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일 샌드 1 >
삼송전자 서초동 사옥 대회의실.
상석에 좌정한 김민용 회장의 입에서 거친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핸드폰 부문의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폭으로 하락한 이유가 뭡니까? 일을 개판으로 하는 주제에 목구멍에 밥숟갈이 넘어갑니까!"
"작년 동기(同期)에 비해서 매출은 49%, 영업이익은 무려 58% 가까이 폭락한 이유가 대체 뭐냐구요!"
민용의 성난 목소리가 장내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러기를 얼마 후, 핸드폰 부문의 수장인 김철곤 전무가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애플의 아이폰이 중고가 휴대폰 시장을 완벽히 장악했습니다. 북미지역과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 시장마저 아이폰이 점령하는 추셉니다."
"그런 연유로 우리 삼송전자의 중고가 휴대폰이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이 현실입니다. 덩달아 매출과 영업이익도 작년 동기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노키아마저 매출과 영업이익이 큰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회장님."
민용의 입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 당신들은 책임이 없다, 그말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김철곤 전무가 말끝을 흐리자 민용이 분노한 얼굴로 서슬퍼런 언사를 내뱉었다.
"면피성 발언은 그만 하십시오! 3개월 안에 아이폰에 필적하는 스마트폰을 반드시 만드십시오."
"만약 내 명령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김 전무 당신은 옷벗을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민용은 그 말을 끝으로 대회의실을 박차고 나왔다.
그날 밤.
김철곤 전무가 한남동 접견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보고서가 들려있었다.
김철곤이 건넨 보고서를 세심히 읽어내려가던 민용의 얼굴에 불만스런 표정이 그려졌다.
"MS에서 원하는 단가가 왜 이리 높은 겁니까?"
"윈도우를 모바일 환경에 적합하게 개조하는 비용이 생각 외로 많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윈도우에 걸맞는 어플리케이션 개발 비용도 우리 쪽에 전가하는 거 같습니다."
"윈도우 말고, 다른 쓸만한 모바일 운영체제는 없는 겁니까?"
"지금 현재로는 윈도우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예전에 우리 회사에 매각을 요청한 얀드로이드가 있지 않습니까?"
김철곤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답변했다.
"얀드로이드사는 이미 히말라야 투자그룹이 지분을 100% 인수한 상황입니다."
순간 김민용이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성난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 얘기를 왜 지금에서야 하는 겁니까!"
"저희도 최근에 알아낸 사실입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민용의 얼굴에 참담한 표정이 그려졌다.
직후 힘없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때, 김철곤의 입에서 은근한 어조가 흘러나왔다.
"LC전자가 히말라야전자와 대규모 터치패널 납품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파다하게 나돌고 있습니다."
민용은 더 이상 놀랄 기운도 없었다.
그런 탓인지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LC전자 고위 임원이 흘린 정봅니다."
철곤이 두눈을 빛내며 확신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히말라야전자도 스마트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는거 같습니다."
민용 역시 철곤과 같은 생각이었다.
"히말라야전자가 스마트폰을 양산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을 접수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루빨리 MS 측과 모바일 윈도우 계약을 체결하세요."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회장님."
***
캘리포니아 실리콘벨리 인근의 건물을 방문했다.
그곳에는 칼컴과 얀드로이드사의 R&D 통합센터가 입주한 상태였다.
그들은 스마트폰 개발을 위해 협업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지하에 위치한 연구실로 들어서자 코헨과 앤디 루반이 나를 맞이했다.
그들과 악수를 교환한 뒤 본론을 꺼냈다.
"얀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한 스마트폰을 언제쯤 출시할 수 있습니까?"
내 질문에 루반이 대답했다.
"내년 1월 경에 출시가 가능할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에 한가지 선결 과제가 있습니다."
"그게 뭐죠?"
"애플처럼 얀드로이드 기반의 앱생태계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합니다."
그의 말대로 스마트폰 출시 전에 앱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선결 과제였다.
"얀드로이드 기반의 앱생태계를 만드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이번에도 루반이 즉답했다.
"개발자들을 대규모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플을 능가하는 당근을 그들에게 안겨줘야 합니다."
"당근이라...?"
"그렇습니다. 회장님."
"좀 더 저세히 말씀해 주시죠."
루반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애플의 경우 앱 다운로드 수수료 명목으로 거의 50%에 육박하는 돈을 떼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애플 개발사들은 과다한 수수료에 불만이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그 점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애플보다 저렴한 수수료 정책을 취하자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회장님."
루반은 그리 화답하며 말을 이었다.
"대략 25% 전후의 수수료를 개발자들에게 제안하면 애플 쪽 개발자들이 대거 우리 얀드로이드 쪽으로 넘어올 겁니다."
그때, 코헨이 다른 의견을 표명했다.
"그건 섣부른 낙관에 불과해요. 아이폰은 이미 수천만대가 팔려나간 상황입니다. 앱 개발자 입장에서 얀드로이드 어플을 개발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얀드로이드 앱생태계 구축은 지상최대의 과업이었다.
스마트폰의 성패가 달린 일이었다.
코헨을 응시하며 질문을 던졌다.
"개발자들을 얀드로이드 쪽으로 끌어올 비책이 있으십니까?"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나름 염두에 둔 방책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앱 개발자들에게 히말라야전자 스마트폰의 우수성과 가능성을 널리 알린다면 상당수의 개발자들이 우리 얀드로이드 진영으로 넘어올 겁니다."
"한마디로 아이폰에 필적하는 스마트폰을 하루빨리 개발하는 게 최선책입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모양새였다.
"루반 대표가 책임지고 개발자들과 연쇄적인 접촉을 하세요. 그리고 코헨 사장은 금년 11월 까지 통합 원칩 개발을 마무리 지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 말을 끝으로 시내에 위치한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 방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음미할 무렵, 주한수가 면전에 나타났다.
"하수용 이사의 연락입니다."
한수는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폰을 받자 하수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강산업을 면밀히 조사했지만 김동진 대표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데 끝내 실패했습니다.
-가족도 조사했나?
-네. 회장님.
-어디까지 조사했지?
-직계 존비속과 친가쪽 사촌 등을 조사했습니다.
-외가쪽 사촌은?
-아직 조사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뭔가?
-외가쪽 사촌들이 무려 백명이 넘는 탓에, 단시일 안에 조사를 완료하는 게 거의 불가능합니다.
-외가쪽 사촌 역시 단 한명도 빼놓지 말고 정밀히 조사해.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혹시 모르니까 김태섭한테 연락해서 김동진의 출국금지도 요청하고.
-그리고, 그놈의 곁에 애들을 붙여놔.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뒤 노트북을 이용해 국내외 계좌를 두루 살폈다.
HBC 은행의 페이퍼 계좌에 15조원 내외의 자금이 있었고, 히말라야전자의 사내유보금도 14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국내 은행에도 3조원 대의 자금이 예치된 상태였다.
모두 합할 경우 32조원 가량의 여유자금이 있었다.
허나, 나는 현실에 안주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었다.
여유자금 중에서 일정 액수를 해외 유전 개발에 쏟아부을 계획이었다.
에너지 산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호텔 방에 중년의 백인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유전 개발을 전문으로하는 벡스텔 사의 CEO인 노아 글렘 회장이었다.
우리는 오찬을 함께하며 유전 개발에 대해서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기 시작했다.
"저희 회사는 오일 샌드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존의 유전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오일 샌드가 뭡니까?"
"말 그대로 흙 속에 포함된 석유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흙 속에 함유된 석유를 어떻게 추출하는 거죠?"
"우리가 자체 개발한 최첨단 공법을 이용한다면 오일 샌드를 얼마든지 추출할 수 있습니다."
"오일 샌드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십시오."
"일단 오일 샌드의 단점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해보십시오."
"오일 샌드는 기존의 원유보다 생산 단가가 최소 30%이상 비쌉니다. 지하 암반층에서 원유를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장점은 뭔가요?"
"오일 샌드는 북미 지역에 대다수 분포하는 관계로 안정적으로 원유를 추출할 수 있습니다. 그게 최대 장점입니다."
"생산단가가 높은데 판로가 있을까요?"
글렘 회장이 두눈을 빛내며 즉답했다.
"국제 정세는 언제 어떻게 변화할지 알수 없습니다. 특히 중동의 화약고는 예측 불가능한 수준이죠."
"그렇다고 해도 생산단가가 높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거 아닙니까?"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 미국이 주도적으로 국제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든다면 원유 가격이 급등할 겁니다. 그럴 경우 오일 샌드의 경제적 수익이 원활히 보장받게 될 겁니다."
글렘의 입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한 비밀스런 언사가 쏟아져 나왔다.
"미국 정부는 중동의 산유국과 러시아,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오일 샌드를 전략 무기화 할 예정입니다."
"어디에서 들으신 말씀입니까?"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죠. 회장님은 외국인이라 잘 모르시겠지만."
글렘은 에너지 업게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자였다.
그의 말은 나름 신빙성이 높았다.
"회장님이 우리 회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 하신다면 분명히 큰 이익을 보실 겁니다."
"원하시는 투자액수를 말씀해 보십시오."
"벡스텔의 지분 45%를 매입해 주십시오."
"지분 총액이 얼마죠?"
"33억 달러 가량입니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들이 확보한 원유의 총량이었다.
"지금 현재 어느 정도의 유전을 확보하셨습니까?"
"북미 지역에 산재한 오일 샌드 유전지대의 60% 정도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매장량이 어느 정도죠?"
"6천7백억 배럴 안팎입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매장량이었다.
러시아와 사우디의 석유 매장량을 한참이나 능가하는 규모였다.
"일단 회장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래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회장님."
글렘은 그리 화답하며 내 오른손을 두손으로 공손히 마주잡았다.
***
워싱턴 DC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백악관 경호원들이 공항에서 나를 에스코트했다.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비밀리에 백악관을 방문했다.
백악관 중앙 관저로 들어서자 안젤리나와 아바마 대통령이 환한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안젤라와 친근한 포옹을 나눈 뒤 아바마와 힘찬 악수를 교환했다.
백악관 주방장이 차려낸 프랑스 정식으로 배를 채운 뒤 아바마에게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대통령 각하에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아바마가 친절한 눈빛을 내비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이번에 오일 샌드 업체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 각하에게 그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오일 샌드는 기존의 원유보다 생산단가가 30%이상 높습니다."
아바마가 별일 아니라는 얼굴로 시원하게 입을 열었다.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만간 국제원유가 한바탕 거칠게 요동을 칠 겁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오일 샌드 업체에 투자를 하십시오."
그는 오일 샌드의 경제성을 낙관하고 있었다.
일반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귓등으로 흘렸겠지만, 아바마는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 대통령이었다.
글렘 회장의 말대로 미국은 국제원유 가격을 대폭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아바마의 믿음직한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우리 미국 정부는 북미대륙에 산재한 막대한 양의 오일 샌드에 타당한 경제성을 부여할 계획입니다."
그는 국제 원유가격을 대폭 인상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었다.
"오일 샌드를 이용해서 전 세계의 에너지 패권을 차지할 생각이십니까?"
아바마는 내 질문에 가타부타 대답없이 입가에 한줄기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나는 그날, 벡스텔 사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전용기가 검푸른 현해탄을 건널 무렵, 하수용 이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폰을 귓가에 가져가자 하수용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동진 이사가 종적을 감췄습니다.
-애들을 붙이지 않았나?
-감시하는 친구들이 잠시 딴 눈을 파는 틈에, 김동진이 도망간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김동진이 갑자기 도주한 이유가 뭐야?
-외가쪽 사촌들을 조사한 결과 태강산업의 이훈철 대표가 이종사촌 동생으로 밝혀졌습니다. 아마 그걸 눈치챈 모양입니다.
-김동진을 반드시 내 앞으로 끌고 와!
-넵. 회장님.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상암동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에 들어서자 하수용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동진의 행방은?"
"밀항 루트인 인천과 부산, 강릉, 마산, 속초 등지에 사람을 보냈습니다."
"공항은?"
"출국금지 상태라 공항을 통해서 해외로 빠져나가지는 못할 겁니다."
"위조여권을 만들수도 있잖아."
"대림동에도 사람을 보냈으니, 그 점은 우려하지 마십시오."
창가를 서성이며 수용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동진이 횡령한 돈이 얼마지?"
"총액 2300억 가량입니다."
"많이도 해쳐먹었군."
"회사 대표인 김동진을 횡령 혐의로 고소한다면, 히말라야전자의 위신이 땅바닥으로 추락하겠지?"
"그리고 정치권 인사들도 날마다 우리 히말라야전자를 들쑤실테고."
수용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최선의 방책은 그놈이 횡령한 자금을 전액 회수한 후, 쥐도새도 모르게 모가지를 따는건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지."
"일단 김동진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셔야 합니다. 회장님."
하수용의 말이 정답이었다.
"강태호에게 김동진을 찾으라고 언질을 넣어."
"알겠습니다. 회장님."
< 오일 샌드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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