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후작과의 내기 (14/241)

후작과의 내기

"너 누구냐?"

"엑."

이 인간이...

나는 후작의 부름에 의해서 그의 집무실을 찾아왔다. 그런데 부른 인간이 저런 소리를 하다니.

"정말 유렌 맞느냐?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까지 변하다니..."

후작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내 위아래를 살펴보았다. 

"내 아들이 맞기는 하구나. 내 젊은 시절이랑 판박이야."

"네? 후작님이랑요?"

"둘이 있을 때는 아버지라 불러도 된다."

"네..."

후작은 기분이 좋은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친한 척을 했다.

"정말 많이 변했구나.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주었다."

"후작님께서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사회인답게 상대의 기분을 띄워주는 대사를 쳐주었다. 

"나 참, 너는 후작이라고 부르라고 하면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라 부르라고 하면 후작이라고 부르는 구나. 정말 청개구리가 따로 없어."

"하하."

나는 쑥스러운 듯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작이라고 부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리아는 갔느냐?"

"네."

"그 아이는 여전하더구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그런가요."

나야 일리아의 어린 시절은 모르니.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 아이는 너와의 약혼을 취소하지 않겠다고 했다."

내 맹세를 들은 그녀는 단호한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 아이에게서 파혼이 얘기가 나올 거라 생각했고 나도 그것을 받아들이려고 했건만, 정말 의외였다."

후작은 평온한 표정과 평온한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뿌듯해 보였다. 

"너는 항상 의외인 녀석이었다. 그것도 좋지 않은 쪽으로. 하지만 처음으로 좋은 방향으로 향하는 의외가 됐구나."

후작은 내게 푸근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내가 너를 왜 불렀는지 아느냐?"

"기사 수련을 시키기 위해서 입니까?"

후작이 나를 부른 이유는 딱 하나 검을 배우라는 것 밖에 없었다. 

"하하, 맞다. 이제 눈치도 빨라졌구나." 

후작은 여전히 기분이 최고조인지,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제 너도 록스의 검을 익힐 때가 왔구나."

좀 전까지 미소를 짓고 있던 후작의 분위기가 갑자기 진지해졌다.

"후작님.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설마,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이냐?"

이미 알고 있는 건가.

"투척술(投擲術)을 익히고 싶은 거냐?"

"알고 계셨습니까?"

아린이 말한 건가.

"네가 연무장에서 단검을 던지는 것을 봤다."

아린이 말했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후작이 몰래 지켜봤나 보다. 

이 사람이 숨어서 지켜봤다면 내가 모를 수밖에 없지.

"네가 어디서 보고 그런 투척술을 따라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잡기일 뿐이다."

"잡기요?"

"그래. 투척술은 하찮은 도둑들이나 사용하는 잡기다. 그런 단검으로는 기사들의 갑옷은커녕 몬스터들의 가죽과 비늘을 뚫지 못한다."

후작이 나를 본 것은 사천당가 개방 전인가? 한번 떠 봐야겠네.

"그대로 열심히 연습하면 좋은 결과를..."

"너는 제대로 날리지도 못 하지 않았더냐."

역시 후작은 사천당가가 개방되기 전의 나를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일을 진행해도 될 것 같았다. 

이러면 얘기가 쉬워지지.

"너도 이 윌링턴 록스의 아들이다. 분명 검에 재능이 있을 것이다."

아니, 없어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기대가 큰 거야.

"잡기라고 하셨지만, 수련 하면 뛰어난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허어,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구나. 오러가 없는 무인은 날을 세우지 않은 검과 다를 바가 없다. 네가 그 투척술을 100년 수련해도 볼라크의 비늘을 뚫지 못한다." 

역시 남부라 볼라크 얘기가 나오는군. 

"그럼 이건 어떨까요?"

"뭘 말이냐?"

"제가 단검을 던지는 것으로 볼라크를 제압하면 제 수련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만약에 제가 진다면 후작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런 해보나마나한 내기를 하자는 것이냐? 너는 아직 목표에 맞히지도 못 할 텐데?"

"그럼 후작님이 무조건 이기시니까 내기를 하시면 됩니다."

후작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파악하려는지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좋다. 언제 하겠느냐."

후작은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완전히 내 계획대로 됐어.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다. 소환 마법사도 불러야하고 연무장도 써야하니, 내일 어떠냐?"

"알겠습니다."

나는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진지한 얼굴을 유지했다. 

"내일 내기가 끝나자마자, 지옥훈련을 받을 준비나 하고 있 거라."

"전 내일 이기고 나서, 잠이나 잘 겁니다."

"크하하하! 장소와 시간은 정해지는 대로 알려주지. 나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부로 징계 해제다."

내가 허리를 굽혀서 인사를 할 때 후작이 지나가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징계였지. 잊고 있었군.

"너는 수련만 했으니, 징계를 신경 쓰지도 않은 거냐?"

"그렇습니다."

"좋은 자세다. 하지만 징계가 풀렸다고 다시 망나니가 된다면 정말 끝이다."

"알고 있습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럼 가 보거라."

나는 다시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참고 있던 웃음이 터졌다. 

"내일은 재밌겠네."

**

연무장에 가긴 애매한 시간이라 내 방에서 만독자전신기를 수련했다. 한창 내공을 휘돌리고 있을 때 내 방으로 아린이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만독자전신기가 3성이 되니까, 심법을 운용하고 있어도 외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네. 점점 사기가 되어가는군.

똑똑

"들어와."

내력을 다시 단전으로 되돌리고 밖에 있는 아린을 불렀다. 

"저녁식사를 가져왔습니다."

"고마워."

어느새 저녁식사 시간이 됐는지 창밖으로 노을이 지는 그림자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응?"

"내일 시간은 12시, 장소는 제 2 연무장입니다."

"후작님이 네게 전하라고 하셨어?"

후작이 전해줬는지, 아린은 내기 장소와 시간을 말해주었다.

"네."

"혹시 내기의 내용도 알아?"

"네. 알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후작성전체가 알고 있죠."

"엉?"

뭐야,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덕분에 지금 저택은 대공자님의 얘기로 웃음꽃이 터지고 있습니다."

"웃음꽃이라니?"

"볼라크를 본 대공자님이 겁에 질려 오줌을 싼다던가, 운다던가 하는 내기를 하면서 다들 즐겁게 떠들고 있습니다. 대공자님은 아직 공공의 적이니까요."

이 자식들이...

"그럼 그 인간들 구경도 오는 거야?"

"후작님이 딱히 막지 않으셨으니. 연무장이 꽉 찰 거라 생각합니다."

"이야 나 인기 많네."

"네. 전부 대공자님이 볼라크에게 당하는 것을 보기위해 가는 겁니다."

나는 문득 아린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입가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는 것을 보았다. 

**

"대공자님 시간입니다."

"그래."

"준비는 되셨습니까?"

"했지."

나는 아린의 말에 대답하며 단검을 가지고 놀 듯 위로 던졌다가 받았다. 

"특별한 단검입니까?"

"아니, 매일 보는 연무장에서 가져온 것들인데?"

"그런가요."

아린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아마 후작가 전체에서 내 승리를 점치는 유일한 사람이 아린이겠지.

아린이 내가 승리하는데 도박을 걸면, 돈 다 따는 거잖아. 한 번 시켜볼까?

아린에게 내기를 걸라고 하려다가, 호감도가 떨어 질까봐 가만히 있었다.

"역시나 많이 모였군."

제 2 연무장 근처에 도착 했는데 벌써부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지 많네."

"엄청 많군요. 록스 전술 훈련 때도 이 정도는 안 모일 텐데..."

연무장은 기사들과 기사의 시종들, 하인들까지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정도 인원이면 누군가 일부러 부르지 않는 이상 모이기 힘든데...

"왔느냐."

"네."

내가 연무장 가운데로 가자. 그곳에 있던 후작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다.

"준비는 되었느냐?"

"물론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꽤나 많지?"

"왜 이렇게 된 겁니까?"

"마법사에게 얘기를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귀까지 들어갔지 뭐냐. 하하"

실수 인척 하지만, 나는 그가 일부로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을 확신했다. 

"창피당하지 않게 조심해라."

"걱정 마시죠."

"소환해라."

후작은 차갑게 말하는 내 대답을 들고서 곁에 있던 마법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울라로드..."

마법사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웠다. 주문이 진행될수록 연무장 가운데에 있는 마법진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소환."

펑!

마법사의 주문이 끝나자, 마법진 가운데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저걸 실물로 보게 되다니.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볼라크]

150cm의 신장을 가진 해양몬스터, 볼락의 얼굴에 인간의 팔과 다리를 달고 있다. 오른 손에는 녹슨 검을, 왼손에는 커다란 조개껍질 방패를 착용하고 있다. 단단한 비늘과 상대를 겁에 질리게 하는 울음소리를 낼 수 있다. 물속에선 모든 능력이 1.5배가 된다.

기술: 돌진(물리), 울음소리(혼란)

볼라크는 횟집에서 회를 먹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설정한 몬스터다. 그냥 물고기 볼락의 인간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볼라크는 자신을 소환한 마법사의 지시를 받기 때문에 텅 빈 눈으로 허공만 보고 있었다. 

"크하하하!"

"우와아아!"

"저게 볼락이구나!"

"징그러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들은 즐겁다는 듯 웃고 있고, 볼라크를 처음 본 하인들은 징그러운지 입을 틀어막았다. 

저들의 반응은 모두 달랐지만, 하나는 동일했다. 모두 내가 망신당하는 것만을 바라고 있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바라는 광경은 평생 못 볼 거야.

"그럼 시작하지."

후작이 마법사를 쳐다보자. 마법사가 다시 주문을 외웠다.  

"크륵."

텅 빈 눈을 하고 있던 볼락의 생선 눈깔에 빛이 들어왔다.

"크라락!"

마법사가 지팡이로 나를 가리키자, 볼라크가 나를 적으로 인식했는지, 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음?"

볼라크에게 단검을 던지려고 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세 개의 과녁이 볼락의 몸에 나타났다.  

하나는 미간, 하나는 입술부분, 그리고 나머지 하나의 표적은 오른쪽 옆구리에 비늘이 벗겨진 부분이었다.

설마, 이건 약점인건가! 

과녁들은 이곳이 볼라크의 약점이니, 여기다 쏘라고 대놓고 보여주고 있었다. 

이능력 정말 치트키와 다를 바가 없군.

"카아아악!"

내게 다가오던 볼라크가 겁을 주는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관객들은 이제 내가 망신당하는 장면을 볼 거라고 생각하는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키익!"

울음소리를 내지른 볼라크는 가만히 있는 내가 겁에 질렸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돌진을 사용했다. 

저벅

나는 볼라크와 이곳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비웃으며 딱 한 걸음을 걸었다. 

소룡지보(小龍地步), 작은 용의 한 걸음에 볼라크의 돌진은 무위에 돌아갔고 나는 볼라크의 반대편에 위치했다. 

"무슨!"

"울음소리를 정통으로 맞았는데!"

"기사도 아닌데! 어떻게 버틴 거지?"

"저 걸음은 또 뭐야!"

"순식간에 이동했어!"

내 꼴 사운 모습을 보며, 웃을 준비를 하던 관객들이 기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믿지 못할 것을 본 그들의 눈동자는 지진 난 듯 떨리고 있었다.

"키에엑!"

뒤에 있던 나를 찾은 볼라크는 위에서 아래로 재빠르게 검을 내리찍었다. 

저벅

나는 또 한 걸음으로 볼라크의 검을 피하고 놈의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단검을 움켜쥐었다.

"너 할 거 다했으니, 이제 내 차례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