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사천당가 (4) (8/241)

사천당가 (4)

내가 찾은 자는 10대 후반정도로 되어 보이는 푸른 머리의 청년이었다. 약간 멍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그의 특성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이름: 페루] 

[특성: 하독lv1, 재빠른 몸놀림lv1] 

[호감도: 0 (중립) ] 

내가 찾던 특성이 바로 저 하독이었다. 하독은 독을 내린다는 뜻으로 음식이나, 차, 술 혹은 대상에게 직접 독을 투여하는 것을 뜻한다. 

거기다 재빠른 몸놀림은 그저 몸만 빠르다는 것이 아니다. 페루라는 놈은 누구도 보지 못 할 정도로 빠르게 독을 집어넣을 수 있는 독술사(毒術士)였다.

"후후..." 

내가 아래에 있는 놈을 보고 웃자, 내 존재를 불편해 하던 하인들이 소름이 끼친 듯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이제 잠이나 자야겠네."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하고 나서 내방으로 들어가서 곧바로 내 방 창문으로 가서 밖으로 나가고 있는 하인들을 관찰했다. 

"페루는 나이가 어려 보였으니, 분명 뒤처리를 하고 나중에 나오겠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밖의 복도의 불을 끄는 소리가 들렸을 때 창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내려갔다. 

내력이 생겨서 그런지 한 팔로도 내 몸무게를 버티면서 손쉽게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아래로 내려온 후 잎이 풍성한 나무 뒤에 숨어서 하인들이 하인 숙소로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하인들이 나갔다고 생각 될 때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진짜 힘들다."

"그래도 요즘은 대공자가 조용해서 편하지 않아?"

"그 인간이 가만히 있다고 일이 줄지는 않으니까. 아까 2층에서 우리 지켜보고 있던 거 봤냐? 소름 끼치더라. 진짜 무서웠어." 

"나도 보긴 했는데 별 말 안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꺼림칙하잖아."

"하하."

"맞다! 페루 나 먼저 가야겠다. 오늘 세면실 당번이야." 

페루와 대화를 하던 붉은 머리 청년이 하인들 숙소 쪽으로 달려갔고 페루는 후문을 닫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지금이다. 

들키지 않게 그의 뒤로 움직인 후 약한 마비독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단전에서 뜨끈한 내력이 올라와서 내 손에 잡혔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 눈에 화살표가 나타나 있었다. 

화살표는 내가 보는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페루를 보자 화살표가 그의 머리위에서 그를 가리키고 있었다. 

독은 화살표로 목표를 정하고 쓰는 타켓팅 스킬 같았다.

페루에게 마비독을 쓰겠다고 생각하자, 손에 있던 내력이 연기처럼 날아가는 것이 느껴졌고 잠시 후 걸어가던 페루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는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바닥으로 쓰러져버렸다. 

독이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곧바로 달려가서 그를 끌어안고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챵!

단검을 꺼내서 페루의 목에 가져다 댔다. 마비가 되었어도 눈을 움직일 수 있는 듯, 놈은 자신의 유일한 소통창구인 눈을 부리나케 깜박여 댔다. 

그런데 아까와는 다르게 페루 옆에 작은 창이 떠있었다. 

약한 마비독 – 59:38 

독의 유지시간이 내게 보이고 있었다. 페루에게 적용된 마비독의 시간은 딱 1시간인 듯 했다. 

시간이 나오다니, 정말 편한 능력이었다.

"네게 몇 가지 질문을 하지. 맞다면 한 번, 틀리다면 눈을 두 번 깜빡여라. 알아들었나?"

깜빡

한 번에 알아들은 듯 페루는 곧바로 눈을 깜빡였다. 

"내가 먹을 스프에 독을 푼 거 너 맞지?" 

깜빡

페루는 부르르 떨다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네가 푼 독은 한양초 맞지?" 

깜빡 

이 질문은 사실 필요 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잠시 뒤에 이놈을 묶어 버릴 수를 쓰기 위해 던진 덫이었다. 

"내게 독을 먹이라고 한 사람은 후작부인인가?" 

페루의 눈은 움직이질 않고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단검으로 놈의 목을 살짝 베었다. 

주룩

녀석의 목에서 새빨간 피가 살짝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비 된 와중에도 놈의 생존본능으로 인한 약간의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후작부인 카이나 맞지?"

깜빡깜빡 

후작부인이 아니라니, 예상이 완전히 깨졌다. 그렇지만 이상한 일이다. 아니었다면 바로 눈을 두 번 깜박였으면 됐을 텐데 왜 머뭇거렸는지 모르겠다. 

카이나는 유렌의 어머니가 죽고 나서 후작이 재혼한 여자다. 

카이나로써는 당연히 유렌보단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후계자가 되기를 원할 테니, 그녀가 하독을 지시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니, 무언가 이상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플랜2로 넘어가기로 했다.

주머니에 있던 둥근 형태의 물체를 놈에 입에 쑤셔 넣어서 억지로 삼키게 했다. 

꿀꺽

"네게 먹인 것은 초독이라는 것이다. 지금부터 네 생명은 딱 한 달 남았다. 한 달이 되는 날에 내가 주는 해독제를 먹지 않는다면 네 몸속의 장기들은 한줌의 핏물로 녹아 사라질 거야."

내 말을 들은 놈의 몸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페루를 조종하기 위해서 아까 일부러 독을 얘기해서 독에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내일 업무가 끝난 후에 내방에 찾아오도록. 알겠나?"

깜빡 

"아, 그리고 음식에 독은 계속 넣어라. 아니, 더 팍팍 넣어 어차피 그따위 독은 내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까." 

이 말을 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섞여 있었다. 한양초를 더욱 먹어서 내공과 마비독의 성취도를 올리는 것과 녀석에게 내 존재를 쳐다볼 수 없을 만큼 크게 만드는 것.

깜빡 

페루는 알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고맙다. 네가 못 움직이는 마비독, 네가 준거야.

사실 페루는 굉장히 고마운 존재다. 사천당가를 해방해줬고 마비독도 사용 할 수 있게 해줬고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도 올려주고 있었다. 

거기다 신기하게도 녀석의 호감도는 중립이었기 때문에 이 녀석은 써먹어도 될 것 같았다. 오늘 일로 호감도가 내려가겠지만.

페루의 마비 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녀석을 해독시킨다고 생각하고 손을 뻗자. 그의 몸에 남아있던 시간이 사라졌다. 

"움직여봐라."

"어?"

내 말을 듣고 페루가 조금씩 몸을 움직이더니, 나를 쳐다보지는 못하고 내 발등만 보면서 전신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이, 이게..."

"내일 네가 가지고 있는 독을 모두 가지고 찾아오도록." 

"도, 독은 대체 왜..." 

"네게 질문을 허락한 적은 없는데?" 

"아, 알겠습니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폼을 잡으면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우와! 개 사기야!" 

계속 웃음을 참다가 내방에 들어오고 나서 기쁨의 점프를 뛰었다. 

약한 마비독이 한 시간이나 갈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럼 중간쯤 있는 그냥 마비독은 반나절은 갈지도 몰랐다.

아니, 페루가 약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녀석은 하독 능력을 제외하면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그래도 엄청난 능력임에는 틀림없었다. 

"오늘 밤은 잠이 잘 오겠네." 

사건을 하나 해결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그렇고 초독에 속다니! 하하하!" 

무협소설을 본 사람들은 봤을 거다.

악당으로 나오는 인물이 사람들을 이용할 때 독을 먹이는데 그 독은 바로 작용하는 독이 아니라, 몇 개월 혹은 일 년 후에 발작하는 독이라서 어쩔 수 없이 악당의 말을 듣게 되는 장면을. 

나는 그것을 이용한 거다. 보통 무협소설에서는 고독(蠱毒)으로 나오는데 내가 페루에게 먹인 것은 나뭇잎을 뭉쳐서 녹색구슬처럼 만든 것이다.

"아, 재밌어. 사천당가 최고야!"

한바탕 실컷 웃고 나서 마음을 진정시키고 만독자전신기를 운용했다. 

약간이지만 스토리가 변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이 변화가 어떤 폭풍으로 변할지 모른다. 최대한 빨리 힘을 키워야 한다. 

**

심법을 돌리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신기하게도 이틀 동안 전혀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무협소설에서 수면대신 내공심법으로 피로를 푼다는 말이 많이 나왔는데 그게 정말인가 보다.

똑똑

어제와 같은 시간, 칼 같은 시간감각을 가진 아린이 방에 들어왔다. 

"설마 오늘도 주무시지 않은 겁니까?"

"아..."

아린이 들어오기 전에 침대를 조금 지저분하게 했어야 했는데 생각하지 못 했다. 

"잤어. 의자에서." 

"음..."

아린은 의심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거짓말이 패시브로 장착 되어 있기 때문에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세숫물을 놔두고 식사를 가지러 갔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도 그리 추천하지는 않았지." 

소설에서도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간이라도 수면을 취하라고 나와 있었다. 이 세상도 소설이니 아마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오늘 부터는 약간이라도 자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무언가가 아까워서 침대에 누워서 뒹굴 거릴 때 아린이 식사를 가져왔다.

"일단 식사 드시지요." 

"응. 고마워."

나는 분명 페루에게 독을 팍팍 넣으라고 얘기했는데 제대로 넣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디..."

[독(한양초)를 섭취하셨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독(한양초)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도가 올랐습니다.]

[약한 마비독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독을 팍팍 넣은 덕분인지 스프의 맛은 어제보다 더욱 진한 느낌이었다. 내공의 성취도와 마비독의 숙련도도 어제보다 더 많이 오르고 있었다. 

"이제 불평하지 않으시는 군요." 

"이거 먹으면 강해지잖아." 

"맞습니다. 분명 도움이 되실 겁니다." 

"그래. 그래."

내 말에 아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린이 말하는 의미와 내가 말하는 의미는 전혀 달랐지만 그녀로써는 알 수가 없을 거다. 

"그럼 가자."

"대공자님, 뭔가 고민이 있으신 겁니까?"

"고민?"

"이틀째 주무시지 않으셨으니." 

아린이 이런 걱정까지 해주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걱정해주는 거야?"

"어,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약간 안절부절 못하던 아린은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아예 안 잔건 아니니까 수련장에 가자. 오늘은 제대로 잘게."

"알겠습니다." 

아린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훈련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아린이 나갔을 때 특성 사천당가를 켜봤다. 

"오늘은 중요하군." 

오늘은 사천당가의 새로운 능력을 개방 할 차례다. 

"살려면 잘 달려야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