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114화 (39/200)

< 메모리 반도체 통합 2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면전에 나타난 김용대에게 내 의중을 전달했다.

"한국 광고공사에 지상파와 똑같은 수준의 광고 단가를 신청하세요."

용대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지상파 수준으로 광고 단가를 인상한다면 단기적으로 광고 매출이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드림 케이블은 지상파에 맞먹는 시청률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세요."

"회장님 말씀대로 광고공사에 단가 인상을 신청하겠습니다."

용대가 장내에서 사라지자마자 주한수 실장이 눈 앞에 나타났다.

"카이닉스 전자의 인수협약식이 오늘 오후 2시경에 과천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워커 회장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이미 출발한 상탭니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 하겠지?"

"월가 경력이 있는 남자니까, 회장님의 역할을 충분히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하수용 법무실장을 그곳으로 보내서 동정을 파악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카이닉스 전자의 김동진 기술이사를 호출해."

"넵. 회장님."

1시간 뒤.

김동진이 사무실에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인 뒤 면전에 공손히 시립했다.

"부지 매입에 대해서 보고하세요."

"공장 부지를 대다수 매입한 상황입니다. 이제 관계 부처의 OK 싸인만 떨어지면 5월달 부터 공장 건설이 가능할 거 같습니다."

"반도체 생산 설비를 확보 하셨나요?"

"일본과 네덜란드, 미국 등의 설비 업체들과 납품계약을 순조롭게 체결하는 중입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삼송전자 반도체 부문의 기술 수준을 말해 보세요."

"전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양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생산 설비를 40나노대 수준으로 교체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삼송 반도체를 인수하더라도 당분간 추가 투자는 필요없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

정국이 급변하고 있었다.

노무연 대통령의 지지세력들이 여당을 탈당한 후 열린당을 창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하루 아침에 야당으로 전락한 기존의 민진당 국회의원들은 노무연이 여당의 지지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며 연일 청와대를 강도높게 비난했다.

그 무렵, 김성우 대표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약속장소인 워커힐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지배인이 나를 마중했다.

"김 대표님은 VIP 룸에 계십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고개를 끄덕인 뒤 주한수에게 명을 내렸다.

"당신은 이곳에서 기다려."

"네. 회장님."

룸 안으로 들어가자 김성우가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겼다.

우리는 테이블 위에 차려진 양송이 스프와 맛 좋은 스테이크로 배를 채운 뒤 포도주를 음미하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국당과 민진당이 손을 잡고 노무연을 탄핵하기로 내부 결의를 다진 모양입니다."

"설마 탄핵까지 가겠습니까? 수도이전 문제와 선거법 위반 혐의 정도로?"

"문제는 한국당과 민진당이 손을 잡으면 탄핵 정족수를 충분히 채울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한국당과 민진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숫자는 200명이 넘었다.

국회의원 과반수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였다.

그들이 힘을 합한다면 대통령 탄핵은 누워서 식은죽 먹기였다.

김성우가 테이블 위에 월간 잡지를 슬쩍 올려놓았다.

"정갑원 편집장이 올린 기사를 보십시오. 104페이지 부터 기사가 시작될 겁니다."

104페이지를 펼치자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보였다.

-노무연을 탄핵하고 민진당의 조순원 대표를 대통령으로 옹립해야 한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온갖 궤변을 총동원한 채 대통령 탄핵의 당위성을 나름대로 주장하는 논조가 길게 이어졌다.

한마디로 개소리였다.

정갑원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이유를 대충 알거 같았다.

이 자는 자기 멋대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사이비 기자였다.

잡지에서 시선을 거두자 김성우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조신일보 계열 잡지에서, 이런 논조의 기사를 싣는다는 건 이미 한국당과 민진당 쪽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는 반증입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재차 말을 이었다.

"노무연 이후를 대비하셔야 합니다. 만의 하나, 그가 탄핵 당할 경우 한국당이 정권을 장악하는 경우의 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을 당할 경우 그 이후의 절차가 어찌 되는 겁니까?"

"탄핵 소추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그곳에서 재판관들이 탄핵소추의 정당성을 평가한 뒤 가부를 결정짓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직 가능성일 뿐이니 벌써 부터 걱정할 사안은 아닌거 같습니다."

"틀린 말씀은 아니지만 지금 부터 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대표님의 귀한 조언을 마음 깊숙이 새겨 듣겠습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벽면을 장식한 대화면 TV 들이 노무연 대통령의 탄핵 뉴스를 일제히 쏟아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 오늘 국회 본회의에는 195명의 의원들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193표의 찬성을 얻어 노무연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됐습니다.

-외신들은 오늘 노무연 대통령 탄핵안 가결소식을 긴급 타전했습니다. AP 통신은 한국 국회가 노 대통령 탄핵을 의결함으로써 노대통령의 권한이 정지 됐다고 전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대통령이 일하지 못하는 사상초유의 국정공백 상태를 피할수 없게 됐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합니다. 오성근 기자 전해주시죠?

-찬성 193표, 반대 2표. 헌정사상 최초로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그렇게 잠시 전 국회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그리고 가결. 대한민국호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극한의 위기를 맞게 됐습니다.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카이닉스 전자의 대규모 공장 증설을 위해서는 관계 부처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부지는 이미 확보했지만 유관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 공장 설립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형편에 대한민국호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에 국정 공백이 생겼다.

당연히 유관 부처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루 빨리 탄핵정국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

늦은 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명우와 간만에 술자리를 즐기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이어갔다.

녀석이 걱정 반 호기심 반의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대충 답했다.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함이지."

"돈을 벌려면 주식에 투자를 해야지. 날마다 적자를 보는 반도체에 뭐하러 피같은 돈을 퍼붓는 건데?"

"내가 번 돈을 내 맘대로 쓰겠다는데, 니놈이 무슨 참견이냐?"

"그래도 돈을 너무 물쓰듯이 하잖아. 형이 너 걱정해서 하는 말인데, 반도체 산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이 쯤에서 접는게 어때?"

어디서 들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녀석의 말대로 반도체 부문은 대규모 적자를 동반한 사업이었다.

치킨게임의 여파가 골수에 사무친 까닭이었다.

허나, 이제 쓸데없는 치킨게임은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전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을 모조리 수중에 넣을 생각이었다.

당연히 미국의 마이크런 반도체의 인수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술 다쳐먹었으면 이만 가라. 형은 할 일이 있으니까."

"할 일 있으면 알아서 하라고. 나 신경쓰지 말고."

명우는 내 집에서 날 밤을 지새운 채 술을 빨기로 작심한 눈치였다.

결국 녀석을 뒤로 한 채 경호원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도곡동 인근의 라운지 바로 들어서자 길다란 테이블에서 술을 즐기는 우명석 전 검사장이 보였다.

그는 나를 목도하자 애틋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대체 저는 앞으로 어찌되는 겁니까?"

그는 원래 여당의 지역구 공천자로 내정 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노무연이 탄핵을 당한 덕분에 공중에 붕 뜬 입장이었다.

"헌번재판소에서 탄핵을 가결할 경우 열린당은 그날부로 망할 겁니다."

그가 울듯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그래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송구하지만 한국당으로 줄을 갈아타면 안될까요?"

그건 안 될 말이었다.

이미 당 발전기금으로 20억 내외를 기부한 상태였다.

"차분히 기다려봅시다. 탄핵안이 부결 당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헌재 소속 재판관들 대다수는 보수적인 법관들입니다. 노무연에게 극히 불리한 입장이라는 말씀입니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겁니다. 그러니 집에서 차분히 내 연락을 기다리세요."

그 말을 끝으로 라운지 바를 유유히 벗어났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육중한 책상 위에 놓여진 시청률 일람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내 시선은 슈퍼스타 드림 시즌 2에 절로 모아졌다.

결선 라운드에 돌입한 탓인지 슈퍼스타 드림의 시청률이 15%에 근접하는 수치를 보이고 있었다.

이 상태로 쭉 간다면 마의 20%대 시청률 돌파도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곧바로 재무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재무실은 회사의 재정은 물론이고 광고 판매 업무도 전담하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슈퍼스타 드림의 시즌 2 광고 매출이 총 얼마죠?"

"12회가 지난 현재 총 161억원에 육박하는 광고 매출을 올렸습니다."

"제작비도 말해 보세요."

"12회까지 대략 140억원 내외의 제작비를 투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억 안팎의 영업이익을 얻은 건가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막방 까지 몇 회가 남은거죠?"

"8회가 남아 있습니다."

"광고주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강화하세요. 중간 광고도 빵빵하게 때려주겠다고 딜을 넣으란 말입니다."

"직원들에게 회장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달하겠습니다."

"나가보세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재무실장을 내보낸 뒤 주한수를 면전에 불러들였다.

"소민이랑 심야 영화를 오붓하게 볼 생각이니까 상암점에 자리를 만들라고 전해."

"넵. 회장님."

그날 밤.

소민을 대동한 채 상암 드림박스 점을 방문했다.

우리는 점장의 극진한 환대를 받으며 상영관의 VIP룸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일반 관람객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이었다.

VIP룸에는 퍼스트 클래스를 능가하는 안락한 침대 의자가 있었다.

나와 소민은 침대를 연상시키는 푹신한 의자에 편하게 드러누운 채 콜라와 팝콘을 음미하며 헐리웃 대작 액션영화를 즐겁게 감상했다.

***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한국을 비밀리에 방한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LC 전자의 파주 디스플레이 공장을 전격 방문했다.

잡스는 디스플레이 생산공장을 두루 시찰한 후 LC 전자의 이재경 사장에게 송곳같은 질문을 던졌다.

"터치 패널 기술이 적용된 소형 LCD의 양산시기를 알려주십시오?"

순간 이재경이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LC 전자는 터치 패널을 접목한 디스플레이 시제품을 최근에 비밀리에 완성한 상태였다.

재경은 자사의 속사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는 잡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꼈다.

"실례지만 그런 정보를 어디에서 입수하신 겁니까?"

"그건 아실거 없고, 터치 패널 디스플레이의 양산 시점을 알려 주십시오."

"죄송하지만 그건 우리 회사의 기밀 사항인 탓에 함부로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할수 없군요. 삼송전자를 찾아갈 밖에."

잡스는 그 말을 끝으로 수행원들을 이끌고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날 밤.

성북동 대저택에 이재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집사의 안내를 받으며 고풍스러운 접견실로 들어섰다.

재경은 LC 그룹 송인학 회장에게 정중히 인사한 뒤 잡스와 나눈 대화를 한자도 빼놓지 않고 보고했다.

송인학의 두눈에 놀람이 스쳤다.

"그 말이 참말인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회장님."

"그들이 우리 회사의 기밀 정보를 대체 어디서 입수했단 말인가?"

"저희 회사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터치 패널 제휴 업체가 정보를 유출한거 같습니다."

"흠..."

송 회장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나왔다.

"애플이 무슨 이유로 터치패널에 관심을 갖는거지?"

"MP3의 일종인 아이팟에 터치패널을 채용 하려는거 같습니다."

"확신하는가?"

"십중팔구 제 예상이 맞을 겁니다."

"그럼 지금 당장 잡스와 대화를 나눠봐. 삼송전자에 일감을 뺏기기 전에."

"안그래도 잡스가 묵고 있는 하얏트 호텔로 직원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양산시기를 알려줘."

"알겠습니다. 회장님."

다음날.

하얏트 호텔 펜트하우스에 이재경 사장이 나타났다.

그는 잡스와 악수를 교환한 뒤 진지한 자세로 논의를 시작했다.

잡스가 요구사항을 밝혔다.

"우리가 원하는 건 4-5인치 사이즈의 터치패널 LCD 에요. 아무리 못해도 2006년 중순 까지는 양산이 가능해야 합니다."

"원하시는 물량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소 2천만장 정도를 맞춰 주십시오."

순간 이재경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많은 물량이 필요하십니까?"

잡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진한 블랙 커피 한모금을 입안에 들이켰다.

직후 무덤덤한 얼굴로 나직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계약금으로 5억 달러를 지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재경은 이번 거래를 절대 놓칠수 없다고 판단했다.

애플은 초우량 고객이었다.

게다가 선금도 넉넉히 준비한 상황이었다.

이재경이 환한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원하시는 대로 2006년 중순 경까지 2천만장에 달하는 터치패널 디스플레이를 애플 사에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며칠 후, LC전자는 애플과 비밀리에 총 2천만장에 육박하는 터치패널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 메모리 반도체 통합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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