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이 성에 오르다 (10/241)

이 성에 오르다

"대공자님의 음식에 독을 넣으라고 지시한 사람은 카록스 리빙타인 기사단장 입니다." 

"카록스라고?" 

"그렇습니다."

한 달 넘게 이곳에 있다 보니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카록스 리빙타인은 후작 부인인 카이나의 오빠이자, 은수리 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기사다. 

카이나와 후작의 혼인 덕에 실력이상의 자리를 얻었다는 소문이 퍼져있는 사람으로,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혈연 빨로 기사단장이 된 낙하산이다. 

"어제 내 질문에 망설인 이유가 카록스였기 때문이었군."

"그렇습니다. 제게 지시를 한 사람은 카록스 단장이지만 카이나 후작 부인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놈이 네게 뭐라고 지시했지?"

"올 해 안에 대공자님을 병사(病死)로 죽게 만들라고 했습니다." 

"올해라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지금은 딱 활동하기 좋은 4월의 봄이다. 시간은 대략 8개월 정도 남았다. 

"방법은 딱히 지시하지 않았나?"

"그들은 독에 대해 모릅니다. 병에 걸려 자연스럽게 죽이라고만 했고, 대공자님을 어떻게 죽일지는 제게 일임했습니다."

"좋네."

"네?"

카록스와 카이나, 페루를 이용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너 걔네한테 돈을 받아서 독을 구입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럼 놈들에게 돈을 받아서 내가 말하는 독을 구해와."

"예?" 

이 녀석을 빵셔틀 아니, 독셔틀로 만들기로 정했다. 돈도 내 돈이 안 들고, 독도 내가 구입 할 필요가 없으니, 이보다 편할 수가 없다. 

카록스가 페루에게 올해동안 나를 죽이라고 했으니, 그 시간동안 꽤나 많이 빨아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아주 쪽쪽 빨아 먹어야지.

나는 아직 후계자도 아니고 징계를 벗어나지도 못했기 때문에 돈을 구하려면 후작에게 허락을 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독을 구할 방법이 생기다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으윽..."

내가 페루를 가만히 보고 있자, 녀석은 겁에 질린 듯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너 몇 살이냐?"

"20살입니다."

"독은 어떻게 배웠지?"

"8살 때 리빙타인 가문에 팔려 와서 그곳에 있던 독술사에게 배웠습니다."

"리빙타인 가문엔 너 같은 사람들이 많나?"

"처음엔 친구들이 스무 명이 있었지만, 그중에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성인도 아니고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독을 가르치다니, 하독의 특성이 없는 페루를 빼고는 모두 죽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내게 독을 넣은 페루의 호감도가 중립인게 이상했는데 이제 알았다. 

페루는 내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그저 명령에 따른 것뿐이다. 그는 오히려 카록스를 비롯한 리빙타인 가문을 싫어하고 있었다. 

죽은 아이들을 친구라고 했지, 잘하면 괜찮은 하인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나는 페루가 꺼내 놓은 보자기들을 보았다. 

"그럼 뭐가 들어 있나볼까? 이건 한양초로군."

"그렇습니다."

가장 오른쪽에 있던 보자기는 한양초였다. 이미 독성이 발휘될 정도로 숙성되어 있는 상태라 바로 먹어도 될 거 같았다. 

"이건..."

두 번째 보자기에서 나온 것은 쪽파 같은 모양을 한 녹색의 채소 같은 게 나왔다. 솔직히 뭔지 모르겠어서 눈을 쓰기로 했다. 

[창조주의 눈이 발동 됩니다.] 

[역록파(易綠芭)](속성 : 발통)

말라비틀어진 토지에서만 자랄 수 있는 식물로 장기(臟器)에 영향을 미치는 독을 가지고 있다. 한 뿌리로도 건장한 성인남성 열 명을 쓰러뜨릴 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역록파."

"마, 맞습니다."

이건 조절을 잘 해서 먹어야 할 것 같다.

세 번째 보자기에선 단풍잎 모양을 한 검은 잎이 나왔다. 검붉은 잎의 색이 너무 칙칙해서 살짝 소름이 끼쳤다. 

[묵작엽(墨雀葉)](속성 : 혼란)

단풍나무 한 그루에서 딱 아홉 잎만 나온다는 흑색의 잎으로 검고 붉은 빛이 난다.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 들어있어서 자백제의 재료가 된다. 

"묵잡엽까지 있네. 꽤나 좋은 것들을 가지고 다니는군." 

"헉! 어떻게..."

역록파에 이어 묵잡엽까지 알아보자, 페루는 기겁해서 뒤로 넘어갔다. 

"네 번째는..."

"그건 독초들의 해독제입니다."

"그렇군."

해독제라는 소리에 김이 식었다. 사천당가 특성에는 배운 독의 해독은 기본옵션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내겐 딱히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독은 왜 가지고 다녔던 거지? 나를 죽이려고 했다면 한양초로도 충분하잖아?"

"한양초로 죽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한양초의 중독증상이 보일 때쯤에 역록파를 약하게 섞으면 배탈이 났다고 생각해서 가볍게 넘어 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독이 섞여서 점점 말라죽어가게 되죠."

독의 장점이 이런 것이다. 조합으로 더 지옥하고 은밀한 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내겐 아직 넣을 때가 아니었겠군."

"그렇습니다. 대공자께선 한양초를 드신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보관만 하고 있었습니다."

"너는 모든 독초나 독물들을 다 구할 수 있나?"

"희귀한 것들은 무리지만, 어느 정도는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하지."

강제가 아니라, 부드럽게 부탁하는 어조로 그에게 말을 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정보와 독을 다 얻었기 때문에 의심 받기 전에 페루를 보내기로 했다. 

"늦었으니, 오늘은 가보도록. 필요한 일이 생기면 부르도록 하겠다. 카록스에겐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르실 건지."

"생각이 있으니, 걱정 말고 가보도록."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페루가 나가고 잠시 뒤에 문에서 인기척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에 침대에서 드러누웠다.

"공짜 독이다!"

사천당가의 특성을 본 후에 가장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된 부분이 독초를 구하는 일이었다. 

아직 후계자도 아니고, 징계 중이라 돈도 마음대로 못 쓰고, 돈이 있어도 독을 어디서 구해야 알지 전혀 모른다.

그러데 이렇게 쉽게 독셔틀을 구하다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나." 

일반적으로 내공을 빠르게 모으기 위해서는 영약이 필요하다. 공청석유, 만년설삼, 대환단 같은 영약이. 

하지만 만독자전신기는 영약이 아니라 독으로도 내공을 상승시킬 수 있는 특별한 심법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독초들을 모두 먹으면 적어도 3성은 도달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하루 밤에 그렇게 되긴 힘들겠지만."

일단 익숙한 한양초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보자기 안에 듬뿍 들어있는 한양초를 그대로 집어서 씹어 삼켰다. 

"우욱."

더럽게 맛없었다. 독성이 약한 한양초라 그런지 그냥 쌩 풀 맛밖에 나지 않는다. 

일단 가져온 것은 그냥 먹고 앞으로는 페루에게 조리해달라고 해야 할 거 같다. 맛을 느끼는 자체가 고문이었다. 

[독(한양초)를 섭취하셨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독(한양초)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약한 마비독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성취도와 숙련도가 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꾸역꾸역 독초를 삼켰다. 

"크으윽..."

빨리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 나도 모르게 한양초를 전부 먹어버렸다. 

지금부터가 본편이야. 집중해야 돼. 

먹은 독초들의 효능을 뿌리까지 흡수하기 위해서 바닥에  앉은 다음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했다. 

내공심법을 사용하자 ‘입이 텁텁해.’, ‘목구멍이 막힌 것 같아.’, ‘배불러서 졸려’ 같은 잡생각들이 점차 잠잠해졌다. 

내공의 흐름에 정신을 집중하자, 파도치던 바다들이 점차 바람한 점 없는 잔잔한 바다가 된 것처럼 무념무상의 정신상태가 되었다. 

**

[만독자전신기가 2성이 되었습니다.] 

"아!"

눈앞에 뜬 커다란 메시지 창에 정신이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본 2성 달성 메시지에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근데 또 못 잤네. 뭐 상관없나."

오늘은 자려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내공심법에 빠져서 또 밤을 그대로 보내버렸다. 

"어라? 뭐, 뭐야!"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정신이 확 들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몇 달간 숙성시킨 것 같은 지독한 냄새였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내가 입은 잠옷이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설마... 이거 몸속의 노폐물들인가?"

설정마다 다르지만, 무공을 익히게 되면 몸에서 노폐물이 나온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노폐물은 보통 내공심법이 안정 단계에 올랐을 때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했을 때, 두세 번 정도 나오는데 만독자전신기가 2성에 오른 덕에 노폐물들이 배출 된 거 같다.

"이정도로 역한 냄새라니, 노폐물 맞네. 잠깐 시간이..."

해가 뜨고 있고 새가 지저귀는 것을 보니, 곧 아린이 올 시간이다.  

"젠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바닥에 널 부러진 독초들을 다시 보자기에 넣고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이건 안 되겠는데..."

옷뿐 만 아니라, 몸 전체에서 냄새가 나고 있기 때문에 이건 숨길 수가 없었다. 

"벌써왔어!"

만독자전신기가 2성에 오른 덕인지, 아린이 걸어오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며 대충 정리를 끝낸 후 창문을 열었다. 

달칵.

"윽."

아린은 내 방에 들어오자마자,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곤 말없이 혐오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린의 저런 눈 한 달 만에 보는 것 같았다. 

"대공자님!"

"아, 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자고 일어나니까 이렇게 됐는데."

"또 거짓말 하시는 군요."

대체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내공수련을 하니까 노폐물이 나왔어요.’ 라고 말할 순 없었다. 

"아린, 일단 씻어야 할 거 같은데 준비 좀 해줄래?"

"그러네요.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군요."

아린은 가져온 세숫대야를 다시 가지고 나갔다. 

아린은 역시 현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방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킬 때 준비가 다 됐는지, 아린이 다시 찾아왔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욕탕으로 가시죠."

냄새 때문에 아린은 들어오지 않고 문 밖에서 말을 했다. 

"그래. 고마워."

아린도 냄새에는 약한가 보다.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어라?"

"왜 그러시죠?"

"아니야."

어제에 비해 몸이 엄청 가벼웠다. 달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뗀 느낌이다.

노폐물이 빠지면 몸이 가벼워지고 내공이 쌓이는 속도와 운용속도 모두 빨라진다고 하던데 그 효과인 거 같다. 

이정도면 앞으로 훈련량을 늘려도 괜찮을 것 같다.

구린 냄새는 나지만, 날아갈 거 같은 걸음으로 욕실로 향했다. 

검은 땀들이 안 닦일까 걱정했지만, 냄새가 많이 나서 오래 씻었다는 것을 제외하고 씻는 것에는 다행히 문제가 없었다. 

몸을 다 씻고 아린이 가져다 놓은 깨끗한 연무복으로 갈아입고 욕실을 나가는 중이었다. 탈의실 앞에 있는 커다란 거울 앞에서 홀린 듯 걸음이 멈춰졌다. 

"뭐, 뭐냐. 얜 또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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