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풍노도 2 >
여의도 신화창조당에 들어서자 국회의원들과 창당 멤버, 당직자 등이 나를 향해 열광적인 환호성과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우와와와와...!
-이태수를 청와대로!
-이태수 화이팅!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그들의 찬사를 온몸으로 만끽하며 연단으로 올라갔다.
좌중을 휘 둘러본 뒤 신화창조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시작했다.
"저는 북한과 중국, 일본에 업신여김을 당하는 대한민국을 미국에 맞먹는 초강대국으로 건설할 생각입니다!"
"혹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저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드러내더군요. 그래서 오늘 이자리를 빌어 내가 왜, 대한민국의 대선에 뛰어들었는지 소상히 밝히겠습니다."
생수를 한모금 들이킨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민족적 자긍심 자체가 없는 정치 모리배들이 대한민국의 통수권자로 등극하는 일을 막기 위해 대통령으로 출마한 겁니다."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정치꾼 나부랭이들이 청와대에 들어간다면 한국은 영원히 약소국으로 연명하며 주변 국가들에게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될 겁니다."
"특히 북한은 핵무기를 이용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날마다 공갈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허나, 한국의 정치인들은 그런 북한을 향해 비핵화 회담을 개최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궤변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북한은 절대 핵무기를 포기 안합니다. 그들의 생명줄이기 때문이죠."
"그럼 우리 한국은 어찌해야 하느냐? 답은 하나 밖에 없어요."
"한국 역시 북한처럼 핵무장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북한의 핵을 억제 할 수 있는 겁니다."
"냉전시대 구소련과 미국은 서로간의 핵무기를 이용해 공포의 평화를 구축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냉전시대의 교훈을 되새겨야 합니다. 핵무기를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핵무기 밖에 없는 겁니다!"
순간 장내에 우뢰와 같은 박수 갈채가 길게 메아리쳤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저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공식화 할 겁니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서 한국의 핵무장에 관해서 양해를 구할 겁니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하더군요.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건 단세포적인 망상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한국의 핵무장에 관해서 너그러운 자세로 용인할 겁니다.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원 여러분들과 국민 여러분들은 대선에서 저에게 반드시 뜻 깊은 한표를 행사해 주십시오."
***
여의도 모처.
박선미 대표와 조중동 사주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핵무장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이태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에서 파멸적인 경제제재를 가할 거에요."
박선미의 말에 사주들이 공감을 표명했다.
"이태수는 너무 과격한 인물입니다. 그런 남자가 대통령이 된다면 한국은 북한 꼴이 날 겁니다."
"맞습니다. 이태수는 절대 청와대에 들어가면 안되는 인물이에요."
"그러니 우리 모두 박 대표님이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웁시다."
조중동 사주들이 그리 화답하자 박선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박선미는 회합을 끝마친 뒤 한국당 당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당사에 도착하자마자 최고위원회를 소집했다.
"당내 경선을 2주 간의 일정으로 다음 주부터 시작하죠?"
박선미가 모두발언을 내뱉자 최고위원들이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표명했다.
"경선을 끝내자마자 전국 각지에 유세를 떠날 생각이니 각 지구당 위원장에게 협조를 구하세요."
"예. 대표님."
***
시내 모처.
김태섭은 장내에 운집한 전현직 군장성들에게 본론을 꺼냈다.
"한국의 핵무장은 자위권 차원입니다. 그러니 장군님들이 회장님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해 주십시오."
전직 육군 대장 출신인 원대섭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국은 절대 한국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회장님에게 대선 출마를 포기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러자 장내의 군장성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 의견을 표명했다.
"우리는 한국당의 박선미 대표님을 지지합니다. 그러니 앞으로 절대 저희에게 연락을 하지 마십시오."
원대섭이 그리 말하자 장성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모습에 태섭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한가득 드리워졌다.
***
한강변을 거닐며 태섭과 대화를 시작했다.
"군장성들을 포섭해야 보수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군장성들 대다수가 이미 박선미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입니다."
"돈을 준다고 해봤나?"
"그런 말을 은근히 꺼내봤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재계는?"
"박선미의 눈치를 보느라 정중동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역시 믿을 구석은 하나 밖에 없었다.
***
힐튼 호텔 펜트하우스로 가신 그룹을 모두 호출했다.
김명우와 김태섭, 우명석, 박용범, 김용대, 강태호, 주한수 등을 차례로 둘러본 뒤 내 결심을 밝혔다.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려면 공직자 선거법에 의거해, 사조직의 단체장을 맡을 수 없다고 하더군."
그리 말하자 녀석들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생각을 해봤는데 명우가 히말라야 투자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우명석 의원이 신화창조당의 대표를 책임지는 게 좋을 거 같다."
순간 명우의 얼굴에 격렬한 환희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히말라야 투자그룹은 전 세계 최고 기업인 히말라야 전자를 산하에 두고 있었다.
"너무 좋아하지말고. 그리고 히말라야전자는 지금처럼 박용범 대표가 맡아주십시오."
"감사합니다. 회장님."
박용범은 그리 답한 뒤 공손한 자세로 면전에 시립했다.
"그리고 우명석 의원이 당을 맡으세요."
그러자 명석이 좋아죽는 얼굴로 화답했다.
"회장님의 대선 승리를 위해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드림 케이블 방송사는 김용대 당신이 책임져."
순간 김용대가 감격한 얼굴로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마지막으로 김태섭과 강태호는 선거조직을 관리해."
태섭과 태호가 일산불란하게 복명했다.
"넵. 회장님."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내일 날이 밝는 즉시 언론사에 이같은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해."
"말씀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드디어 대망의 18대 대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신화창조당 대통령 후보로 등록하자마자 서울 도심지에서 대규모 유세를 시작했다.
길가를 오가는 시민들에게 핵심공약을 큰 목소리로 설파했다.
"저는 한국의 핵무장과 국민 기본소득제, 지방자치제 폐지, 사회지도층 비리 수사처, 20대 대기업 해외공장 이전 금지, 외국인 노동자 추방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허나, 시민들은 냉소적인 얼굴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내 말을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그들은 내가 제시한 핵심 공약을 공수표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정치인들의 거짓말에 이골이 난 표정이었다.
서울 도심지에서 첫날 유세를 끝마치자마자 신화창조당의 우명석 대표를 내 집으로 불러들였다.
"선거 유세는 힘만 들고 별로 소득이 없는거 같아요."
그리 말하자 우명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TV 토론이 중요한 겁니다. 전국민들이 시청하는 프로거든요."
"TV 토론 일정을 말해보세요."
그가 즉답했다.
"1월 30일, 2월 2일, 2월 8일 이렇게 3차례가 열릴 예정입니다."
우명석을 내보낸 뒤 대포폰을 이용해 강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강남역 사물함 주변에 야구 모자와 흰색 마스크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1407번 사물함에 에비앙 생수를 집어넣자마자 장내에서 재빨리 사라졌다.
10분 뒤, 짧은 머리의 남자가 사물함 근처에 나타났다.
그는 1407번 사물함의 비번키를 누른 후 에비앙 생수병에 주사기를 꽂았다.
남자는 작업을 끝마친 뒤 태연한 얼굴로 강남역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는 강남역을 벗어나자마자 인천국제 공항행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실었다.
***
KBC 방송국으로 들어가자 방송사 대표와 관계자들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녀석들과 의례적인 악수를 교환한 뒤 토론회가 열리는 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튜디오를 둘러보자 방청객들과 야당 후보가 시야에 들어왔다.
방청객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야당 후보에게 의례적인 악수를 청했다.
그와 악수를 교환한 뒤 '이태수 후보'라는 글자가 쓰여진 의자에 착석했다.
30분 뒤, 박선미가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악수대신 목례를 취하며 자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사회자의 모두 연설이 시작됐다.
그는 흔해빠진 헛소리를 남발한 후 후보자들 간의 자유토론을 지시했다.
야당 후보가 박선미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친의 독재정치를 보고 배운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제 2의 박정후 대통령이 될 거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그 점에 관해서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건 오해에 불과해요. 저는 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치를 할 거에요. 그리고 우리 아버지를 독재자라고 비난하시는데, 우리 아버지 덕분에 한국의 경제가 발전한 거에요."
"부친의 독재정치를 아직도 인정하지 않으시는군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박 후보께서는 대통령의 자격이 없는 겁니다."
"18년 동안의 철권 통치 기간 중에 비명횡사한 사람의 수가 1만명이 넘어요. 그런 사실을 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야당 후보의 맹공에 박선미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직후 성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한국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 대통령 토론회를 하는 거에요. 그런 마당에 왜, 자꾸 옛날 얘기를 들먹이시는 거죠?"
그녀의 입에서 힐난조의 어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야당 후보가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사회자의 말이 들려왔다.
"이태수 후보자에게도 질문을 하시죠?"
그러자 야당 후보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태수 후보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사회자가 은근한 얼굴로 물었다.
"이유를 알수 있을까요?"
"황당무계한 대선공약으로 일관하기 때문이죠. 토론할 가치조차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를 개무시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체념한 얼굴로 박선미에게 질문 차례를 넘겼다.
"박선미 후보자의 질문 시간입니다."
그러자 박선미가 야당 후보에게 질문을 던졌다.
"후보님의 대선 공약 중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 하는 공약에 눈길이 가더군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 기업에 막대한 부담이 갈텐데, 그 문제에 관해서 답변해 주시죠?"
야당 후보의 입에서 무덤덤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건, 섣부른 예단에 불과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회사 재정에 부담이 가겠지만, 정부 예산으로 일정 수준의 지원정책을 실행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박선미가 고개를 저으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그 말씀은 결국 정부 예산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말이잖아요."
"한국의 비정규직 인력이 최소 7백만명 이상인데, 그분들 모두에게 정규직 혜택을 줄 경우 최소 1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구요!"
순간 야당 후보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건 섣부른 예단에 불과합니다. 그런 식으로 제 공약을 폄훼하지 마십시오!"
사회자는 야당 후보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자 박선미에게 넌지시 권유했다.
"이태수 후보자에게 질문을 하시죠."
그러자 박선미 역시 고개를 저으며 나를 무시하는 언사를 내뱉었다.
"이 후보자는 돈으로 정치권력을 사려는 오만한 사람이에요. 그런 이유로 저는 그에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박선미와 야당 후보자 모두 나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내 순위가 3위에 불과한 탓이었다.
대선토론을 끝마친 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대포폰을 이용해 강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의 경과를 보고해 봐.
-작업을 순조롭게 끝마쳤습니다.
-목표물이 생수를 마셨나?
-방금 전에 마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지금 당장 동남아로 떠나.
-알겠습니다. 회장님.
***
오전 7시경 신화창조당으로 향했다.
당사 대표실에 들어서자 우명석이 나를 반겼다.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나요?"
그러자 우명석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전히 3위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1위는 누구죠?"
"박선미 후봅니다. 2위인 야당 후보를 15% 격차로 앞서고 있습니다."
"그녀가 중도에 탈락한다면 보수표가 나에게 오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그녀가 중도에 탈락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유야 만들면 그만이죠."
그러자 명석이 뭔가를 눈치챈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저 모르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오늘 밤 9시 뉴스에 놀랄 만한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후후..."
그리 말하며 두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그날 밤.
부산에서 선거 유세를 치룬 뒤 시내 호텔에서 9시 뉴스를 시청했다.
앵커의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당의 대선후보였던 박선미 후보자가 오후 3시경 수도권 선거 유세 도중 급성 폐렴으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녀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거대한 충격파에 휩싸인 채 조문 장소인 강북 서울 병원으로 속속 집결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의 당직자들은 박선미 후보의 돌연한 변고에 말을 잇지 못한 채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중략...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곧바로 우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론조사를 시작하세요.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업체에 조사를 의뢰하세요.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통화를 끊자마자 김태섭에게 전화를 돌렸다.
-군장성 출신과 보수 인사들에게 지지선언문을 받아내.
-돈 달라고 아우성을 칠 겁니다.
-돈은 달라는 대로 준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 질풍노도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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