 언제가 좋을라나."
"지금 하죠."
"뭐?"
"이렇게 관객이 많은데 수련기사 하나쯤은 있겠죠."
쇠뿔도 당김에 빼라고 귀찮게 할 게 뭐 있겠나. 오늘 끝내는 게 편했다.
"수련기사 하나를 데려 오거라."
"네!"
후작이 옆에 있는 하인에게 지시를 내리자 그는 관객석으로 가서 가죽갑옷을 입고 있는 수련기사 하나를 데려왔다.
얼라리? 왜 하필 얘냐.
[창조주의 눈이 발동 됩니다.]
[이름: 크라이드]
[특성: 버서커, 괴력lv1]
[호감도: -20 (비호감) ]
나중에 주인공의 믿음직한 동료가 되는 소설 속 주요인물이 내 앞에 서있었다.
근데 저 녀석 어제보다 호감도가 오른 것 같은데.
"후작 각하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수련기사 크라이드라고 합니다."
"그래. 크라이드."
"이름을 불러주시다니, 영광입니다. 각하!"
크라이드는 아이돌을 바라보는 팬처럼 후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네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네."
"무엇이든지!"
"여기 있는 유렌과 대결을 해주면 되네."
"예? 대공자님과요? 아! 죄, 죄송합니다. 감히 후작님께 되묻다니..."
"하하, 괜찮네. 잘못 들을만하지. 자네가 들은 게 맞네. 이녀서과 대결 한번 하면 되네."
후작은 손짓해서 나를 가까이 불렀다.
"지금부터 룰을 설명하마."
"본격적이시네요."
"유렌 네 승리조건은 크라이드의 검을 뚫고 그의 몸에 암기를 맞추는 것, 반대로 크라이드의 승리조건은 유렌의 암기를 피하거나 막는 것이다. 간단하지?"
후작의 말대로 간단하고 판단하기 쉬운 룰이다. 그런데 후작이나 크라이드나 당연히 내가 질 거라 생각하는지, 단검이 몸에 맞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맞으면 뒤질 텐데, 너무 무시하는 군.
"둘 다 준비는 필요 없겠지?"
"물론입니다. 각하. 검을 뽑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후작의 말을 들은 크라이드가 허리에서 수련검을 뽑았다.
"저도 준비 되었습니다."
나는 가져온 단검 세 개를 꺼내들었다.
"단검을 더 가져오지 않아도 되겠느냐?"
"충분합니다."
"그럼 시작!."
나와 크라이드는 거리를 벌리고 마주섰다.
"크라이드!"
"크라이드 지면 가만 안 둔다!"
"지면 오늘 밥 없다. 크라이드!"
"패배하면 연무장 100바퀴다!"
"힘내라 크라이드!"
이미 어떤 대결인지 이야기가 퍼진 듯, 관객들이 열기를 띤 응원을 하고 있었다. 물론 크라이드만.
"대공자님 힘내세요!"
어?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크라이드 일색인 응원 속에 작지만 나를 응원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와 눈물 나올 거 같네.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고맙다.
"대공자님, 저는 준비 되었습니다."
크라이드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불붙은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아, 그럼 갈게."
"네!"
단검에 내공을 넣고 그에게 던지려고 할 때 볼라크와 마찬가지로 그에게 과녁이 생겼다.
인간에게도 보이는군. 머리, 심장, 명치같이 알려진 부분만이 아니라, 엄청 많은 곳이 보이고 있었다.
이거 설마, 치명적인 혈도(血途)들인가? 죽일 생각은 없으니 저기에 던지면 안 되겠군.
단검은 세 개나 있으니, 일단 처음은 가볍게 시작하기로 했다.
휘아앙!
볼라크에게 던진 것과 같이 내공만을 실어서 크라이드의 정면에 던졌다.
"하앗!"
크라이드는 기합을 지르며 수련검을 빠르게 내리쳤다.
쾅!
수련검과 단검이 부딪쳤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커다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음."
크라이드는 단검에 실려 있는 힘에 밀려서 뒤로 한걸음 밀려나 있었고 그의 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위력이!"
크라이드는 어지간히 놀랐는지, 나를 불신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후작은 한술 더 떠서 땅에 떨어진 단검을 주워서 이리저리 쳐다보고 있었다. 단검에 무슨 장치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 같았다.
단검에 내력을 집어넣으며 아직도 멍하게 있는 크라이드에게 말했다.
"몸은 풀렸지? 이번엔 제대로 간다."
"네?"
휘아아앙
단검에 내력을 집어넣는 것만으로 내 주변에 약한 바람이 생성됐다.
부르르.
쥐고 있는 단검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직사를 사용합니다.]
사천당가-암기에 있는 직사 스킬을 사용하자. 단검이 공간을 꿰뚫을 것처럼 회전하며 크라이드에게 날아갔다.
시아앙!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주연급인데 죽지는 않겠지.
"으아아아!"
크라이드의 전신과 검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단검에 실려 있는 힘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오러를 개방 한 것 같다.
콰앙!
툭.
크라이드의 수련검이 반으로 부러져서, 연무장에 떨어졌다. 그의 푸른 오러는 단검의 힘에 밀려서 이미 소멸됐고, 그의 손아귀에선 피물이 흐르고 있었다.
"아, 아..."
크라이드는 바닥에 박혀있는 부러진 검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렌."
아까까지 장난기가 묻어있던 후작의 얼굴은 말 걸기 힘들 정도로 진지해져 있었다.
"너랑은 얘기를 좀 해야겠구나."
"내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소리냐!"
"아직 단검 하나가 남았습니다."
"유렌!"
내 단검은 그의 수련검을 부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크라이드의 몸엔 닿지 못했다.
"크라이드."
"네? 네."
나는 후작을 뒤로한 채, 망연자실해 있는 크라이드를 불렀다.
"이대로 끝낼 건가?"
"..."
"너는 기사가 되고 싶겠지, 기사가 될 자가 이렇게 어중간한 결과를 받아드릴 것이냐?"
"아닙니다."
"패배든 승리든 확실한 끝맺음을 맺는 것이 명예다."
"아!"
내 말에 감탄 한 건지, 나를 말리려고 손을 뻗던 후작이 다시 손을 내리고 뒤로 물러났다.
"검을 가져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크라이드는 무기고에서 새로운 검을 가지고 왔다.
"저는 준비됐습니다."
말을 마친 크라이드의 전신에서 아까보다 강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에 약한 붉은 색이 돌고 있었다. 특성 버서커가 크라이드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오십시오!"
크라이드는 준비를 마쳤는지, 필사의 각오를 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우웅
나는 말을 하지 않고, 단검에 내력을 주입한 후 사천당가-암기에서 새로 개방된 스킬을 사용했다.
[곡사(曲射)를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