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 엔터 1 >
김대주 정부의 IT산업 육성정책에 힘입어 어둠의 전설, 미르의 전설, 리니지, 바람의 나라 등의 온라인 게임이 1999년 새해 벽두 부터 미친듯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온라인 게임이 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1998년에 취임한 김대주 대통령이 대한민국 전역에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한 덕분이었다.
그런 탓인지 재일교포 억만장자인 손정의 회장은 일본과 미국에서도 못 이룬 것을 한국이 해냈다며 부러워하는 말을 방송에서 할 정도였다.
그 무렵, 현도증권이 바이코리아 펀드를 출시했다.
현도증권의 김익치 사장은 '한국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을 확신한다'라는 광고를 TV와 신문지상에 연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 덕분인지 바이코리아 펀드는 출시한지 6개월 만에 수탁 자산고 1조원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더불어 증시마저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가 회생의 날개짓을 활짝 펴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 증시에 투자하는걸 꺼려하고 있었다.
코스닥을 중심으로 다음과 네이버, 엔시 소프트 등이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기에는 판데기가 작았던 탓이었다.
나는 빌딩을 매각한 이후, 뉴욕 증시에 전재산을 쏟아부을 계획이었다.
도플갱어가 명한대로 아마존과 구글, 애플 등의 주식을 집중 매입할 생각이었다.
허나, 아직 때가 이른 싯점이었다.
빌딩을 매각하려면 아직도 2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비운 채 때를 기다려야 하는 싯점이었다.
***
강남 인근의 신흥 빌딩 앞에 벤틀리를 정차하자 경비원 아저씨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나를 향해 경례를 올려부쳤다.
내가 빌딩 주인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탓이었다.
경비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지하 주차장으로 벤틀리를 몰아갔다.
관리실에 들어가자 김용석 사장이 나를 반겼다.
그에게 곧바로 용건을 말했다.
"내 사무실에 헬스기구와 펀치볼 등을 구비하세요."
김사장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얼굴로 화답했다.
"내일 중으로 헬스기구와 펀치볼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겠습니다."
"그럼 수고를 해주세요."
그리 말하며 옆에 위치한 드림 엔터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음날.
김용석은 약속대로 드림 엔터 사무실에 각종 최신식 헬스기구와 펀치볼을 가져다놨다.
간만에 내 마음에 들게 일처리를 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간편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은 뒤 곧바로 중량 스쿼트를 시작했다.
스쿼트를 끝내자마자 삼단 줄넘기, 나 홀로 펀치볼을 무한반복했다.
땀으로 축축해진 트레이닝복을 청소 아줌마에게 건넨 뒤 지하층에 위치한 사우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우나에 들어가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나이지긋한 주인 아저씨가 나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장님."
그 역시 내가 건물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김용석이 동네방네 나발을 불고 다닌 탓이었다.
"요금이 얼마죠?"
"그냥 들어가시죠. 헤헤..."
사장 아저씨가 나에게 잘보이기 위해 헤픈 웃음을 흘려보냈다.
"됐습니다. 공과 사는 확실해야죠."
그제서야 아저씨가 알아먹은 얼굴로 가격을 말했다.
"5천원만 주세요."
"때밀이도 포함한 가격은요?"
"1만원입니다. 사장님."
그에게 만원권 한장을 건넨 뒤 사우나실로 들어갔다.
1시간 정도 사우나를 즐긴 후 때밀이 아저씨에게 온몸을 내맡겼다.
때를 시원하게 벗겨내자 상쾌한 기분이었다.
사우나를 끝마친 후 2층에 있는 부페식당으로 올라갔다.
부페식당에서 배를 잔뜩 채운 뒤 드림 엔터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서 아르마니 수트로 환복한 뒤 지갑을 열어보았다.
지갑 안에는 백만원권 수표 50여장과 만원권 6장이 들어있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액수였다.
나는 카드 보다 수표가 좋았다.
돈 쓰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갑을 상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벤틀리를 국면은행 강남지점으로 몰아갔다.
국면은행에 들어가자 점장이 버선발로 마중나왔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3층에 있는 귀빈실로 올라갔다.
귀빈실에서 다과를 즐기며 내 용건을 점장에게 말했다.
"TS 인베스트먼트 계좌에 있는 돈 중에서 대략 1천억 정도를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로 교환해 주십시오."
점장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게 많이 교환하실 생각입니까?"
"다 쓸때가 있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마십시오."
"액면가 1억원 짜리로 교환해 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무기명 양도성 예금증서는 뇌물로 써먹기에 그만이었다.
시중은행에서 자유로이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점장이 007 가방을 들고 귀빈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007가방을 열자 1천억에 상당하는 예금증서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원하신다면 대여금고를 내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시중은행 대여금고를 믿지 않았다.
꺼림직했기 때문이다.
"제가 알아서 보관할테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인근의 시티은행으로 넘어갔다.
귀빈실에 들어가자 점장이 나를 맞이했다.
"양도성 예금증서를 대여금고에 보관하고 싶습니다."
대여금고는 우량 고객들의 전유물이었다.
나는 시티은행 계좌에도 수백억대의 돈을 예치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점장은 친절한 얼굴로 화답했다.
"얼마든지 가능하십니다. 사장님."
시티은행은 미국계 금융기관이었다.
한국의 권력자들이 함부로 손을 댈수 없는 곳이었다.
"연간 이용 요금이 얼마죠?"
"25만원입니다. 사장님."
백만원권 수표를 건네자 점장이 75만원을 거슬러 주었다.
30분 뒤, 점장이 지하에 위치한 금고로 나를 안내했다.
배정된 금고함에 007 가방을 은닉한 뒤 점장의 환송을 받으며 시티은행을 벗어났다.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강태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은 어찌 되가고 있나요?
-박종우가 집과 차를 담보로 도박 빚을 빌린 모양입니다.
-채권을 인수하셨나요?
-네. 5억원에 인수했습니다.
-박종우의 집과 차를 경매에 붙이세요.
-사장님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실 겁니다.
-돈은 신경쓰지 말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제 잘난 박종우 교장은 알거지가 될 운명이었다.
나를 거지라고 비웃던 양반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모두 자업자득이다. 개같은 인간아.
***
삼청동 안가에 김재현 경제부총리와 대유그룹 김유중 회장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김재현 부총리는 면전에 앉아있는 김유중 회장에게 작심한 듯한 언사를 내뱉었다.
"부채 규모가 50조원이 넘는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김유중이 펄쩍 뛰며 양팔을 맹렬히 저었다.
"그건 시중의 유언비어에 불과합니다. 우리 대유그룹의 부채는 아무리 많아도 10조원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김재현은 김 회장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미국의 신용평가사들이 대유그룹의 회사채와 주식을 정크본드 수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대규모 부채를 분식회계로 숨겼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부총리께서는 왜, 사사건건 미국의 말만 믿으시는 겁니까? 우리 대유그룹한테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겁니까?"
김유중이 맞받아치자 김재현도 지지 않았다.
"횡령자금도 20조원이 넘는다는 말이 시중에 돌고 있어요. 당신네 대유그룹은 나라 경제를 좀먹는 좀비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김유중은 인상을 잔뜩 쓰며 담배 연기를 자욱히 말아올렸다.
그러기를 얼마후 씹어뱉듯이 말을 내뱉었다.
"우리 대유그룹은 여전히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5조원 정도만 지원해 주시면 단시일 안에 자금난을 극복 할 수 있습니다."
김재현이 성난 얼굴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직후 온다간다 말도없이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1시간 후.
김재현 부총리가 청와대 관저에 나타났다.
그는 김대주 대통령에게 김 회장과의 만남을 보고했다.
"김 회장은 50조원대의 부채와 20조원에 달하는 횡령혐의를 모두 부정했습니다."
김대주 대통령이 곤혹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거의 없습니다. 대유그룹은 50조원이 넘는 대출을 분식회계로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뿐만 아리나 회장 일가와 고위 임원들이 횡령한 자금만도 24조원에 달할 지경입니다."
"음..."
김대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대유그룹을 도산시킨다면 국가경제에 심대한 충격을 줄수 있어요."
"그렇다고, 부실덩어리인 대유그룹에게 또 다시 거액의 대출을 감행한다면 IMF에서 분명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기회에 모두 털고 가자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결단이 빠를수록 피해가 줄어들 겁니다."
"알았으니까 나가보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김재현은 그말을 끝으로 장내에서 조심스럽게 물러났다.
다음날.
김대주 대통령이 김재현 부총리를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대출금을 회수하고, 국내외 언론에 대유그룹의 분식회계와 거액의 횡령 혐의를 사실대로 밝히세요."
"말씀대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에 따르는 사법 처리 문제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등과 협의해서 처리하시고."
"명심하겠습니다. 대통령님."
***
드림엔터 사무실에서 헬스와 복싱에 열중하며 벽면에 내걸린 대화면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재계 서열 3위의 대유그룹이 총 59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채무를 분식회계 수법을 이용하여 10조원 대로 축소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김유중 회장 일가와 고위 임원들이 24조원에 달하는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부는 대유그룹 전 계열사의 주식시장 거래를 모두 중단 시키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계에서는 대유그룹 전체가 도산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중략...
한두개 계열사가 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룹 전체가 파산하는 형국이었다.
그렇지만 김유중 회장 일가는 워낙에 숨겨놓은 돈이 많은 탓에 회사가 망해도 먹고 사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라는 속담은 허언이 아니었다.
씁쓸한 기분을 뒤로 한 채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수트로 갈아입는게 번거로운 탓이었다.
사무실에서 압구정 아파트 중간에는 슈퍼카 매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차창을 스치는 삐까번쩍한 슈퍼카에 절로 눈길이 갔다.
나처럼 돈이 억수로 많은 갑부들을 유혹하는거 같았다.
나는 벤틀리에 만족했다.
차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드림 엔터 사무실에 강태호가 나타났다.
녀석이 일의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박종우의 집과 자동차를 경매로 처분했습니다."
"얼마에 처분했죠?"
"총 3억 7천만원에 처분했습니다."
"아직도 1억 3천만원에 달하는 빚이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사장님."
"박종우에게 경비원 일자리를 제안하세요."
태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느 빌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여기 신흥 빌딩을 말하는 겁니다. 이곳 경비로 취직시키세요."
"이러시는 이유를 알수 있을 까요?"
"강사장이 알필요 없는 일입니다."
태호가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앞으로 쓸데없이 질문을 하지 마세요. 그게 아랫 사람 된 도리니까."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가서 일 보세요."
그러자 태호가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장내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
강태호의 사무실에 박종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집도 절도 없는 처지였다.
집과 자동차가 경매에 넘어갔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직위해제를 당한 상태였다.
거액의 도박 빚을 진 사실이 학교에 파다하게 소문난 탓이었다.
더구나 종우는 여전히 1억이 넘는 도박 빚을 지고 있었다.
악몽같은 현실이었다.
그는 겁에 잔뜩 질린 얼굴로 강태호의 발밑에 무릎을 끓었다.
"우리 박선생님은 두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할수 있습니다."
태호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기를 기증해서 불쌍한 생명들을 살리거나 아니면 열심히 일을 해서 채무를 변제하거나."
당연히 종우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는 울부짖듯 외쳤다.
"열심히 일해서 빚을 모두 갚겠습니다. 사장님! 그러니 제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좋은 자세군요. 좋습니다. 박선생에게 기회를 드리죠."
태호는 메모지 한장을 그에게 건넸다.
"내일 부터 강남역 인근의 신흥빌딩으로 출근하세요. 그곳에서 경비로 일하면서 채무를 변제하십시오."
그러자 종우가 죽다 살아난 얼굴로 태호에게 감사한 심경을 격하게 전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 드림 엔터 1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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