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97화 (197/200)

#196

특수분장.

무협소설에서는 인피면구人皮面具라고 부르고, 스파이 영화에서는 거의 만능 변장도구처럼 취급된다. 실제로 미국의 CIA는 실리콘을 사용한 분장을 통해 얼굴 주름과 표정까지도 재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형우가 강주범에게 받은 물건은 그 정도로 좋은 물건은 아니다. 얼핏 보면 속을지 몰라도, 조금만 자세히 봐도 가짜라는 티가 폴폴 난다.

그럼에도 윤정아가 이 조잡한 분장에 속았던 이유는… 죽이는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지 않아서 그렇다.

“원래 살인이라는 게 그래. 진짜 미친놈이 아닌 이상, 피해자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경우가 잘 없거든.”

전직 형사였던 집주인 아저씨는 답답한 가면을 벗은 게 참 기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통풍이 잘 되지 않았던 모양인지 얼굴이 땀범벅이다.

“그게 참 살인자들의 웃긴 점이지. 보통 살인이라는 건 용기라던지 깜냥이라던지 하는 게 있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겁쟁이들이 태반이거든. 가끔 나오는 싸이코패스 살인마들 말고 3대 살인범, 그러니까 치정, 돈, 원한으로 사람 죽이는 놈들은 거의 99%가 겁쟁이야.”

윤정아가 화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아버지는 어디에 있지?”

“다른 곳으로 모셨어요. 제가 아는 한 가장 안전한 장소에요. 뭐, 어디든 여기보단 안전하겠죠. 거기는 죽음의 위협은 없을 테니.”

형우는 그대로 윤정아의 핸드백을 들어 집주인 아저씨께 내밀었다. 아저씨는 주머니 속에서 비닐장갑을 꺼내 낀 다음, 조심스럽게 핸드백 속 주사기를 집어 지퍼백 안에 넣었다.

“나 참, 악독한 물건을 쓰는군. 그나저나 슬슬 경찰이 들이닥칠 때가 됐는데.”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타이밍 좋군.”

윤정아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퀭한 얼굴의 윤정아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 * *

사건조사와 진술이 끝나니 밤이 꽤 늦었다.

집주인 아저씨가 어수룩한 경찰들을 향해 ‘요즘은 조서를 그렇게 쓰나?’라거나, ‘너 지금 경찰청장 알지? 걔가 내 직속 후배였던 건 아냐?’라며 꼰대 짓을 약간 한 것을 빼면 별문제는 없었다.

사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둘은 지금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나이 든 사람을 이렇게나 부려 먹냐? 나참. 주삿바늘 혈관에 꽂을까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제가 보고 있었잖아요? 문제 생겼으면 바로 들어갔을 텐데. 아저씨도 오케이 하셨잖아요?”

“뭐, 그렇긴 했지만.”

흠흠, 하고 집주인 아저씨가 헛기침했다.

그 사인을 알아챈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모님 생일 때 프라다 백 사드릴게요. 저번보다 더 좋은 걸로.”

“내가 마누라 좋으라고 목숨을 걸었나?”

“…영감님 드라이버도 바꿔 드릴게요. 혼마 걸로. 어때요?”

“하하핫, 오랜만에 현장 뛰니 가슴이 설레는구만!”

형우는 피식 웃으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3차선 도로의 옆자리에는 윤정아를 태운 경찰차가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그녀의 표정까지도 볼 수 있었다.

“윤정아는 어떻게 될까요?”

“감방에 가겠지. 그것도 꽤 오래.”

대한민국 형법에서 가장 중하게 보는 게 살인이고, 그중에서도 최악이 영유아 살해와 친족 살해다.

게다가, 그 친족 살해의 이유가 원한 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라면…. 아무리 성격 좋은 판사라도 그녀에게 법정 최고형을 때리지 않고서는 못 배길 테다.

하지만 그녀가 받을 가장 큰 벌은 따로 있다. 마침 형우의 전화기가 울렸다.

“형우 작가님. 일은 잘 처리되셨나요? 지금 좀 조마조마한데요.”

“잘 됐어요, 편집자님. 그쪽은요?”

“이쪽도 지금 막 끝난 참이에요. 윤태준 이 인간, 집에 온갖 종류의 허브를 숨겨 놨던데요. 보통은 중독자라 해도 한두 종류 정도인데 이건 뭐…… 과시용이라고 해도 될 정도예요.”

형우가 충청도로 넘어와 윤정아를 상대하는 사이, 지원은 윤태준을 잡아냈다. 말 그대로 일망타진이었다.

윤태준의 죄목도 만만치 않다. 자기 할아버지를 공격한 것으로 모자라, 그 뒤처리를 엄마에게 맡긴 거나 다름없으니… 아마 마약 건까지 얽히면 감옥신세를 꽤 오래 져야 할 테다.

아들과 함께 감옥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윤정아가 받을 가장 큰 벌일 테다.

“그나저나 형우 작가님. 병원에 협조는 어떻게 구한 거예요? 또 참치가 묘수를 부렸나요?”

“아뇨.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었어요.”

형우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윤정식이 싸인을 한 서류를 들고 가서 합법적으로 옮겼죠. 참치가 아주 특별한 녀석인 건 맞지만,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을 다 참치가 해 주는 건 아니라고요.”

“아니었어요?”

“에이, 제가 흥부는 아니잖아요?”

수화기 너머로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농담이 통한 모양이다. 이 기세를 몰아, 형우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저 회장님?”

“뭐 부탁하려고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뻔하죠. 형우 작가님은 평소에 저를 편집자님이라고 부르잖아요. 꼭 뭐 필요할 때만 회장님이라고 부르더라.”

“…거. 이미 들킨 김에 말하는데, 저 한 일주일 정도만 휴가 내도 될까요?”

“이제 한창 바빠질 텐데요? C&N 관련 일로도 바쁠 테고 회사 일로도 바쁠 테고. 그렇지만, 꼭 쉬셔야겠다면….”

지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쉬셔야죠. 안 그러면 쓰러지실 텐데.”

“헤헷,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실 거예요? 필요하시면 휴양지 잡아드릴게요. 해외도 괜찮고.”

“아뇨, 그럴 필요는 없어요.”

이미 정해놓은 계획이 몇 가지 있었다.

일단 그 시작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다이빙하는 일이 될 테다.

그리고선 하루 종일 누워서 하겐다즈를 퍼먹으며 밀린 드라마를 볼 거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자축이다.

하X다즈 세 통을 다 먹은 후에는, 미뤄뒀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면 될 테다.

* * *

하X다즈는 바닐라 맛이 제일 맛있다.

어떤 사람은 그 비싸고 종류도 많은 아이스크림을 왜 하필 바닐라만 먹느냐 묻겠지만….

비슷한 맛이라도 그 풍미라던가 풍족함 같은 게 조금씩은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어쩌면 소설이란 녀석과도 비슷하다. 멀리서 가만 보면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지만, 분명 좋고 나쁨은 있다.

참새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밭과 허수아비들.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무들이 울창한 산이 보인다. 왼쪽에서 세 번째 소나무와 네 번째 소나무 사이에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다.

풀이 꽤 많이 자란 것은 의외였다. 어머니라면 매일같이 아버지를 찾아볼 줄 알았는데.

그렇게 묻자, 어머니는 ‘죽은 사람을 찾는 건 1년에 한두 번이면 족하다.’라고 대답했다.

“죽은 사람을 잊어버리는 것도 안 될 말이지만, 그래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놔두는 것도 필요하단다. 지나간 것만 붙잡고 있기에는… 사람의 손은 두 개밖에 없거든.”

가끔 어머니는 이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형우가 가진 문학적 재능의 출처일지도 모른다.

“농사를 짓다 보니 알겠더구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농부는 매년 같은 걸 심고 거두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거든.”

“아니었어요?”

“날씨도 다르고 상황도 다른데 그게 어떻게 되겠니?”

“그래도 이미 성공한 방법이란 게 있잖아요.”

“글쎄다. 실제로 해 보니, 성공한 방법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길게 못 가더구나. 그보다는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좋은 방법인 것 같아.”

어머니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윤정아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미안해요, 여보. 태준이를 당신처럼 만들지 못했어요.

형우는 윤정아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대충 상상은 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잃어버린 아버지.

아들과 함께 살아남은 어머니.

…자신과 어머니가 겪어왔던 일과 똑같았다.

‘그런데, 결과는 이렇게나 다르구나.’

그 차이는 아마도… 아들을 보는 시선의 차이였을 테다. 형우의 어머니는 늘 형우에게 말했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하지만, 윤정아는 달랐다. 윤정아는 윤태준에게 매일 말했을 것이다.

넌 반드시 네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 라고.

윤태준의 아버지는 완전무결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형우는 안다.

처음부터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

살아오면서 수 많은 일을 겪고, 수없이 실수도 했을 테다. 그 결과로 얻은 단단함일 테다.

허나. 윤정아는 그 순서를 완전히 반대로 했다.

아들의 모든 결점을 덮어 없는 것처럼 꾸몄다. 그래 놓고서 ‘내 아들은 무결한 사람이야. 마치 내 남편처럼.’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자신의 아들마저 세뇌했다. 그 결과는 이 모양이다.

어린아이에게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윤정아 또한 윤태형을 통해 그 점을 알았을 텐데 그 점을 그대로 대물림하고 말았으니. 그 점 또한 얼마나 비극적인지.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말하듯, 인간의 파멸은 시작도 끝도 없고 원인과 결과도 혼탁하여 마치 유령이 하는 말처럼 미심쩍은 괴이한 것이나, 그것이 친숙한 얼굴로 나타나는 탓에 그만 홀딱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머니의 말 덕에 상념에서 벗어난 형우는, 그냥 슬쩍 웃었다.

“아뇨, 뭐가 좀 생각나서요.”

“이래서 글 쓰는 애들이 문제라니까. 자꾸 말하다가도 멍을 때려버리니….”

어머니가 혀를 쯧쯧 차며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낑낑거리며 밭에 새로운 허수아비를 심고 있는 민준 삼촌의 모습이 보였다. 그 허수아비라는 게 잘 보니 등신대다.

팬 중 한 명이 삼촌 소설 주인공의 모습을 등신대로 만들어 보내준 거라던데, 저걸 허수아비로 써도… 되는 건가?

“집에 세워놓는 것보다는 낫지!”

민준 삼촌이 씩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손가락에서 반지 하나가 반짝거렸다.

특히, 어머니의 손가락에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심장한 반지로군.

조만간 웨딩홀 하나 알아 봐야겠다.

* * *

이 일에 대한 이야기를 꼭 알아야 하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었다.

의정부에 위치한 교도소의 면회실에 오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쯤 되니 너무 많이 오는 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중요하다.

“…그래, 그렇게 됐단 말이지. 누나도, 멍청한 조카 놈도.”

타닥, 타닥.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하기는 했다만.

윤정식의 덜덜 떨리는 다리는 그의 상태가 표리일체가 아님을 증명하는 듯했다. 형우는 윤정식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분명히, 아버지가 아니라 누나와 동생을 택했더라도 그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테다. 인간성이란 놈이 그렇다.

사람이 선과 악이라는 개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게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 어느 쪽을 고르든 후회가 남는 결정들이 존재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죄책감이란 녀석에 아예 눈을 돌리던가.

“…후우.”

녀석을 정면으로 마주치고, 그 아픔을 고스란히 견뎌내던가.

“쉽지 않군.”

“그렇죠.”

윤정식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쉬는 듯이 부자연스러웠다.

“다들 이랬을까.”

“모르겠네요.”

형우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윤정식이 말하는 ‘다들’이 누구인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해 줄 수 있는 말이 아예 없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형우는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하지만 기회는 있죠.”

“기회?”

“대화할 기회요.”

형우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너를 미워하지 않아, 그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 게 아주 많잖아요. 당신이 경험했듯이.”

윤정식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아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 죄책감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방향이 바뀌었다고 할까. 듣기에 좀 이상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는 죄책감이야.”

“그런 단어야말로 아주 문학적인 거죠.”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 마치 웹소설의 제목 같았다.

<사파제일인 아이돌 프로듀서>라거나, <미사강변서로 캣맘 드루이드>처럼.

들으면 ‘그게 대체 뭐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그리고 도저히 내용을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었다고 할까.

“당신한테도 소설가의 재능이 있는지도 몰라요.”

그 말을 들은 윤정식이 피식 웃으며,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미 수첩을 거의 다 채웠어.”

오호.

형우가 씩 웃으며 그 내용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소설이라기보단 설정이다.

“완성은 언제쯤 될 것 같아요?”

“2년 내로 완성할 생각이다.”

윤정식이 마주 웃으며 수첩을 품에 갈무리했다.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거든.”

“나가면 어쩌려고요?”

“글쎄다. 그건 나가봐야 알겠는데. 아, 바깥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물어볼 게 있어.”

윤정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버지, 그러니까 윤태형 회장님은 어떻게 됐지?”

“아, 맞다.”

그제서야 윤태형 회장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안전한 곳에 계세요.”

“강철 같은 양반이어도 이번엔 속이 꽤 쓰릴 텐데.”

“그것까지 감안해서 안전한 곳이예요.”

걱정 말라는 듯, 형우가 씩 웃었다.

형우가 알기로, 그 장소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 중 한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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