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92화 (192/200)

#191

[<권객>의 영화화, 정상적으로 진행된다!]

[새롭게 구한 각본가는 누구? ‘답답해서 내가 쓴다….’ 김형우 작가!]

[시나리오라이터로 재탄생한 천재 소설가!]

[…제 작품이라 가능했을 뿐이다. 다른 작품이라면 택도 없었을 것.]

[강 감독, <권객>의 시나리오 오히려 예전보다 낫다. 최고의 작품이 될 것!]

ㄴ도중에 시나리오라이터가 바뀐다? 이거 <정의 리그> 죠스 와던 꼴 나는 거 아님?

ㄴ설마 ㅋㅋ본인이 썼는데 그러겠냐. 믿고 보는 참새치 모름?

ㄴㄹㅇㅋㅋ

….

<권객>의 영화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소식은 이내 매스컴을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TV 화면을 보며 지원이 흡족하게 웃었다.

“이게 다 강 감독님 덕분이죠.”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강 감독은 윗선에 알리지도 않고 바로 언론사부터 찾아갔다.

-괜히 또 엄한 놈이 윗선에 헛바람 불어넣기 전에 미리 선빵을 쳐 놔야지!

어떻게 봐도 보고체계를 어긴 행동이었지만, 강 감독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싶었다.

-위에서 욕이야 좀 처먹겠지만, 또다시 각본 날아가는 것보다야 백 배 낫다, 이거야!

영화인으로서의 강렬한 프라이드랄까, 아니면 완벽주의적인 태도라고 할까. 영화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강 감독에게 지켜야 할 선 같은 건 없는 것 같았다.

하긴, 장비를 회수해가려는 옆 팀에게 주저 않고 날아차기를 갈긴 감독이니 오죽하겠는가.

“잘 돼서 다행이에요.”

이 정도로 일이 진행됐으니, 아무리 C&N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흙탕물을 뿌리지는 못할 테다.

“잘 된 건 맞지만…….”

하지만 형우의 표정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해요.”

“뭐가요?”

“C&N이요. 너무 반응이 없어요. 일도 쉽게 끝났고요.”

각본가를 날려버리는 건 쉽고도 간단하게 형우를 방해하는 방법이었으나, 그만큼이나 해결법 또한 간단했던 게 문제였다.

없어진 각본이야 다시 쓰면 되는 것이고, 스패로우 팩토리는 글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람이 수백 명 모여 있는 집단이니.

설령 스패로우 팩토리 내에서 쓸만한 각본을 만들지 못했더라도, 어떻게든 새로운 각본가를 찾아내서 영화를 완성해 낼 수 있었을 테다.

꽤 노골적인 수단을 사용한 것 치고는… 결과가 형편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쪽에서 이런 해결책을 몰랐을까요?”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죠.”

지원이 말을 덧붙였다.

“이번 프로젝트는 윤태준의 작품이잖아요.”

“그렇겠죠.”

윤태준이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일이 터졌으니, 아예 관련 없다고 보는 게 더 이상한 일일 테다.

“그러면… 저희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걸지도 몰라요. 윤정아나 윤정식과는 달리, 윤태준은 예전부터 허술한 데가 많았잖아요.”

“하지만 C&N에는 윤정아도 있잖아요.”

“글쎄요, 윤정아가 예전처럼 멋대로 움직일 수는 없을 거예요. 2년 전에야 본인이 부회장이었으니 멋대로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정보에 의하면, 공항에 윤태준이 도착했을 때도 직접 나가지 못하고 부하 직원에게 지시했다고 해요. 엄청 바쁘다는 거죠.”

“…그건 그럴듯하네요. 자식 사람이 유별난 사람이니까.”

지원의 의견에 딱히 흠잡을 데는 없는 것 같아서,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으면 좋겠네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푹 쉬세요. 고생하셨잖아요.”

지원은 그대로 서랍 아래를 뒤져 뭔가를 꺼냈다.

“이게 뭐죠?”

“케이크에요. 강남 유명 제과점에서 산 거죠.”

지원이 싱긋 웃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참새치 작가님.”

“어떻게 알았어요? 말한 적이 없는데.”

“말한 적 없다고 모르면 대표 자격이 없죠. 아, 노래도 불러드릴까요?”

“아니요.”

정중하고도 단호하게 형우가 거절했다.

왠지 마음이 약간 아파지는 지원이었다.

* * *

<권객>의 영화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사회뿐만이 아니었다.

“후우, 이게 얼마만의 신장도서냐?”

“그러게 말입니다.”

사회와 약간 단절되었다기에 모자람이 없는 의정부교도소.

직원 두 명이 뻘뻘 흘리며 책이 잔뜩 든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이번에 온 책 중에 볼만한 거 있냐?”

“교도소 도서관이 다 똑같죠. 죄다 자기계발서랑 종교 서적인데… 아! 하나 있긴 하네요.”

“뭔데?”

“이번에 영화화된다는 작품 있잖습니까. 그 무협 영화.”

“아, <권객>? 그게 들어왔어?”

“그것뿐만 아니라, 작가 전작까지 한번에 들어왔다는데요. <전설의 보안관>이랑 <아이언 타이거>요.”

“그거 재밌나?”

“제 조카가 읽는데, 엄청 재밌다는데요?”

“그래? 나도 한 번 읽어 보든지 해야겠어.”

“에이, 안 그러시는 게 좋을 겁니다. 도서관에서 교도관이 재밌는 책 붙들고 있으면 재소자들이 째려본다고요.”

“으음… 하긴, 재소자들 읽으라고 산 책이니.”

두 남자가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남자가 책을 받았다.

“오늘도 수고 많으십니다.”

“강 교도관님이시군요. 오늘 들어온 책입니까?”

죄수복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교도소의 수감자들에게는 나름의 일과가 주어진다. 공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세탁실에서 일하거나 잔디를 뽑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교도소 내 도서관의 설비를 담당하는 사람도 있다.

“예. 오랜만에 들어왔는데, 정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이라뇨, 제 일인데요. 여기 두고 가시면 저녁까지 다 해 놓겠습니다.”

“하하, 윤 사장님 오고 나서는 교정도서관이 진짜로 밝아진 느낌이라니까요? 전임자는 하도 관리를 대충 해서 말썽이었는데, 역시 출판사에서 일해보신 분은 짬이 다르다니까요, 짬이!”

교도관 강 씨는 성격은 좋지만, 말을 가리는 법을 잘 몰랐다. 아마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고생깨나 했을 스타일이다.

“그럼 수고하세요, 윤 사장님!”

“네, 교도관님도요.”

교도관이 나간 후… 윤 사장, 아니 윤정식은 들어온 책들의 목록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건?”

그중에서 몇 권의 책 목록이 눈에 띄었다.

<전설의 보안관>, <아이언 타이거>, 거기에 <권객>까지. 김형우의 작품이었다.

“생각해 보면… 읽어 본 적은 없군.”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는 하지만, 그때는 책을 읽을 만한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넘치는 게 시간과 여유다.

‘기막힌 우연이군.’

짧게 고민한 윤정식은 그대로, 쌓여있는 책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아이언 타이거>였다.

-아픈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라는, 책의 앞머리가 묘하게 신경 쓰인 탓이었다.

* * *

“거, 윤 사장님. 일은 끝나셨습… 응?”

의정부교도소에 재직 중인 선임교도관 강 씨.

늘 느긋하고 인심 좋은 태도로 재소자들 사이에서 ‘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교도관이었지만, 그조차도 이번에는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니, 윤 사장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잖아요?”

도서관은 세 시간 전 강 씨가 나갔을 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너저분한 상태였다.

상대가 평소에 뺀질거리는 재소자라면 모를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늘 척척 처리하는 윤정식이 이렇게 나오니, 화보다는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윤 사장님?”

강 씨는 그대로 윤정식을 불렀다.

그제야 윤정식이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슬쩍 보니 책에 빠져 있었던 듯했다. 강 씨가 모자챙을 긁적거리며 허허 웃었다.

“그 책이 기가 막히게 재밌나 봅니다?”

여전히 윤정식은 말이 없었다.

강 씨의 입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교도소의 율법상, 재소자는 교도관의 말에 어느 정도 복종할 의무가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성격 좋은 강 씨라도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요, 윤 사장님….”

하지만, 강 씨는 말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고개를 든 윤정식의 양 볼에 선명한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던 탓이다.

“어….”

“아, 죄송합니다. 책을 읽느라.”

“아,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치우겠습니다. 이거 다 끝내고 퇴근할게요.”

“그, 그… 어디 불편하신 건 아니죠?”

강 씨가 오히려 미안한 듯이 되물었다.

재소자의 정신상태가 안 좋은 거라면, 교도관으로서 조치를 취해야 했으니까.

“아닙니다. 그냥 감정에 좀 휘둘렸나 봅니다.”

“<아이언 타이거>라, 오늘 들어온 책 아닙니까. 그게 아주 감동적인가 봅니다.”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어느 부분이 그렇게 좋습니까?”

“끝부분이요.”

“아, 결말이군요. 그렇죠. 이야기라는 게 결말이 좋아야 진짜 좋은 이야기니까요.”

출판사 오너 앞에서 소설 이야기를 해 봐야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꼴이지만, 그걸 알면서도 넌지시 이야기해보고 싶은 게 또 사람 심리다.

고개를 끄덕이는 윤정식을 보고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 강 씨가 허허 웃었다.

“그래도 책 정리는 마저 해 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른 재소자가 불만을 터트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교도관님.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부탁이요?”

평소에 부탁 같은 걸 잘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강 씨의 호기심이 동했다.

“뭡니까?”

“편지를 하나 보내고 싶습니다.”

“편지라… 검열되는 건 아시죠?”

“네.”

“누구한테 쓰시려고요?”

윤정식이 자신이 읽던 <아이언 타이거>를 슬쩍 들어 올렸다.

“이 글을 쓴 작가에게 쓰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좀 아는 사이거든요?”

“아는 사이요? 이 작가님이랑요? 아, 맞다. 출판사 사장님이니 그러실 수 있겠네요!”

강 씨가 호들갑을 떨었다.

“혹시 그러면, 저희 교도소에서 주말마다 진행하는 강연에 초청해 주실 수도 있습니까?”

강 씨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윤정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편지 바로 주시죠! 안 그래도 요즘 재소자들이 왜 맨날 강의는 목사랑 스님만 오냐고 불만을 터트리던 차에, 잘 됐습니다.”

잠시 후, 강 씨는 윤정식이 쓴 편지를 집어 들고 희희낙락하며 도서관 문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며, 윤정식은 다시금 눈가를 한번 문질렀다.

“…쓰읍.”

지금까지 수백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거기엔 좋은 소설도 있었고, 나쁜 소설도 있었다.

<아이언 타이거>는 확실하게 좋은 소설이었다. 허나, 눈물을 흘린 건 다른 이유였다.

-이 소설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젊은 나이에 소설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폐렴으로 쓰러졌던, 15년 전에 만났던 그녀, 이진아 씨에게 바칩니다.

-부디 이 소설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어주길.

소설의 결말 뒤에 적힌 짤막한 작가의 말.

거기에 적힌 이진아라는 세 글자가, 그의 마음을 크게 울먹이게 한 것이다.

* * *

“아니, 오천 원만 깎아 주세요. 헌 책이잖아요.”

“그렇게 팔면 난 뭐 먹고 사냐? 차라리 한 권 더 가져가라.”

“그러면 저 이거 가져갈래요. <드래곤 피자>.”

“이 자식이, 그건 잘 팔리는 작품이잖아, 안 돼!”

“<문의 아이들>이랑 <드라군 레이디>는요?”

“야 인마!”

“에이, 알았어요.”

가게 주인과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이영훈은 결국 이름도 한번 못 들어본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주산태협전>, 이건 되죠?”

“…그런 책도 있었나? 그래, 맘대로 해라.”

“좀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흡족한 거래를 마친 영훈은 주인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헌책을 한 아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역시 헌책방이 최고라니까!”

판타지 소설 애호가인 영훈은 웹소설을 보는 걸로도 모자라 90년대 판타지나 00년대 대여점 책들을 수집하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검은 마법사> 3부작이라던지 <여우와 후추> 같은 건 아는 작품이니 넘어가고… 역시 이름조차 못 들어본 <주산태협전>이 눈에 끌렸다.

“일단 똥인지 된장인지만 볼까?”

영훈은 숨을 멈추고 책을 활짝 펼쳤다.

“…어라?”

원래 헌 책은 곰팡내와 먼지 탓에 처음 펼치면 기침이 콜록콜록 나오고는 했는데, 이 <주산태협전>은 이상하게 그런 게 없었다.

“분명 겉보기엔 헌 책인데… 관리를 엄청 잘했나?”

그대로 몇몇 부분을 더 살폈다. 책은 생각보다도 더 오래된 것 같았다. 조판이나 규격, 종이 재질 따위가 열악한 티가 났다. 아마 90년대가 아니라, 80년대에 유행하던 무협 소설의 일종인 것 같았다.

“이러니까 검색해도 안 나오지.”

하지만 진짜 매니아는 소설의 출판 연도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레트로도 레트로만의 맛이 있으니. 그대로 손가락 끝에 침을 바른 영훈은 <주산태협전>의 장을 하나하나 넘기기 시작했다.

“…어라?”

책장을 넘기는 영훈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이상한 위화감을 느끼던 영훈은, 생각났다는 듯이 책장을 꺼내 책 몇 권을 꺼냈다.

“…맞아. 이거 <전설의 보안관>에 나온 문장이랑 똑같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권객>에서 나온 패턴이랑 똑같은데? 게다가 아랫부분은… 맙소사, <아이언 타이거>의 명장면을 빼다 박았잖아?”

그 순간, 영훈은 이상함을 느끼고 말았다.

<주산태협전>은 적어도 30년은 훌쩍 넘은 작품인데… 이 작품과 최근 참새치 작가의 작품이 비슷할 수 있는가?

아무리 살펴봐도 문학적 허용 따위를 심하게 넘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었다.

“참새치 작가가… 표절을 한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정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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