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94화 (194/200)

#193

세상에서 가장 문학적으로 완성된 글은 무엇인가.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를 이야기할 것이다.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글을 묻는다면, 그 대답은 모두 천차만별일 테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문학인으로서 완성도 높은 글과 인간의 마음을 울리는 글은 다른 법이니까.

“오랜만이군.”

“그러네요.”

윤태준이 찾아오기 며칠 전, 윤정식은 형우와 면회실에서 만났다.

“편지를 보자마자 왔나 보군.”

“이 녀석 덕분이에요.”

형우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부서질세라 양손에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작은 참새 한 마리였다.

녀석은 윤정식을 보자마자 뺘악, 뺘악… 하고는 짧게 울었다. 서글픈 소리였다.

“저한테 오는 편지는 하루에도 몇십 통은 돼요. 펜레터도 있고, 다른 출판사에서 온 연락도 있죠. 글 쓰는 게 바빠서 몰아 확인하는 편인데… 그 날따라 이 녀석이 난리더라고요.”

지난밤, 참치는 갑자기 유달리 날뛰며 편지함으로 날아들어 갔다. 그 안에서 녀석이 물고 온 것은,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짤막한 글이 적힌 윤정식의 편지였다.

“저희가 이렇게 면회 올 정도로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좀 놀랍더군요.”

형우의 눈에는 약간의 적개심이 묻어났다. 하긴, 적개심이 없는 쪽이 더 멍청한 일이다.

“그런데도 왔군. 궁금한 게 있었던 모양이야.”

“아뇨, 딱히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왔지?”

“…당신 처지를 알았으니까요. 감옥에 있는 사람 부탁이라서 온 거예요.”

“착해 빠졌군. 그래서 좋은 기업인은 못 될 텐데.”

윤정식이 피식 웃었다. 형우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하는 이야기가 고작 그런 거라면, 금방이라도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였다. 나름 칭찬이었는데, 아쉬운 일이다.

“사실 물어볼 건 내 쪽에 있어.”

윤정식은 준비해 왔던 책 한 권을 들어 올렸다. <아이언 타이거>였다. 자신의 소설을 본 형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게 뭡니까?”

“자네가 쓴 소설이지.”

“주인공이 어떻게 됐는지라도 궁금하셨나요?”

“…비슷할지도 모르지.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윤정식은 <아이언 타이거>의 페이지를 마지막 장까지 휘리리릭 넘겼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이진아를 위해 이 글을 바칩니다. 라는 문구가 드러났다.

“이진아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어.”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이진아란 사람은 수십 명이고, 작가를 꿈꾸는 이진아도 한 명쯤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문구를 보는 순간… 그런 상식적인 것들은 모두 저 너머로 날아갔다.

어떻게든 형우를 만나서 이 ‘이진아’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형우의 표정에는 아직도 의심이 가득했다.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내가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 만약 그렇다면… 난 그 죽음에 대해 알아야 해.”

윤정식은 솔직하게 말했다.

“난 한국대학교 문창과 출신이야.”

“알아요. 천병옥 교수님과 한다은 교수님이랑 친구였다고 들었어요.”

“한 명 더 있었어. 진아 말이지.”

이름을 내뱉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진아랑… 사랑하는 사이였다.”

“…뭐라고요?”

“일단 들어. 진아는 아픈 아이였지만, 솔직한 사람이었지. 나는 풍족한 사람이었지만 마음이 텅 빈 사람이었어. 그런 둘이 만나면 무슨 일이 생겼겠니?”

그때를 떠올리면, 목소리를 넘어서 몸까지 떨려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결혼까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진아를 탐탁잖게 여겼지. 회사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좀 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만나기를 원하신 거야.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결혼했던 누나는 당시 가장 잘나가던 작가를 만났으니, 내가 못마땅했던 거지.”

이 이야기를 남한테 해 본 게 얼마 만이던가.

평생 가슴에 묻고 다시는 내뱉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는데, 하필 그 상대가 김형우라니.

세상일이란 게 참 우연 덩어리구나, 생각하면서도 윤정식은 터져 나온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나를 부르더니 말씀하셨어. 군대를 가라더군.”

자신과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은 너도나도 군대를 빼던 시기였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의 군대를 장려했다. 나중에 회사에 누를 끼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참으로 아버지다웠다.

“아버지가 그러더군. 군대에서 생각을 한 번 더 해 봐라.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결혼이든 연애든 네 맘대로 하게 해 주겠다고. 아마 세상을 보면 생각이 변할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야. 하지만, 내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진아를 향한 마음이 아니라, 다른 거였다.

“내가 군대에 간 사이 아버지가 진아를 만났던 거야.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지. 나랑 헤어지라는 거거나, 아니면 내가 진아를 버렸다는 소리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지만, 그 편지조차도 진아에게는 도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서, 세상이 다 무너진 듯한 기분이었다.

“배신당한 기분이었겠지. 몸도 약한 애가 우울증이라니. 그때 매일같이 진아에 대한 꿈을 꿨어. 그 애는… 억눌린 표정으로 나한테 이렇게 외치지. 정식아, 어디로 간 거야! 난 너무 힘들어! 그리고 슬픔에 가득 차서 눈을 감아. 삶을 증오하는 듯한 태도로 말야.”

“허억.”

짙게 어려있는 감정에, 듣는 형우조차도 숨을 토해냈다.

정작 말을 하는 윤정식은 괜찮았다.

뭐랄까,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아버지를 찾아가서 따졌지만, 아버지는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고 윽박지를 뿐이었지. 그날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그다음에는요?”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든 형우가 홀린 듯 물었다.

이야기를 듣는 자세가 되어 있는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정식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일이지. 진아가 사라진 후에,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로 인정했으니.”

그날 이후, 자신은 억척스러워졌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그 대신으로 얻은 회사였으니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게 그 결과다. 나는 감옥에 있지. 이 모든 게 진아나 아버지 탓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묻고 싶었다.”

정식이 애끓는 소리로 물었다.

“진아는 어떻게 죽었지?”

“……제가 어릴 때였죠.”

형우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이진아 씨는 골목에서 죽어가고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죠. 삶에 아무 희망도 없는 사람처럼.”

“아… 역시…….”

정식이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형우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저를 발견한 후부터 이야기는 좀 달라졌어요.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군요.”

“소리를?”

“네. 마치 살고 싶다는 듯이… 살려달라는 듯이요. 그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요. 이진아 씨는… 끝까지 삶을 포기한 적은 없었어요. 끝까지 살고 싶어 했죠.”

형우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마지막으로 진아 씨가 뭐라고 외쳤었어요. 지금까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네요.”

“무슨 말이었지?”

“‘걱정할 텐데’라는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형우가 말했다.

“이진아 씨는 자살한 게 아니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윤정식은 마치 세상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진아가 사실상 반쯤 자살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우의 이야기 속 진아는 달랐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신이 걱정할 것을 우려해서 살고자 몸부림쳤던 사람이었다.

“아, 아아아!”

윤정식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식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너도 군 생활 잘하고 나와.

-아, 맞다. 괜히 나쁜 짓 하면 안 돼! 괜히 후임들 괴롭히고 그러다 영창이라도 가서 늦어지면 안 되잖아.

-늘 좋은 사람으로 있으면 돼.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알았지?

진아는, 마지막까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했는데. 자신은 어떤가?

라이벌을 이기겠다며 더러운 수를 쓰고, 아버지마저 잡아 가두는 사람이 됐다.

좋은 사람은 무슨.

나쁜 사람이 돼서 영창도 아니고 감옥에 갇혀 있으니까. 가슴속 후회가 파도처럼 가득 밀려왔다.

한참을 오열한 후에, 정식이 넌지시 말했다.

“…진아는 말야, 내가 좋은 소설가가 될 거라고 했어.”

“그런가요.”

“하지만 나는 진아가 바라는 사람이 못 됐군.”

“아직 늦은 건 아니죠.”

형우가 품을 뒤져서, 당근 모양 펜을 내려놓았다.

“그럴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행히 마음씨 좋은 강 교도관은, 그 펜의 반입을 허가해 줬다. 펜 끝이 뭉툭해서 자해 위협이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 이유는, 윤정식이 교도소 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착한 재소자라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지금, 윤정식은 자신의 손에 든 당근 펜을 휘리릭 돌리며 고민했다.

“이걸 어찌한다.”

회사를 생각한다면 묻어두는 게 당연하다. 세상에 자기 회사를 자기가 터트리는 멍청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윤정식을 창밖을 바라봤다.

참새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래, 그래. 다 보고 있다는 거지.”

윤정식이 피식 웃었다.

“좋은 사람이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거겠지.

* * *

‘흐흐, 이제 슬슬 발표가 날 때가 됐는데.’

윤태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은 스패로우 팩토리의 기자회견이 있는 날이었다. 이 짧은 시간에 모든 걸 밝혀내진 못했을 텐데, 무슨 말을 하려나?

‘어떤 변명을 할지 너무 기대되는걸.’

윤태준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생중계 화면을 바라봤다.

표절을 인정하든 아니든, 앞에 놓인 건 오직 지옥뿐이다. 저 짜증 나는 기업을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트린 게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세상 최고의 술안주로군. 대체 어떤 개소리를 지껄일까?”

잠시 후, 스패로우 팩토리의 대표인 지원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이리저리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탓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스패로우 팩토리 대표 서지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최근에 있었던 참새치, 김형우 작가의 표절 논란 때문입니다.

기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표절이 맞습니까? 표절을 인정하십니까?

-지금 김형우 작가는 어디에 있습니까?

-앞으로 스패로우 팩토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질문들 앞에서, 지원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말씀에 대답드리기 앞서, 먼저 공개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 관련된 녹취록입니다.

그 순간, 지원이 들어 올린 것은 당근 모양으로 생긴 펜이었다.

“…저건!”

익숙한 모양. 분명 면회실에서 삼촌이 들고 있었던 그 펜이었다. 화면 속의 지원은 그 펜을 마이크에 들이대더니, 버튼을 하나 딸칵 눌렀다.

그러자, 그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삼촌. 혹시 ‘재정립’이라는 기술 아세요?

-이렇게 쉬운 걸 왜 지금까지 못 했을까요.

-저를 표절작가라고 낙인찍었으니, 그 자식도 같은 꼴로 만들어 줘야죠.

그 순간.

위이이이이잉-!

따르르르르릉-!

지잉, 지이이잉-!

집 안에 있는 모든 휴대폰과 전화기가, 동시에 일제히 울렸다.

상황을 알아차린 윤태준이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를 받기 위해서는 아니다.

털썩.

테이블에 있는 맥주가 엎어지며, 내용물이 테이블 아래로 질질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걸 치울 새는 없었다. 술 따위로는 진정할 수 없다. 더 강한 게 필요하다.

그대로 책장으로 다가가,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내용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네모나게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하얀색 분말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후욱, 후욱….”

윤태준은 벌벌 떨리는 손길로 그중 하나를 집어 ‘사용’했다.

손이 두 배로 더 떨리고, 온몸이 들썩거렸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온갖 소리들이 섞여서 들렸다.

“…태준! …녀석아!”

“할아…? 여긴 어떻….”

“이게 무슨 일이냐? 이 자식… 눈은 또 왜… 설마 ….라도 한 거냐?”

“이거 …청 좋아요. 할아버지도 …실래요?”

“정신머리 없는 자식아!”

몽롱한 와중에도 욕은 참 잘 들렸다.

나 참. 할아버지는 뭘 모른다.

원래 제정신 아닌 사람은 건드는 건 아니랬는데.

꿈결처럼, 우당탕- 하는 소리와 으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윤태준은 보고 말았다.

“…할아버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C&N의 회장, 윤태형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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