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왕지도(覇王之道) 2 >
서울시내 모처에 정통부 장관인 이기문과 삼송전자, LC전자의 관계자들이 모여들었다.
이기문 장관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이폰의 한국 출시를 더 이상 막을 수 없습니다. 미국에서 통상압력이 심하게 들어오고 있어요."
그러자 삼송전자와 LC전자의 관계자들이 앓는 듯한 얼굴로 하소연을 쏟아냈다.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되면 대한민국의 핸드폰 산업이 모조리 망할 겁니다. 그러니 제발 1년 정도만 아이폰 출시를 막아주십시오."
"윈도우 모바일을 기반으로하는 스마트폰이 조만간 출시될 겁니다. 그러니 딱 1년만 아이폰을 막아주십시오. 장관님."
이기문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떠올랐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칼컴의 코헨 CEO가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007가방이 들려있었다.
코헨은 007가방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스마트폰 시제품을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통알루미늄 방식으로 주조한 5.4인치 사이즈의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자 알류미늄 특유의 서늘한 촉감이 느껴졌다.
"주요 사양을 말씀해 보세요?"
"저희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스납드라곤 모바일 CPU와 아드레노 그래픽 코어, 통신모뎀 등이 통합원칩 방식으로 장착되어 있습니다."
"배터리는 어디서 납품 받으신 겁니까?"
"LC전자에서 전량 납품을 받았습니다."
"배터리 용량이 어느 정도죠?"
"1200암페어와 1500암페어 두 종류로 출시될 예정입니다."
"멀티터치도 가능한가요?"
코헨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즉답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수고하셨습니다."
그리 말하며 코헨과 힘찬 악수를 교환했다.
코헨을 내보낸 뒤 시제품을 이용해 인터넷 서핑과 모바일 게임 등을 차례로 테스트했다.
시제품은 기대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의 아이폰에 필적하는 성능이었다.
물론 게임 면에서는 아이폰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그건 배터리 지속시간으로 어느 정도 커버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얀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을 양산하고 앱생태계를 조성하는 일만 남았다.
다음날.
히말라야전자 수원 공장으로 시찰을 나갔다.
반도체 생산공정을 둘러본 뒤 박용범 대표에게 칼컴이 만든 스마트폰의 시제품을 보여줬다.
박용범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을 세심히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감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이폰을 방불케하는 성능 같습니다. 회장님."
"그렇지만 아직 게임 성능은 아이폰보다 한수 뒤처지는 게 현실이에요."
"그거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 아니겠습니까?"
박용범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내년 1분기까지 얀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 양산을 완료하세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중요한 건 앱생태계 아니겠습니까?"
"그 문제는 앤디 루반 사장이 알아서 할겁니다. 그러니 스마트폰 양산에 집중해 주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럼 내일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주한수와 경호원 등을 대동한 채 서울로 발길로 돌렸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가 이명복에 관해서 보고를 올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식으로 출범할 모양입니다."
한수가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제 이명복이 본격적으로 회장님을 노릴 겁니다."
"그놈이 만약 싸움을 걸어온다면 열배 백배로 되돌려줄 생각이니까 당신은 쓸데없이 걱정하지마라."
"정말 현직 대통령과 사생결단이라도 내실 생각입니까?"
내 앞길을 가로막는 자식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제거할 생각이었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 이상 말시키지마라. 피곤하니까."
그리 말하며 두눈을 지그시 내리감았다.
***
삼송전자는 윈도우 모바일을 기반으로하는 욤니아 스마트폰을 급하게 출시했다.
허나, 욤니아는 무한재부팅, 배터리 방전, 어플리케이션 실행오류 등의 갖가지 버그가 속출하며 소비자들에게 숱한 원성을 들었다.
그러나 삼송전자는 소비자들의 사용부주의가 원인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며 리콜을 결사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주한수가 면전에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삼송전자에서 출시한 욤니아 스마트폰이 들려있었다.
한수가 건넨 욤니아폰은 소문대로 갖가지 버그로 중무장한 쓰레기 폰이었다.
넷서핑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게다가 배터리도 사용한지 30분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데스크탑 윈도우를 모바일 운영체제로 급하게 개조한 부작용이었다.
이런 허접데기를 백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한 삼송전자 경영진들의 무대뽀 정신에, 내심 혀를 길게 내둘렀다.
한수에게 욤니아폰을 돌려주며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소문대로 쓰레기 폰이구만."
주한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LC전자에서 출시한 스마트폰도 욤니아폰과 오십보 백보라고 하더군요."
"아이폰이 한국에 출시되기전에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삼송전자와 LC전자가 테스트도 제대로 안하고 폰을 급하게 출시한거 같습니다."
주한수의 말이 정답이었다.
"앤디 루반에게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전언을 넣어."
"네. 회장님."
***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한 이명복은 이태수에게 이를 갈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태수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가지 꽃놀이 패를 활용할 계획이었다.
늦은 밤.
삼청동 안가에 이명복과 최측근 실세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도감청 방지룸에서 머리를 맞댄 채 이태수를 주제로 뜨거운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이태수를 굴복시키려면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하는 게 최선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는 전 세계 최고의 재벌입니다. 분명 뒤가 구린 점이 많을 겁니다."
"대통령직에 취임하는 즉시 사정을 명분으로 이태수를 무자비하게 단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벌들이 우리 말을 들어먹을 겁니다."
"이태수를 수수방관한다면 재벌들이 당선자님을 우습게 여길 겁니다."
이명복은 측근 가신들의 말을 묵묵히 경청한 뒤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태수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어봐."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좌중이 일사불란하게 복명했다.
"넵. 당선자님!"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커피를 음미하며 창가를 서성일 찰나, 앤디 루반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우리는 악수를 교환한 뒤 본격적인 담소를 이어나갔다.
"IT 개발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시제품의 우수한 성능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앤디 루반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앱생태계를 순조롭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얀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성능을 반드시 공개해야 합니다. 회장님."
"만약 애플에 그같은 사실이 전해진다면 좋을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 급한건 우리 쪽입니다. IT 개발자들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면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줘야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IT 개발자들을 몇명이나 초빙할 생각이죠?"
"최소 천명 이상의 개발자들 앞에서 얀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성능을 시연할 계획입니다."
"염두에 둔 시연회장이 있습니까?"
루반이 창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창 밖에 드리워진 아름다운 O2 아레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나직한 어조를 내뱉었다.
"O2 아레나에서 얀드로이드 스마트폰을 IT 개발자들에게 공개하고 싶습니다."
O2 아레나는 내년 연말까지 콘서트가 예약된 상황이었다.
"미안하지만 O2 아레나는 예약 스케쥴이 꽉 찬 상황이에요. 그러니 다른 장소를 섭외하시죠."
그러자 루반이 아쉬워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미국에서 시연회를 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행사를 개최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얀드로이드 스마트폰의 정보유출을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으음..."
내 입에서 절로 깊은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부탁드립니다. 회장님."
거부할 수 없는 루반의 애절한 읍소였다.
"좋습니다. 대관 일정을 조절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루반을 내보낸 뒤 김용대 본부장을 호출했다.
잠시 뒤, 김용대가 면전에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O2 아레나 대관 문제로 양해를 구할 사항이 있거든."
"말씀하십시오. 회장님."
"히말라야전자가 출시할 예정인 스마트폰의 시연회를 O2 아레나에서 개최할 생각이야. 크리스마스 시즌에."
그러자 용대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가 잡혀있습니다. 회장님."
"어디 애들인데?"
"SN 엔텁니다."
"양해를 구해봐."
"이미 잔금까지 전부 받은 상황이라 양해를 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말인가?"
"최소 3배 이상의 위약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SN 엔터에 위약금을 지불하면 되잖아."
용대의 입에서 볼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위약금이 거의 15억에 육박합니다. 그러니 재고해 주십시오."
"돈은 신경쓰지말고 약관대로 위약금을 지급해. 알겠어?"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서야 용대가 말귀를 알아먹었다.
녀석이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가봐."
"넵. 회장님."
***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에 김태섭과 전수혁 검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VIP 룸에서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며 아가씨들과 고급 양주를 만끽했다.
다음날.
서울 모처에 전수혁 검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명복의 최측근 인사로 통하는 오기춘 의원과 밀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전수혁이 넌지시 말했다.
"이태수 회장은 김태섭을 이용해 검사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돈을 주는 겁니까?"
"떡값은 기본이고, 여자와 고급 양주도 제공하더군요."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죠."
전수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길게 이었다.
"논현동 주변에 르네상스 빌딩이 있습니다. 그곳에 펜트하우스를 조성해서 검사들을 접대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오기춘이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그곳에 다시 가셔서 검사들이 향응을 접대받는 광경을 은밀히 촬영해 주십시오."
기춘은 그리 말하며 만년필 스타일의 초소형 몰카 장비를 수혁에게 건넸다.
"꼭, 이렇께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이 회장의 목에 튼튼한 개줄을 매달 생각입니다. 그러니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검사장님."
수혁의 얼굴에 곤혹스런 표정이 떠올랐다.
그때, 기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강타했다.
"이번 일에 협조해 주시면 검찰 총장직을 약속하겠습니다."
순간 수혁이 반색한 얼굴로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제가 책임지고 총장 타이틀을 달아드리겠습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기춘은 이명복의 최측근이었다.
수혁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원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검사장님."
"대신 약속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우하하..."
기춘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
회사 업무를 끝마친 뒤 상암동 난지천 공원을 찾았다.
고즈넉한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인적 뜸한 공원을 여유로이 거닐 즈음 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말라야 복지재단의 설립이 완료됐습니다."
"자기 자본금은?"
"7조원 가량입니다."
"복지재단 이사장이 할 일이 뭐지?"
주한수가 즉답했다.
"고아원과 양로원, 장애 시설 등을 시찰한 뒤 원생들을 위무하는 한편, 시설을 관리하는 원장들에게 거액의 금일봉을 전달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국방을 책임지는 군시설도 틈나는대로 둘러보셔야 합니다."
"이미지 메이킹을 하라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회장님."
시의적절한 조언이었다.
"쓸만한 고아원과 양로원, 장애시설 등을 섭외해. 원장들이 깨끗한 곳으로."
"네. 회장님."
며칠 후.
주한수와 경호원 등을 대동한 채 수도권 인근의 고아원과 양로원, 장애시설 등을 두루 시찰했다.
더불어 원장 등에게 수억원에 달하는 금일봉을 전달했다.
히말라야 복지재단 이사장으로서 맡은 바 직분에 최선을 다한 뒤 서울로 발길을 되돌렸다.
서울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옆자리에 동승한 주한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언론사에 히말라야 복지재단의 선행에 대해서 기사를 실으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
드림박스 장준기 대표가 힐튼호텔 레스토랑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창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노신사에게 목례를 취한 후 그 쪽으로 걸어갔다.
장준기는 조일신문 오석환 회장과 프랑스 정식을 음미하는 한편 히말라야 복지재단의 선행에 대해서 길게 말을 이었다.
"우리 회장님은 7조원 규모의 복지재단을 설립하신 이후,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을 돕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를 쓰시고 계십니다."
"그러니 오 회장님이 그런 내용을 신문 지면에 대서특필해 주십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일 사회면 1면에 회장님이 고아원 원생들과 양로원의 할아버지 할머니 등을 보살피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릴 겁니다. 하하..."
장준기기 흡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답으로 한달 동안 1면과 2면에 히말라야전자의 광고를 실어드리죠."
"감사합니다. 대표님."
***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
김명철의 시선이 VIP 룸을 관할하는 폐쇄회로 TV에 모아졌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전수혁 검사장에게 눈길을 고정했다.
'만년필을 수시로 들었다 놨다하는 게 영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전수혁은 아가씨들과 술을 접대받는 검사들을 향해 만년필을 수시로 들이밀었다.
그런 모습을 수차례 목격한 명철의 뇌리에 만년필에 장착하는 몰카 장비가 떠올랐다.
그는 곧바로 책상을 열어서 만년필 스타일의 몰카장비를 꺼냈다.
'저거...? 설마...?'
명철은 뭔가를 확신한 얼굴로 강태호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 패왕지도(覇王之道)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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