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200화 (200/200)

#199

유치장의 벽을 사이에 두고, 형우는 윤태준을 바라봤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냥 선배라고 했다.

윤태준이 고개를 들어 형우를 바라봤다.

“김형우……?”

형우를 보자마자 윤태준이 벽에 머리를 쿵, 하고 찧었다. 마치 철창 속 투견처럼 으르렁거렸다.

“이 개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윤태준이 목이라도 조를 듯이 형우를 노려봤다. 강화유리가 가운데에 버티고 있지 않았더라면 진짜로 목이 졸렸을 거라는 데에 전작 수입을 모두 걸 수도 있었다.

“너 때문에 억울하게 갇혀 있는 사람을 보고 낄낄거리려고 왔냐? 이 쓰레기 같은 놈!”

“저 때문에요?”

형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왜 저 때문이에요?”

“그걸 몰라서 물어? 네가 나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잖아!”

윤태준이 씹어뱉듯 이야기했다.

“별것도 아닌 자식이 별것도 아니게 살면 될 걸, 왜 나댄 거야, 대체?”

윤태준은 성을 못 이기는 듯 책상을 쾅쾅 쳤다. 마약중독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인 분노조절장애다.

마약중독의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자존감의 부족이라고 한다. 겉보기에는 자신감 넘쳐 보이는 사람도 종종… 자존감 부족에는 시달린다.

자존감을 채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윤태준은 그중 가장 꼴사나운 방법을 택했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는 것이다. 그 대상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덧씌울 수 있는 사람이면 금상첨화였다.

때마침 학교에 자신처럼 아버지가 없는 놈이 들어온 것은, 윤태준에게 있어 행운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없는 것까지만 같았고, 그 외엔 다 내가 나았지. 돈도, 글솜씨도, 심지어 덩치도 내가 더 컸어. 넌 나한테 찍소리도 못 했지.”

그곳이야말로 윤태준의 파라다이스였다. 윤태준은 매일매일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 생겼다. 형우가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형우의 불행은 윤태준의 행복이었으나, 그 역 또한 성립했다는 게 문제다.

“네가 잘 나갈수록 나는 점점 미칠 것 같았어. 잠을 잘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고, 누가 네 이야기를 하면 심장이 두근거려 미칠 것 같았다고. 네가 이런 내 심정을 알아?”

잊어 보려고도 하고, 수면제도 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상대를 꺾어 누르는 식으로 행복을 얻어왔기에, 그 외의 방법으로는 행복을 얻는 법을 알지 못했다. 늘 공허했고 텁텁했으며, 악몽은 점점 심해졌다. 이러다가 정말 뭐가 잘못될 것 같았다.

“그래서 복수하기로 했어. 너한테 말야. 물론 너는 이해를 못 하겠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 복수를 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한테는 진짜 복수심이었어. 그게 얼마나 나쁜 건지 넌 몰라.”

윤태준의 성찰을 천천히 듣던 형우는 그대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왜 사람이 저렇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은 충분히 해소됐다. 하지만, 윤태준의 말 중 한 부분은 틀렸다.

“…복수심이라.”

형우가 되뇌었다.

지난 2년간, 형우만큼 복수라는 단어에 깊게 골몰했던 사람이 또 있을까. 당연히, 복수를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또한.

복수가 마냥 나쁘다는 말 역시… 그다지 찬성하지는 않았다.

“흔히 말하죠. 세상에는 아주 나쁜 것도 아주 좋은 것도 없다고. 복수도 마찬가지예요.”

형우가 말했다.

“잘 쓰면 아주 좋은 거라고요. 보세요.”

형우가 가방을 뒤져 <주산태협전>을 꺼냈다. 윤태준이 조작을 위해 만들었던 책이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잘 읽었어요, 선배.”

“지금 놀리는 거냐?”

“그럴 리가요. 저는 이런 걸로 농담 안 해요.”

<주산태협전>을 잘 읽었다는 건 진심이다.

물론 <주산태협전>은 명백한 표절 작품이다. 하지만… 표절에도 기술이란 게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이란 결국 글을 쓰는 기술. 다시 말해 필력이다. 필력이 구린 사람은 표절조차 똑바로 못 한다.

“하지만 이건 달랐죠.”

“다르다니?”

“아주 잘 썼거든요.”

문장의 활용도도 좋고, 장면 배치도 훌륭하다.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요. <주산태협전>이 수준 이하의 작품이라면 표절 논란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복수심에 활활 불타서,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겠죠.”

그 덕분에 <주산태협전>은 아이러니하게도 꽤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나왔다. 심지어는 표절 논란을 위해 넣은 부분이 억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이 소설을 제대로 썼다면, 분명 좋은 소설이 되었을 거예요. 이걸 망친 건 선배고요.”

“너, 넌!”

윤태준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넌 아무것도 몰라!”

“왜 모르겠어요.”

형우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똑같은 심정이었는데.”

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왠 미친놈한테 찍혀서 내내 괴롭힘을 당했다. 그것도 아주 똑똑하게 말이다.

-하, 판타지 소설을 쓴다고?

-네 소설이 뭐가 부족한지 모르냐?

-교수님, 김형우가 해 온 분석은 완전 엉터리입니다. 이 부분의 해석은….

기분이 나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나보다 잘났다는 것은… 정말이지 참기 힘들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네, 고사일보 신춘문예죠? 이번에 응모 요강이….

-아… 문화타운 공모전 떨어졌다고요. 아, 감사합니다.

-대학생문학상 불통이요?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 것은.

저 인간을 이기고 싶다.

한 방이라도 먹여보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고, 쓰고, 쓰고, 쓰고, 또 썼다.

“<주산태협전>쓸 때 어땠어요? 막 등허리가 삐쭉삐쭉하고 손이 죽죽 나가고 그랬겠지요. 쓰는 데 얼마나 걸렸죠? 한 달? 두 달?”

형우가 이죽거렸다.

“저는 그걸 년 단위로 했어요. 그러니 글을 잘 쓰지 않고 배길 수 있겠어요?”

미국의 시인인 앨리스 워커는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방향성을 가진 증오가 필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윤태준과 자신에게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선배를 이기고 싶어서 소설을 썼어요. 하지만, 선배는 저를 이기려고 다른 짓을 했죠. 비겁하고 나쁜 짓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주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형우가, 윤태준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만약 윤태준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의 김형우 또한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선배님, 가르침 정말 감사합니다.”

“뭐?”

“당신은 최고의 선배였어요.”

그 말을 끝으로 형우는 면회실을 나왔다.

-이 새끼, 이 새끼가아아!

-난동 피우지 마!

-개새끼야! 이리 안 와!

안에서 뭔가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소음이 들렸지만…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잡아, 잡아! 스턴건 쏜다!

-쿠에엑!

으음, 저건 좀 볼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 * *

“아오, 이게 왜 죽어?”

스마트폰을 가로로 쥔 연수가 불평을 터트렸다. 옆에서 의재가 낄낄거렸다.

“인마, 거기서 스킬을 왜 쓰냐? 아꼈어야지.”

“아니, 그게….”

“그것만 아꼈으면 네가 이겼는데, 괜히 스킬 빼줘서 이겼네.”

“…저, 선배.”

연수가 얼굴을 찌푸렸다.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빡치는 게 뭔지 알아요?”

“뭔데?”

“내 실수로 상대가 이득 봤을 때에요.”

연수가 주먹을 활활 불태웠다. 표정이 하얗게 굳은 의재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이걸 확, 그냥!”

“으아악, 살려줘!”

그렇게 의재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려던 찰나, 스패로우 팩토리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뭐 하냐? 둘이서?”

형우가 눈을 껌뻑거렸다.

대충 널브러진 쇼파에, 테이블을 가득 메운 도리토스며 프링글스. 거기에 콜라와 마운틴 듀, 그리고 스마트폰이라. 뭘 했는지 알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광경이로군.

“또 게임하고 놀았구만.”

“게임 좀 할 수도 있지 인마!”

“게임하느니 차라리 즐거~운 소설 한 페이지 쓰고 말지.”

“흐흐,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보면 그런 말 안 나올걸?”

의재가 씩 웃으며 스마트폰을 척! 하고 들어 올렸다. 형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니, 이거 오늘이었어?”

“그래 인마, 이 자식은 지 게임이 언제 나오는지도 몰라.”

의재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대머리 캐릭터가 허잇쨔! 허잇쨔!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런칭한 모바일 morpg, <권객 모바일>의 시작 화면이었다. 그 밑에 빙그레게임즈의 로고와 스패로우 팩토리의 로고가 나란히 있었다.

“벌써 현질도 했다. 오만 원.”

“좀 더 쓰지?”

“돈 없어.”

얼렐래, 요즘 잘나가는 놈이 엄살이 심했다. 그 옆에서 연수가 폴짝 손을 들어 올렸다.

“저는 10만 원 했어요!”

“오.”

“근데 캐릭터 좋은 거 안 나와서 그런데, 환불해도 돼요?”

“뭐……?”

“이 게임 확률이 너무 극혐인데.”

“…유지태 팀장님께 말씀드려 볼게.”

방금까지만 해도 엄청 진지한 기분이었는데, 이 친구들 앞에 있으면 도무지 진지해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들이랑 같이 있으면 긴장이 안 돼. 그나저나, 게임 재밌냐?”

“넌 이미 해본 거 아니었어?”

“해보긴 했는데, 3탄까지밖에 못 했어.”

“3탄이면 완전 초반이잖아. 클로즈 베타 테스트라 많이 안 나왔었나 보네.”

“아니, 그 뒤로 더 있긴 했는데, 내가 못 깼어. 너무 어렵더라고.”

“3탄을 못 깼다고?”

그 말을 들은 의재와 연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아! 클로즈 베타니까 말야. 아마도 난도가 훨씬 높았나 보다.”

“…제가 게임메타에서 보니까 클로즈 베타 때 난도가 너무 낮아서 상향조정했다고 하던데요?”

“그, 그… 그러면….”

한참을 고민하던 의재가, 진지한 표정으로 형우의 앞에 도착해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형우의 정수리를 두 번 톡톡 때렸다.

“안에 계세요?”

“까불래?”

형우의 이마에 쌍심지가 돋았다. 의재가 찔끔 물러섰다.

“아니, 그냥 해본 말이야. 아, 이참에 4탄 한번 깨 볼래?”

“나중에. 오늘은 강주범 감독님 만나기로 했거든. 장면 하나에 내 의견이 필요하다나.”

“그 감독님, 작가 엄청 많이 부르네. 원래 그런 분인가?”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원작자가 영화에 시비 걸면 못 참는 사람이라던데, 내가 특이한 거래.”

“오오, 틈새 자랑이냐?”

“뭐….”

형우가 턱을 치켜들고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나 정도면 자랑할 만하지 않냐?”

“오… 미친놈.”

의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진짜 머리 아픈 거 아니지?”

“지금 아니면 언제 이런 말 해볼까 싶어서 해 봤는데, 안 할 걸 그랬다.”

“맞아요,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흐엡.”

이상한 말투로 중얼거린 형우는, 그대로 회의실 안쪽으로 들어가 문을 꽝 닫았다.

“뭐 해요, 선배?”

“나 옷 좀 갈아입게. 들어오지 마라.”

“오, 옷이요?”

연수가 당황하는 사이, 형우는 어느새 양복을 다 벗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이것 좀 캐비닛에 넣어 줘.”

“강주범 감독님 만나러 간다며?”

“그 감독님은 내가 뭐 입든 신경 안 써. 오히려 추리링 입고 가면 좋아하던데.”

“나 참.”

의재가 삐쭉거렸다.

“내가 너만큼 돈 많았으면 맨날 비싼 것만 입고 다녔을 텐데. 추리링이 뭐냐? 맨날 똑같은 것만 입으면 안 질려?”

“뭐래. 이거 받은 지 이 주도 안 된 거야. 그리고 비싼 거임. 프랑스 장인이 만들었다더라.”

“뭐라고요? 프랑스 장인?”

연수가 당황했다.

옆에서 의재가 실쭉 웃었다.

“야, 너 혹시 그거… 선물 받은 거냐?”

“응.”

“누누누누누누,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이런 거 줄 사람이 한 명밖에 더 있냐? 아무튼 난 간다.”

형우는 그대로 회의실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분명 에어컨은 켜지 않았을 텐데… 방이 유달리 춥게 느껴지는 의재였다.

* * *

“천우희 작가님.”

형우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좋아요.”

“정말?”

천우희의 입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형우 또한 흡족한 표정으로 마주 웃었다.

“특히 이 웨딩드레스가 진짜 너무 예쁜 것 같아요. 역시 센스가 남다르세요.”

“헤헤.”

그 모습을 본 웨딩플레너 하나가 와서 사람 좋게 웃었다.

“하하, 신랑신부분이 너무 잘 어울리세요!”

“…예?”

그 순간, 형우의 표정이 굳었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한 웨딩플레너가 황급히 수습했다.

“두, 두 분 결혼하실 사이 아니셨나요?”

“그런 거 아닙니다.”

혹시라도 천우희가 기분 나빠할까, 형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희 어머니가 재혼하셔서 그 결혼식 준비해 드리려고 온 거예요.”

“아하… 제가 오해한 거군요. 요즘 황혼결혼식 같은 게 대세기는 하죠. 그중에도 스페셜한 게 있는데.”

“스페셜이요?”

“네. 가격이 좀 있기는 한데….”

“어머니 일인데 돈은 무슨 돈이에요. 상관없어요. 스페셜, 스페셜이라…?”

‘스페셜’이라는 단어 한 방에 형우가 홀딱 넘어갔다. 그 모습을 본 웨딩플레너는 황급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그냥 넘어가서 다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웨딩플레너는 약간 이상한 느낌을 느꼈다. 이쪽을 바라보는 여자 쪽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가위바위보에 져서 치킨 닭다리를 뺏길 때 우리 누나 표정이 딱 저랬다. 아쉬움과 아까움이 반반씩 섞인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렇게 오래 집중하지는 않았다.

“하, 스페셜 좋네요! 혹시 다른 것도 있나요?”

“당연히 있습니다! 샴페인 탑이라는 건데, 이게 상당히 엘레강스하거든요.”

“엘레강스! 그것도 좋네요! 해 주세요!”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맞아요, 뷰티플한 것도 있습니다!”

“뷰티플은 좀 약한데요?”

“그, 그러면 그, 그, 아크로바틱한거!”

“아크로바틱이요?”

갑자기 영접한 VIP 덕분에 고등학교 때 영어 공부를 조금 더 해 놓을 걸- 하고 때늦은 후회를 하는 웨딩플레너였다.

#200[完]

허례허식은 낭비일 뿐이다.

형우의 어머니, 송윤아는 지금까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지만, 마치 황소처럼 저돌적으로 돌진해 오는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대체 누굴 닮았는지, 라는 말은 별로 의미 없을 테다. 그거야 뻔한 사실이니까.

사흘 간의 공방 끝에, 송윤아는 결국 ‘재혼을 했으면 결혼식도 당연히 다시 해야 한다.’라는 아들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형우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너무 치명적이라서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린다니까요? 쟤는 돈도 많은 애가 부모를 허름한 데 보낸다고?”

“무시하려무나.”

“저는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면 신경이 쓰여서 작업이 안 돼요.”

……윤아 또한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사소한 것에 민감한지에 대해 잘 알았다. 민준이 파리 한 마리 탓에 집중이 안 된다며 집안을 홀랑 불태워 버릴 뻔 한 적이 있지 않았던가.

초호화 결혼식의 비용과, 아들이 일을 해서 벌 돈을 비교하자면… 그 결과는 뻔했다. 아무리 결혼식이 돈을 잡아먹는다고 한들, 든든한 중견기업의 공동대표인 형우가 버는 만큼 들지는 않는다.

다만, 누구한테 연락해야 할지는 조금 망설여진다.

“괜히 지인들한테 축의금을 두 번 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런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다들 오고 싶어 안달나게 될 테니까.”

형우의 말대로 됐다.

윤아의 지인들은 대한민국 최고 스펙의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호텔 밥이 진짜 맛있다던데?’라며 너도나도 축의금 오만 원을 들고 결혼식을 찾았다.

어떻게 봐도 손해밖에 없는 장사라서 내심 속이 쓰려오는 윤아였지만… 세상에 엄마 결혼식을 보는 아들은 몇 명 없을 거라며 낄낄거리는 아들놈을 보니 속 쓰린 것도 못 할 짓이다 싶었다.

“안녕하세요! MC제나입니다!”

주례는 예전에 다큐멘터리 관련으로 인연을 맺은 라디오 MC제나가 맡았다.

“신랑 성민준 군은 신부 송윤아 양을 맞이하여….”

“우우! 멘트 진부하다!”

“어허! 클리세가 좋은 거예요! 알 것 다 아시는 작가 양반들이 왜 이러실까!”

제나의 넉살에, 그곳에 모인 스패로우 팩토리 사람들이 와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그 외에도 한국 대학교의 사람들도 몇 명 모였고, 동기들도 모였다. 뭐랄까, 송윤아의 결혼식이라기보단 형우의 결혼식 같아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말인데, 형우야. 너는 결혼 생각 없냐? 슬슬 결혼할 때가 됐는데.”

“에이, 저 좋아하는 여자가 어딨어요.”

“흐음….”

눈치 빠른 윤아는 슬쩍 시선을 돌려 형우의 뒤편을 바라봤다. 오호, 자신의 눈을 피하는 애들이 몇 명 있었다. 동료에, 동기에, 후배라.

한눈에 봐도 대충 각이 보이는데, 몇 년간 그 사람들이랑 부대끼며 지냈으면서도 영 모르는 아들놈이 오히려 용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니, 솔직히 이 정도면 양쪽이 다 이상하다.

‘그래도 뭐.’

신경은 딱히 안 쓰기로 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저리도 많으면 뭐가 됐든 어떻게든 되겠지. 형우는 이미 충분히 좋은 아들이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기대감이란…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자식은 사업이 아니니까, 뭘 바라고 키우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행복하려고 키우는 거니까.

“그럼, 신랑 신부 키스!”

제나의 막무가내식 진행에, 청중들이 와르륵 웃었다. 민준의 얼굴이 빨개진다.

“거, 거 사람들 많은데 여기서 어떻게…….”

“분위기 깨지 마라, 민준아.”

윤아는 그대로 다가가서 민준의 허리를 확 붙들고, 그대로 뒤로 넘겨버렸다. 와아아! 카리스마! 걸크러쉬!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민준의 얼굴은… 꼭 터져버린 홍당무 같다. 아무래도 결혼 생활은 오랜만에 공주 대접받으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하세요!”

“황혼 결혼식이라니, 진짜 너무 로맨틱하다! 둘이 오래오래 가세요!”

여기저기서 축사들이 터지는데, 아들놈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이 모든 걸 꾸몄으면서 어디 갔나 싶어서 찾아보니, 구석에서 혼자 궁상맞게 훌쩍이고 있었다.

“나 참, 남의 결혼식 때 왜 울어?”

“남의 결혼식은 아니잖아요.”

“그건 맞긴 하다만.”

윤아는 그대로 가서, 우는 아들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고맙다, 형우야.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날이구나.”

“그런 말 하면 아버지가 싫어할 걸요?”

“……두 번째로 하자.”

“그런 말 하면 민준 삼촌이…….”

“이 녀석이, 농담할 기운은 있구나. 근데 농담을 하려면 웃으면서 해야지. 울면서 하면 쓰나. 그러니까 눈물 뚝!”

하지만 형우는 눈물을 그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크게 훌쩍거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아들은 청개구리인 것 같다.

윤아는 진심을 다해, 아들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줬다. 결혼식 날 할 말은 아니지만… 저절로 천장 쪽으로 눈이 갔다.

‘여보, 보고 있죠? 당신 아들 엄청 잘 컸어요.’

‘그리고, 나 새로 결혼하는 거 너무 질투하지는 말고요. 호적 정리 같은 건 저승 가서 새로 하고. 아니면 뭐, 일처다부제도 괜찮겠네.’

농담처럼 이야기하려고 애썼는데, 어느새 윤아의 눈에도 눈물이 한 방울 주륵 흘렀다.

아들의 소설에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온다.

어떤 사람을 볼 때 미소와 눈물이 함께 나온다면, 그 사람은 당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참 수려한 문장이죠?’

그렇게 중얼거리며, 윤아는 눈물을 슬쩍 닦았다.

하늘에서 뭔가가 번득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 * *

형우는 노트북 앞에 앉았다.

순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정확히는 인생이나 야구나 목표란 집(Home)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그 문장이 떠올랐다.

형우는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어떤 일이 있었든,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형우에게 일상이란, 추리링을 입고 노트북 앞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다.

글자를 쓰고, 글자를 이어붙여 단어를 만들고, 단어를 이어붙여 문장을 만든다.

그렇게 B6 규격으로 용지 13장을 채우면, 5,500자에서 6,500자 사이의 웹소설 한 편이 완성된다.

컨디션이 좋으면 두 번 반복할 때도 있다. 운이 좋은 날은 세 번도 반복한다.

그렇게 소설을 완성하고, 교정을 받고, 독자들에게 내놓는다. 그 일련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지만… 그중 같은 과정은 단 하나도 없다.

매일 다른 글자로 시작하고, 다른 단어를 쓰고, 다른 문장을 써낸다. 변함없으면서도 끊임없이 변하는 작가로서의 삶은, 마치 새 같을지도 모른다. 매년 찾아오지만, 매번 다른… 그런 풍경 말이다.

“참치야.”

“뺘악.”

참치가 창틀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순간 형우는 예감했다.

딱히, 불길한 예감은 아니다. 그냥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 형우는 가느다랗게 미소를 지었다. 참치가 형우의 손끝에 머리를 한번 비볐다.

“너, 똑바로 날 수는 있겠냐? 최근 살이 엄청 많이 쪘잖아.”

“뺘아악!”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참치는 그대로 창문을 연다. 역시, 녀석과 처음 만난 날 창문을 열어뒀던 건 참치가 맞았다.

“삐육, 삐육.”

녀석은 두어 번 뒤를 바라보더니, 결심했다는 듯 부리를 딱 부딪혔다. 퍼드드득-! 날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형우는 가느다랗게 웃었다.

헤어지는 것은 아주 아쉬웠지만… 이상하게 언젠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녀석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녀석은 어떻게 될까. 야생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를 도울지도 모르지.

“신기한 녀석.”

참치가 왜 자신에게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짐작 가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

윤정식의 연인이자, 참새를 좋아하던 이진아에게는 직계 가족이 딱 할머니 한 명밖에 없었다. 형우는 이전에 그 주소지를 찾아본 적이 있었지만, 그 사이 이사를 한 것인지 만나진 못했다.

그래서 다만 추측해 보자면… 이진아의 할머니의 거주지로 되어 있는 곳은 봉천奉天이었다.

하늘에 닿아 있다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동네는 예로부터 무당들이 많이 살았다고 했다.

형우가 부딪힌 점쟁이 할머니가 어쩌면 그 사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확인할 수 없는 일을 쓰는 것이야말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위로해주는 일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쓸 소설은 뭐냐면 말야, 참….”

치야, 하고 부르려다가 형우는 손을 멈춰버렸다. 그대로 숨을 삼키고, 다시 노트북으로 눈을 돌렸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밤이었다.

“아… 맞다.”

자신도 모르게 갖고 들어온 해바라기 씨를 대충 찬장에 올려놓고, 형우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일어났을 때.

“좋네.”

어느새 3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 * *

끼익-

교도소의 문이 열리고, 이제 자유의 몸이 된 재소자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기뻐하는 것은,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도 있었다.

“나왔구나…. 정식아.”

“아버지.”

예상 못 한 얼굴을 보자마자, 윤정식의 표정이 굳었다.

“…뒤에는 누구죠?”

“나를 도와주는 아이야.”

“안녕하세요, 나복희라고 합니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복희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대단한 아이지. 얼마 전에는 청소년 소설대회에서 대상도 탔단다.”

“신기하네요.”

윤정식이 이죽거렸다.

“아버지도 어린아이를 칭찬할 줄 알았군요.”

“정식아.”

굳은 표정을 한 윤태형이, 조심스럽게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그리고서는.

“미안하다.”

그대로 아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염치없는 말인 건 알지만, 용서하지 않아도 좋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 미안하다, 정식아.”

“하, 어이가 없네요.”

윤정식의 미간에 힘줄이 돋았다.

“고작 3년이잖아요, 아버지. 3년 만에 어떻게 사람이 변해요?”

“늙어가니 보이더구나. 내가 얼마나 아집을 부리며 살아왔는지. 너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지난 3년간, 윤태형은 계속해서 보육원에서 지냈다. 복희에게 들었던 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몇몇 후원자님들은요, 저희가 명품을 갖고 싶어 하면 되게 싫어하세요. 마치 저희는…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윤태형은 깨달았다. 그것이 비단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지금까지… 내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멍청이처럼 군다고 생각했지. 내 자식조차도.”

윤태형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아집이더구나. 한쪽에서 보면 누구는 천천히 가고 누구는 빨리 가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시선을 돌려서 보면 그저 원하는 게 다를 뿐이야.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욕망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던 거야.”

“참 일찍도 깨달으셨군요.”

윤정식이 말했다.

“제가 CEO 같은 것에 관심이 없었다는 걸요.”

“정식아.”

“차라리 변하지 말지 그랬어요.”

윤정식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고작 3년밖에 안 지났잖아요, 아버지.”

“….”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었으면… 진작 좀 변하죠, 진작!”

화를 참지 못한 윤정식은, 윤태형을 두고 그대로 내달렸다.

그렇게 골목길을 도는 순간.

“뺘악?”

…참새 한 마리가 윤정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넌지시 옛 기억이 떠오른다.

-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

참새에게 모이를 주며, 진아가 전해줬던 한 마디.

윤정식은 그대로 자리에서 멈춰 섰다.

“왜 하필 이럴 때 생각나냐….”

잠시 고민하던 윤정식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가 있는 방향으로 말이다.

참새 한 마리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윤정식의 어깨 위에 살짝 걸터앉았다.

마치, 그곳이 자신의 자리라는 듯이.

* * *

“4질 완결 축하한다.”

친구인 현수의 말에, 형우가 머쓱하게 웃었다.

3년 전 쓰기 시작한 네 번째 작품이 오늘 자로 완결이 난 것이다.

“1질은 시작의 순간, 2질은 시험의 순간. 3질은 증명의 순간이라지. 그러면 4질은 뭐야?”

“흐음….”

뭔가 예리하게 들리는 현수의 질문에 형우는 고민을 좀 길게 했다. 네 번째 소설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고의 순간일지도 몰라.”

지금까지 썼던 글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랄까. 그 말을 들은 현수는 싱긋 웃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갑자기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현대 판타지를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대충 예상했던 바였다. 타란티노 스타일이랄까.

타란티노 감독도 자신의 마지막 영화인 <원스 어 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결국 영화인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던가.

“모든 창작자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니까.”

“그렇긴 하지.”

형우는 그대로 씩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고… 창밖엔 다시 참새가 날아드는 계절이 됐다. 언제고 참새가 날아드는 날이면… 늘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형우 작가님, 이거 사인 해 줘.”

“오늘 나온 건데 벌써 샀네?”

“누구 책인데, 당연히 사야지.”

현수는 가방을 뒤져 준비했던 책을 꺼냈다. 형우의 네 번째 완결 작품이 그곳에 있었다.

“아 맞다. 이제 와서 물어보긴 좀 늦었긴 한데, 이거 제목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사인은 어디에 해 줄까? 맨 앞? 아니면 맨 뒤?”

“마지막 장에 해 줘. 작가의 말 옆에.”

“알았어, 책 사줘서 고맙다.”

형우는 펜을 꺼내 소설의 마지막 장에 슥슥 사인을 했다. 그 옆에는 자그맣게 참새를 그렸다. 날개를 퍼덕이는 참새 밑에는 책의 결말을 알리는 글자가 소담스럽게 적혀 있었다.

<환상을 쓰겠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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