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기훈 2 >
50화. 방기훈 2
남해의 이름 모를 작은 섬에 강태호 일행이 나타났다.
“저놈을 이장 집으로 옮겨.”
태호가 명령을 내리자 그의 부하들이 약에 잔뜩 취한 한성철을 어깨에 짐짝처럼 들쳐멘 뒤 섬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호는 섬의 이장인 50대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40대 초반이니까 20년 이상 부려먹을 수 있을 겁니다.”
이장이 탐탁지 않은 얼굴로 집 마당에 널브러진 한성철을 힐끔 쳐다봤다.
“약쟁이라 힘도 못 쓸 거 같은데, 저런 놈을 어디에 써먹으라는 거요?”
“그러니까 단돈 천만원만 달라고 하는 거 아닙니까? 천만원 돈으로 20년 동안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천만원은 너무 비싸고 5백에 쇼부를 봅시다.”
이장이 선심 쓰듯 말하자 태호가 못 이기는 척 그의 흥정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대신 일시불 현금으로 주십시오.”
이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집안 금고에서 백만원 돈뭉치 다섯개를 들고 왔다.
“5백이니까 세어보쇼.”
“됐습니다. 맞겠죠. 그럼 나중에 봅시다.”
태호 일행이 장내에서 썰물 빠지듯 사라지자 이장이 본격적으로 행동을 시작했다.
그는 집안 마당에 처량하게 널브러진 한성철의 여린 육신에 묵직한 몽둥이를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상철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절로 흘러나왔다.
-으아아아아아악······!
섬 이장은 입꼬리를 비릿하게 말아 올리며 잔인한 언사를 내뱉었다.
“호로새끼야. 너 같은 약쟁이는 매가 약이다. 낄낄낄······!”
이장은 사악한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 채 삼복의 개를 잡듯이 쉴 새 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쿠아아아아아아아악······!
***
교도소 면회실에 강태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후 그의 면전에 푸른 수의 차림의 이욱철이 나타났다.
태호는 욱철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내 제안을 생각해 봤나?”
욱철이 담배 연기를 훅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받아먹은 돈이 마음에 걸려.”
“그 돈은 증거물로 제출하면 되잖아.”
그러자 욱철이 고개를 저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무려 8억이야. 돈이 아깝다고!”
“그 돈은 이사장님이 알아서 챙겨주실 거다.”
“그 말을 어떻게 믿냐?”
욱철의 얼굴에 불신이 역력한 표정이 그려졌다.
태호가 수첩을 욱철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 계좌를 적어라.”
“니가 모시는 양반이 그렇게 돈질을 잘하는 사람이냐?”
“증거를 보여줄 테니까 어여 계좌를 적으라고.”
욱철이 혹시나 하는 얼굴로 수첩에 은행 이름과 계좌번호를 차례로 적었다.
태호는 수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가 연결되자 단도직입적인 언사를 내뱉었다.
“이욱철의 계좌로 8억원을 입금해 주십시오. 은행명과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태호는 통화를 끊은 뒤 곧바로 문자 한통을 전송했다.
그는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피워내며 면전에 앉아 있는 욱철에게 입을 열었다.
“10분 후에 니 계좌를 확인해 봐라.”
욱철이 긴가민가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후, 욱철이 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 내 계좌에 돈이 입금됐습니까?
-네. 방금 전에 8억 원이 입금됐네요.
욱철은 놀란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와! 시발 엄청난 물주를 물었구나! 부럽다. 자식아!”
태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이제 돈도 확인했으니까 법무부 장관에게 고발장이나 작성해.”
“그래야지. 하하······.”
욱철은 감방에 돌아오자마자 책상 앞에 좌정한 채 a4 용지에 차분히 글을 써내려갔다.
-본인은 모월 모시에, 같은 교소도에서 복역 중인 채종구에게서 살인청부를 받았습니다. 그는 민간인 이태수를 살해하는 댓가로 20억원을 제시했습니다.
-저는 그의 제안에 응하는 척하며 선수금 조로 8억 원을 지급받았습니다. 이에 저는 법무부 장관님에게 채종구를 고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게 선수금 조로 받은 8억 원을 증거물로 제출하는 바입니다.
욱철은 고발장을 작성한 뒤 교도관을 면전에 호출했다.
“법무부 장관님에게 제가 작성한 고발장을 전달해 주십시오.”
“맨입으로?”
“백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오케이.”
교도관은 욱철의 고발장을 품에 챙긴 후 장내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
드림 엔터 사무실에서 tv 뉴스에 이목을 집중했다.
-폭행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 현직 경찰서장과 일선 지구대 경찰, 클럽 관계자들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졌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그들의 여죄를 엄중히 조사 중에 있다고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중략······.
-이어서 경제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명성그룹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명성그룹은 은행이자와 만기어음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채권 은행인 우림은행 측은 총수 일가의 주식을 모두 회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략······.
방기훈에게 못된 짓을 한 경찰들과 클럽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흐뭇한 뉴스였다.
반면 명성그룹의 부도 소식은 내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명우의 집안이 망한 탓이다.
녀석이 쓸만한 담보물을 제공했다면 천억이 아니라 1조원이라도 빌려줄 수 있었다.
허나, 명성그룹은 돈이 될 만한 담보물건이 전무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공은 공이고, 사는 사였다.
지킬 건 지켜야 한다.
걱정되는 마음에 명우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녀석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모르는 척 가만히 있는 게 녀석을 도와주는 거다.
입가에 담배를 베어 문 채 창가를 할 일 없이 서성일 무렵 사무실 전화벨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수화기를 들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밤의 연예가 산책의 이수연 입니다. 박초원 씨를 인터뷰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공중파 연예프로였다.
-직급이 어떻게 되시죠?
-pd 에요.
-언제 인터뷰를 하면 되죠?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내일 방송될 예정이거든요.
-좋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 7시경에 강남 인근의 모나코 카페에서 보죠.
-네. 고마워요. 사장님.
통화를 끊자마자 초원에게 연락을 넣었다.
-오늘 저녁 7시에 모나코 카페에서 한밤의 연예가 산책 팀과 인터뷰를 할 거니까 지금 당장 사무실로 나와라.
-정말? 리얼리?
-그래. 그러니까 어여 사무실로 와라.
-고마워. 오빠. 조금만 기다려.
초원은 잠실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신흥빌딩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30분 후, 초원이 내 앞에 나타났다.
곧바로 그녀를 데리고 인근의 미용실로 넘어갔다.
미용실 원장에게 백만원권 수표 두 장을 건네며 신신당부했다.
“tv에 나가야 하니까 헤어랑 메이크업, 코디에 각별히 신경을 써주세요.”
“염려 마세요. 제가 다 알아서 해드릴게요. 사장님은 소파에 앉아서 잡지나 보세요.”
그녀는 이 바닥에서 십수 년의 경력을 쌓은 여자였다.
더이상의 말은 불필요했다.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음미하며 패션잡지와 여성지를 심심풀이 땅콩처럼 탐독했다.
드디어 초원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화사한 정장 룩 차림이었다.
화장도 잘 먹었고 헤어도 찰랑거리는 단발로 새 단장을 했다.
정장룩과 아주 잘 어울리는 헤어였다.
“어때? 마음에 드니?”
“아주 좋은데. 하하······”
초원이 감사한 표정을 지으며 내 입술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우리는 달달한 키스를 즐긴 뒤 약속장소인 모나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페에 들어가자 방송팀이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쁘장한 여자가 나와 초원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수연 피디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두 분 모두.”
그녀에게 목례를 취한 뒤 초원을 테이블로 보냈다.
“준비가 다 된 거 같으니까 인터뷰를 시작하시죠.”
“네. 그럼 카페 한쪽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그러나 인터뷰는 생각 외로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5분가량의 방송화면을 따기 위해서 거의 3시간 이상을 촬영에 임했다.
***
한성철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염전에서 죽을힘을 다해 일해야 했다.
한시라도 딴눈을 팔았다간 염전 주인의 매서운 채찍이 그의 온몸에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는 탓이었다.
성철은 피눈물을 흘리며 가혹한 염전 노동을 묵묵히 감수했다.
그 길이 최선이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소금 알갱이들이 마약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약을 빨고 싶어서 미칠 노릇이었다.
성철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납덩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채찍이 그의 몸뚱이에 우박처럼 쏟아졌다.
찰삭······! 찰삭······! 찰삭······!
성철의 몸은 삽시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날카로운 납덩이가 그의 살갗을 자로 잰 듯 살벌하게 벗겨낸 탓이었다.
-크흑······!
그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때, 염전 업주의 입에서 날 서린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저녁 식사는 없다. 명심해!”
성철은 죽고 싶었다.
그러나 염전은 그마저도 허용치 않았다.
그는 가까스로 할당량을 채운 뒤 주먹밥으로 주린 배를 채웠다.
성철은 돼지우리를 연상케 하는 축사에서 염전 노예들과 밤새도록 신세를 한탄했다.
그는 날마다 주지육림을 즐긴 과거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클럽에 놀러 온 그녀들의 술잔에 뽕을 탄 후 강간을 밥 먹듯이 자행한 그때가 미치도록 그리웠다.
성철은 수많은 여자들을 마약쟁이로 전락시킨 것도 모잘라 종국에는 그녀들을 창녀촌과 섬 등지에 팔아치우는 파렴치한 악행마저 거리낌 없이 저질렀다.
그런 생각들이 뇌리를 스치자 악행에 대한 죗값을 받고 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날 이후, 성철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염전 노동에 최선을 다했다.
***
중부지검에 채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태섭은 취조실에 들어가자마자 동영상 촬영 모드를 오프시켰다.
직후 종구의 여린 육신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짓이겼다.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제발······.그만······..으아아아악······!
태섭은 종구의 얼굴을 구둣발로 짓이기며 스산한 어조를 내뱉었다.
“모든 증거가 명백해. 니놈이 살인교사를 했다는 진술서와 자금 이체 내역이 증거물로 검찰에 접수됐거든.”
종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온몸을 벌레처럼 꿈뜰거렸다.
“그러니까 이태수 씨를 대상으로 한 살해교사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라고. 그러면 모두가 편안해진다.”
태섭은 그 말을 끝으로 취조실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종구는 교도소로 돌아오자마자 영국에 있는 둘째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 전관 변호사를 고용해!
-미쳤어. 당신이 감옥에서 까먹은 돈이 30억이 넘는다고.
-이년아. 잔말 말고 비자금 계좌에서 돈을 꺼내라고!
-싫어. 우리 종훈이 앞날도 생각해야지.
-종훈이 타령 좀 그만해!
-종훈이는 당신 아들이야. 늦게 본 아들이라고 안중에도 없는 거니?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놈이 내 아들이라고 생각 안 해.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낳은 놈을 어떻게 내 자식으로 인정하냐고!
-당신이랑 마지막 잠자리를 가진 뒤에 임신한 애야. 아직도 나를 그렇게 믿지 못하는 거야?
-그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 그러니까 지금 당장 비자금 계좌에서 30억 정도만 꺼내서 내 계좌로 집어넣어.
-싫어. 비자금 계좌에 있는 돈은 우리 종훈이 사업자금이야.
-이 개년아. 지금 내가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다니까. 전관을 안 쓰면 형량이 엄청 늘어난다고!
-그러니까 누가 감옥에서 지랄하래. 모두 자업자득이니까 이만 끊어!
종구는 미칠 지경이었다.
본처가 죽자마자 맞아들인 둘째 부인이 비자금 계좌를 틀어쥔 채 돈을 내놓을 생각을 안 하는 탓이었다.
< 방기훈 2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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