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전속결 2 >
슈퍼스타 드림의 최종 우승자인 이각의 디지털 싱글 음원이 발매됐다.
원래는 음반도 발매할 계획이었지만, 국내 음악 시장이 빠른 속도로 음원 위주로 재편된 탓에 음반 발매를 미루기로 이각과 합의를 봤다.
나는 공사가 다망한 와중에도 이각의 음원 성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녀석은 슈퍼스타 드림이 배출한 우승자였기 때문이다.
국내 음원 시장은 SC 그룹의 자회사인 맬런이 장악하고 있었다.
맬런은 80% 가까운 점유율을 바탕으로 국내 음원차트를 좌지우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상파 음방 프로가 너도나도 맬런 음원 성적을 바탕으로 차트 순위를 매기는 바람에 맬런은 가요계의 공룡으로 순식간에 자리매김했다.
맬런의 성적이 곧 가요계 성적으로 치부될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이각은 맬런 차트 50순위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다.
100위 안팎을 오간 탓이었다.
감미로운 락 발라드에도 불구하고 맬런의 청음자들은 이각의 음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각에게 나름 커다란 선물을 부여하기로 굳게 다짐했다.
***
상암동 드림 케이블 본사 회장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이미경 대리에게 콜을 넣었다.
-김재연 예능국장을 불러들여.
-예. 회장님.
잠시 후, 김재연이 장내에 나타났다.
녀석에게 다짜고짜 내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이번 주 드림 카운트다운의 1위를 이각으로 선정해. 그럴듯한 트로피를 안겨주라고.”
재연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회장님. 이각은 1위를 차지하기에는 성적이 많이 미흡합니다. 음원 성적도 부족하고, 음반 점수는 아예 제롭니다.”
“팬 투표와 방송점수를 반영하면 되잖아.”
“팬들의 문자투표는 아이돌의 전유물입니다. 이각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습니다.”
재연은 보기보다 앞뒤가 꽉 막힌 인물이었다.
“문투는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잖아. 그러니 내 말대로 이각을 우승시키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그제서야 재연이 체념한 얼굴로 화답했다.
“회장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리고 슈퍼스타 드림에 버금가는 엑설런트한 쇼 오락 프로를 만들어 봐.”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관계로······.”
재연은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말대로 슈퍼스타 드림 같은 대박 프로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연출자의 능력과 출연자의 스타성, 그리고 운 때도 맞아야 한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모티브로 한 낭만적인 여행 프로를 좋아하더군.”
“그건 교양 프로의 영역에 속하는 겁니다. 쇼 오락 프로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습니다.”
“암튼 적정한 수준의 예산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론칭해 봐. 배우나 가수들을 섭외해서.”
“회장님의 말씀대로 여행 프로 제작에 돌입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봐.”
“넵. 회장님.”
***
르네상스 빌딩은 1층부터 4층까지 대박 엔터가 사용했고, 5층부터 12층까지 히말라야 프러덕션이 입주한 상태였다.
그리고 탑층에 속하는 13층과 14층에는 검찰을 대상으로 하는 펜트하우스가 성업 중이었다.
그런 르네상스 빌딩에 영화판의 스타 감독인 방준호가 나타났다.
그는 12층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간 사무실에는 편집시설이 완비된 상태였다.
방준호는 편집실 의자에 착석한 채 촬영을 끝마친 살인의 회상을 매의 시선으로 살폈다.
그러기를 문득 그의 만면 가득 불만스런 표정이 그려졌다.
‘진범을 미스테리로 남겨두는 편이 뒷말이 나올 공산이 작은데······ 이를 어쩐다?.’
그는 진범을 특정할 경우 사회 각계각층에서 쏟아질 비난을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검경과 힘 있는 정치인들의 반발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화는 권력과 돈을 한 손에 틀어쥔 부패 정치인의 아들을 진범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범인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준호는 영화에서 진범을 확정하는 장면을 삭제하고 싶었다.
허나, 살인의 회상은 히말라야 프러덕션의 실질적인 오너인 이태수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그의 마음대로 영화에 가위질을 했다간 태수의 진노를 살 것이 불 보듯 훤했다.
준호는 유한성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
방준호와 유한성은 르네상스 인근의 고깃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고 있었다.
준호는 심중의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드러냈다.
“영화에서 진범을 확정할 경우 사회적인 파장이 엄청날 겁니다.”
“방 감독은 신경 쓰지 마세요. 모두 우리가 알아서 할 문제니까.”
“그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검경 인사들과 범죄인의 배후로 지목된 정치인들이 난리를 칠 게 뻔하다구요.”
유한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직후 될 대로 대라는 심경으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회장님이 알아서 할 일이니까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맙시다.”
한성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오늘도 할 일이 태산이었다.
김동진 기술 이사와 천안 지역 일대를 둘러본 후 광화문 인근에서 정민기와 만남이 예정된 상태였다.
도우미 아줌마가 차려준 김치찌개로 배를 채운 후 1층 로비로 내려가자 주한수 실장과 경호원들이 나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본체만체하며 주한수에게 명을 내렸다.
“김동진 이사에게 천안으로 내려오라고 전해.”
“네. 회장님.”
주 실장은 김동진에게 전화를 돌린 후 롤스로이스로 나를 안내했다.
안락한 뒷좌석에 자리를 잡은 뒤 옆자리에 동승한 주 실장에게 입을 열었다.
“한잠 푹 때릴 테니까 도착하면 나를 깨워.”
“편히 주무십시오. 도착하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눈을 지그시 내리감자 잠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느낌에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천안에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름 부족한 잠을 보충해서 그런지 온몸에 기운이 넘쳐흘렀다.
차에서 내리자 김동진이 내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뭐가 오랜만에 본다는 겁니까?”
핀잔을 날리자 동진이 겸연쩍은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공장 후보지나 둘러봅시다.”
“그럼 제가 예정 후보지로 차례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럽시다.”
몇 시간 뒤.
우리는 40나노대 반도체 설비공장이 들어설 예정인 천안 인근의 토지들을 매의 시선으로 두루 살폈다.
김동진이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반도체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 날이 다르게 땅값이 뛰고 있습니다.”
“속전속결로 부지를 매입하세요.”
“최단 시일 내에 토지 매입을 완료하겠습니다.”
“하수용 법무실장을 붙여 드릴 테니까, 부탁할 일이 있으면 하 실장에게 말을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회장님.”
동진은 그리 화답하며 나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광화문으로 직행했다.
광화문에는 정민기의 좋은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가 있었다.
우리는 광화문 인근의 밥집에서 설렁탕으로 배를 채운 뒤, 이런저런 대화를 길게 나누기 시작했다.
정민기의 입에서 솔직한 입담이 쏟아져 나왔다.
“내 목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겁니다.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건 청와대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에 불과하죠.”
내 돈을 받아먹은 탓인지 녀석은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정치자금을 원하시는 건가요?”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술잔에 소주를 따라서 나에게 건넸다.
“제 스폰이 되어 주십시오. 그 말을 하기 위해 오늘 뵙자고 청을 드린 겁니다.”
“정 이사장이 대통령이 된다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 겁니까?”
“제 권한으로 가능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회장님의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말은 청산유수였다.
나는 정민기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정치 모리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허나, 녀석은 이용가치가 충분했다.
그는 시민사회단체의 대부였다.
항간에는 정민기가 차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지도 모른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었다.
나는 그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일을 처리하는 수완이 보통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한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마음을 정하는 즉시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회장님.”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뒤 밥집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타워필리스에 도착한 후 주한수 실장에게 백만 원권 수표 석장을 건넸다.
“일요일 수당으로 받아둬. 당신이 한장을 갖고 나머지 두장은 경호원들에게 나눠줘.”
“감사합니다. 회장님.”
주 실장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수행원들을 모두 돌려보낸 후 펜트하우스로 올라갔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도우미 아줌마가 차려놓은 저녁밥이 보였다.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소지한 아줌마라 그런지 정갈한 한정식이 상 위에 차려져 있었다.
한정식을 푸짐하게 먹어서 그런지 소파에 앉자마자 잠이 비 오듯 쏟아졌다.
식곤증이었다.
눈을 뜨자 어두컴컴한 실내가 보였다.
불을 켜자 벽면에 내걸린 디지털 시계가 망막가득 스며들었다.
벌써 밤 11시 무렵이었다.
이른 잠을 자서 그런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이런 날에는 한산한 도로에서 드라이브를 즐기는 게 최고다.
청바지와 점퍼를 대충 걸친 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주차장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진 벤틀리 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의 맨날 롤스로이스만 이용한 탓으로 벤틀리는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세차가 필요한 모양새였다.
벤틀리에 올라타자마자 인근의 세차장으로 차를 몰아갔다.
세차장에서 벤틀리의 외관을 말끔히 정제한 뒤 어둠이 내리깔린 길거리로 핸들을 꺾었다.
고즈넉한 도로에서 여유로이 드라이빙을 즐길 무렵,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차량이 클랙션을 연거푸 작렬시켰다.
빠앙······! 빠아앙······! 빵빵빵······!
시원한 밤바람을 만끽하기 위해 차창을 열어놓은 터라 귓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소음공해에 직면했다.
결국 차를 갓길에 정차한 뒤 소음의 진원지인 스포츠카를 매의 시선으로 살폈다.
스포츠카가 벤틀리 옆에 정차했다.
직후 그 안에서 서너 명의 젊은 친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들은 야비한 얼굴로 저마다 욕설을 내뱉으며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차 싶었다.
이놈들은 운전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양아치들이었다.
허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15년 동안 갈고닦은 쉐도우 복싱을 믿는 게 최선이었다.
일반인들의 싸움은 선빵이 최고다.
제대로 선제타격을 가하면 엔간해서는 반격조차 못 하기 때문이다.
맨 앞에서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노란 머리를 목표로 젖먹던 힘을 다해 라이트 어퍼컷을 내질렀다.
현란한 풋 워킹을 동반한 공세라, 노란머리는 당황한 얼굴로 손발을 허우적거리는 게 고작이었다.
퍼억······!
-크헉······!
짜릿한 손맛이 느껴짐과 동시에 노란 머리의 입에서 고통에 겨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때, 노란머리 뒷편에 있던 스포츠머리가 내 얼굴을 목표로 발길질을 해왔다.
녀석의 느려터진 발길질을 가볍게 피함과 동시에 놈의 낭심에 살벌한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으아악······!
스포츠머리의 고환을 박살 내자마자 좌측으로 접근해 오는 양아치의 면상에 강력한 레프트 훅을 박아 넣었다.
퍼어억······!
-크악······!
놈의 비명을 감상할 새도 없이 등판에 날카로운 감촉이 전해졌다.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자 잭나이프를 손에 든 미친놈이 나를 향해 비릿한 조소를 내뱉었다.
“아저씨치고는 주먹 솜씨가 쓸만한데. 그렇지만 이건 칼이라고. 자신 있으면 덤벼 보라고. 좆같은 새끼야!”
등허리에서 축축한 느낌과 알싸한 통증이 동시다발적으로 전해져왔다.
칼에 많이 베인 모양이었다.
속전속결이 최선이었다.
운 좋게 선빵이 먹혀든 탓에 세 놈은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놈은 만만치 않았다.
손에 칼을 든 탓이다.
복싱에 일가견이 있다고 해도, 칼 든 놈을 상대하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주먹보다는 칼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녀석의 주변을 빙빙 돌며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지포 라이터가 느껴졌다.
지포 라이터는 강철로 주조된 물건이었다.
녀석의 얼굴에 지포 라이터를 박아 넣을 계획이었다.
주머니 속에서 지포 라이터를 은밀히 꺼내 들 찰나, 녀석이 성난 얼굴로 잭나이프를 나를 향해 미친 듯이 휘둘렀다.
순간 놈의 얼굴을 목표로 지포 라이터를 무자비하게 발사했다.
-으악······.!
지포 라이터에 얼굴을 직격당한 잭나이프의 입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허나, 나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놈의 몸뚱이를 목표로 강력한 사커킥을 쉴 새 없이 내질렀다.
퍼어억······! 퍼억······! 퍽퍽퍽퍽퍽퍽퍽퍽······!!!
-크악······그만······잘못······했습······아아아악······!!
구둣발을 이용해 놈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미친 듯이 짓밟았다.
그런 탓인지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았다.
그때, 주변을 배회하던 경찰의 순찰 차량이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들은 땅바닥에 처연하게 나뒹구는 젊은 놈들을 피해자로 짐작했는지 다짜고짜 내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 속전속결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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