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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재벌 개망나니-16화 (103/200)

< 대유그룹 3 >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실장님이 초면 부터 반말을 해왔다.

"연대 69학번 출신인 박태종이다."

하늘같은 대학 선배였다.

"그러니 말을 놔도 되겠지."

"편할대로 하십시오."

그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비서진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비서와 회장님 일가의 사적인 영역을 관리하는 비서, 이렇게 두부류로 나뉜다."

박태종은 그리 말하며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당연히 사적인 영역을 관장하는 비서들이 연봉도 높지."

"이런 얘기를 하시는 이유가 뭔가요?"

"회장님 일가를 서포트 하려면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해. 그런 면에서 태수씨는 안성맞춤의 조건을 갖고있지."

그에게 솔직히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연대 학벌에 영어도 잘하고, 집도 살만큼 사니까 회장님의 가족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어."

이상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는 모양새였다.

내가 원한건 평범한 샐러리맨의 삶이었는데.

"내일 부터 성북동으로 출근해."

박실장은 그리 말하며 메모지 한장을 나에게 건넸다.

메모지를 들여다보자 집주소가 적혀 있었다.

"자차를 끌고 가도 됩니까?"

그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당분간 대중교통을 이용해. 태수씨는 아직 짬밥이 안되니까."

"그럼 성북동에 가면 누굴 찾아야 하는거죠?"

"김집사가 알아서 조치를 취할테니, 태수씨는 아무런 걱정을 하지마라."

"오전 9시까지 성북동으로 찾아가면 되는 건가요?"

박실장은 이번에도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최소 8시까지는 성북동으로 들어가야 할거다."

"알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욕실에서 재빨리 샤워를 끝마친 뒤 아침도 거른 채 집을 나섰다.

물어물어 성북동 집을 찾아가자 턱시도 차림의 중년 남자가 나를 맞이했다.

자신을 김집사라고 밝힌 녀석이 거만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보고 들은 일은 무덤 까지 가져가야 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집사 나부랭이가 초장 부터 군기를 잡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리 답하자 김집사가 나를 내실로 이끌었다.

내실에는 부티나는 귀부인이 있었다.

회장 사모님이었다.

꾸벅 허리를 숙인 뒤 자세를 바로하자 그녀가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압구정 현도 아파트에서 자가로 거주할 정도면 집안 재력이 좋은가 보네요?"

그녀는 내 재산 현황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이력서에 너무 솔직하게 기재했다.

실수다. 이런 관심을 원한게 아니었는데.

그때, 집사가 어서 대답하라는 눈치를 줬다.

"학교를 다니면서 과외 알바를 많이 했습니다. 그 덕분에 아파트를 구입하게 된거죠?"

그러자 그녀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어떤 과목을 과외 하셨나요?"

"주로 영어를 과외했습니다."

그녀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조만간 뉴욕에서 미술품을 구입할 예정이니까 태수씨가 영어 통역을 맡아주세요."

생뚱맞은 말이었다.

그러나 비서는 까라면 까야 한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여사님."

"그럼 별관 건물에서 아침 부터 드세요."

그녀는 그리 말하며 나가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김집사는 나를 별관 건물로 이끌었다.

건물에 들어가자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비서진, 경호원들이 한데 어우러진 채 넓다란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찬이 나름 괜찮았다.

아침밥을 두그릇이나 비운 뒤 건물 뒷편의 휴게실에서 식후 연초를 즐길 무렵 양복 차림의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이태수씨 맞으시죠?"

"네. 그런데 누구신지...?"

"비서실 소속의 차현우 대립니다."

내 직속 선배였다.

"몇가지 알려드릴 사항이 있으니까 담배를 태우시면 2층에 있는 비서진 사무실로 올라오세요."

"알겠습니다. 선배님."

담배를 태운 뒤 2층에 있는 비서 사무실로 들어가자 서너명의 남자들이 커피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며 내 소개를 했다.

"비서실로 발령받은 신입사원 이태숩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런저런 질문을 해왔다.

의례적인 호구조사였다.

호구조사가 끝나자 구석에 놓여있는 책상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차현우 대리가 나를 손짓했다.

그의 앞으로 다가가자 차대리가 유의사항을 전달했다.

"앞으로 태수씨는 여사님을 수행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내용을 절대 외부에 발설하시면 안됩니다."

김집사의 신신당부와 대동소이한 내용이었다.

절대 비밀주의가 성북동을 지배하는 모양이었다.

"특히 여사님이 누굴 만나더라도 모르쇠로 일관하십시오. 아시겠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여사님의 콜이 떨어질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세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오전 10시경에 미술관으로 출근하시니까 1시간 정도 대기하면 될거에요."

차대리는 그리 말하며 출입구 왼편에 놓여진 빈 책상을 손짓했다.

"그자리에서 대기하세요."

"네. 선배님."

책상에서 1시간 동안 하는일 없이 대기할 무렵 사무실에 인터폰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인터폰을 확인한 차대리가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본관으로 가세요."

"네. 선배님."

그말과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본관 건물로 뛰어가자 김집사와 경호원, 운전기사 등이 현관 출입구에 모여 있었다.

몇분 뒤, 정장룩 차림의 여사님이 현관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 고혹적인 미소를 내비치며 입을 열었다.

"내 옆자리에 올라타세요."

"네. 여사님."

"앞으로는 관장님으로 호칭해 주세요. 그게 편하니까."

그녀는 우아한 발걸음을 과시하며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그녀를 뒤따라 나 역시 뒷자리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운전기사와 차대리, 사모님, 나 이렇게 4명이 동승한 상태였다.

그리고 뒤편에는 경호원들의 봉고차량이 있었다.

운전기사는 남산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그때, 사모님의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술관을 운영하려면 해외에서 작품성 있는 미술품들을 자주 들여와야 해요. 그러자면 영어회화에 능통한 비서가 필수죠."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래서 박실장님에게 영어회화를 잘하는 인재를 소개해 달라고 오래전 부터 부탁을 드렸어요."

이제서야 내가 왜, 비서실에 발령받았는지 그 이유를 알거 같았다.

"연봉을 섭섭치 않게 챙겨 줄테니까, 내일 처럼 열심히 저를 도와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관장님을 돕겠습니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 뒤 차대리를 향해 입을 열었다.

"오늘 스켸쥴이 어떻게 되죠?"

차대리가 즉답했다.

"낮 12시에 전경련 회장단 사모님들과 오찬 모임이 있고, 오후 3시경에 용인에 있는 골프장에서 라운딩이 예정된 상태고, 저녁 7시에는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지인분과 만남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회장 사모라 그런지 하루 일정이 빽빽하게 채워진 상태였다.

그 즈음 롤스로이스가 남산 중턱에 위치한 미술관에 정차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자 큐레이터 아가씨들이 양편으로 줄을 선 채 두손을 가지런히 마주잡으며 사모님에게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사모를 뒤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안쪽에는 관장실이 있었고 밖에는 비서들의 전용 공간이 있었다.

차대리는 관장실 문 옆에 놓인 책상에 앉자마자 나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켰다.

"탕비실에서 커피 좀 타오세요. 커피 2스푼, 프림 2스푼, 설탕 3스푼씩."

그는 배합비율을 상세히 설명하며 뒤편에 위치한 탕비실을 손짓했다.

탕비실에서 커피 두잔을 제조한 뒤, 한잔은 차대리에게 건네고 나머지 한잔은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책상에 앉아서 여유로이 커피를 음미할 무렵 차대리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연대 출신인가요?"

"그렇습니다. 대리님."

"쓸만한 대학을 나오셨네요."

말은 그리 하면서도 차대리는 나를 깔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갑자기 녀석의 학벌이 궁금해졌다.

"대리님은 어디 대학을 나오셨나요?"

내가 묻자 차대리가 기다렸다는 듯 당당하게 답변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입니다."

녀석은 자신의 학벌에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내 보였다.

하긴,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면 그럴만도 하다.

내심 그의 학벌을 인정하며 묵묵히 커피를 음미했다.

그때, 녀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래서 내가 미칠지경이에요. 비서 노릇이나 하려고 회사에 입사한게 아니거든요."

그는 비서라는 직위에 불만이 많아보였다.

"원래 무역상사를 지망했었거든요. 그런데 인사팀에서 비서실로 발령을 낸거죠. 자기들 멋대로."

나와 대동소이한 처지였다.

그런 탓인지 녀석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조금 느꼈다.

"앞으로 딱 1년만 버텨볼 생각이에요."

"무역상사로 옮기려고 그러시나요?"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인사팀에 무역상사로 옮겨달라고 날마다 청원하는 신세죠."

박대리는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름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단지,학벌 자랑이 심한게 탈이었다.

그때, 차대리의 책상에 놓여진 인터폰이 요란한 울음을 토했다.

차대리는 인터폰을 끊은 뒤 나에게 입을 열었다.

"관장실로 들어가 보세요."

그에게 목례를 취한 뒤, 관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관장실은 어림짐작으로 백여평에 달하는 넓다란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실내에는 동서양의 명화가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미술관이라 그런거 같았다.

사모님은 창가를 서성이며 아침 햇살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 앞으로 다가가자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번주 금요일에 뉴욕에서 미술품 거래를 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말인데 몇가지 당부할 사항이 있어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미술관들은 관행적으로 이면계약을 자주해요. 실제 구입가격 보다 높은 액수로 계약을 체결하는거죠."

역마진 거래였다.

손해보는 장사.

이유가 뭘까?

"이비서가 통역과정에서 그런 내용을 거래 상대방에게 제대로 알려주길 바래요. 만약 상대방이 이면거래를 거부한다면 그 즉시 나한테 알려주세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이번주 금요일에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니까, 출국에 차질에 없어야해요."

"넵. 관장님."

< 대유그룹 3 > 끝

ⓒ 방탄리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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