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오오….”
“윤정아다! 나왔다!”
윤정아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법정 테두리를 꽉 채우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었다.
남의 불행을 먹이 삼아 제 배를 불리는 쥐새끼들이다. 보고 있으면 짜증만 날 것 같아서 시야를 조금 돌렸다. 기자들보다 조금 안쪽에 앉아있는 방청객들이 보였다.
미국처럼 배심원 따위는 절대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방청객’들이다. 그중에서 몇몇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스패로우 팩토리.’
차라리 기자들이나 보고 있을 걸. 짜증을 넘어 분노가 차오른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버지 윤태형이다.
“정아야.”
윤태형의 표정은 마치 문학 같았다. 해석의 여지가 다분했다는 뜻이다.
화가 난 것도 같았고, 측은해 보이는 것도 같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윤정아는 그 모든 표정에 하나씩 이유를 붙였다.
회사 주가를 떨어트려서 화가 난 것이고, 쓸만한 직원을 잃어서 측은해하는 것이고, 내가 자신에 딸이라는 것에는… 별 생각 없을 테다.
그래도 원망은 안 한다. 이제 와서 그래 봤자 늦은 일이기도 하고, 뭣보다 자식이 부모를 원망한다는 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될 말인 것만 같다.
“판사님 입장하십니다.”
스륵-
치렁치렁한 법복을 입은 판사가 법정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려면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야 했다.
주눅 들기를 바라는 건가? 그렇다면 아쉽게 됐다.
“잘 부탁드립니다.”
윤정아는 태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그대로 피고인석으로 들어갔다. 반대쪽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검사의 시선은 정의감에 불타기보다는 오히려 다분히 사무적이다.
지루한 몇 가지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윤정아가 자신의 얼굴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나는 무죄다.’라는 감상이었다.
무고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법조인은 아니나, 저지른 행동이 법적으로 글렀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허나.
부모로서는 틀리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죄를 저지르는 부모가 뭐가 나빠?
새나 파충류, 심지어 물고기 중에서도 모성애나 부성애를 가진 동물들이 있다. 하물며 인간은 포유류다.
포유류란 무엇인가? 젖을 먹여 새끼를 기르는 동물이다. 사전에도 나와 있다. 약하게 태어난 포유류는 부모가 없으면 곧 죽어버린다.
그러니 부모가 그것을 기르고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생물종의 특성이라고, 윤정아는 굳게 믿었다.
“도착한 모양이군요.”
다음 순간, 방금 윤정아가 들어온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그 너머로 태준이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태준이의 목이 대뜸 부풀었다. 뭔가를 외치고 있었다. 윤정아는 아들의 부름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었을 때.
윤정아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 * *
-내가 언제나 당신을 지켜 줄게.
-아니야, 엄마는 내가 지킬 거야!
-태준이가? 그래, 하하! 그거 좋네!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기억.
삼십 년을 더 산다고 해도, 오십 년을 더 산다고 해도, 저 순간보다 더 아름다운 기억은 세상에 없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아들과 어머니. 저 기억만 온전할 수 있다면 뭐든지 다 바치리라.
그리고… 누구든지 저 기억을 온전치 못한 것으로 만든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허억!”
윤정아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녀의 온몸이 크게 들썩거렸다. 패닉 상태였다.
우당탕탕!
여기저기 사람들이 내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곧 입가에 뭔가가 씌워졌다. 비상용 호흡기였다.
“숨 쉬세요, 윤정아 씨!”
“숨 쉬세요!”
그 말들이… 너무 아득했다.
* * *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에요?”
기자들이 모인 곳이 순식간에 분주해졌다.
윤태준은 들어오자마자 윤정아에게 뭐라고 했고, 그 말을 들은 윤정아는 졸도하듯이 쓰러졌다.
아쉽게도 윤태준의 말은 기자들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재판은 계속해서 진행하나요?”
“정숙!”
당황한 판사가 정숙을 명령했으나, 아직 시작되지 않은 재판이기에 그의 말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저, 형우 작가님, 혹시… 들으셨나요? 윤태준이 뭐라고 했는지?”
지원이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저는 ‘엄마!’하고 윤태준이 윤정아를 부르는 것까지밖에 못 들었거든요.”
“아녜요.”
형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윤정아를 부르는 게 아니었어요. 그건 그냥 주어일 뿐이었죠.”
“주어요?”
“그 뒤의 말은 이랬습니다. 엄마……”
형우가 끔찍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때문이야, 다 엄마가 잘못한 거야. 난 하나도 잘못 없어, 모든 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허억.”
지원의 표정이 굳었다.
만약 저 말을 초등학생이 했다면 어려서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테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했다면 사춘기겠구나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태준의 나이는 거의 서른이다. 다 큰 성인이 그러고 있는 것을 본 지원의 심정은…….
“불쾌해요.”
불쾌한 골짜기라는 개념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과 ‘아주 조금 다른 것’을 가장 불쾌하게 여긴다고 한다. 지금 윤태준의 모습이 그랬다.
겉모습은 분명 사람과 같은데, 그 행동양식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윤정아가 충격을 받을 만도 하네요.”
“그렇죠.”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의 남편을 두었던 그녀는, 남편을 닮은 아들인 태준이도 최고가 되기를 바랐을 거예요.”
“하지만 아니었잖아요.”
“아뇨, 윤정아한테는 진짜로 아들이 최고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형우가 착잡하게 말했다.
“예전에 한 할머니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하루에 열다섯 시간씩 폐지를 줍는 할머니였는데… 의외로 그 할머니는 빌라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왜 폐지를 줍죠? 전세를 주면 돈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
“전세를 안 줬거든요. 그냥 집을 비워 뒀대요.”
“멀쩡한 집을 왜요?”
“그 할머니는 아들이 하나 있었거든요.”
이야기를 하는 형우의 표정이 착잡했다.
“아들은 조현증이 심해서 나이가 사십이 넘었는데 밥도 혼자서 못 먹을 정도였대요.”
“조현증이라. 그거 진짜 힘들죠.”
“이 할머니는요, 아들이 다시 예전처럼 똑똑해 질 거라고 믿었대요. 그렇게 아들이 돌아오면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을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빈방을 세도 안 주고 매일 청소하면서 십 년도 넘게 기다렸대요.”
“……슬퍼요.”
“슬프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죠.”
이 이야기를 보며 형우는 생각했다.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꼭… 아름다운 결말로 끝나지는 않는다고.
“아마 본인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 꿈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었던 거예요.”
“…윤정아는 잘 살잖아요. 부자라고요.”
“글쎄요.”
형우의 목소리가 서글펐다.
“잘 사는 사람이 힘들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죠. 하지만 몇 개를 더 붙여볼 수는 있어요.”
“어떻게요?”
“부자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큰 사람은 어떨까요.”
형우가 천천히 비극적인 덧셈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자라면서 처음으로 사랑했던 남편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어때요? 아직도 부족한가요?”
“…아.”
“부족하지… 않죠?”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를 옆에서 보아왔기에, 형우는 그 고통을 넘겨서라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모두가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죠.”
형우는 쓸쓸한 표정으로 재판정을 쳐다봤다. 난동을 피우는 윤태준과, 비틀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일어나는 윤정아의 모습이 보였다.
“비록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불쌍하네요.”
보석으로 치장된 판도라의 상자는 비현실적인 기대감에 대한 비유라고 한다. 열지 않을 때야말로 아름답고, 열면 그 안에는 오직 절망밖에 없으니까.
* * *
다음 재판은 한 달 후에 열렸다.
한 달 뒤에 다시 열린 재판에서, 윤정아는 자식의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그 어떤 사람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묻는 말에는 ‘예’와 ‘아니요’로만 대답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조서에 의하면 윤태준은 피고가 윤태형을 살해하려는 의도를 몰랐다고 했습니다. 사실입니까?
-아닙니다.
-조서의 내용이 거짓임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예.
-그러면 윤태준은 피고가 윤태형을 죽일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예.
-그 이유는 윤태준이 윤태형을 공격했다는 것을 은폐하기 위해서였지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까?
-….
대답이 없자, 검사는 질문을 바꿨다. 바꿨다기보다는, 사족을 뗐다.
-다시 묻겠습니다. 피고는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 맞습니까?
-예.
-이상, 피고의 말을 종합해 보면, 피고인 윤태준은 윤정아의 범행 의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입을 다물고 있었던 셈이 됩니다. 그러므로, 피고인에 대한 죄명은 단순상해죄가 아니라, 친족살인모의로 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검사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재판의 결과를 직감했다.
윤태준은 김형우에 대한 누명과, 마약 유통과 흡입, 그리고 친족살인에 대한 공범 행위로 15년을 받았다.
윤정아는 이보다 훨씬 더 간략했다. 죄목은 친족 살인미수. 형량은 아들보다 1년 짧은 14년이다. 의외로 윤태준보다 형량이 짧았다. 아마도 그건, 윤태준의 태도 때문일 테다.
-다 엄마가 한 거라니까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엄마, 뭔가 말 좀 해 봐! 나는 잘못 없잖아?
아들을 위해 살인까지 불사했던 어머니를 모른척하는 그의 태도는, 그곳에 모인 법조인들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던 것이다.
“저희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보니, 그런 걸 보면 괘씸하거든요.”
후에 검사한테 들어 보니 윤정아는 처음부터 윤태준의 죄를 다 감싸 안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 친족살해혐의 공범이 아니라 그냥 상해죄가 되는 거고요, 그랬으면 형량은 기껏해야 5년쯤 나왔겠죠.”
판결이 끝나고, 윤정아와 윤태준의 모습은 정반대였다.
-15년? 15년이라고? 내 잘못이 아냐! 뭐가 잘못됐어! 항소할 거야!
윤태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불복하는 태도를 보였고, 윤정아는 그 모습을 힐끔 보더니 아무 말 없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윤태준이 소리를 질렀다.
-엄마! 뭔가 말 좀 해봐! 엄마가 시킨 거잖아! 엄마 잘못이라고 해! 빨리! 번복하라고! 왜 내가 엄마보다 더 큰 벌을 받아야 해? 내가 왜?
저 말은 틀렸다. 더 큰 벌을 받은 건 윤정아였다.
* * *
[27년 만에 대한민국 출판계 역사 바뀌나? 스패로우 팩토리, C&N 제치고 출판 총액 1위 달성.]
[신임 사장 박재진. 달라진 C&N 보여줄 것. 윤태형 회장, 더 이상 회사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김형우 작가의 <권객>, 올해 하반기 개봉 예정. 강주범 감독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와 액션 그 자체에 집중했다. 원반 배우가 나온 <아재> 이후 한국 최고의 액션영화가 될 거라고 자신한다.’]
[스패로우 팩토리, 연달아 호재 올리나? <권객>을 베이스로 한 동명의 모바일 RPG 출시 임박. 빙그레게임즈 유지태 팀장, ‘<권객>의 멋진 스토리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유지태랑 강주범이랑 싸움? 둘이 말하는 게 정 반대네ㅋㅋㅋ
ㄴ겜돌이랑 영화감독이랑 싸울 일이 뭐가 있어? 그냥 우연이겠지.
ㄴ우연 아닐걸? 얼마 전 내 친구가 강남에서 술 먹다가 스패로우 팩토리 회식하는 거 봤는데, 거기 강주범이랑 유지태랑 둘 다 있었대.
ㄴㄹㅇ?
ㄴㅇㅇ전체적으론 화기애애했는데 둘 다 <권객>으로 프렌차이징하다보니 묘한 신경전 있긴 있다고 함.
ㄴ누가 이길 것 같음?
ㄴ강주범 감독이 각본은 좀 못 짜도 액션 연출은 죽여주는 사람이다. 아마 원작 있는 거면 강주범이 발라버릴 듯.
ㄴㅋㅋㅋ빙그레게임즈 게임 안 해봄? 일본 역수출해서 일본 마켓까지 1위 먹은 작품인데. <아이언 타이거> 콜라보도 했었으니 믿고 보는 빙겜즈임.
-다 필요 없고 원작이 최고다. 참새치 짱짱.
ㄴ왜 갑자기 비겁하게 정론 꺼내냐?
ㄴ이건 맞지 반박 불가능함.
-근데 참새치 작가 요즘 신작 안 냄?
ㄴ권객 완결친 지 아직 두 달도 안 됐다 이 자식아.
ㄴ전에는 완결 내자마자 신작 냈잖아.
ㄴ요즘 바빴잖아 임마. 뉴스 좀 보고 살아라.
ㄴ맞아. 이 정도 스케일이면 육 개월 쉬어도 인정임. 매일 법원 가신다는데.
ㄴ법원 때문에 참새치 작가가 글을 못 쓴다고? 당장 법원 불태워버리러 간다.
ㄴ그걸 왜 불태워 미친놈아 ㅋㅋㅋㅋ
-방금 쯔위터에 글 올라옴. 참새치 작가님 신작 쓰신다는데?
ㄴ엥 참새치 쯔위터랑 스패로우 팩토리 쯔위터 가봐도 아무 말도 없는데?
ㄴ다른 사람이 올림. 카페에서 신작 쓰는 참새치 작가 목격했다고 함.
ㄴ헉 ㄹㅇ이네?
ㄴ신작!!!!!!!!!!!기다리고 있었다고!!!!!!!!!!!!!!!!!!! 손 빠르신 분이니까 한 2주 있으면 볼 수 있겠지?
ㄴ후, 덕분에 법원 불지를 필요 없을 듯. 법원 녀석, 다행인 줄 알아라.
ㄴ법원 말고 과수원 하나 불지를 생각은 없으신가요?
ㄴ그분 다시 글 쓰시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