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사천당가 (5/241)
  • 사천당가

    [이름: 아린]

    [특성: 쾌검lv2, 명경지수(明鏡止水)lv1, 오러적응lv1]

    [호감도: 2 (관심) ]

    아린의 호감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0에 중립이던 호감도가 2로 오르고 관심으로 변했다. 

    게임처럼 선물이라도 줘야 하는지 알았는데 내 행동의 변화로도 쉽게 호감도를 올릴 수 있는 것 같다. 

    처음엔 미연시라고 생각해서 무시했지만, 호감도는 내게 다가오는 사람이 내게 어떤 감정을 지녔는지 알 수 있는 사기급 능력이다.

    "도착했습니다. 여기가 제 4 연무장입니다." 

    제 4 연무장은 아린의 말대로 멀기는 했지만 그렇게 좁지도 않았고 내게 필요한 기구는 전부 있었다. 

    "흠."

    나는 수련장 입구에 있던 수련용 무기 창고에서 목검을 잡아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군."

    만일 내 특성이 검성이었다면 대충 검을 휘둘러도 알아서 검의 묘리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있는 특성은 잠긴 사천당가, 제대로 휘두르기도 힘들었다. 

    "대공자님 그곳에 있는 목검들은 모두 기사들의 수련용이라 안에 철심이 들어있어서 약간 무겁습니다."

    "야, 약간?"

    아린의 말과는 달리, 약간이 아니었다. 목검은 내 원룸에 있던 5kg 아령 정도의 무게로 느껴졌는데, 유렌의 유리 몸은 그것조차 버티지 못했다. 

    "와 진짜 쓰레기 몸이야."

    "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이번에는 목검 옆에 있던 작은 단검을 들어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뭘 해야 사천당가가 개방되는 건지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단검을 근처에 있던 나무에 던져 보았지만 근처에 가지도 않고 떨어져버렸다. 

    "에휴, 파워 워킹이나 하자."

    파워워킹은 운동효과가 달리기에 비견 될 정로 매우 뛰어나다. 뛸 수 없는 내겐 최고의 운동이었다. 

    "이익!"

    다리에서 내지르는 근육통의 비명을 받아들이면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

    이미 해가 저문 어두운 밤, 윌링턴 후작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어둑어둑해진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정원을 아름답게 수놓은 꽃들이 아닌 정원에 있는 두 명의 남녀를 쫓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늦었나."

    그는 달의 위치를 확인한 후 다시 정원을 지나고 있는 두 남녀 유렌과 아린에게 시선을 주었다. 

    수련을 하고 왔기 때문인지 그의 전신은 땀에 푹 젖은 채로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벌써 3주째 며칠 가지 않아 포기할 거라 생각했던 유렌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3주째 제 4 연무장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거기다 운동시간을 늘리는 건지. 조금씩 일찍 나가서 조금씩 늦게 돌아오고 있었다. 

    "허어, 체력이 늘어가는 만큼 더 많이 움직이고 오는 모양이군. 저 녀석이 정말 유렌 맞는 건가."

    고작 3주, 하지만 그사이에 이뤄낸 유렌의 변화는 윌링턴 후작의 상상을 초월했다. 

    파도처럼 출렁이던 뱃살은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았고 살에 파묻혀 있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얼굴은 후작 자신의 얼굴과 판박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보니까, 저 녀석도 내 아들이 맞네."

    꺼지기 직전이었던 유렌에 대한 희망의 불꽃은 3주간 아주 조금씩 커져 나갔다. 윌링턴은 처음으로 유렌을 믿어 봐도 될 것 같은 신뢰감이 생겼다. 

    똑똑! 

    밖에서 얇은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후작은 그 노크소리만으로도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들어오시오." 

    달칵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곧바로 후작의 뒤로 걸어가서 그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붉은 머리에서 퍼져 나오는 청초한 향기에 후작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을 보고 계시나요?"

    "그냥 정원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유렌과 아린은 어느새 저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밖에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정원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원은 제가 직접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신경 많이 쓰고 있답니다. 후후"

    "정말이오.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 솜씨요."

    "정원은 가문의 얼굴이니까요. 후후후" 

    "고맙소."

    "아니에요. 그런데 전에 말씀 하신 콜린의 후계자 선정은 언제 진행하실 건가요? 벌써 한 달이 지났어요. 어차피 확정 된 일인데 빨리 진행해서 콜린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녀는 그 말을 하며 후작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카이나, 미안하지만 그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거 같소."

    "네? 이번 달 안으로 콜린을 후계자로 선정하고 공표하기로 했잖아요."

    "당신도 들어서 알겠지만 유렌 녀석이 요새 정신을 차린 것 같지 않소? 녀석은 록스의 장자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한다면 좋은 후계자가 될지도 모르오." 

    "후후."

    카이나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어졌지만, 후작은 계속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치 채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죠. 저도 유렌의 소식을 들었어요.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거 같다고 하인들도 좋아하던데요. 정말 잘 된 일이에요. 후후" 

    "그렇게 걱정했는데 드디어 조금 정신을 차린 거 같소. 약혼자에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다니, 저 녀석도 참."

    지금까지 다른 사람의 입에서 유렌의 이름이 나오게 되면 무조건 그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야기였지만 처음으로 나온 첫째 아들에 대한 칭찬에 후작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호호, 이제 당신도 조금 마음이 놓이겠네요. 그럼 후계자는 어떻게 하시려고 하나요?"

    "유렌 녀석이 훈련을 시작한지 겨우 3주 됐으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소."

    후작은 카이나에게 미안했지만, 이미 마음을 확실하게 굳혔는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약속하리다. 유렌 녀석이 다시 망나니가 된다면 그 즉시 당신과 나의 첫 번째 아들인 콜린에게 바로 후계자 자리를 주도록 하겠소." 

    "당신이 알아서 정당한 방법으로 후계자를 정하시겠죠. 전 당신을 믿어요. 유렌이든 콜린이든 누가 후계자가 되어도 록스 가는 훌륭하게 운영 될 거 에요." 

    카이나는 정말 유렌의 개심을 바라는 듯, 한 치의 구김도 없는 웃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해해주어서 고맙소. 카이나."

    "그게 당연 한 건데요. 저도 유렌의 변화가 정말 기쁘답니다." 

    "역시 당신 밖에 없소."

    카이나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녀의 미소를 본 후작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에 진한 입맞춤을 했다. 

    "후후, 그럼 전 침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일은 적당히 하시고 빨리 와주세요."

    "아아, 곧 가겠소."

    "후후후."

    웃으면서 후작의 집무실을 나온 카이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얼음을 깐 것처럼 차가워 졌다. 붉은 입술로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그녀는 굉장히 아름다웠지만 뭔지 모를 섬뜩함이 느껴졌다. 

    **

    "이제 눈에 보이는 살은 대부분 빠졌네!"

    4주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제 4 연무장으로 출근을 하면서 내 몸에는 만화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열심히 한 것도 있겠지만 아린이 매일 가져다주는 치레인 스프의 효과는 엄청났다. 

    근육통까지 어쩌지는 못하지만 녹초가 되어도 치레인 스프를 먹고 잠들면 다음날 열 시간은 잔 것처럼 상쾌한 느낌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가장 큰 효과는 눈에 보일 정도로 살이 쭉쭉 빠지는 것이다. 

    몸의 지방이 어느 정도 빠지고 약간의 근육이 생긴 2주차부터는 팔굽혀 펴기나 스쿼트 같은 맨몸운동도 시작했다. 

    매일같이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몸의 변화가 눈에 보이고 있으니 운동을 하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좆같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천당가는 절대 해방되지 않았다. 단검, 단도를 계속 집어 던지고 목검을 몇 백 번 휘둘러도 달리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 무슨 방법이 있긴 있을 거야."

    게임에서 어디에 숨겨진지 조차 모르는 전설의 무기를 찾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공략 동영상도 개발자가 주는 힌트조차 없었다. 내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아, 진짜 답답하다." 

    뭘 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재능이 없어도 지금이라도 검을 배우고 기연을 찾아다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공자님"

    "들어와. 으..."

    아린은 내말이 끝나기도 전에 치레인 스프를 가지고 들어 왔다. 치레인 스프의 냄새에 갑자기 속이 거북해졌다. 

    "하아..."

    스프 효과 좋은 거 인정한다. 닭 가슴살과는 비교도 안 되는 효과가 있으니까, 하지만 한 달 세끼를 저것만 먹고 있으니 죽을 것 같았다. 

    "식사 가져왔습니다."

    "아린, 그거 언제까지 먹어야 해?"

    "지겨우십니까?"

    "당연하지. 지금 한 달째 그것만 먹고 있잖아."

    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치레인 스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대공자님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슨 소리지?"

    "그저 살을 빼고 싶은 신겁니까?, 기사가 되기 위한 몸을 만들고 싶으십니까?" 

    "당연히 기사가 될 몸을 원하지." 

    기사가 될 생각은 없지만. 

    "그럼 스프를 드십시오. 영지에서 가장 강하신 후작님도 훈련을 하고 나서는 치레인 스프를 드십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으윽."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판단은 대공자께서 하시는 거니까요."

    이게 아린의 특이한 점이다. 그녀는 관찰만하지 먼저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훌륭한 검술을 익히고 있음에도 내가 허접하게 칼을 휘둘러도 아무 참견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면, 먹을 수밖에 없지..."

    탁자에 다가가서 수저를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대공자님."

    "응?"

    "기사가 되신다면, 그럼 지금부터라도 검술을 배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

    항상 관찰자의 입장이었던 아린이 내게 무언가를 제시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건가, 아니면 마음이 조금은 열린 건가. 

    "검술?"

    "사실 많이 늦은 나이입니다만, 대공자님은 록스가문의 직계, 분명 검에 재능이 있으실 겁니다."

    실망 시켜서 미안하지만, 내겐 검술의 재능 따윈 전혀 없다. 쓸데없이 잠겨있는 사천당가가 있을 뿐이다.

    "내일 부터라도 당장에 시작하시죠. 후작님께 보고 드리면 좋은 교관을 붙여 주실 겁니다." 

    "검술이라..." 

    "분명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약간 고민이 되었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됐어. 일단 좀 더 체력을 기르고."

    원래의 소설가인 내가 재능 없는 유렌의 몸으로 검술을 배워봤자 도적이나 잡겠지, 살아남는 데에 도움은 되지 않을 거다. 

    가끔 제 4 연무장에서 만나는 기사들은 내게 엄청난 살의를 가지고 있었다. 아린에게 물어보니, 그들이 수련기사일 때 내가 지랄 맞게 괴롭혔다고 한다. 

    그들과 같이 검을 배운다? 아니 될 말이다. 이제 와서 사과를 해도 호감도가 더 내려가면 내려가지 올라갈 거 같진 않았다. 

    "검술을 배우면서도 체력은 기를 수 있습니다. 거기다 검술에 필요한 근육들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시작을..."

    "아니, 정말 괜찮아. 그런데 아린 너 웬일로 그런 제의를 하지? 아버지께 부탁이라도 받았어?"

    "아뇨. 후작님은 아무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그녀 혼자 생각한 건가? 오래간만에 그녀의 정보를 보기로 했다. 

    [이름: 아린]

    [특성: 쾌검lv2, 명경지수(明鏡止水)lv1, 오러적응lv1]

    [호감도: 20 (깊은 관심) ]

    호감도가 20로 올랐어. 그래서인가? 호감도가 올랐기 때문에 그녀가 내게 이득이 될 것 같은 것을 제안 한 거고 나를 잘 봐주는 건가. 

    "고마워. 하지만 나도 생각이 있으니까."

    딱 한 달만 더 이것저것 시험 해보고 안되면 주인공의 기연을 훔쳐서 검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밥이나 먹고 생각하자. 식으면 더 맛없을 테니."

    "네."

    질리다 못해 토할 것 같은 치레인 스프를 빨리 먹어치우기 위해서 크게 한 수저 들어서 삼켰다. 

    "음?"

    이번에 먹은 스프의 맛은 여태까지 먹었던 맛과 아주 미묘하게 달랐다. 

    "아린 혹시 이 스프..."

    아린에게 뭔가 새로운 재료를 넣었는지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내 눈앞에 여태 보지 못 한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독을 섭취하셨습니다.]

    [사천당가의 해방조건을 만족하셨습니다.]

    [특성 사천당가의 잠김이 해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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