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당가 (3)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제 4 연무장으로 출발했다.
"아무도 없네."
역시나 제 4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새벽에 내린 이슬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평소와 같이 스트레칭을 마친 후 가볍게 런닝을 하려고 할 때 문득 무기고에 꽂혀 있는 단도(短刀)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단도을 쥐었다. 사천당가는 여러 암기를 무기로 쓰는 문파, 혹시라도 무슨 변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흠. 별거 없나."
평소처럼 단도를 연무장 끝에 있는 나무에 던지려고 할 때 갑자기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게."
FPS(First Person Shooter)게임, 간단히 말하자면 1인칭 총싸움게임을 하게 되면 가운데에 십자모양이나 점 모양의 표시가 있다. 지금 그 십자가가 내 눈에 보이고 있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십자가의 표시를 좀 전에 내가 노렸었던 나무에 겨누고 단도을 투척할 준비를 마쳤다. 군필자라면 누구나 알만한 호흡 조절을 한 후에 나무를 향해 단검을 던졌다.
휘이익
퍽!
단도는 맹렬한 회전을 하면서 날아가 두터운 나무에 날의 중간까지 꽂혀 들어갔다.
"헉!"
"헉!"
나뿐만 아니라, 아린조차 놀랐는지 뒤에서 ‘헉’이란 소리를 내었다. 내가 아린을 돌아보자, 그녀는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단도가 박힌 나무를 보고 있었다.
"대, 대공자님, 방금 어떻게 하신 겁니까?"
아린의 저렇게 놀라는 표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매일 같이 단검과 단도를 던지는 것을 봐왔지만 한 번도 꽂히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박히다 못해 중간까지 파고드는 것을 봤으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나도 몰라 그냥 던졌어. 이제야 한 달간의 훈련이 효과를 발휘했나봐."
그녀에게 특성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 그냥 얼버무렸다.
사천당가-암기 카테고리에서 무언가를 배운 것도 아니고 그저 사천당가가 생겼을 뿐인데 이 차이라니, 역시 내 소설은 특성이 킹왕짱이었다.
단도를 던지는 순간 내 아랫배에서 화끈한 내력이 솟구쳐서 단도와 팔에 새어 들어갔다. 사천당가의 특성 덕에 자연스럽게 내공을 사용하게 된 거 같다.
이번에는 단검(短劍)을 집어 들었다. 단검 역시 들었을 때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만, 던진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가운데에 작은 십자 표시가 나타났다.
휘익!
퍽!
단검 역시 단도와 마찬가지로 나무에 틀어박혔다.
"헉!"
두 번 연속, 우연이 아님을 확신한 아린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들어 표현이 다양해진 그녀였지만 이정도로 놀라는 소리를 들려주니, 꽤나 신선했다.
사실 내게 총싸움게임의 십자표시를 보여주는 것은 치트키를 쓰게 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는 과거에 파워 어택이라는 총싸움게임의 영등포구 피시방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적이 있다.
참여 팀이 무려 40팀이 넘었지만 당당하게 준우승을 해서 한동안 공짜로 피시방을 이용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아린."
"네..."
"혹시 내게서 느껴지는 거 없어?"
"느껴지는 거요?"
그녀는 내게 다가와서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보다 살이 많이 빠지신 것 빼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네. 원래 과할정도로 훈련을 하시고 치레인 스프를 드시니, 매일매일 살이 빠지시기 하셨지만, 오늘은 좀 많이 달라지셨습니다."
"그런가."
아린의 반응으로 확신 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소설에 내공이라는 설정을 만들지 않았다. 내공이라는 설정자체가 없기 때문에 감이 좋은 아린이라도 내공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즉, 이 세계에서 내공은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창이었다. 다른 사람이 내 내공을 감지 하지 못하는 것을 얼마든지 이용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엄청난 것을 얻었군."
나는 계속 단검과 단도를 나무에 꽂아 보았다. 피시방대회 준우승자답게 모든 암기는 내가 원한 위치에 박혔다.
거기다 내공을 다루는 감각을 파악한 덕에 처음에 중간정도만 박히던 암기들은 나중에 가서는 뿌리까지 꽂히고 있었다.
"대체 무슨!"
아린은 이제 놀라는 것을 떠나,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따라서 단검을 던져보았지만 다른 곳에 맞거나 아예 박히지도 않았다.
"너도 못 하는 게 있네."
"윽!"
많은 시간을 보내서인지, 호감도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의 아린은 표현이 많아졌기 때문에 보는 맛이 났다.
푸욱!
내가 던진 단검이 뿌리까지 박힌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려는 찰나, 새로운 메시지가 눈에 보였다.
[사천당가-암기(暗器) 개방 완료.]
[직사(直射)가 해방됩니다.]
[직사: 더 빠르고 강하게 암기를 투척 할 수 있게 됩니다. 암기 뿐 아니라, 돌, 나무 조각, 철검등 모든 물건을 암기처럼 던질 수 있습니다.]
"와!"
암기 카테고리 제일 위에 있던 직사가 해방 되었다. 직사는 암기를 더 빠르게 강하게 던질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곳에 더 이상 날이 서있는 단검이나 단도는 없었기 때문에 구석에 박혀 있던 부러진 목검을 잡았다.
"무엇이든지 된다고 했으니, 이것도 되겠지?"
직사를 사용한다고 생각하며 목검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단전에서 지금까지 보다 많은 양의 내력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휘아앙
쾅!
내가 던진 목검은 직선으로 날아가서 내가 한 아름으로 안기 힘든 나무에 박혀버렸다. 아무리 철심이 들었다고 해도 목검이 나무에 박히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이게 직사구나."
응?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린이 벌게진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불타는 동공은 설명을 원하고 있었다.
"대공자님!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그 힘은 대체."
"자, 잘 모르겠는데 연습의 힘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그녀에게 사천당가를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그저 모른다고 우길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정말 서로 믿는 사이가 된다면 모를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얼버무리는 것 밖에 없었다.
"아린."
"네..."
"네가 아버지께 내 일을 보고 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이번 일은 말씀드리지 말아줘."
나는 아린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진지한 목소리를 내었다.
"네? 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를 시험해보고 있는 중이야. 나중에 내가 직접 아버지를 찾아뵙고 제대로 말씀드릴 테니, 기다려줘."
"아..."
아린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알겠습니다."
아린은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하더니, 내 말에 확답을 내주었다. 한 달간 호감도가 올라간 덕에 부탁을 들어준 것 같았다.
"고마워."
내가 그녀에게 부탁을 한 이유는 간단했다. 운동 좀 했다고 독을 먹이는 곳이다. 신비한 힘이 있다는 게 들킨다면 암살자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율은 빠르게 오르고 있으니까, 조만간 이 성에 진입 할 수 있을 거다.
그때라면 내 능력이 알려져서 상관없을 것이다. 웬만한 일은 대비가 가능할 테니까.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개방된 직사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 계속 직사를 사용하는 연습을 했다.
퍼억!
**
파악!
"헉, 헉."
모든 내공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제 암기가 제대로 날아가지도 않는다. 단전이 빌수록 점점 머리가 멍해졌다.
내공을 너무 많이 사용하면 심각한 두통이 나타난다. 위험한 순간이 아닌 이상 내공의 조절이 필요할 것 같다.
"대공자님. 이미 해가 완전히 졌습니다. 오늘은 이만 하고 돌아가시죠."
"그래."
말할 힘도 없었다.
수련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해는 어느새 사라지고 반쪽 달이 세상의 중심에 떠 있었다.
"돌아가자."
"네."
빠르게 움직이면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서 아린에게 천천히 움직여 달라고 부탁하고 저택으로 돌아갔다.
"응?"
"왜 그러시죠?"
방금 무언가 찌릿한 감각이 목 쪽에서 느껴졌다.
독에다가 감시까지, 어제부터 시작 된 건가. 시간이 별로 없군.
**
내 방에 도착해서 먹은 음식은 여전히 한양초가 들어간 치레인 스프였다.
[독(한양초)를 섭취하셨습니다.]
[만독자전신기가 독(한양초)을 흡수합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율이 올랐습니다.]
[약한 마비독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독을 먹을 때 마다 만독자전신기의 성취가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독은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독을 구하기 쉽지 않을 텐데 맛있게 조리까지 해서 주다니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고맙다. 내가 꼭 복수해줄게.
"그럼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래. 쉬어."
아린을 보내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아래층을 살펴보았다. 하인들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찾아 볼까나."
[창조주의 눈이 발동합니다.]
나는 창조주의 눈을 발동해서 하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내가 보는 것은 호감도가 아니라 특성이었다.
"대부분은 별 특성이 없군."
소설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하인들이라서, 특별한 특성을 가진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가끔 하인으로 남기에 아까운 몇몇이 보이긴 했지만 내가 찾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법을 익혔으면 성공했을 특성도 보이고, 학자가 됐으면 이름을 날렸을 특성도 보였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하인일이었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곳 소설 속 세상도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쌓여있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쥘 수 있는 보물이 있지만 자의와 타의로 인해 대부분은 손을 뻗지 못한다. 정말 아까운 일이다.
나도 그런 말 할 자격은 없지만.
홀로 씁쓸한 생각을 하며 계속 하인들을 찾아보았지만 찾는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는 저택의 후문이 보인다. 하인들은 홀로 정문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인숙소로 가기위해서는 후문을 통해야 한다.
하인들을 보다가 느낀 건데, 하인들의 호감도가 이전과는 꽤나 달라졌다.
예전에 온통 혐오뿐이던 호감도가 상당히 올라갔다. 아직 다들 마이너스긴 하지만 상당한 변화였다.
딱히 건드리지 않은 것 빼고는 그들에게 해준 게 없는데도 호감도가 상승하는 걸 보면 이전의 유렌이 얼마나 악독한 놈이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흠..."
난간에 턱을 걸치며 하인들을 찾을 때 못 보던 하인 한명이 내 눈에 들어왔다.
새로 나타난 멍해 보이는 하인에게 창조주의 눈을 사용했다.
난간에 기대서 창조주의 눈을 사용하길 한 시간, 미간에 주름이 잡히려 할 때 드디어 내가 찾던 놈을 발견했다.
"드디어 찾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