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82화 (182/200)
  • #181

    “…그렇게 돼서 말입니다.”

    고유민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스패로우 팩토리에 자리가 있을까 해서요.”

    “당연히….”

    “있죠!”

    형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혜선과 서민홍이 먼저 반응했다.

    “오히려 저희가 부탁드려야죠! 기성이시니까, 7.5대 2.5 하면 될까요?”

    “혜선 씨는 그게 문제라니까요?”

    어느새 스패로우 팩토리의 분위기에 적당히 적응한 서민홍이 핀잔을 줬다.

    “너무 깎지 말라고 했잖아요!”

    “원래 신인은 7대 3이 기본인데 0.5더 줬잖아요.”

    “그건 신인 기준이고요. 상대는 고유민 작가님이잖아요, 벌써 4질 작가시라고요. 더 쳐줘야죠.”

    “그럼 78대 22….”

    “메뉴얼 볼까요?”

    “쳇.”

    혜선이 혀를 찼다.

    “알았어요, 알았어. 8대 2! 최고 대우예요. 이 이상은 때려죽여도 못 드려요.”

    오히려 이런 상황에 당황한 것은 고유민이었다.

    “…제 이야기가 아닌데요.”

    “네?”

    “애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아카데미의 학생들이요.”

    C&N의 지망생들, 그중에서도 윤정아와 도수형에게 ‘불량품’ 취급을 받았던 학생들이었다.

    “제가 폭로한 날, 꽤 많은 아이들에게 연락이 왔었거든요.”

    몇몇 아이들과의 대화가 여전히 생생했다.

    -선생님, 진짜로 C&N 나가세요? 그러면 저도 나갈래요.

    -네가 왜? 너는 여기 있어.

    -싫어요. 저희가 바보도 아니고, 다 알아요. 편집도 똑바로 안 해주고, 보란 듯이 무시당했던 거요. 하지만 선생님은 안 그랬잖아요.

    -밤잠 줄여가면서 저희 작품들 읽어 주고, 조언해 주고 편집까지 해 줬어요.

    -그게 아니었으면 선생님 작품도 다른 작가님들만큼 잘 썼을 텐데.

    여기서 좋은 사람이 되어 버릴 만큼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답장을 보냈다.

    -난 공범이야. 도수형이나 윤정아랑 똑같다고. 돈 때문에 너희를 모른 척했어.

    -괜찮다니까요.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요.

    -맞아요! 다시 정신 차린 게 중요한 거지!

    -미안하면 튀지 말고 저희 데리고 가라니까요?

    수없이 올라오는 메시지들이 어느 순간부터 잘 보이지 않았다. 답장이 멋대로 갔다.

    -ㄴㅁㅇㄹㄴㄹㅁㅃㄷㅈ

    -무슨 뜻이지?

    -아, 나 저거 알아.

    유달리 눈치 빠른 학생이 저 모음들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액정에 물이 떨어진 거야. 그러면 저렇게 쳐지거든.

    그렇게 꼬박 하루의 고민이 끝난 후에 찾아온 곳이 이곳이었다.

    어떤 출판사도 굳이 C&N에게 미움을 받아 가면서까지 이들과 계약을 맺고 싶어 하진 않을 테니까. 그 정도로 정신 나간 출판사는 아마 대한민국에 단 한 곳, 스패로우 팩토리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우가 히죽 웃었다.

    “저, 고유민 작가님?”

    “예?”

    “혹시 데려온 애들 중에 <5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쓴 작가 있어요? 그 있잖아요. 헌터인데 전투 능력은 하나도 없고 유일하게 있는 능력이 5초 전으로 이동하는 능력인 거.”

    “아, 있습니다.”

    “대박! 나 그거 진짜 좋아했는데!”

    형우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요, 그 작품 쓴 사람도 있나요? 그, 사실은 F급 헌터인데 생긴 게 너무 무서워서 A급 헌터 취급받는 착각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물론 같이 왔습니다.”

    “미치겠네. 그러면 혹시 <치킨 튀기는 헌터>도….”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작품 목록을 훑는 형우의 입가에 침이 주륵 흘렀다.

    “이 작가는 캐릭터만 조금 고치면 더 나아질 거고, 얘는 문장만 짧게 줄이면….”

    마치 드림팀을 짜는 축구 덕후 같은 모습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형우는 진짜로 그 팀을 짤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만.

    “이 정도면 오히려 저희 쪽에서 부탁해야겠는데요? 이 정도로 가능성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무더기로 데려오셨는데…. 혜선아, 네 생각은 어때?”

    혜선이 퀭한 눈으로 대답했다.

    “…난 싫어.”

    형우의 표정에 당황이 스쳤다.

    “왜? 이거 완전 대박 아냐?”

    “…내가 죽어버릴걸.”

    “응?”

    “지금 회사 상태 기억나?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도표들은 대충 던져두고, 그냥 머릿수만 생각해 보자고. 나랑, 서민홍 매니저님이랑, 사장님. 세 명이 전부라는 거야. 그런데 지금 와서 스무 명이 넘는 작가를 더 받겠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혜선의 의도를 알아챈 형우기 씨익 웃었다.

    이 말은 스무 명을 받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 편집자를 좀 더 뽑기는 해야겠네. 그렇다고 아무나 뽑을 수는 없고 책임을 질 만한 사람이어야겠지. 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좋겠고, 작가랑 유대도 좋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이… 어라?”

    형우가 과장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시선을 돌렸다.

    “여기 있는 것 같은데?”

    “저요?”

    고유민은 깜짝 놀라 그만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저, 여러분이 뭔가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대단한 놈이 아닙니다. 그냥 작가 나부랭이죠. 심지어 요즘은 글마저도 똑바로 못 쓰는….”

    “왜 똑바로 못 쓰는데요?”

    “그건….”

    “죄책감 때문이죠?”

    형우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다 읽어 봤어요. 작가님의 작품은 사이다처럼 펑 터지지는 않지만, 대신 식혜처럼 은은하고 친근한 느낌이었죠.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았어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늘어져서,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형우는 작가였기에,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서 그렇겠죠.”

    글이란 결국 작가의 감정을 덧입히는 것이므로,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글 또한 정리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황하게 될 테고, 작가님의 글 또한 글대로 망가지겠죠. 그건 정말로 안 좋은 일이에요. 그러니까….”

    형우의 눈이 그대로 가늘어졌다.

    “여기서 매니저 일을 하세요. 학생들을 무시했던 만큼, 이번에는 관심을 가지고 이끌어 주세요.”

    “하하핫….”

    자신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폐부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C&N과 싸울 때부터 알았지만, 스패로우 팩토리는 정말 미친놈들이 맞았다.

    “……좋습니다.”

    어느새, 두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혜선이 한 줄로 평가했다.

    “엉덩이에 뿔나시겠네.”

    “…그런 말 하지 마. 치질 생길 것 같으니까.”

    질린 표정으로 형우가 대꾸했다.

    잠시 후, 혜선은 출판 계약서 스무 장과 근로계약서 한 장을 들고 들어왔다. 먼저 서명해야 할 것은 출판 계약서였다.

    “아직 집필을 시작한 건 아니시니까 제호는 공란으로 하고… C&N지망생 정도면 거의 기성 작가님이라 볼 수 있을 테니 비율은 8대 2면 될까요?”

    “8대 2요?”

    “혹시 부족한가요?”

    “아, 아닙니다!”

    고유민이 손사래를 쳤다.

    범례대로 7대 3이거나, 약간 부당하게 6대 4여도 할 말은 없었을 테다. 말했다시피, 게네들은 지금 스패로우 팩토리 말고는 갈 데도 없었으니까. 경쟁이 없는 제품은 가격이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간단한 시장 원리다.

    하지만 스패로우 팩토리는 당연하다는 듯 8대 2를 불렀다. 약간 당황한 고유민을 진정시킨 건 형우였다.

    “너무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도 학생들 작품을 다 읽어 봤으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잡은 거예요.”

    “그런가요?”

    “네. 물론, 학생들의 가능성만 고려한 건 아니죠.”

    그다음은 표준근로계약서였다.

    계약서를 받아본 고유민의 눈이 큼지막해졌다.

    “…여, 연봉 오천이요?”.

    소설을 쓸 때에 비하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경험도 없는 사람의 초봉으로 보자면 지나치게 높다.

    “말했잖아요, 기대 많이 하고 있다고요. 편집자님도 오케이 하신 거예요.”

    “…허어.”

    머리가 띵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한 느낌으로, 고유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출근은 언제부터죠?”

    “내일부터요.”

    “오늘은요?”

    “가셔도 괜찮긴 한데, 조만간 사장님이 오시기로 했으니 얼굴 정도는 보고 가는 것도 괜찮겠죠.”

    사장이라면 아마 서지원을 말하는 것일 테다.

    “알겠습니다.”

    그냥 기다리기도 뭐하기에,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익숙하게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아, 일본어 노(の)모양으로 물을 부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그윽한 향이 퍼져나갔다. 혜선의 눈 또한 몽롱하게 변했다.

    “와, 벌써 잘 뽑은 것 같아.”

    “…고유민 작가님 커피 담당시키려고?”

    “막내가 그 정도는 해야지.”

    “너 막내 아니잖아.”

    “…서민홍 매니저님은 경력직이라 예외였어. 와, 맛도 예술이야.”

    커피를 다 마셨을 때쯤, 문이 벌컥 열렸다.

    “아, 마침 여기 다 계셨네요.”

    지원이 그곳에 모인 멤버들을 둘러봤다.

    “지금 일이 좀 생겨서 부르려던 참인데, 잘됐네요. 형우 작가님, 시간 되시죠?”

    “시간은 되는데요.”

    “그러면 시간 좀 내주세요. 그리고….”

    잠시 고민하던 지원은 한 명을 더 호출했다.

    “고유민 작가님도 같이 가시죠.”

    “어, 어딜 가는데요?”

    “대구요.”

    짧은 대답이었다.

    * * *

    사건이 터지고 3일.

    C&N은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다.

    “이게 벌써 몇 번째지?”

    윤정식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공태준 사건 때 한 번, 델리만쥬의 헛짓거리로 두 번. 거기에 이번 일까지 세 번이다.

    ‘…빌어먹을!’

    게다가 이번 사건은 앞선 두 사건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

    공태준 사건은 편집장이었던 공판석을 엮어냄으로써 어떻게든 책임을 피해 갔고, 델리만쥬의 헛짓거리는 애초에 회사의 잘못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일탈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와, 이번 둔갑 작가들 명단 봐라ㅋㅋㅋ 거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인데?

    -3등한 저 작가 자기 독자한테 익명으로 패드립하다가 로그아웃 안 해서 걸렸던 애임.

    -2등한 애는 어떻고? 쟤 갑자기 멀쩡한 작품 19금 BL로 드리프트한 애잖아.

    -5등한 애도 마찬가지임ㅇㅇ. 자기 소설에서 범죄자 미화했던애잖슴.

    ㄴ범죄자 미화는 뭐임?

    ㄴ애가 좋아했던 가수가 성범죄 저질렀는데 어지간히 충격받았는지 자기 소설에서 그 여자애 X년으로 만들어버림.

    ㄴ그 정도면 고소감 아님?

    ㄴ특정성 성립 안됐다더라.

    -그래도 1등만 못하긴 함ㅋㅋ 글로리 미쳤냐고.

    ㄴㄹㅇㅋㅋ다른 작가들은 걍 자기가 잘못한 건데, 글로리는 웹소설판 엎을뻔 했잖아.

    ㄴ순문학에 신검숙이 있다면 웹소설에는 글로리가 있다는 거지.

    ㄴ와, 이렇게 말하니 글로리 엄청 대단해보이네. 신검숙급 작가 ㄷㄷㄷ

    ㄴ대문호 ㅋㅋㅋㅋㅋㅋㅋ

    조직적으로 기성 작가를 둔갑시키고, 죄를 은폐한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났다.

    심지어, 그 기성들조차 떳떳하지 못한 이유로 웹소설판을 등졌던 문제아였으니. 문제가 터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삐익-!

    윤정식의 귀에 그런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원의 음성이 뒤따랐다.

    벌써 다섯 통 째였다.

    “이런 중요한 때에… 누나는 어디로 간 거야?”

    “부회장님.”

    그때 문을 박차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정 상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 상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자네는 회사가 이 모양인데 휴가를 갈 생각이… 아니, 됐어.”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꼬치꼬치 따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나저나 누나는 찾았어?”

    “아뇨. 그보다….”

    정 상무가 말을 얼버무렸다.

    “오는 길에 보고받은 사항입니다. 지금 이사회 쪽에서 말이 좀 많은데, 부회장님께서 직접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사회? 할 일도 없는 인간들이! 지들이 와야지 뭔데 오라 가라야?”

    “…평소라면 그 말이 맞겠습니다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정 상무가 말을 얼버무렸다.

    “이사들 몇몇이 지금 대구 쪽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뭐? 대구라고?”

    대구라는 지명을 듣는 순간, 윤정식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구는 파주와 함께 대한민국 최대의 인쇄단지가 위치한 장소다. 물론, C&N과 계약을 맺은 인쇄소들 또한 대거 포진해 있다.

    당연하게도 그러한 인쇄소들과의 원활한 커넥션을 위해서 C&N은 대구에 지부를 하나 뒀다.

    그리고 지금, 해당 C&N 지부의 지부장은….

    “……박재진.”

    윤정식의 이가 으득, 갈렸다. 임플란트해 준 치과의사가 했던 ‘조심히 쓰셔야 합니다.’ 같은 말 따위는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몇 명이나 이동했지?”

    “확인된 건 다섯 명 정도입니다. 장소는 근처에 있는 골프장이고요.”

    “골프장이라… 꽤 빨리 움직였군.”

    윤정식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미 한번 팽당한 박재진의 커넥션이 여전히 이토록 견고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차량 대기시켜 뒀습니다, 부회장님.”

    “그래, 알았어. 여기 일은 정 상무한테 맡기지.”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정 상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윤정식은 그런 정 상무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그래. 휴가는 안타깝게 됐다고 생각해. 이번 일이 끝나면 배로 쳐서 주지.”

    그 말을 끝으로, 윤정식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잠시 후.

    부아아아앙-!

    거대한 엔진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의 모습이 보였다. 얼핏 봐도 제한속도는 훨씬 넘어 달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신호등은 지켰다.

    ‘참 아이러니하군.’

    회사에 일이 터졌는데 어디에 있었냐며 화를 잔뜩 내놓고서는, 본인은 일 처리보다 사내 권력을 우선시해서 대구까지 내달려가는 모습이라니.

    C&N에 재직한 지 20년 차. 정 상무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많은 게 변했어.’

    부회장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정 상무는 그대로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연락을 걸었다.

    “부회장님 방금 출발하셨습니다.”

    정말로, 많은 게 변했다.

    회사의 분위기도, 회사의 위치도.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말이다.

    정확히 5분 뒤, 부회장실의 문이 열렸다.

    “수고했어요, 정 상무.”

    “아닙니다, 사장님.”

    들어온 윤정식의 누이를 향해, 정 상무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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