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재벌 개망나니-66화 (155/200)

< 타워필리스 1 >

삼송그룹 서초동 본사.

미래전략 본부실에 김민용이 나타났다.

그는 미래전략 본부장인 심대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타워필리스 펜트하우스 물량 전부를 분양에서 제외하세요.”

본부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내가 쓸데가 있어서 그래요. 그러니 내 말대로 하십시오.”

민용이 두 눈에 힘을 주자 본부장의 얼굴에 곤혹스런 기색이 역력해졌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삼송그룹의 황태자였다.

“아버지에겐 일언반구 언급을 하지 마십시오. 그럼 당신만 믿겠습니다.”

민용은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월가 중개인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당신 계좌에 10억 달러를 이체할 테니 아마존과 구글, 애플, MS 주식을 2억 5천만 달러씩 매입해 주세요.

-계좌 이체가 확인되는 즉시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뒤 인터넷 뱅킹을 이용해 월가 중개인의 계좌에 10억 달러를 이체했다.

욕실에서 샤워을 끝마친 후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아파트 1층 현관으로 내려가자 주 실장과 경호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정중한 인사를 뒤로 한 채 롤스로이스 팬텀 뒷좌석에 몸을 실을 찰나, 아파트 아줌마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파트 부녀회장인데요. 관리 회사 선정 문제로 입주민 회의를 열 계획이거든요. 그러니까 사장님도 입주민 회의에 참석해 주세요.”

“죄송하지만 입주민 회의에 참석할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그리 말하며 문을 닫으려고 하자 아줌마가 내 팔을 잡으며 재차 말을 전했다.

“관리회사 선정 문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시간을 꼭 내주세요. 부탁드려요. 사장님.”

극성스러운 아파트 부녀회장이었다.

결국 못 이기는 척 그녀의 청을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을 내는 쪽으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 7시까지 관리실 옆에 있는 주민회관으로 와주세요.”

그녀에게 목례를 취한 뒤 문을 닫자마자 운전석에 앉아 있는 경호원에게 지엄한 명을 내렸다.

“회사로 출발해.”

“넵. 회장님.”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장준기 전무를 회장실로 불러들였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공손히 서 있는 장준기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한국의 영화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죠?”

그가 즉답했다.

“복합 상영관을 포함할 경우 12조 원이 넘습니다.”

영화시장은 나름 규모가 있었다.

“드림 박스와 럿데 시네마의 상영관 수가 어떻게 됩니까?”

“우리 드림 박스는 전국 24개 지점에 198개 상영관을 운영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럿데 시네마 측은 전국 33개 지점에 대략 266개 상영관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럿데 시네마 측도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를 운영하고 있나요?”

“그들 역시 영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수천억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영화 제작과 배급회사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영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럿데 시네마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쓸만 한 영화사에 자금을 투자하는 것으로 합의를 봅시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회장님.”

초장부터 무리하게 영화 제작에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

“투자할 만한 영화 목록을 만들어서 내일 오전까지 보고서로 올리세요.”

“넵. 회장님.”

“그리고 새로 설립하는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의 사명을 ‘히말라야‘로 정하세요.”

“운치가 넘치는 사명 같습니다.”

“히말라야처럼 유아독존하자는 의미로 작명한 사명이니까 그런 줄 아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장 전무를 내보낸 뒤 습관처럼 파텍필립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자 시침과 분침이 오전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 탓일까?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일에 몰두한 탓이었다.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하고 싶었지만 직원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회장이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건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위였다.

인근의 밥집으로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 무렵, 김민용이 전화를 걸어왔다.

폰에서 녀석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점심 전이면 같이하는 게 어때?

-어디서?

-내가 상암동으로 갈게.

-상암동에는 쓸만 한 밥집이 없다. 합정동으로 갈 테니까 그곳에서 밥이나 같이하자.

-알았다. 그럼 합정역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해라.

-오케이.

곧바로 주 실장을 호출했다.

“합정역에서 점심 약속이 있으니까 차를 대기시켜.”

“넵. 회장님.”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합정동으로 넘어갔다.

합정역 인근의 밥집으로 들어가자 창가에 앉아 있던 민용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수행원들을 물린 뒤 녀석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한 달 만인가?”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대낮부터 만나자고 하는 거야?”

의자에 앉으며 그리 묻자 녀석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빚 좀 갚으려고.”

“천천히 갚아도 상관없어. 부담 갖지 마라.”

“그럴 수야 있나. 아무리 친구 사이라지만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야지. 하하······.”

“알았다. 돈 얘기는 나중에 하고, 육개장부터 먹자. 배고파서 미칠 지경이니까.”

그리 말하며 밥집 사장에게 육개장 2인분을 주문했다.

우리는 얼큰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운 뒤 본격적인 담소에 돌입했다.

“저번에 말 한대로 도곡동에 건설 중인 주상복합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4채를 너한테 넘겨줄게.”

“몇 평이라고 했지?”

“320평. 그리고 양재천과 강남의 빌딩 숲이 한눈에 조망되는 위치야. 네가 손해 볼 일은 없을 거다.”

“알았다. 그럼 펜트하우스를 TS 인베스트먼트 명의로 이전해 줘.”

“변호사 입회하에 계약서를 작성해서 너에게 보내줄게.”

“알아서 해. 그럼 나중에 보자. 회사에 볼일이 있거든.”

“그렇게 바쁘냐?”

“응. 요즘 드라마와 영화 투자 문제로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그 말을 끝으로 상암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

삼송그룹 서초동 본사에 루카스 부사장이 나타났다.

그는 회의실에서 심대현 본부장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빌딩 매각 대금을 미화로 지불해 주십시오.”

“한화는 안 될까요?”

“클라이언트 쪽이 미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회장님에게 보고를 올린 후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루카스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심 본부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루카스는 곧바로 현도그룹 계동 본사로 넘어갔다.

다음날.

럿데그룹 잠실 본사에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럿데그룹 차필수 회장과 긴밀한 협의를 나누고 있었다.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블루마운틴은 투자가치가 높은 빌딩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층수도 45층에 달할 정도고, 내부 시설 역시 아주 훌륭합니다.”

“원하시는 가격을 말해 보세요.”

차 회장의 물음에 루카스가 즉답했다.

“미화 3억 6천만 달러에 매각할 생각입니다.”

“내 예상과 많이 차이나는 가격이군요.”

“오피스 수요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생각해 주십시오.”

“가격을 다운할 용의는 없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루카스의 단호한 태도에 차 회장의 입가에 씁쓸한 고소가 그려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신 후 일주일 내로 확답을 주십시오. 그럼 이만.”

루카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가회동 고급 저택.

차필수 회장은 둘째 아들인 차민혁 럿데마트 사장을 서재로 불러들였다.

“사내유보금이 얼마나 있지?”

“1조 원 남짓입니다.”

“그중에서 4500억 정도를 인출해.”

“어디에 쓰시려고 그러십니까?”

“네놈은 알 거 없다.”

“또 부동산에 투자하시려는 겁니까?”

“내가 부동산에 투자하든가, 말든가 네놈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주주들이 들고일어날 겁니다. 사내유보금을 아버지 마음대로 전용하는 문제로 대주주들이 임시주총을 요구한 상태라고요!”

순간 차 회장이 진노한 얼굴로 차민혁의 얼굴에 연거푸 손찌검을 날렸다.

딱딱딱······!!!

“이런 호로자식을 봤나. 감히 지 애비한테 목소리를 높여! 네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게냐!”

민혁은 어금니를 피가 날 정도로 앙다문 채 차 회장에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런 식으로 계속 행동한다면 네놈을 그룹에서 쫓아낼 테다! 명심해!”

고개 숙인 민혁의 두 눈에 스산한 한기가 스쳤다.

***

회사에서 하루일과를 끝마친 후 약속장소인 하얏트 호텔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루카스 부사장과 프랑스 정식으로 저녁을 함께하며 진솔한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삼송그룹과 현도그룹, 럿데그룹 측이 빌딩 매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만간 매각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각대금을 지불받는 즉시 HBC 은행의 계좌로 입금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회장님.”

루카스가 은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 회사에 여분의 전용기와 헬기가 있는데, 원하신다면 저렴한 가격에 회장님에게 양도할 용의가 있습니다.”

“전용기요?”

“네. 회장님의 품격에 잘 어울릴 겁니다.”

조금 구미가 당겼다.

“전용기와 헬기의 모델과 가격을 말해 보세요.”

“전용기는 걸프스트림 2000 모델입니다. 신품 가격은 1200만 달러 내외고 16인승 규모죠.”

“헬기도 말해 보시죠.”

루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즉답했다.

“미국 스콜스키에서 제조 생산한 S-76B 8인승 헬기 모델입니다. 신품가격은 1대당 800만 달러에 육박합니다.”

루카스는 그리 화답하며 와인을 들이켰다.

직후 다시 말을 이었다.

“원하신다면 전용기와 헬기 모두 합해서 1300만 달러에 회장님에게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조건이었다.

문제는 조종사였다.

알다시피 조종사의 인건비는 한두 푼이 아니었다.

“전용기와 헬기를 구입하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비행기와 헬기 조종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군요.”

루카스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한국은 조종사가 귀한가요?”

“예. 우리나라는 미국처럼 조종사들이 지천에 널린 상황이 아닙니다. 그래서 몸값이 비싸죠. 그들을 고용하려면 미화로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겁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묘안이라도 있는 건가요?”

“네. 회장님이 보유하신 드림 엔터테인먼트 명의로 전용기와 헬기를 구입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조종사의 인건비 역시 회사 자금으로 충당한다면 회장님에게 별다른 손실이 발생하지 않으실 겁니다.”

루카스는 전용기와 헬기매입 비용, 조종사 고용 비용을 회사의 업무용 비용으로 처리하라고 조언하고 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회사 오너들은 원래 이런 식으로 회삿돈을 축내는 게 일상이었다.

“당신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그럼 마음을 정리하시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오.”

“그러죠.”

그와 악수를 나눈 뒤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주 실장이 롤스로이스 팬텀의 뒷문을 열어주었다.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조수석에 올라탄 주 실장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그냥 한 바퀴 돌아.”

주 실장이 운전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에게 내 명을 전달했다.

“길거리를 저속으로 운전해.”

“네. 실장님.”

강남의 길거리는 불야성을 방불케 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헐벗은 아가씨들이 클럽가를 배회하며 사내들을 유혹하는 광경이 시야에 쉼 없이 포착됐다.

차창을 스쳐 가는 그녀들을 매의 시선으로 관음하려던 찰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망막 가득 스며들었다.

김소민이었다.

소민은 흰색의 미니 드레스를 걸친 탓인지 굴곡진 여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태였다.

조신한 그녀답지 않은 자태였다.

소민은 엑사일이란 클럽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주 실장에게 명을 내렸다.

“차를 멈춰.”

“넵. 회장님.“

< 타워필리스 1 > 끝

ⓒ 방탄리무진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