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88화 (188/200)

#187

<조퀴즈>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맨인 조재호와 국민 MC이니 유지석이 함께하는, 명실상부한 현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름만 들어 보면 <도전 실버벨!>같은 퀴즈 프로그램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퀴즈 프로그램보다는 다양한 직업들의 사람을 만나 토크를 나누는 토크쇼에 가깝다.

“오늘의 게스트 모시겠습니다!”

한 남자가 뺘악-! 하는 소리와 함께 걸어 나왔다. 물론 ‘뺘악’ 소리는 남자가 낸 것이 아니라 남자의 왼 어깨에 올라와 있는 참새가 낸 소리였다.

“현재 뜨거우신 분이죠? 웹소설계의 절대강자, 참새치 작가님입니다!”

절대강자라는 그 낯 뜨거운 말 때문에, 형우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 예전 대여점 시절에는 ‘악마의 작가’라던지, ‘신조차 두려워하는 작가’ 같은 거창한 수식어도 많이 남발했다고 하니.

“안녕하세요, 작가 참새치입니다. 오늘 이렇게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인 <조퀴즈>에 나올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제가 평소에 유지석 씨랑 조재호 씨 팬이었거든요.”

“우와, 정말요?”

“그럼 여기서 첫 번째 퀴즈! <모르는 형님> vs <조퀴즈>, 둘 중 뭐가 더 좋습니까?”

조재호 개그맨의 익살스러운 질문에, 형우의 표정에 순간 당황함이 어린다. <모르는 형님>은 형우가 불과 3개월 전에 출현했던 프로그램이니까. 뭐라고 말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는데.

“뺘악! 뺘아악!”

참치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빼어난 센스의 두 예능인들은 이 돌발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이야아, 이 친구가 대신 대답해 줬네요. 이름이 뭐죠?”

“아, 김형우입니다.”

“그래, 형우야. 뭐라고 대답한 거니?”

“아뇨, 제 이름이 김형우고요. 얘는 참치예요.”

“아! 아아! 이런, 실례를…….”

옆에서 유지석이 핀잔을 줬다.

“재호야! 웃기려고 그러지 좀 말라니까?”

“아니, 저는 작가님이니까 참새 이름도 재밌게 붙이는구나 했죠. 마이 미스테이크!”

“뭐어? 미스테이크?”

유지석 MC의 우스꽝스러운 말투에, 순식간에 PD와 작가들까지 웃음바다에 휩싸였다.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PD를 보니, 이미 한 장면은 나왔다, 하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슬슬 시작해 볼까요? 참새치 작가님. 요즘 완전 핫하시잖아요?”

“그렇죠. 하하.”

“최근에 기사 봤거든요.”

유지석 MC가 미리 준비해 놨던 푯말을 꺼내 들었다.

“2년 만에 완결, 참새치 작가의 <권객>. 네이비 시리즈에 판권 11억에 판매! 야, 이거 대단한 거 아닙니까?”

“들어 보니까 이게 저… 11억을 받고 작품을 완전히 넘겨준 게 아니라면서요?”

“네. 인세는 또 따로 받습니다.”

“야, 이게 연예인으로 치면 섭외비가 11억인 거네. 거기서 출연료는 또 따로 받고.”

“형은 그렇게 해요? 저는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재호 씨, 여기서 출연료 이야기를 왜 합니까, 왜….”

당황하는 유지석을 보며, 형우가 피식 웃었다. 인터뷰는 쭉쭉 이어졌다.

“뭐 소설 쓸 때 재밌는 에피소드라도 하나 없습니까?”

“소설 쓸 때 있었던 건 아닌데… 저희 고향마을이 좀 작거든요.”

“아, 나 이거 알아. 인터넷에서 봤어.”

조재호가 낄낄거리며 준비해 뒀던 자료를 꺼냈다.

“이거 말하는 거죠?”

그곳에는 <경축, 희대의 대문호 탄생! 김형우 탄생촌!> 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경축, 김형우 네이비 입단!> 이라는 글자도 동시에 나풀거렸다.

“보통 연재하는 걸 입단이라고 합니까?”

“…이장님이 야구를 좋아하시거든요.”

“이 댓글도 혹시 이장님이 다신 건가요?”

연재 중인 소설의 베스트 댓글, ‘마을의 자랑 김형우 화잍팅! 복날에 삼계탕 꼭 먹으러 와라!’ 라는 자료까지 나왔다.

“그…… 독자님들이 일부러 저걸 베스트 댓글까지 올려놓으셨더라고요. 놀리려고 그런 것 같아요.”

얼굴이 빨개진 형우가 뒷목을 긁적거렸다.

“그래도 뭐…… 응원해 주시니 고마울 뿐이죠.”

* * *

뚜벅뚜벅.

한 남자가 인천 국제공항의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표정은 약간 어둡고, 볼살이 퀭했다. 의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 봤다면, 그것을 ‘마약 중독자의 대표적인 증세’라고 평가했으리라. 본래 한국의 사법은 속인주의라 해외에서 대마를 피우고 돌아와도 불법이지만, 이 남자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만한 힘도, 권력도 있었다.

“이쪽입니다, 도련님.”

윤태준을 발견한 정 상무가 아는 체를 했다. 그 무뚝뚝한 표정을 바라보며 태준은 싱긋 웃었다. 드디어 한국이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솔직히 말해서 별로 좋지 않았다. 태준이 다녔던 학위 공장은 각국의 부자들이 미국산 학위를 취득하려 너도나도 몰려오는 곳이었기에, 태준의 많은 돈 또한 별반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돈을 제외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보자면… 윤태준이라는 인물은 그다지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유형은 아니었으니까.

“엄마는요?”

“오늘 일이 좀 바쁘신지라, 저를 대신 보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사장님이 혹시 윤태준 님이 원하시는 게 있으면 다 들어주고 오시라는군요.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십니까?”

부하직원에게 아들의 수발을 들라고 시킨다. 어떻게 보면 자존심 상할 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정 상무의 표정은 딱히 변화가 없었다.

일단 상명하복에 익숙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건 정 상무가 딸을 잃은 경험이 있다는 거였다. 자식을 챙기는 부모의 마음 정도야,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뇨, 딱히 먹고 싶은 건 없어요. 미국에서도 원하는 게 있으면 다 먹고 자랐거든요. 그나저나, 요즘 회사는 어때요?”

“회사…… 말입니까?”

“엄마는 어떻게든 숨기려고 한 것 같지만, 저도 바보는 아니잖아요. 여기 소식 대충은 들었어요. 그 자식…….”

말을 하던 윤태준의 얼굴에 순간 노기가 어렸다.

“……김형우는 아직도 멀쩡한 거죠?”

“……그렇습니다.”

정 상무가 묘하게 얼버무리는 것이 기분이 나빴다. 아마 엄마가 입단속이라도 시킨 모양이다. 그러니, 이대로 엄마한테 가서 물어봐도 분명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며 똑바로 알려주지 않을 게 뻔했지만… 뭐, 상관은 없었다. 알려줄 만한 사람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의정부로 가죠. 부대찌개가 먹고 싶어서요.”

“부대찌개라면 이 근처에도…….”

“어서요.”

그렇게 말한 윤태준은, 그대로 외제 차의 시트에 몸을 묻었다.

‘시트러스 방향제군.’

오랜만에 맡아보는 한국의 향기가 사무치게 좋았다.

* * *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한 번은 ‘면회’라는 제도와 마주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건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주말에 면회를 하게 될 테고, 당신이 법을 어기며 살아온 사람이라면…… 아마 주중 면회를 하게 될 테다. 군대에서는 원칙적으로 주말에만 면회가 가능하지만, 교도소에서는 반대로 주중 면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면회 시간은 30분입니다.”

구멍이 뿅뿅 뚫린 유리창 너머로 죄수복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납치 감금과 주가조작 혐의가 입증되어 의정부교도소에 들어온 지 이제 2년이 된 윤정식이었다. 엄청나게 피폐해져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멀쩡한 모습이었다. 덩치는 오히려 들어가기 전보다 더 커진 것 같았다.

“걱정 많이 했는데 안에 밥이 꽤 입맛에 맞으신가 봐요?”

“헛소리 마라.”

“2년 만에 본 조카한테 쌀쌀맞기는. 사식도 들고 왔는데 말이죠. 부대찌개 좋아해요?”

“성격이 꽤 많이 바뀐 모양이구나.”

“미국은 무섭거든요.”

윤태준이 힙합 가수처럼 과장스럽게 어깨를 한껏 들썩였다.

미국에서 윤태준은 꽤 조심스럽게 지냈다. 한국에서 지낼 때처럼 깽판을 치고 다녔으면 아마 근육이 우락부락한 미국 건달들한테 맞아 죽었을 테니까.

“역시 한국이 치안율 1위가 맞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 덕에 좀 몸을 사리는 법을 배우게 됐죠.”

“그런 건 보통 중학생 정도만 되도 알 텐데.”

“비꼬는 건 그 정도만 하시고요, 삼촌.”

윤태준이 유리창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볼이 퀭한 놈이 흰자만 번들거리는 게, 꼭 잘못 삶은 달걀을 보는 것 같아서 영 께름칙했다.

“사실은 엄마 보기도 전에 여기부터 왔거든요. 외삼촌 얼굴 좀 보려고요. 솔직히 말하면… 회사 이야기를 좀 물어보고 싶은데, 엄마한테 물어봐야 뻔한 이야기밖에 안 할 것 같아서.”

“네 엄마는 병신이야.”

“제가 미국 살다 와서 마더 뻐커, 이런 말에 좀 익숙하기는 한데, 그런 말은 좀 기분이 나쁘거든요, 삼촌.”

“그럼 정정하지. 누나는 병신이야.”

어처구니없는 희극 같은 이유로 교도소에 들어온 지 어언 2년. 윤정식은 몇 번이나 누나에게 이 모든 일은 오해였다고 설명했지만, 윤정아는 그런 동생의 말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집착과 광기였다.

“그래, 네 엄마가 회사 일을 비밀로 하고 있다고?”

“정확히 듣진 않았지만, 정 상무 태도를 보니 대충 그런 것 같더라고요.”

이곳에 올 때도 정 상무가 몇 번이나 제지했지만… 펜 하나로 굴복시켰다. 방법은 간단했다. 날카로운 만년필로 자신의 손목을 쿡쿡 찌르는 시늉이면 충분했다. 뭐,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진짜로 피 한두 방울 정도는 흘렸을 테다.

“그래서 외삼촌을 찾아온 거죠.”

“좋아.”

윤정식이 씩 웃었다. 그는 지금 초등학교 때 남매에게 느끼곤 하는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있었다. 누이가 뭔가를 하면, 꼭 반대로 해서 모든 걸 망쳐버리고 싶은 비뚤어진 동심 말이다.

“네 엄마는 아주 이상한 짓을 했어. 아버지를 데려왔지.”

집착이니 광기니 하는 것을 다 빼고서라도 아버지, 윤태형을 복귀시킨 건 통한의 실수였다.

“왜냐면 그건 너한테 안 좋은 일이거든. 누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어야 해. 아버지는 회사밖에 모르는 사람이거든.”

윤정식은 윤태준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회사를 물려줄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누나가 멍청한 오해로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렇게 됐을 테다.

연인을 잃어가면서 얻어낸 회사니까. 쌩판 남에게 주느니 차라리 윤씨 가문의 손에서 박살 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누나는 병신이지만 단 한 가지는 맞았어. 바로 내가 애매하다는 거지.”

회사를 얻는 도중 연인을 잃었기에 회사에 대한 집착이 크다.

하지만 동시에 가족보다 회사를 우선시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누나를 의심하지 않았고, 한심한 조카나마 챙겼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게 없어. 오직 회사뿐이지. 가문은 그다음이야. 아마 그게 너라고 해도 마찬가지란다. 누가 봐도 너는 기준 미달이잖니?”

미달이라는 말을 들은 윤태준의 머리에 쌍심지가 돋았다.

“글쎄요, 외할아버지는 저를 좋아하셨어요.”

윤태준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하는 시선으로 윤정식을 바라봤다.

“외삼촌은 가끔 외할아버지가 저를 예뻐해 줄 때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는 했잖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네. 외삼촌은 저를 질투했던 거예요. 그렇죠?”

“질투라…. 좀 더 어휘력을 늘리는 게 어떠니.”

맞는 말이라 절로 욕이 나왔다.

자신에게는 ‘회사를 위해 모든 걸 바치라.’라고 교육했던 아버지지만, 뜻밖에도 손자에게는 별다른 걸 요청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부둥켜안고 둥가둥가나 했을 뿐이다. 자신의 도발이 먹혀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윤태준이 피식 웃었다.

“그러니 또 모르죠, 저에게 후계자를 주실지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넌 네 엄마보다 더한 병신이야.”

“에이, 자꾸 욕하지 마시라니까요. 자꾸 그러시면….”

윤태준이 유리창을 살짝 통, 하고 두드렸다.

“부대찌개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 *

짧뚱하게 생긴 모닝이 큼지막한 건물의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휴우!”

후드티를 걸치고 차에서 내린 것은, <조퀴즈>의 촬영을 마치고 스패로우 팩토리에 돌아온 형우였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대표님.”

“그냥 작가라고 하시라니까.”

형우는 직원들 하나하나 인사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야, 엘리베이터라니.’

하남에 위치한 단칸 사무실에서 시작한 지 3년. 스패로우 팩토리는 꽤 견실한 출판기업으로 성장했다. 다섯 명으로 시작했던 직원 수는 이제 거의 백 명에 육박했다.

이 드넓은 판교에서도 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1년 전에 신작 게임으로 대박을 터트린 유지태 대표의 스마일게임즈나, 온갖 사업을 죄다 유치하고 있는 커피콩. 그리고….

“C&N까지.”

형우가 저 멀리 보이는 C&N의 건물을 쳐다봤다. 벌써 몇 번이나 흔들렸음에도, 여전히 공고하게 서 있는 저 빌딩의 꼭대기 층에는 아마… 윤태형 회장과 윤정아 사장이 있을 테다.

“…지금까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윤태형 회장은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2년간 C&N을 견실하게 이끌었다. 여기서 견실하다는 것은, 윤정아나 윤정식처럼 사적인 감정으로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가만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소리는 정치인이나 기업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바뀔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공태준, 그러니까 윤태준이 돌아왔나 봐.”

촬영이 끝나자마자 혜선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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