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18화 (43/200)

< 도널드 트램프 2 >

슈퍼스타 드림 시즌 2의 최종 우승자가 결정됐다.

그는 재미교포 출신의 채드 박이었다.

당연히 시청률도 20프로를 무난히 돌파했다.

그 덕분에 엄청난 광고 수익을 올렸다.

프로그램 순수익만 60억원에 육박할 지경이었다.

허나, 모든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최종 우승자인 채드 박의 케어 문제가 대두한 탓이었다.

가수는 무조건 음원 성적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가요계에서 살아남는다.

그러나 대박 엔터는 가수들을 제대로 케어할 만한 역량이 부족했다.

이렇다할 작곡가와 프로듀서들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유명 작곡가와 프로듀서를 초빙해서 디지털 싱글을 발매하는 게 최선이었다.

***

점심 시간을 이용해 대박 엔터가 있는 르네상스 빌딩을 방문했다.

4층 대표실로 들어가자 방기훈 실장이 나를 반겼다.

육중한 마호가니 책상에 좌정한 채 면전에 시립한 방기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 사장은?"

"아직 일본에 계십니다. 회장님."

"아직도 이창용 곁에 붙어 있는거야?"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창용은 일본 열도 전역에서 돔 투어와 유료 사인회를 돌고 있었다.

돈 독이 단단히 오른 모양새였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그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회사의 수익이 급증하는 탓이다.

"채드 박의 신곡 준비 상황을 보고해 봐."

"청담동 호랭이에게 곡과 프로듀싱을 부탁했습니다."

"얼마나 달래?"

"모두 합해서 2억에 쇼부를 봤습니다."

"신곡 뮤비는?"

"채일환 감독과 접촉하는 중입니다."

"채일환?"

"네. 감각적인 뮤비를 잘 만들기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몸값이 비싸겠구만."

"솔직히 그렇습니다. 회장님."

"하여튼 돈은 생각하지 말고, 최고 퀄리티의 곡과 뮤비를 뽑아. 그리고 맬런 최상위 권에 곡이 랭크될 수 있도록 홍보에 사력을 다해."

"그래서 말인데, 회장님에게 말씀 올릴 사안이 있습니다."

기훈은 그리 말하며 은근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할 말이 뭔데?"

"제가 알아보니까 맬런 음원 사이트의 차트 순위를 조작하는 세력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1억만 주면 개나소나 1위를 만들어 주는거죠."

놀라운 말이었다.

"확실한 정보냐?"

"이름도 없는 무명가수들이 맬런 차트 상위권에 하루아침에 이름을 올리는 게, 음원 브로커들의 농간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증거가 있나?"

"아쉽게도 확증은 없습니다. 회장님."

아직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음원 브로커가 실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음원 브로커와 접촉을 시도해 봐."

"말씀대로,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

늦은 밤.

강남 인근의 고급 룸살롱에 방기훈과 40대 중년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고급 양주를 만끽한 뒤 진지한 자세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부장님에게 묻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솔직히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기훈이 운을 떼자 중년 남자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는 일이라면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음원 순위 조작 브로커가 정말 있는 겁니까?"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즉답했다.

"당연히 있죠. 시중의 소문은 사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순위를 조작하는 거죠?"

"다수의 유령 ID를 이용해서 어뷰징과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방식으로 순위를 조작합니다. 물론 우리 회사가 막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전혀 통하지 않겠죠."

"그런 사실을 회사에서도 다 알고 있는 건가요?"

"네. 알면서도 그냥 놔두는 거죠. 어차피 그들 역시 고객인 탓에, 유령 ID를 많이 이용하면 할수록 회사 입장에서는 이득이거든요."

"고스란히 회사의 수익으로 연결된다는 말씀인가요?"

"맞습니다. 후후..."

남자는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며 양주를 입안 가득 털어넣었다.

그날, 방기훈은 음원 브로커가 차트 순위를 조작한다는 시중의 소문이 사실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놓여진 조간 신문들을 차례로 훑었다.

그러기를 문득 썩 내키지 않는 기사가 시야에 포착됐다.

조신일보 경제면에 반갑지 않은 기사가 실려있었다.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 히말라야 투자그룹과 매각 협상 진행 중!>

-삼송전자 측이 히말라야 투자그룹과 반도체 부문의 매각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송전자 관계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아직은 협상 과정을 공개할 수 없다며 말을 이끼는 분위기였다.

-만약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이 전격적으로 매각된다면 한국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지는 단독 기사였다.

삼송전자 관계자들이 조신 일보에 매각 정보를 흘린 모양이었다.

곧바로 김민용의 대포폰에 전화를 걸었다.

-너희 쪽에서 흘린 정보냐?

-무슨 말을 하는거야?

-조신일보 경제면을 보라고.

잠시 뒤, 수화기 너머에서 민용의 어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 실무 협상팀 애들이 기자놈들에게 주딩이를 나불거린 거 같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사안이니, 그만 화 풀어라.

-매각 협상이 끝날 때까지 보안을 지켜야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잖아. 그러니 그만하자.

녀석의 말대로 이미 지난 일이었다.

화를 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좋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안할게. 대신 내가 제시한 대로 17조원에 거래를 마무리 짓자.

-안그래도 그 문제로 전화를 하려고 했어.

-내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이냐?

-니가 원하는 대로 매각 대금을 17조원으로 낮춰줄게. 대신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게 뭔데?

-카이닉스 전자의 중구 본사 건물을 오라클 인베스트먼트 명의로 이전해 줘.

-이제 카이닉스 전자는 없어. 사명을 히말라야 전자로 변경했거든.

-사명이 중요한게 아니잖아.

-중구 본사 건물은 싯가로 최소 5천억을 상회하는 빌딩이야. 그런 알토란 같은 건물을 날로 먹겠다는 속셈이냐?

-대신 매각 대금을 2조원이나 다운 시켰잖아.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민용은 히말라야 전자의 중구 본사 빌딩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한가지만 묻자?

-뭔데?

-오라클 인베스트먼트의 정체가 뭐지?

-당연히 내가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지. 뻔한 걸 뭐하러 묻냐. 아마츄어처럼!

수화기에서 녀석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당장은 답하기가 그러니까 시간을 좀 줘라.

-많이는 못 준다. 2주일 이내에 가부를 결정해.

-알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통화를 끊은 뒤 재무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히말라야 전자의, 중구 본사 빌딩의 현재 시세를 지금 당장 파악하세요."

"그리 조치 하겠습니다. 회장님."

재무실장이 사무실에서 나가자마자 주한수 실장이 면전에 나타났다.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의 정민기 이사장이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네. 회장님."

잠시 뒤, 정민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커피를 음미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집없는 서민들과 고아, 독거 노인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행복한 집 만들기 운동'에 돌입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원하는 게 뭡니까?"

"당연히 거액의 기부금을..."

정민기는 말끝을 흐리며 노회한 눈빛으로 나를 은근히 살폈다.

그는 갖가지 명목으로 기업체에서 받은 기부금을 사적인 용도로 전횡하고 있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정민기는 시민사회 운동의 대부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정치권에도 나름의 발언권을 지닌 재야 거물이었다.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존재였다.

결국 정민기에게 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거 아니겠습니까? 헤헤..."

녀석의 입에서 간사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인터폰에 콜을 넣었다.

-재무실장을 다시 들어오라고 전해.

-예. 회장님.

재무실장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의아한 얼굴로 나와 정민기를 쳐다봤다.

"드림 복지 재단 계좌에 적립된 돈이 얼마나 있지?"

그가 즉답했다.

"대략 90억원 안팎입니다."

"그 중에서 70억 정도를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 계좌로 이체해."

그러자 정민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반면 재무실장의 얼굴은 금세 똥씹은 얼굴로 전락했다.

"회장님. 그 돈은 연말 불우이웃 돕기 성금과 각종 기부금에 사용될 자금입니다. 다시 한번 재고해 주십시오."

"잔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목소리를 높이자 재무실장이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이만 나가봐."

"네. 회장님."

재무실장을 내보낸 뒤 정민기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정치권에는 언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아직 별다른 계획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말은 그리 했지만, 녀석은 정치권에 입문하기 위해 여야의 유력인사들과 날마다 접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정 이사장님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입문하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전폭적으로 밀어드리죠."

순간 정민기가 감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이 정말입니까?"

"사실입니다. 그러니 기회가 오면 반드시 정치권으로 들어가십시오.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말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회장님."

민기는 그리 화답하며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

방기훈은 시내 모처에서 음원 브로커와 접촉을 갖고 있었다.

"채드 박의 신곡을 음원 차트 1위로 만들어 주십시오."

브로커가 두눈을 번뜩이며 입을 열었다.

"기간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소 한달 이상 1위를 유지해야 합니다. 맬런을 기준으로."

"단가가 만만치 않을거 같습니다."

"얼마가 필요하죠?"

"원래 이 바닥은 주간 단위로 단가가 설정됩니다. 1주당 7천만원이 표준 단가라고 할수 있죠."

브로커는 그리 말하며 입가에 담배를 베어 물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말아올리며 선심 쓰듯 입을 열었다.

"2억 5천을 주십시오. 원래는 단가대로 2억 8천을 받아야 하지만 신생 고객이니, 나름 우대해 드리겠습니다."

기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계약금을 얼마나 드려야 할까요?"

"현찰로 3천만원을 주십시오. 그리고 나머지 잔금도 모두 현찰로 지급해 주세요."

"그럼 내일 이곳에서 오후 3시경에 뵙는 것으로 하죠. 그때 계약금을 드리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봅시다."

그들은 악수를 교환한 뒤 각자의 갈 길로 뿔뿔이 흩어졌다.

다음날, 기훈은 음원 브로커에게 계약금 조로 현찰 3천만원을 지급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공화당의 당내 1차 경선 결과 부쉬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1위에 올라섰습니다. 반면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당내 경선에 도전했던 도널드 트램프는 저조한 득표수로 중도 탈락했습니다. 중략...

모두의 예상대로 트램프는 당내 1차 경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허나, 나는 그에게 전달한 정치 자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트램프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굳게 믿은 탓이다.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비록 1차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훗날 반드시 미국 정가를 쩌렁쩌렁 울릴 초거물이 될 인물이라고 확신했다.

내 동물적인 직감이었다.

트램프에게 좀 더 과감한 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내 사람으로 확실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달콤한 당근과 채찍이 반드시 필요했다.

트램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아름다운 여자와 돈이었다.

나는 저 두가지 비장의 무기를 그에게 아낌없이 제공할 생각이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뒤 트램프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뉴스를 봤습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회장님.

수화기에서 트램프의 사과의 변이 흘러나왔다.

-마음쓰지 마십시오.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하시면 될 일 아닙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제가 한결 속이 편해지는군요.

-암튼 그래서 말인데, 이번 기회에 한국에서 주말 휴가를 즐기시는 게 어떠신지요?

-저를 초대해 주시는 건가요?

-회장님에게 한국의 아름다운 미녀들을 여럿 소개하고 싶습니다.

-역시 우리는 서로 통하는 게 있나 봅니다. 우하하하...!

폰에서 트램프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좋습니다. 다음주에 시간을 내보겠습니다.

-그래주시면 제가 감사하죠. 그럼 회장님의 한국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그날 밤.

르네상스 빌딩 펜트하우스를 관리하는 김명철을 성심 빌딩에 위치한 개인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형님."

"다음주 목요일 부터 일요일 까지 펜트하우스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해."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귀빈이 올 예정이니까 검사들을 들이지 말라고."

그제서야 명철이 알아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이 무겁고 미모가 뛰어난 아가씨들을 잔뜩 준비해 놔."

"그런 애들은 태반이 텐프로라 몸값이 보통이 아닙니다."

"돈은 달라는 대로, 다 준다고 해. 마지막으로 초고화질 캠코더로 귀빈과 아가씨들이 노는 장면을 생생히 촬영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형님."

< 도널드 트램프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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