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쾌도난마 2 >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로 김태섭을 불러들였다.
김우철과 장영호의 처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거실 한켠의 라운지 바에서 진토닉을 음미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우철은 후배 와이프 강간 혐의로 구속하면 될 거 같고, 문제는 장영호라는 놈인데······?”
“저도 그 점이 골칫거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름 20대 그룹에 포함된 재벌가 아들내미라 빵에 집어넣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회장님.”
“그래서 김 차장에게 자문을 구하는 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리고 회장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태섭이 은근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검사장 승진 문제를 입 밖에 꺼낼 심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입에서 볼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 주면 인사 결과가 발표됩니다. 그러니 회장님께서 힘을 좀 제대로 써주십시오.”
“김앤박 로펌의 김성우 대표에게 일을 맡겼으니 차분히 기다려 봅시다. 이미 돈도 넘어갔으니 알아서 잘할 겁니다.”
그제서야 녀석이 안심한 얼굴로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한 대화면 TV들을 일제히 켰다.
그러기를 문득 내 시선이 아침 드라마 조연 여배우에게 절로 모아졌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정감 가는 마스크의 소유자였다.
청초하면서도 세련된 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리고 몸매도 좋은 편이었다.
곧바로 이미경 대리에게 콜을 넣었다.
-김용대 국장을 불러들여.
-예. 회장님.
잠시 후, 김용대가 눈앞에 나타났다.
TV를 손짓하며 내 의중을 전달했다.
“저 여자를 내 앞으로 데리고 와.”
용대는 원하는 건 뭐든지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탓인지 별다른 질문 없이 순순히 화답했다.
“명하신 대로 그녀를 지금 당장 회장님 면전에 대령하겠습니다.”
오후 무렵.
사무실에 아침 드라마의 조연 여배우가 나타났다.
그녀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다소곳이 허리를 숙였다.
“신인 여배우 이민정이라고 합니다.”
실물로 보니 더욱 이뻤다.
신선한 마스크와 늘씬한 몸매가 일품이었다.
“자리에 앉지.”
그리 말하며 민정을 소파로 이끌었다.
우리는 간이 테이블을 마주한 채 이미경이 내온 달달한 커피를 차분히 음미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그녀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소속사는 있어?”
그녀가 즉답했다.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회장님.”
“그럼 잘됐네. 오늘 당장 대박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하는 게 어때?”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민정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소속사도 없다면서? 좋은 대우로 민정이를 스카웃하고 싶다고.”
“그렇지만 너무 경황없이 말씀하셔서······.”
그녀가 주저하는 얼굴로 다소곳이 나를 올려다봤다.
눈앞에서 그녀를 마주하자 그린듯한 아미와 사슴처럼 해맑은 눈망울이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민정은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운 여배우였다.
“계약 기간 4년에 5대 5 수익 배분, 그리고 계약금 조로 7천만 원을 챙겨줄게. 이 정도면 신인 여배우한테 엄청 과분한 계약조건 같은데······ 내 말이 틀렸어?”
“그야 그렇지만, 너무 생각지 못한 일이라서요.”
그녀는 여전히 주저하는 모양새였다.
피격적인 대우에 되려 겁을 집어먹은 눈치였다.
“집에서 차분히 생각해 봐. 그리고 마음을 정하면 지체하지 말고 연락해.”
민정의 고운 손에 내 명함을 은근히 쥐여주었다.
***
이창용은 히말라야 프러덕션이 야심 차게 제작 중이던 여름 향기가 주연 배우들의 불상사로 촬영이 중단됐다는 소문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됐다.
그날 이후, 창용은 히말라야 프러덕션과 여러 차례 접촉을 가졌다.
그러나 이렇다 할 결론을 도출해 내는데 끝내 실패했다.
히말라야의 대표이사인 김명우가 자택에서 두문불출한 탓이었다.
결국 그는 서울 모처의 술집으로 평소 안면이 있던 유한성을 초대했다.
늦은 밤.
창용과 한성은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고 있었다.
“김명우 사장이 요즘 제정신이 아닌 탓에, 너를 영입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다.”
한성의 말에 창용이 아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피디님에게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 거 아닙니까?”
“난들 뾰족한 수가 없다니까. 너를 영입하려면 천상 회장님에게 보고를 올려야 하는데······.”
한성은 주저하는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창용이 애가 타는 얼굴로 재차 읍소했다.
“회장님에게 제 얘기를 넌지시 해주시면 되잖아요.”
“니가 우리 회장님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엄청 무서운 남자라고. 곁에 가면 오금이 저릴 정도라니까.”
“어느 정도 길래, 그렇게 무서워하는 겁니까?”
“주먹도 엄청 쎄고, 아랫사람들도 하나같이 한 성깔 하는 인물이라고. 겁나서 함부로 말을 못 꺼내는 분위기야.”
“에휴······ 말을 들어보니 피디님도 참, 고초가 크시겠습니다.”
“암튼 니 부탁을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
“아니 됐어요. 맘에 두지 마세요. 할 수 없는 거죠.”
창용은 그리 말하며 씁쓸한 얼굴로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
회사 업무를 끝마치자마자 명우의 거처인 압구정 현도 아파트로 직행했다.
마스터키를 이용해 현관문을 열자 소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거실 전등을 켜자 맨바닥에 죽은 듯이 드러누운 채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곯아떨어진 명우가 보였다.
녀석의 몰골은 상거지와 다름없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사흘 밤낮을 씻지 않은 지저분한 얼굴이었다.
소파에 앉은 채 줄담배를 태울 무렵 명우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내 양복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끄집어낸 뒤 제멋대로 담배를 자기 입에 베어 물었다.
명우는 나를 향해 매캐한 담배 연기를 훅 내뿜으며 피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하러 왔냐?”
“헛소리는 그만하고, 내일 오전 9시까지 회사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니놈은 무조건 해고다. 명심해!”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의 집을 박차고 나왔다.
긴말 따위는 불필요했다.
김솔미 같은 창녀에게 정신이 팔려서 앞뒤 분간 못하는 놈이라면 하루빨리 손절하는 게 최선이었다.
다음날,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서 아침 업무를 시작하려는 찰나 주한수 실장이 장내에 나타났다.
“김명우 사장이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들여보내.”
“넵. 회장님.”
잠시 뒤, 명우가 내 앞에 나타났다.
녀석은 말끔히 면도한 얼굴로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했다.
“미안하다. 보잘것없는 년 때문에 회사에 많은 손해를 끼친 거 같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담배를 베어 물었다.
담배 연기를 자욱이 말아 올릴 무렵 명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거다. 믿어주라. 친구야. 정말 진심이다.”
“변명은 그만하고, 하루빨리 여름 향기의 남주를 찾아. 알겠어!”
“오케이. 접수. 지금 당장 남주를 섭외할게. 염려 마라. 헤헤헤······.”
녀석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려보낸 뒤 장내에서 도망치듯 사라졌다.
***
명우는 대박 엔터 대표실에 들어가자마자 방기훈 실장을 면전에 불러들였다.
“김우철과 김솔미의 계약해지 절차를 밟아.”
“안 그래도 기존의 계약을 해지하는 공문을 우철과 솔미의 집으로 전달했습니다.”
“수고했다.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하는구나.”
명우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기훈이 걱정이 그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루빨리 우철과 솔미를 대체할 남주와 여주를 확정하셔야 합니다. 시간이 없다고요.”
“니가 말 안 해도 잘 아니까, 귀찮게 보채지 마라.”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유한성 피디가 사장님에게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왜?”
“이창용을 소개하고 싶다고 그러던데요.”
“이창용이라······?”
명우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곧바로 유한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후.
대박 엔터 대표실에 이창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명우는 면전에 마주 앉은 이창용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 기간 5년에, 7대 3의 분배비율이다. 당연히 니가 7할을 먹는 조건이지.”
“계약금을 얼마나 주실 겁니까?”
“니가 원하는 대로 4억을 지급하고, 연예인 벤 차량과 품위유지 비용, 전속 매니저 고용 비용도 보장하지.”
창용은 자신의 요구 조건을 대다수 수용한 계약서에 자필서명을 힘차게 기입했다.
다음날.
대박 엔터 대표실에 이민정이 나타났다.
그녀 역시 창용과 마찬가지로 전속 계약서에 순순히 자필서명을 기입했다.
***
1분기를 마무리하는 회의에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유한성 총괄 PD를 불러들이기로 결심했다.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사업 규모가 날이 갈수록 커져간 탓이었다.
히말라야의 명목상 대표이사는 명우였지만 녀석은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실제 일을 처리하는 건 현장에서 실무를 총괄하는 유한성이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24층 회의실에 들어서자 고위 간부들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중에는 유한성도 포함되었다.
그들의 인사를 너그럽게 받아준 뒤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왼쪽 옆자리에 배석한 장준기 전무에게 명을 내렸다.
“드림박스의 1분기 성적을 발표해.”
“네. 회장님.”
장준기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대화면 프로젝션 TV 앞으로 걸어갔다.
직후 TV에서 현란한 파워포인트가 시작됐다.
그는 어느새 준비했는지 가느다란 지시봉을 손에 든 채 드림박스의 경영성적을 자부심 그득한 얼굴로 발표했다.
“우리 드림박스는 1/4분기에 총매출 2847억 원을 달성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20% 폭등한 624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순이익 역시 316억 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장내에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드림박스는 대한민국 영화시장을 완벽히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 탓으로 엄청난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달성했다.
모두 내 탁월한 경영능력 덕분이었다.
이번에는 오른쪽 옆자리에 앉아 있는 김용대 국장에게 명을 내렸다.
“당신도 1분기 성적을 보고해.”
용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프로젝션 TV 앞으로 걸어갔다.
그 역시 품에서 지시봉을 꺼낸 뒤 화려한 파워포인트가 펼쳐진 TV를 가리키며 경영성적을 자랑스레 발표했다.
“우리 드림 케이블은 1/4분기에 874억 원에 달하는 광고매출과 104억 원에 육박하는 협찬매출을 기록했습니다. 총합 978억 원에 육박하는 총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용대의 보고는 계속 이어졌다.
“또한 45억 원의 영업이익과 19억 원에 달하는 순이익을 기록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드림 케이블은 지상파를 위협하는 시청률을 연일 달성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드림 케이블의 드라마와 예능 프로는 지상파의 턱밑까지 시청률을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허나, 아직도 많이 부족한 형국이었다.
나는 SBC 방송사의 ‘모래시간‘같은 초대박 드라마를 갈구했다.
드림 케이블의 브랜드 파워를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고 싶었다.
일단 여름 향기에 집중하는 게 최선이었다.
용대 역시 장준기와 마찬가지로 좌중의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던 케이블 방송이 흑자반전에 극적으로 성공한 탓이었다.
용대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테이블 끝자리에 배석한 유한성을 손짓했다.
“유 총괄은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대략적인 업무 현황을 보고해 봐.”
녀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프로젝션 TV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역시 지시봉을 이용해 TV 화면에 펼쳐진 파워포인트를 차례로 설명했다.
“최근에 촬영을 끝낸 살인의 회상이 히말라야 배급사를 통해 드림박스 상영관에 내걸릴 예정입니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종합한 결과 아무리 못해도 최소 7백만 명 이상의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이 얼마지?”
“대략 2백만 명 내욉니다.”
나는 내심 천만 관객 돌파를 확신하고 있었다.
천만 관객 동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초대박 작품이라는 의미였다.
“반드시 천만 관객을 달성해! 홍보비를 아낌없이 사용하라구!”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여름 향기에 대해서 보고를 해봐.”
“대박 엔터에 새로 합류한 이창용과 이민정을 남녀 배우로 캐스팅할 계획입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두 달 안에 방송을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쳐!”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회장님.”
***
가평에 소재한 사격장으로 명우를 불러들였다.
우리는 클레이 사격을 즐긴 뒤 인근의 밥집으로 넘어갔다.
삼계탕을 폭풍흡입한 뒤 명우에게 저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김우철은 후배 와이프 강간 혐의로 조만간 검찰에 구속될 예정이고, 장영호는 강 사장 애들이 호되게 후드려 팼으니까 이제 그만 마음 풀어라.”
녀석이 감사한 표정을 지으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고맙다.”
“앞으로는 쓸데없이 스폰녀한테 정을 주지 마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니까 염려 붙들어 매라.”
“진작에 마음을 그리 먹었어야지. 스폰녀는 돈에 환장한 속물들인데 뭐하러 정을 주냐. 마음만 피곤하게.”
“니 말이 맞다. 그런 의미에서 내 술이나 마셔라.”
녀석은 그리 화답하며 반주로 나온 소주를 유리 글라스에 넘치도록 따라 부었다.
< 쾌도난마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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