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81화 (181/200)
  • #180

    자신이 C&N을 도운 것은 동생 때문이었다.

    -오빠, 요즘 힘들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아니야. 아무 일도. 그냥 글 쓰느라 그래.

    -이상하네. 오빠가 소설을 쓰면서 술 마시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괜히 걱정할까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았다.

    뭐, 오빠가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노력하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거기에 약간의 제도적인 악의와, 함구와, 떳떳하지 못한 일이 약간 들어갔지만. 그것까지 포함해서 시시콜콜하다.

    하지만, 고유민은 한 가지를 간과했다.

    동생 또한 그만큼 오빠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너야말로 요즘 뭐 하는데 잠을 안 자?

    -나? 그, 과제야 과제!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여태껏 밤을 새면서까지 과제가 많지는 않았잖아.

    -아냐, 오빠는 오빠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동생에게 벌어진 일도 같았다.

    힘들어하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몰래 C&N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피는 못 속인다더니, 서로를 위해 무리하고, 서로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까지 똑같았다.

    동생이 뭐 하고 다니는지도 몰랐던 주제에, 꼴에 문학하는 놈이라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은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가난한 남편이 아내를 위해 자신이 아끼던 넥타이를 팔아 빗을 사고, 아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에게 줄 넥타이핀을 샀다는 이야기.

    두 부부의 마음은 서로 엇갈려 선물 교환은 똑바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서로를 위한 마음’을 확인했으므로 하하 웃으며 넘어갔다는 슬기로운 해피앤딩이었다.

    자신들도 분명 그랬어야 할 텐데.

    뚝, 뚜둑.

    방울방울 떨어지는 동생의 눈물을 봤을 때, 고유민은 의심해버리고 말았다.

    왜 소설이라는 것은 현실과 이토록 다른가? 고로, 소설이라는 것에 대한 회의감. 또한, 자신이 그런 거짓을 쓰는 소설가라는 것에 대한 회의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도 없는 주제에 정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소설가의 미래를 뭉개고 있는 것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그것을 눈감아 주다가 동생을 상처입힌 데에 대한 회의감까지.

    이게 마지막 물방울이구나. 꽉 차 있는 컵을 넘치게 만드는 마지막 물방울이로구나, 하는 시구가 저절로 떠오르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오늘 저녁에 온 비와 먹구름조차 복선이었을지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이 만약 밝은 날이었다면 하늘을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밝아서 부끄럽다고 했을 테고, 오늘이 흐릿한 날이었으면 내 기분처럼 혼탁하다고 했을 것이니.

    “…하나도 재미없네.”

    결국 중요한 것은, 날씨 따위가 아니라 지금의 마음이고, 지금의 상황이다.

    * * *

    “21세기 파문 이야기 들은 적 있어요?”

    뜬금없는 지원의 질문에, 형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조의 기묘한 모험> 말하는 건 아니죠?”

    “그건 파문波文이고, 파문破門말이예요.”

    “<조조의 기묘한 모험>이 아니라면 교회 이야기겠네요.”

    파문.

    중세시대 교황이 타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징벌 중 가장 높은 수위의 것이었는데, 말 그대로 교인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뜻이다.

    지금에서야 교황이 뭐라고? 교회 못 오게 하면 절 가면 되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곳이 중세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중세의 모든 것들은 종교를 중심으로 돌아갔으니까요. 카노사의 굴욕 같은 건 저도 수업시간에 몇 번 들어본 적이 있어요.”

    카노사의 굴욕.

    교황에게 파문당한 왕이 맨발로 교황을 찾아가 한겨울에 3일간 싹싹 빈 사건으로, 당대 교회의 권력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일화다.

    허나, 그 이후로 교회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요즘에 와서는 파문을 당해도 그러려니 할 텐데.

    “21세기 파문이라뇨?”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은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끈다. 21세기 파문이라니. 웹소설의 제목으로 삼아도 손색없는 조합이다.

    “그러니까, 21세기에 늑대인간을 잡는 비밀교회가 있는 거예요. 주인공은 거기서 어린 괴물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파문을 당하고….”

    “그거 형우 님이 예전에 쓰시던 소설이잖아요. 망했던 거.”

    “…헉.”

    이래서 잠재의식이란 무섭다니까.

    “아무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21세기 파문은 얼마 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이에요. 세계에서 가장 파급력 있는 SNS 중 하나인 ‘쯔위터’가, 도날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 정지시켜버린 거죠.”

    “제가 아는 그 도날드 트럼프 맞아요? 미국 대통령 하셨던 분?”

    “넵. 이용약관을 어겼다는 이유였죠.”

    그리고 쯔위터에서 영구밴을 당한 트럼프는 그대로 언론에 나와 쯔위터에 대해 흑색선전을 퍼부었다. 자신의 영향력을 억제하기 위한 정치적 수작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대단한 사건이네요.”

    “그렇죠. 달리 말하면 SNS의 파급력이라는 게 미국의 대통령도 무시 못할 수준이 됐다는 거고.”

    프리메이슨 따위를 믿는 음모론자가 아닌 이상에야, 세상에서 제일 권력이 강한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다.

    오죽하면 트럼프의 별명이 세계의 왕이었겠는가?

    “그래서 21세기 파문이군요.”

    종교의 시대인 중세에서 종교를 박탈당하는 것과, 인플루언서의 시대인 2020년대에서 SNS를 박탈당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두다니.

    꽤 재미있는 비유였다.

    “요즘 기자들이 제목을 진짜 잘 짓네요.”

    “글쎄요.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죠. 예를 들자면.”

    지원이 손가락을 휙 내저었다.

    “중세 시대 종교의 힘만큼이나, 지금의 SNS의 파급력이 커졌다는 거예요.”

    “…으음, 조금 과하긴 하네요. 그때는 이단이면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잖아요.”

    “요즘이라고 뭐 다른가요? 다른 인플루언서에게 밉보이면 악플 폭격을 받잖아요. 요즘은 그걸 ‘매달렸다’라거나, ‘마녀사냥’이라고 한다죠?”

    “…어라?”

    상당히 그럴듯한… 분석이었다. 언어학자인 푸코가 말했듯이, 언어나 단어는 이유 없이 허투루 사용되는 법이 없으므로. 형우는 지원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인플루언서의 시대겠네요.”

    스마트폰의 보급과 뉴튜브와 SNS의 성장으로 인해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도 크게 부풀었다.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그중에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는데, 개중 가장 흔하고도 크게 문제가 되는 건….”

    “주작이죠.”

    주작做作.

    없는 사실을 꾸며내거나, 혹은 그런 모양새를 뜻하는 단어다. 조작과 거의 같은 뜻인데, 아무래도 양성모음보다 음성모음이 더 음침한 분위기에 어울리다 보니 ‘주작’이라는 단어가 굳어진 감이 있었다.

    “지난 며칠간 아마 그 단어를 천 번은 넘게 봤을 거예요.”

    시작은 <월드 배틀>의 생방송 도중 웹타쿠에게 들어온 한 제보 때문이었다.

    [바, 방금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월드 배틀>에 참가한 C&N의 작가들 중 몇 명이 필명을 세탁한 기성 작가라고 합니다! 그 목록으로는…]

    1위를 차지한 도수형을 비롯하여, 여러 작가들이 호명됐다. 그와 동시에 채팅창에 불이 났다.

    -도수형이 글로리 작가라고?

    -예전에 표절하고 튀었던 놈 아님? 무슨 염치로 다시 들어왔대?

    -기성 세탁만 해도 미친 짓인데, 그게 심지어 죄지은 놈들이라고?

    -심지어 걔 찌른 게 C&N이었음. 그때 링크도 있다. http://www.c&nnew2898818.com.

    -C&N, 표절 작가 적발하다, 이거 맞냐?

    -…C&N의 사장인 박재진은 ‘신고를 받은 건 아니고, 출판 후에 검수하던 도중 발견했다. 해당 작품에 대해서는 전량 회수조치를 취하고, 해당 작가를 제적하기로 결정했다. 박재진 사장은 앞으로도 깨끗한 출판문화를 위해 표절과 같은 사태는 하루빨리 근절되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뭐냐, 기사 보면 겁나 양심적인데? 같은 기업 맞음? 초심 완전 잃었네.

    -내가 업계 관계자라 아는데, 박재진 팽당하고 지금 C&N사장 윤정아임. 부회장 누나임.

    -뭔 기업이 가내수공업이냐? 가족끼리 해먹으니 회사가 개판나지.

    -ㄹㅇ

    이 정도 논란이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 아니, 사실상 소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인플루언서의 풀은 꽤 커서, 학교폭력 의혹이 있거나 인성 논란이 있거나, 심지어는 감옥에 갔다 온 경력이 있는 사람조차도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는 한다.

    “하지만, 주작은…… 다른 것들과는 비교도 안 되죠.”

    주작이란시청자를 기만하는 행위.

    한 대학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1세기의 사람들은 뇌물 받는 정치인보다 거짓말을 일삼고 내로남불을 즐기는 정치인을 더 혐오한다고 한다.

    “정치 이야기까지 할 필요도 없죠. 먹뱉만 봐도 그렇잖아요.”

    구독자 100만을 달리던 대형 먹방 뉴튜버에 대한 이야기다. 그 뉴튜버는 많이 먹는 것으로 유명해졌었는데, 알고 보니 실제로 많이 먹는 게 아니라 먹은 음식을 몰래몰래 뱉고 토했던 거였다.

    시청자들은 상추가 갑자기 풀이 죽거나, 조명이 갑자기 변했다거나 하는 것들을 매의 눈으로 찾아내어 영상이 편집되었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것은 곧 ‘주작’으로 판명되어 하루아침에 그 뉴튜버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대부분 잃게 됐다.

    “그런 일조차도 지금 C&N이 벌인 일에 비하면 우습게 보일 정도죠.”

    형우가 지원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굴러 들어왔네요.”

    이기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플랜A, 자신이 강해지는 것.

    그리고 플랜B, 적이 약해지는 것

    “이렇게 이길 줄이야. 뭔가 찝찝하기도 하고.”

    “찝찝할 거 없죠! 애초에 저쪽에서 공정하지 않게 하고 있었는데!”

    하긴, 운동경기도 도핑 걸리는 순간 메달 다 빼앗기고 선수 생명이 끝나는 게 당연지사니까.

    “법인 준비해야겠네요.”

    형우가 지원을 향해 어깨를 으쓱거렸다.

    * * *

    “꼭 그렇게 해야 했어?”

    고유민의 이야기를 다 들은 도수형의 첫마디였다.

    “그냥 동생 등이나 좀 토닥여 주고, 좋은 거나 좀 먹였으면 됐잖아?”

    “…악플이 엄청나더군요.”

    고유민은 며칠 전 동생의 모니터에서 봤던 악플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작품에 달린 악플보다도 훨씬 생생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양심이 없네 ㅋㅋ

    -작가 욕 하는 사람은 다 분탕이죠? 그러다가 연재 안하면 님들이 책임지실거?

    -근데 일러스트 ㄹㅇ 발로 그렸다. 내가 그려도 저것보다 나을 듯?

    ㄴ보나마나 작가님 공인인 거 이용해서 대충 뜯어먹고 런할 생각이었던 듯ㅋㅋ

    ㄴ하지만 우리 작가님은 걸어다니는 사이다라서 그런건 용납하지 않는다구!

    ㄴㄹㅇㅋㅋ

    -작가님도 마음고생 심하셨을 텐데 ㅠㅠ 그런 일러레 버리고 작품 힘내주세요!

    팩트체크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악의 어린 비난들과, 울고 있는 동생의 모습.

    “그걸 봤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습니까.”

    “창작물에 비난은 당연한 거야. 가끔은 억울한 것들도 달리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너도 작가니까 알잖아? 안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신입 작가의 기를 꺾어놓는 ‘뱀심’같은 것은 이제는 거의 보편적인 단어로 쓰일 정도였으니까.

    “그냥 남들 다 겪는 일이야! 너도 겪어 봐서 알잖아? 근데 왜 갑자기 급발진하고 지랄이야?”

    “겪어 봤으니까!”

    고유민이 이를 악물었다.

    “그게 얼마나 좆 같고 힘든지 아니까! 그래서 동생한테는 제가 느낀 걸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게 그렇게 이상한 겁니까?”

    도수형의 표정이 변했다. 평소 조용조용하던 사람이 화를 내니 당황해 버린 것 같았다.

    “그, 그래, 그렇다 쳐.”

    도수형이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았다.

    “네 동생에게 악플이 달렸고, 너는 화났지. 그래도 말야, 일을 벌이기 전에 말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어? 이런이런 일이 있었다. 그러니 그 소설가 놈 잡아서 족쳐 달라. 그렇게 똑똑하게 굴 수 있었잖아. 꼭 이렇게 깽판을 쳐야 했어?”

    “…복수니까요.”

    고유민이 말했다.

    “원래 복수는 똑똑한 게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하게 되는 거죠. 너무 화가 났으니까.”

    “고작 그런 것 때문에 그 많은 돈을 뿌리쳐?”

    “돈이라….”

    가당찮은 말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저랑 동생의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오 헨리의 단편이 떠오르더군요. <크리스마스 선물>이요. 그 교훈이 뭔지 아십니까?”

    “…사랑만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거? 유치한 이야기지.”

    “당신이 유치하게 읽은 거죠. 단지 그것뿐이었다면 오 헨리가 그렇게 고평가를 받았겠습니까?”

    좋은 소설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또한 마찬가지다.

    “어른들을 위한 교훈은 이렇습니다. 수단에 함몰되어 목적을 잃지 말라는 거지요.”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선물을 실패한 부부가 해피앤딩인 이유는 간단하다. 선물은 수단이었고, 서로의 행복이 목적이었으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은 저에게 있어서 수단일 뿐이었죠.”

    목적은 언제나 하나였다.

    동생이 상처 입지 않고 행복하게 자라는 것.

    그것을 위해 고유민은 지금까지 양심의 가책을 어떻게든 견뎌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 당신 덕분이죠.”

    “내 덕분이라고?”

    “모를 줄 알았습니까? 제 동생에게 막말을 한 거, 그거 당신이잖아?”

    단순히 필명만 갈아치운다면 만에 하나 들킬 우려가 있다. 그래서 도수형이 선택한 방법은, 성별을 갈아치우는 거였다.

    그러니까, 인터넷 상에서는 마치 여자 작가인 척 행세를 하고 다녔다는 거다.

    “지금 생각하면 다행이죠. 당신 덕에 참을 이유가 없어졌으니까.”

    그 말을 들은 도수형의 표정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뭐라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없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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