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80화 (180/200)
  • #179

    “……너.”

    늘 여유롭게만 보이던 도수형의 두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그 흐릿한 눈동자에 고유민의 얼굴이 맺혀 있었다.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라도 들었던 거냐? 지금까지는 나 몰라라 해 놓고?”

    “그럴 리가요.”

    고유민이 고개를 저었다.

    학생들을 외면한 것은 분명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후회라던지, 자책이라던지 하는 건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정확히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을 바꾸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사건이다. 그건 드라마든 인생이든 똑같다. 그리고, 고유민에게도 그럴 만한 사건이 있었다.

    “가끔 그런 날이 있잖아요. 뭘 해도 안 되는 날.”

    좋은 의도로 한 일조차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어버리는, 그런 재수 옴 붙은 날 말이다.

    고유민에게는 3일 전이 그런 날이었다.

    * * *

    “와아, 떡볶이 맛있었다!”

    “다행이네.”

    배를 통통 두드리는 동생을 보며, 고유민이 흐뭇하게 웃었다.

    로제떡볶이라는 것이 그리 입에 맞지는 않아서 떡볶이보다는 맥주만 마시긴 했지만. 그래도 동생이 좋아한다면 그걸로 됐다.

    “여기가 진짜 유명한 집이야. 한국대학교 근처 맛집 Top5 안에 든다니까?”

    “…응? 한국대학교가 이 근처에 있어? 한국대학교 역은 꽤 멀지 않나?”

    “이래서 서울 사람들 지리 감각이 엉망이라는 거야. 노선이 다르면 먼 줄 안다니까? 봐봐.”

    동생이 길찾기 어플을 켜서 내밀었다.

    “도보로 15분, 내 말 맞지?”

    “…진짜네?”

    어플에 표시된 ‘한국대학교’라는 글씨가 유달리 선명하게 보였다.

    그 순간, 속에서 뭔가가 확 달아올랐다.

    아마 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유진아.”

    “왜, 오빠?”

    “미안한데 오늘은 혼자 들어갈래? 나는 좀 볼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벌써 9시인데?”

    “하긴. 오빠도 슬슬 결혼할 나이지.”

    입술을 비쭉 내밀며 하는 말이 뭔가 의미심장했다.

    “무슨 뜻이야?”

    “이 밤중에 대학로에서 만날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 솔직히 말해 봐, 나 조카 생겨?”

    “조카는 무슨. 그런 거 아니거든.”

    “에이. 좋다 말았네.”

    유진이 장난스럽게 혀를 쏙 내밀었다.

    “그거 아니면 일찍 들어와. 아니면 그냥 여자친구 만나는 걸로 생각한다?”

    “…노력해 볼게.”

    그렇게 집에 가는 동생을 역까지 바래다 준 후, 고유민은 발길을 돌렸다. 발길의 끝에 위치한 것은 한국대학교였다.

    * * *

    사람을 멍청하게 만드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한다. 호기심과 후회, 그리고 술이다.

    안타깝게도, 고유민은 셋 모두에 해당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멍청한 짓을 하기 전에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다.

    “…내가 거기를 가서 뭐 하나.”

    한국대학교가 근처에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스패로우 팩토리 아카데미를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아마 취기 때문이었을 테다.

    “말도 안 되는 짓이지.”

    세상 누구도 적을 심장에 들이지는 않는다. 가봤자 허탕만 쳤을 게 뻔하다.

    ‘그나마 도착하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군.’

    걷는 도중 술이 약간이나마 깬 덕분이다.

    거기까지는 좋았지만…… 숙취 특유의 두통과 무기력증이 몰려오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에흑.”

    적당히 튀어나온 곳을 찾아 아무 데나 주저앉았다. 오래 전의 습관처럼 품을 뒤지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담배…… 는 끊었지.”

    삼 년 전인가. 동생이 너무 싫어해서 끊었다.

    편의점에 가서 살까 하다가 그만뒀다.

    “후우.”

    대신, 담배를 문 것보다 더 크게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대학로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취한 사람도 있었고, 안 취한 사람도 있었고……

    “뺘악?”

    ……참새도 한 마리 보였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그렇게 물은 뒤, 고유민은 낄낄 웃었다.

    “나 참, 취하긴 취했나 보다. 참새랑 말을 하고.”

    하지만 굳이 멈추지는 않았다.

    취객은 개랑도 말을 하고, 담벼락의 고양이와도 말을 나누는 법이니. 참새라고 뭐 다르겠는가? 고유민은 조류차별주의자가 아니었고, 포유류 우월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진짜 인생 개 같다.”

    “뺙.”

    “뭐야, 알아듣냐?”

    참새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로 알아듣는 것 같아 신기했다.

    “스패로우 팩토리를 찾아가려다가 참새를 만났다는 거지.”

    뭔가 소원이 반만 이루어진 기분이었지만, 이것도 뭔가 인연이다 싶었다.

    “……너라도 들어 봐라. 내가 말이다.”

    스패로우 팩토리에 묻고 싶었던 것들이, 고유민의 입에서 천천히 새어 나왔다.

    당신들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죠?

    혹시 뒤처지는 학생들은 버리나요?

    만약 학생이 나쁜 짓을 했다면, 어떻게 할 거죠?

    “걔네들이 쓰고 싶은 게 별로 좋지 않은 것이라면… 그래도 쓰게 하나요?”

    “어, 일단은요?”

    “…역시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던 고유민은 순간,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너…… 말도 할 줄 아냐?”

    “설마요. 참치가 똑똑하기는 한데, 그래도 사람 말은 못 하거든요. 참치야, 이리 와.”

    남자의 말에 맞춰, 참새가 포로롱, 하고 날아올랐다. 그 움직임을 따라 자연스럽게 고유민의 시선이 이동했다.

    “…참새치 작가님?”

    어깨에 앉은 참새 옆으로, 낯익은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 * *

    “갑자기 녀석이 날아가 버려서 걱정이 됐단 말이죠. 그래도 다행이네요. 고유민 작가님이 데리고 있어 주셨을 줄이야.”

    “그… 데리고 있었다기보다는….”

    고유민은 눈앞에 차려진 떡볶이를 바라보며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참치를 데리고 있어 줘서 고맙다며 형우가 끌고 온 곳은, 방금 동생과 밥을 먹었던 떡볶이집이었다.

    “여기 로제떡볶이가 끝내주거든요.”

    “알아요. 전에 와 봤거든요.”

    차마 한 시간 전에 와 봤다고 이야기는 못 하고,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하기야, 이 집 유명하잖아요. 그나저나 신기하네요. 고유민 작가님 꼭 한번 뵙고 싶었는데.”

    “저를요?”

    혹시 C&N에 대해 캐물으려고 하나? 순간적으로 긴장이 어렸다.

    형우는 고유민의 얼굴을 보더니 긴장 풀라는 듯 싱긋 웃었다.

    “작품 이야기나 나누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고유민 작가님 작품 다 재밌게 읽었거든요.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는 말을 한다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요?”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저도 참새치 작가님 작품은 다 읽었으니까요.”

    “음, 그러면 말이죠……”

    형우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권객>도 읽어 봤어요?”

    * * *

    “아니, 제가 산 장비들을 다 뺏어서, 저한테 주지도 않고 낚시를 하던걸요! 아무리 그래도 내 건데 달라고 하니까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뭐라고 했는데요?”

    “초보자는 새 물건을 쓰면 안 돼! 헌 물건을 쓰는 게 이치에 맞아! 이러는 거예요! 아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예요?”

    “저 그거 알아요! <권객> 10화쯤 나오는 이야기 맞죠? 아, 혹시 그 점소이 캐릭터가 그 아저씨를 모티브로 한 건가요?”

    “예리하시네요, 맞아요!”

    “그러다가 그다음 화에서 똥통에 빠지잖아요?”

    “…뭐, 소심한 복수죠. 다들 그러잖아요?”

    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고유민은 참지 못하고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으음,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야겠어요. 그 옆에 있던 노란 모자 아저씨 이야기까지 했다가는 스포일러가 되어 버릴 테니.”

    “스포일러, 스포일러 안 되죠.”

    “그러니까, 이제는 작가님 소설 이야기 좀 해 볼까요?”

    “제 소설이요?”

    “말했잖아요. 작가님 소설 다 읽었다고요.”

    형우가 말했다.

    “특히 주인공의 여동생을 묘사하는 부분이 굉장히 좋더라고요. 혹시 여동생이 있나요?”

    “있어요. 저랑 나이 차가 꽤 많이 나죠.”

    “역시!”

    형우가 정답을 맞힌 아이처럼 박수를 짝짝 쳤다.

    “경험담 같더라니! 소설 속 여동생 캐릭터가 얼마나 실감 나던지. 저도 그런 여동생 하나 있으면 원이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라니까요?”

    “실제로 보면 그것보다도 낫죠.”

    “이야.”

    형우가 감탄했다.

    “남매끼리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저는 외동이라 그런 건 잘 모르거든요.”

    “뭐…… 나쁜 편은 아닐 겁니다. 동생이 저한테 잘 맞춰 주거든요.”

    “정말요?”

    “게다가 공부도 얼마나 잘하는데요. 미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는데….”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도 모르게 말이 많아지는 고유민이었다.

    “처음에는 여동생 캐릭터를 쓰니까 편집부에서 방해했거든요. 차라리 옆집 동생으로 하라고요. 여동생이랑은 러브라인을 못 탄다나?”

    “에반데.”

    “그래서 편집부랑 다툼이 있었어요. 나는 여동생 아니면 다른 여자 캐릭터는 만들 자신이 없다! 그리고 결국 제가 이겼죠. 소설도 잘 됐고요.”

    떡볶이를 우물거리며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소설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써야죠. 물론 쓰고 싶은 것만 쓰면 안 되겠지만.”

    “맞아요.”

    “아까 참치랑 하던 이야기도 같은 거였죠? 학생들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썼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거요.”

    “아… 맞아요.”

    고유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쓰게 놔둘 걸. 그러지를 못했네요.”

    “이상하네요. 고유민 작가님이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누가 시켰나요?”

    “예? 시키다뇨?”

    고유민이 되물었다. 그와 동시에, 방금까지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살짝 굳었다.

    “아, 죄송해요.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참새치 작가님. 어찌 됐건 저는 C&N 소속이고, 거기에서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해합니다. 죄송해요.”

    “됐습니다.”

    고유민이 먼저 짐을 챙겨 일어났다.

    “…이만 가는 게 좋겠네요. 제가 말실수를 할까 무섭거든요. 계산은 제가 하죠.”

    표정을 굳힌 고유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 형우가 재빨리 고유민의 팔을 붙잡았다.

    “아녜요, 손도 안 대셨잖아요. 제가 할게요. 아니면 더치로. 힘들게 번 돈이잖아요?”

    “힘들게 번 돈이라뇨?”

    형우는 조금 당황했다.

    “저, 저도 같은 작가라 알아요. 글 써서 돈 버는 거…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글을 써서 번 돈이라…….”

    그 말을 들은 고유민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럼 더더욱 제가 계산해야겠네요.”

    이 돈은, 힘들게 번 돈이 결코 아니었으니까.

    저벅저벅-

    계산을 마친 고유민이 어두운 밤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바닥에는 물기가 찰박거렸고, 하늘에는 달빛 한 줌 없이 먹구름이 가득 꼈다.

    “……쪽팔려 죽겠네.”

    바늘로 쿡 찌르면,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이 우수수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 * *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남을 위해서 한 일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버리는 순간. 유진에게는 오늘이 그랬다.

    -이번에 미대생들 상대로 일러스트 뽑는다더라. 웹소설 표지 제작이라는데?

    -어, 맞아. <월드 배틀>. 그거랑 관련된 거라고 했어. 알지? C&N이랑 스패로우 팩토리에서 하는 거.

    며칠 전 과 친구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진에게는 한 가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월드 배틀이라면… 오빠가 하는 거잖아?’

    늘 오빠에게 받기만 하는 게 마음에 걸렸던 유진에게는, 이번 기회가 오빠에게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갚을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다.

    “일러스트라, 해보지 뭐!”

    생각 같아서는 아예 오빠 작품의 일러스트를 그리고 싶었지만, 그건 무리였다.

    오빠의 성격이면, 괜한 짓 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할게 뻔했다.

    ‘조금 아쉽긴 한데…….’

    대신 C&N의 다른 작가 작품을 골랐다.

    <월드 배틀>은 팀 간의 경쟁이니까. 오빠의 팀이 잘 된다면 결국 오빠가 잘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에 열중했다.

    -코 부분 수정해 주세요.

    -눈 부분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는데여.

    -채색 다 한 작품에 이런 말 하기 좀 그런데요, 지금 보니 구도가 좀 마음에 안 들어서요.

    클라이언트는 꽤 깐깐했다.

    본래라면 채색까지 한 작품을 처음부터 갈아치우는 경우는 잘 없지만, 그래도 요구를 들어줬다.

    오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며칠간 밤을 새워 가며 열 번이 넘는 수정을 거듭한 끝에.

    -마음에 들어요! 이걸로 할게요!^^

    클라이언트는 드디어 활짝 웃었다.

    비록 1초면 보내는 이모티콘 두 개에 불과했지만, 그 사소함마저도 엄청나게 기뻤다.

    “오늘 열시에 올라간다고 그랬는데?”

    고유진은 달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댓글창을 확인했다.

    -일러스트 대체 뭐임?

    -표지가 너무 안 맞는 것 같네요;

    -에반데? 딱 아마추어 수준;

    아쉽게도... 대부분 혹평이었다.

    유진은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녀는 미대생이었고, 이 정도 혹평은 익숙했으니까.

    문제는 그 다음에 올라온 작가의 해명문이었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작가입니다.

    오늘 올라간 일러스트가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냥 우겨서 올리긴 했는데…… 아마 귀찮아서 그랬겠죠? 나 참. 이래서 일러스트는 좋은 사람 써야 한다니까요?

    오늘 전화도 몇 번 해 봤는데, 다 안 받으시더라고요. 에휴, 이 정도면 그냥 먹튀 당했다고 생각해야겠어요.

    “이, 이게 뭐야…?”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마음에 든다고도 했고, 수정사항도 다 받았고, 심지어 전화도 못 받았다.

    “나, 나도 해명글을 쓰자! 뭔가 오해가 있겠지!”

    -안녕하세요,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겨우 키보드를 눌렀다.

    -위의 글에 대해서 알려드립니다. 아마 뭔가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은데 …….

    글을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렸다.

    -구라 ㄴㄴ

    -ㅋㅋㅋ아무리 이 말이 다 팩트여도 난 저런 거 그리고 돈 받는 생각한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림실력부터가 에바임. 어떻게 붙었음?

    순식간에 올라가는 댓글중, 호의적인 댓글은 하나도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독자들은 대부분 작가 편을 들었다. 그 순간,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C&N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님 맞으시죠?”

    그래, 출판사!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출판사라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이다.

    유진은 그대로 자신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참 아쉬운 일입니다만. 저희가 전화드린 건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예? 그러면요?”“일러스트레이터 분께서 저희 출판사와 작가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계시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해당 게시글을 바로 지우시지 않으면 저희도 대응팀을 준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유언비어를 퍼트린 건 저쪽…….”

    “아무튼 저희는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이만.”

    마지막 희망마저 그렇게 끝났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 돌아온 고유민은……

    “뭐야, 유진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흐느껴 울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터지기 직전의 지뢰를 발로 걷어찬 거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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