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93화 (193/200)
  • #192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거지. 옛날에는 그냥 드라마에나 쓰는 그저 그런 말이었는데, 요즘은 이상하게 이 말을 쓸 데가 엄청 많단 말야. 사람들이 죄다 양심에 털이라도 난 건지, 다른 사람은 대차게 비판하면서 자기도 똑같은 일을 저지른다는 거지.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잘못이 없는 자만 돌은 던져라.’ 하시니까 다들 돌을 내려놨지만, 요즘은 그냥 잘못 있는 놈들도 돌부터 던지고 본다니까?

    한 네티즌의 투덜거림에 답글이 화답했다.

    -그게 뭐 정치인이랑 기업인만 그런가? 어떤 분야든 다 똑같지 뭐. 그냥 그런 놈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이라는 게 더 설득력 있을 듯? 이번에 웹소설계 터진 것만 봐도 알잖아. 너희도 들었지? 참새치 사건?

    댓글이 순식간에 좌르륵 이어졌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여기에 어딨냐? 진짜 나 그거 보고 충격 엄청 받았다. 좋아하던 작가였거든. 작품도 좋아했지만, C&N 표절사태때 앞장서서 지탄하는 거 보고 완전 반했었는데. 지금은 그냥 똑같은 쓰레기로 보여.

    똑같은 쓰레기, 라는 말을 보자마자 채팅을 치던 남자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어렸다. 내가 잘되는 게 안 되면 남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리면 되는 건데, 이 간단한 걸 왜 몰랐을까?

    -원래 자기가 구린 놈이 남 구린 거에 눈 붉히는 거잖아. 참새치도 보니까 <전설의 보안관>부터가 표절이라며? 이번에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발표 나온 건 봤냐?

    반응을 기다리며, 남자가 마른 입술을 슬쩍 훑었다. 곧 누군가가 이어 말했다.

    -방금 뉴스 확인하고 왔는데 진짜 어이없네ㅋㅋ ‘스패로우 팩토리는 모르는 일이다.’ ‘사실 무근이다.’ ‘자세한 건 조사 이후에 발표하도록 하겠다.’ 이거 그냥 예전에 C&N이 한 대답이랑 완전 빼박인데? 진짜 데칼코마니다, 데칼코마니야.

    -근데 이 정도로 막 강하게 빼도 되나? 저러다 걸리면 진짜 빼도박도 못할 텐데? 솔직히 스패로우 팩토리라 그런지, 아직 믿음이 가긴 해.

    지금껏 쌓아온 좋은 이미지 덕분인지, 여전히 스패로우 팩토리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몇 마디 더 써주기로 했다.

    -그건 네가 <주산태협전>을 안 읽어봐서 그래. <주산태협전> 진짜 명작이더라. 참새치는 거기서 다 배껴버린 거고.

    그러자, 상대가 대답했다.

    -근데 그렇게 좋은 책이 왜 묻혀 있었을까?

    * * *

    세상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감정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실연의 고통을 말할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사별에 대해 말할지도 모르지만… 형우의 생각에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억울함이다.

    “선배, 잘 다녀왔어요?”

    스패로우 팩토리의 사무실, 어느새 와 있던 연수가 짐짓 밝은 척 물어왔다.

    “교도소에 강연 다녀왔다면서요. 거기 사람들은 엄청 무서울 것 같은데.”

    “그랬지.”

    오늘은 참 바쁜 날이었다. 윤정식의 부탁을 받아 그를 만나고, 교도관의 요청으로 내친김에 교도소에서 강연까지 했다.

    재소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늘 스님이랑 목사님만 보다가 작가를 보니 신선하게 느낀 것 같았다. 아니면 들어가기 전에 구매했던 버거왕 와퍼 100여 개가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었어. 소설 내용을 묻는 사람도 있고, 독후감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지. 칼 쓰는 묘사가 조금 틀렸다면서 조언을 해 주는 사람도 있었어. 장소가 장소인지라 약간 섬뜩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어찌 됐건 범죄라는 건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 다들 내 앞에서 이야기를 막 늘어놓더라고. 작가님, 작가님 하면서.”

    채 다섯 시간도 지나지 않은 이야기지만, 형우는 마치 회상처럼 말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작가였기에 들을 수 있는 말이었을 거야. 내가 작가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나한테 말을 걸어오지 않았겠지. 그런데 말야….”

    형우의 고개가 떨어졌다.

    “만약 내가 작가가 아니게 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다 그러잖아. 나보고 표절 작가라고. <전설의 보안관>부터, <권객>까지.”

    “아녜요!”

    연수가 소리를 질렀다.

    “표절 안 했잖아요? 제가 다 봤다고요.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건 맞지만, 누가 내 말을 믿어주겠어?”

    인터넷에는 벌써 <주산태협전>과 자신의 소설의 유사성을 지적하는 글들이 가득했다. 물론 형우는 <주산태협전>이라는 소설을 본 일조차 없었다.

    “편집자님 이야기 들어 보니까, 그런 소설은 검색해도 안 나온대요. 출판사도 아예 이름이 없고요. 분명 이건 조작된 거예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테니까요.”

    저 말은 맞다. 세상에 밝혀지지 않는 진실은 별로 없으니까.

    다만, 문제는 시간이다.

    모든 걸 다 잃어버린 후에 진실이 밝혀지는 건… 정말이지 힘든 일일 테니까.

    * * *

    “그러니까, 네 말은 이거로구나. 누군가 너를 엿 먹이기 위해 <태산주협전>을 썼다고.”

    집으로 돌아온 형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직 형사였던 집주인 아저씨를 만나 조언을 구하는 일이었다.

    “출판사도 출판 연도도 확인이 안 된다라……. 비슷한 게 떠오르는구나. 예전에 문화재청에서 일하는 녀석한테 들은 건데…… 사기꾼들이 자주 쓰는 수법 중에 재정립이라는 게 있다는구나.”

    “재정립이요?”

    “가치 없는 옛날 그림을 구한 뒤, 그 위에 모작을 덧칠해 그리는 수법이지. 그러면 탄소연대측정법 같은 것을 사용해도 진품 여부를 쉽게 알 수 없거든. 당연한 일이지. 캔버스 자체는 옛날 물품이 맞으니까.”

    “그 말씀은….”

    “그래.”

    집주인 영감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 형우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가능한 방법은 재정립 기술 정도밖에 없다.

    “실제로 80년대에 출판된 책이나 종이를 구한 뒤, 그 내용만 바꿔치기했을 거야. 그러면 그 책은 영락없이 80년대의 것으로 보이게 되지.”

    “……그렇군요.”

    “내 추측이 맞다면 말이다, 상대는 엄청나게 주도면밀한 녀석이야. 뭣보다 안에 있는 글들을 다시 스스로 썼다는 이야기도 되니, 어느 정도는 글솜씨도 있는 놈이겠지. 떠오르는 게 있느냐?”

    왜 안 떠오르겠는가? 글을 쓸 줄 아는 인간 중에서 자신에게 도를 넘는 증오심을 품고 있는 녀석이라면, 한 명뿐이다.

    “윤태준이요.”

    “그렇겠지.”

    사건의 개요는 뻔하다. 윤태준은 재정립된 소설을 비밀리에 만들었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헌책방마다 슬쩍 뿌리고 왔을 거다.

    아마 최근에 있었던 다소 뻔한 느낌의 방해 공작은, 그저 스패로우 팩토리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개수작에 불과했을 거라는 뜻이다.

    “어떻게 하죠? 국과수에 맡겨야 하나요?”

    “이 정도로 치밀하게 했으면 아마 국과수에서도 빠른 결과를 내주지는 못할 게다. 애초에 국과수라는 데가 인원이 그렇게 많은 곳도 아니고. 만약 밝혀지더라도 시간이 엄청나게 흐른 뒤겠지.”

    그러면 이미 회사와 자신은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은 후일 테였다.

    “이거… 방법이 없을까요?”

    “흠.”

    집주인 아저씨의 프로파일러 본능이 발동했다. 분명 방법은 주도면밀하지만… 동시에 초보자의 느낌이 조금 났다.

    “가끔 범죄에는 재능을 가진 놈들이 출현하지. 증거를 남기지 않는 놈들 말야. 하지만 그런 놈들이 꼭 하는 실수가 있어.”

    “뭔데요?”

    “입을 가만 있지를 못하거든. 자신이 한 걸 어떻게든 말하고 싶어 안달을 낸단 말야.”

    완전범죄 비슷한 걸 성공해 놓고, 자신의 입으로 내뱉음으로써 완전하지 않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니, 가장 좋은 건 그 순간을 찾는 거야.”

    “어떻게 하죠?”

    “글쎄다. 그 부분은 내가 말해줄 수가 없구나.”

    미적지근하게 끝난 결론이지만, 형우는 일단 아저씨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수첩에 적어넣었다. 그리고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감사합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요.”

    “도움은 무슨… 그나저나, 형우야.”

    집주인 아저씨가 물었다.

    “애지중지 들고 다니던 당근 모양 펜은 잃어버린 거냐? 그거 꽤 보기 좋았는데.”

    “아 그거요. 누구 줬어요.”

    “그렇구나…… 으흠흠!”

    너무 긴장한 것처럼 보여서 긴장을 풀어주려고 꺼낸 이야기인데, 별 효과는 없는 듯했다.

    * * *

    윤정식은 꿈을 꿨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는 대학교의 교정에는 참새가 가득했다. 진아는 그곳에서 참새들에게 잘게 찢은 식빵을 던져주고 있었다. 윤정식은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진아에게 걸어가 그 옆에 앉았다.

    “나 군대 가기로 했어.”

    “군대?”

    “응. 아버지가 다녀오라더라.”

    “그래?”

    진아의 표정에 순간 걱정이 어렸다. 그 순수한 표정이 언제나 보기 좋았다.

    “아버지랑 약속했거든. 군대만 다녀오면, 너랑 연애를 하든 결혼을 하든 신경 안 쓰시겠대.”

    “치이, 결혼은 무슨.”

    “진짜야.”

    정식이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걱정 마. 군대 뭐, 요즘은 편해졌다더라.”

    “편해지긴 무슨. 보나 마나 고생 엄청 할 텐데.”

    “그게 뭐 어때서. 넌 기다려 줄 거잖아?”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진아가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네가 다른 여자 데려와서 꺼지라고 해도 바짓가랑이 잡고 매달릴 거다 뭐.”

    “그래?”

    “응. 그래.”

    하지만, 진아의 그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전역한 정식이 처음으로 들은 소식은… 진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그날도 참새가 참 많았던 것 같다.

    뺘악- 뺘악!

    “…꿈인가.”

    참새가 우는 소리에 윤정식은 잠에서 깼다. 도서관 창틀에 참새 몇 마리가 앉아서 우짖고 있었다.

    “저리… 아니다, 됐다.”

    참새를 내쫓으려던 정식의 손이 멈췄다. 그냥 이대로 놔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렇게 멍하니 한참 참새를 바라보는데.

    “윤 사장님. 면회 또 들어왔는데요?”

    “면회요?”

    “예, 저번에 왔던 그 청년입니다.”

    “저번에 왔던 사람이라면…… 참새치 작가요?”

    “아뇨, 그 전이요.”

    그 전이라면… 아마 조카인 태준이일 텐데. 걔가 여기를 또 왜 왔을까?

    “알겠습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윤정식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면회실로 걸어갔다.

    “삼촌, 안녕하세요?”

    “그래. 네가 무슨 일이냐?”

    윤정식의 물음에, 조카가 씩 웃었다.

    “삼촌은 늘 말씀했었죠. 저는 약간 모자란 놈이라고요.”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글쎄요,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시려나?”

    윤태준은 씩 웃으며, 신문 기사 하나를 내밀었다.

    [작가 참새치, 표절 논란! 스패로우 팩토리에서는 극구 부인 중.]

    [교보재문고, 논란 중인 소설 잠정 판매 중단 결정!]

    기사를 본 윤정식의 눈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게 뭐냐?”

    “뭐긴요. 그 자식이 표절을 했다는 거죠.”

    윤태준이 사악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윤정식은 순식간에 상황 파악을 끝냈다.

    “네가 한 짓이구나.”

    “맞아요.”

    조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해 보니 별거 아니더라고요. 삼촌 혹시 ‘재정립’이라는 거 들어 본 적 있으세요? 그게 모작을 만들 때 많이 쓰는 수법인데…….”

    * * *

    한참을 신나게 설명한 후, 조카 녀석은 자기가 한 일이 너무 끝내주게 멋지다는 듯이 웃었다.

    “물론 끝까지 거짓말은 못 하겠죠. 이 년? 아니, 일 년이면 이게 다 자작극이라는 걸 알 거예요.”

    “그렇겠지.”

    “하지만, 그러면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 있을 거예요. 들어 보니 사람들이 내로남불에 정말 민감하더라고요. 스패로우 팩토리의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있으니까, 아마 조금만 더 있으면 저희가 그 조그마한 기업을 낼름 먹어버릴 수 있을 거고요.”

    “그게 네 목표냐?”

    “아뇨.”

    윤태준이 씩 웃었다.

    “제 목표는 이미 이뤘는걸요. 그 자식이 저를 표절 작가로 모함해서 나락으로 빠트렸잖아요. 그래서 생각했어요. 이 자식도 같은 걸 경험해 봐야 한다고….”

    “하.”

    윤정식은 그만 웃고 말았다.

    주도면밀한 계획에 비해 동기가 너무 하찮다. 인간의 모든 행동 원리는 사실 사소한 것이라고 줄곧 주장했던 프로이트가 봤으면 아주 훌륭한 교보재 취급을 했을 텐데.

    하지만 태준은 그 웃음을 다른 식으로 해석한 모양이다.

    “그쵸? 삼촌도 웃기죠? 이렇게 쉬운 일을 못 해서 지금 감옥에 계시다는 게요.”

    “내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걸. 내가 이 말을 퍼트리면 어쩌려고?”

    “삼촌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윤태준이 씩 웃었다.

    “왜냐면 삼촌은 회사를 끔찍하게 아끼니까요. 연인을 보낸 대가로 얻은 거잖아요.”

    “글쎄다. 또 모르지.”

    “괜한 허세는. 그리고 뭐, 사실 말해도 상관은 없어요. 아무도 안 믿어줄걸요? 증거가 없는 범죄는 언제나 음모론일 뿐이니까요.”

    윤태준이 씩 웃었다.

    “그러니 그냥 지켜보기나 하세요. C&N은 제가 키울 테니까. 그러면 그때는 인정하시겠죠?”

    “뭘?”

    “모르는 척하지 말고요. 삼촌은 늘 그랬잖아요. 저는 모자란 놈이라고. 하지만 저희 엄마는 반대였죠. 저보고 늘 대단한 사람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 보면… 엄마 말이 맞았잖아요?”

    “누나도 가끔 맞는 말을 하지.”

    “으하핫, 그 태도 마음에 드네요! 아무튼, 오늘의 사식은 고구마랑 사이다 준비했습니다. 마음껏 드세요.”

    “고마워 미치겠구나.”

    윤정식의 대답을 들은 태준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나저나 삼촌, 취향이 좀 귀여워지셨네요?”

    “아, 이거?”

    윤정식이 들고 있던 펜을 힐끗 바라봤다.

    “누구한테 선물 받은 거거든.”

    “당근 모양이라. 초식동물 느낌 나고 좋네요.”

    “맞아. 날카로운 부분이 없어서 교도관도 터치 안 하고, 그 외에 좋은 기능도 많단다.”

    그 말에 조카 녀석이 비웃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에 누나와 나눴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누나가 어떻게 날 배신해?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란다. 영원한 내 편도, 영원한 적도 없지. 그걸 모르면 병신이야.

    음, 누나.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말야. 누나의 말대로라면….

    ‘누나 아들은 병신이 맞는 것 같아.’

    당근 펜의 숨겨진 버튼을 딸칵, 누르며 윤정식이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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