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받은 대로 돌려주마 >
벨기에 브뤼셀에서 G7 정상회담이 펼쳐지고 있었다.
야베 총리는 공동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트램프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날 밤.
브뤼셀 모처에서 미일 정상의 비밀 회담이 열렸다.
야베가 볼멘 목소리를 내뱉었다.
"한국의 이태수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에 배상이 끝난 징용자와 위안부 문제는 물론이고, 일본 영해인 제 7광구 등에 연일 강도 높은 도발 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트램프가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야베의 입에서 작심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해 주십시오. 그리고 스텔스 미사일과 전투기도 우리 일본에 제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그 문제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트램프가 난색을 표명하자 야베가 따지듯 물었다.
"각하께서는 미국의 최고 통치권자 아닙니까?"
"미국의 최첨단 기술 이전 문제는 체이스 국가안보 비상회의 의장이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핵무장이 불필요해요. 오끼나와 미군 주둔지에 이미 핵무기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자 야베의 입에서 격한 언성이 흘러나왔다.
"왜 그렇게 한국만 편애하시는 겁니까? 우리 일본도 미국의 혈맹국입니다. 각하!"
트램프의 얼굴에 권태로운 표정이 한가득 드리워졌다.
그는 한일 양국의 불협화음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이태수의 눈 밖에 날까 우려한 탓이었다.
야베의 거친 억양이 장내에 재차 울려퍼졌다.
"그렇다면 스텔스 미사일을 탐지 할 수 있는 레이더망을 일본에 제공해 주십시오."
"흐으음..."
트램프의 입에서 침중한 한숨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미국은 스텔스 미사일을 감지 할 수 있는 레이더망 역시 실전에 배치완료한 상태였다.
"우리 일본에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주십시오. 각하!"
트램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스텔스 탐지 레이더망을 일본에 제공하는 방안을 긍적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제서야 야베가 한풀 꺽인 얼굴로 트램프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장내에서 모습을 감췄다.
***
청와대 집무실.
트램프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에서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일본에 스텔스 미사일과 전투기를 탐지 할 수 있는 레이더망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일본의 요구를 순순히 수용하실 생각입니까?
-일본은 핵무장 용인과 스텔스 미사일 등을 연일 강도높게 요구하고 있어요.
-그들을 달래는 방편으로 스텔스 탐지 레이더망을 제공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 미국의 입장을 헤아려 주십시오. 각하.
트램프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스텔스 탐지 레이더망 구축에 걸리는 시간이 어느 정도죠?
-대략 7개월 안팎입니다.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 안에 일본을 도모하면 게임 끝이었다.
핫라인을 종료한 뒤 국방과학 연구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음날.
동해 인근의 비밀 핵미사일 기지를 방문했다.
그곳에는 중국과 일본 열도 전역을 타격 할 수 있는 미사일 발사대가 지하 깊숙이 은닉되어 있었다.
지하 핵벙커에 들어서자 수천여기의 스텔스 미사일과 대륙간 탄도탄이 즐비하게 늘어선 광경이 시야에 포착됐다.
그때, 이해소 박사가 내 앞에 나타났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본론을 꺼냈다.
"스텔스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세요."
이해소가 흠칫한 얼굴로 물었다.
"설마...? 중국에 핵미사일을 발사할 생각이십니까?"
"미리미리 대비하는 차원입니다."
그러자 이해소의 얼굴에 한숨 돌린 표정이 떠올랐다.
직후 나를 향해 은근한 어조를 흘려보냈다.
"수소폭탄의 핵탄두를 장착할까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이 박사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내일부터 청와대에서 박사님이 핵가방을 책임져 주십시오."
이 박사가 결연한 얼굴로 복명했다.
"알겠습니다. 각하!"
***
청와대 화상회의실.
대화면 스크린에 강태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녀석은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긴급현안을 보고했다.
"만주 지역에 친한 조직(親韓組職)을 조속히 창설해야 합니다."
"친한 조직?"
"네. 각하."
"좀 더 자세히 보고해 봐."
"한국에 우호적인 만주인들을 엄선해서 한만일체회(韓滿一體會)를 결성한 후, 각계각층에 친한 세력을 널리 퍼트려야 합니다."
"한만일체회의 의미가 뭐지?"
"한국인과 만주인은 한핏줄을 나눈 형제라는 뜻입니다."
문득 일제시대에 맹위를 떨쳤던 일진회(日進會)가 뇌리를 스쳤다.
일진회는 일본과 힘을 합쳐 앞으로 전진하자는 슬로건을 내건 친일 조직이었다.
일제시대 당시 일진회 소속 인사들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인해 큰 돈을 벌었다.
강태호는 일진회를 본뜬 한만일체회를 결성해야 한다고 적극 주장하고 있었다.
"냉혈이 포섭한 인사들 위주로 한진회를 결성할 계획입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태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한만일체회 인사들을 만주의 요직에 임명한다면, 만주인들의 민심을 손쉽게 확보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장밋빛 전망이었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돈이 많이 필요하겠군."
"네. 각하."
"필요한 자금을 말해봐."
"최소 1조원 이상의 공작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주에 주둔 중인 군사령부의 적극적인 협조 역시 절실합니다."
"군사령부에서 협조를 안하는 건가?"
"냉혈단을 국정원 산하 조직 정도로 여기는 분위깁니다. 그런 탓인지 협조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령관들이 냉혈단을 우습게 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태호가 두눈을 번뜩이며 요구사항을 밝혔다.
"저에게 현지 사령관들을 지휘 통솔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주십시오."
"너무 막중한 권한이군."
"사령관들을 수족처럼 부리기 위해서는 다른 수가 없습니다. 각하."
태호의 간절한 읍소였다.
***
만주 길림성의 주도인 장춘을 불시에 방문했다.
장춘에는 89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89사단 본부에 여장을 푼 뒤 강태호를 호출했다.
면전에 나타난 태호에게 내 뜻을 밝혔다.
"한만일체회(韓滿一體會)를 결성해."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갑사합니다. 각하."
"그리고 사단장 지휘 통솔 문제는, 협조 수준에서 마무리 짓자고."
그러자 태호의 얼굴에 아쉬워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당신이 월권을 행사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으니까, 이 정도에서 만족해."
"알겠습니다. 각하."
다음날.
장춘 도심지의 고급 호텔 펜트하우스로 강태호와 만주 동북삼성에 주둔 중인 사단장들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50명에 달하는 사단장들이 나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경례를 올려부쳤다.
"충성!"
그들의 경례를 목례로 화답한 뒤 옆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강태호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강태호 냉혈단장과 인사를 나누시죠."
그리 명하자 사단장들이 긴장한 얼굴로 태호와 차례로 악수를 교환했다.
그들의 악수 교환을 뒤로 한 채 기다란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이블 상석에 좌정한 뒤 사단장들과 태호를 테이블로 불러들였다.
우리는 동서양의 산해진미와 미주가효를 음미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나갔다.
그러기를 얼마 후, 옆자리에 앉아 있는 태호를 손짓하며 사단장들에게 내 의중을 밝혔다.
"강태호 냉혈단주에게 적극 협조해 주십시오."
그러자 사단장들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복명했다.
"넵. 각하."
***
요녕성의 주도인 심양시와 흑룡강성의 주도인 하얼빈, 길림성의 주도인 장춘을 중심으로 한만일체회가 결성했다.
한만일체회 멤버들은 결성식을 끝내자마자 만주 전역에서 한국인과 만주인은 한핏줄을 나눈 형제라는 주장을 연일 펼치기 시작했다.
하얼빈 도심지에 한만일체회의 대규모 가두시위가 펼쳐졌다.
거의 3만명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그들은 대다수 가난한 농민공 출신이었다.
그런 탓일까? 농민공들은 한만일체회의 활동에 열성적으로 참가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한국인과 만주인은 한핏줄을 나눈 형제'라는 구호를 확성기를 이용해 악에 바친 듯 부르짖었다.
"만주 시민 여러분. 원래부터 한국인과 만주인들은 같은 조상을 둔 한핏줄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자랑스런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우리 만주인들을 한국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한국어를 익히고 한국의 문화와 예절을 배우셔야 합니다!"
그 무렵, 연도의 한편에서 한만일체회의 가두행진을 싸늘한 시선으로 주시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인민해방군의 특수부대원 출신이었다.
그런 탓인지 한만일체회의 가두행진에 절로 분개했다.
'매국노들이 만주를 가오리방즈(고려봉자)에게 팔아먹는구나.'
남자는 분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장내에서 소리소문없이 자취를 감췄다.
다음날.
흑룡강성 모처에 일단의 무리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머리를 맞댄 채 밀담을 나눈 후, 폭탄 제조에 심혈을 기울였다.
***
흑룡강성 흑하시 관청에 일단의 남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도요타 트럭을 흑하시청 주차장에 정차한 뒤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1시간 후, 흑하시청 주차장에서 대규모 폭음과 화염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비슷한 시각, 길림성 통화시의 번화가에 일단의 남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상점 인근의 휴지통에 검은색 베낭을 내던진 뒤 장내에서 유유히 모습을 감췄다.
1시간 뒤.
통화시 번화가에 강렬한 폭음이 쉴새없이 울려퍼졌다.
콰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
청와대 비상회의실.
테이블 상석에 좌정한 채 TV 방송에 이목을 집중했다.
뉴스 앵커가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흑룡강성의 흑하시청과 길림성 통화시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를 긴급 속보로 전달하고 있었다.
-흑화시 주차장과 통화시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인해 1천여 명의 사상자와 중경상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만주의 별'이라고 자칭한 단체가 유튜브에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흑하시청과 통화시에서 발생한 폭탄 사건이 자신들이 일으킨 조직적인 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중략...
-정부 당국은 이번 폭발 사고를 엄중히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략...
TV를 끈 뒤, 국정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만주의 별이 뭐죠?"
그러자 국정원장이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만주 지역에서 암약하는 반체제 테러단체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 나온대로 그들이 폭발 테러를 자행한 겁니까?"
"확인 중에 있으니 조만간 조사결과가 나올 겁니다. 각하."
국정원장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손짓을 한 뒤, 삼군 총사령관인 정종진에게 단호한 언사를 내뱉었다.
"놈들이 폭탄 테러의 주범으로 밝혀질 경우,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처참하게 응징하십시오."
정종진이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큰 목소리로 복명했다.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놈들의 본거지를 불바다로 만드세요."
"넵. 각하."
국가안보회의를 종료한 뒤 화상회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스크린에 강태호의 얼굴이 나타났다.
"만주의 별에 대해 보고해 봐."
녀석이 즉답했다.
"전직 인민해방군 출신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근거지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
"한만회 조직원 중에 만주의 별에 대해 잘 아는 인사가 있나?"
"수소문 중에 있습니다."
"최단 시일 내에 놈들의 본거지를 파악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
심양시청 도시개발과에서 9급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소동방은 하루일과를 끝마친 뒤, 한만일체회 본부가 있는 열빈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분주히 놀렸다.
열빈호텔 스위트룸에 소동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출입문 양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경호원들에게 한만회 신분증을 내보인 후 스위트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정재익은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올리며 면전에 공손히 시립한 소동방에게 넌지시 입을 열었다.
"나를 찾은 용건이 뭐지?"
"거동과 언행이 수상한 자를 며칠 전에 목격했습니다."
재익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자에 관해 말해 봐?"
"국청양이란 남잡니다. 심양에서 관급 공사를 주로하는 건설업자죠."
"출신성분은?"
"전직 인민해방군 장교 출신입니다."
"확실한가?"
"네. 부장님."
소동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자와 관급공사 수주 문제로 서너차례 술자리를 같이 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술자리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인을 비난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툭하면 내뱉더군요."
"다른건?"
소동방의 보고가 계속 이어졌다.
"바로 어제 밤이었습니다. 제가 술에 잔뜩 취한척 테이블에 머리를 파묻을 무렵, 그놈의 개소리가 들려오더군요."
"한국인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때려죽여야 한다고 고래고래 악을 쓰더라고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실눈으로 그놈을 살피자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서 한국인들을 총으로 쏴죽이는 행위를 연출하더군요."
재익의 눈에 스산한 한기가 스쳤다.
그날 밤.
심양시 근교에 위치한 고급 저택 주변에 검은색 벤 차량이 나타났다.
재익은 차 안에서 도감청에 열중하는 냉혈단원을 둘러본 뒤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저택의 차고지에서 회색 벤츠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익의 입에서 나직한 명령이 떨어졌다.
"벤츠를 뒤쫒아."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벤 차량이 회색 벤츠를 은밀히 따라붙었다.
***
청와대 경내를 거닐며 일본에 대해 심사숙고했다.
나는 애초에 일본 열도를 바다 속에 수장시킬 생각이었다.
허나, 곰곰이 생각한 결과, 그것 보다는 일본 자체를 한국에 복속시키는 것이 더 통쾌할거 같았다.
한민족이 받은 수모를 고스란히 되돌려주기 위함이었다.
구한말 일본은 암군(暗君)인 고종을 구슬려 조선을 푼돈으로 매입했다.
현재 시세로 환산할 경우, 겨우 3천억원에 불과한 액수였다.
그런 탓으로 일본은 조선을 정당한 댓가를 지불한 후 병합한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주장했다.
통탄할 노릇이었다.
지난 역사를 생각하자, 당최 해소되지 않는 한민족의 피맺힌 혈한이 전신에 팽배해졌다.
바로 그때, 일왕의 존재가 뇌리를 번갯불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를 이용한다면 일본을 합법적인 수단으로 병합할 수 있을거 같았다.
일본이 구한말 조선을 병탄한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일본의 자위대를 무력화 시킨 뒤 일왕에게 거금을 지불한 후, 일본의 지배권을 한국 정부에 넘기라고 권유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십중팔구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허나, 일왕은 일본의 지배권을 한국에 매각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머릿 속에 쓸만한 그림이 그려졌다.
곧바로 집무실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앉자마자 트램프에게 핫라인을 연결했다.
< 받은 대로 돌려주마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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