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윤정식은 뉴튜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다는 것이 첫 번째요, 보면 뇌가 쪼그라드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는, 사업에 방해가 된다는 거죠.”
미국의 유명 프렌차이즈 커피 업체인 주타벅스는 예전에 이런 인터뷰를 했다.
-저희의 라이벌이 누구냐고요?
-예. 역시 같은 카페업을 하는 돈킨도넛인가요? 아니면 음료회사인 누카콜라?
-그 회사들도 훌륭한 회사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요식업계의 탑인 맥노덜드인가요?
-아뇨. 저희가 생각하는 주타벅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 있습니다.
-일본에 주타벅스만한 카페 프렌차이즈가 있던가요?
-카페가 아니거든요.
-넌텐도. 넌텐도가 저희의 라이벌입니다.
넌텐도는 어떤 회사인가? <주머니 괴물>이나 <링크의 전설>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과 게임기를 만드는 전문 회사다.
음료수 사업은커녕, 요식사업에조차 손을 뻗은 적 없다.
그러면 왜 주타벅스는 넌텐도를 라이벌이라고 콕 집어 언급했을까?
간단한 이유다.
카페와 게임 모두 인간의 ‘여가 시간’이라는 지점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보자면… 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C&N의 가장 큰 적은 뉴튜브라는 거죠. 게다가, 뉴튜브는 항상 커지기만 하고.”
‘엘사 게이트’라던지, ‘나이키 보이콧’ 같은 사건들이 몇 차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뉴튜브는 출시 이후 매년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미친 회사이자 시장이었다.
누군가는 크리에이터를 레드오션이라고 하지만… 다른 레드오션들이랑 비교해보자면, 크리에이터의 빨간색은 오히려 좀 옅은 색일 것 같다.
그와 반대로, C&N의 성장세는 주춤거린다. 물론 성장세라는 게 꼭 중요하지는 않다. 애플의 성장세는 벌써 몇 년간 멈춰 있지만, 그건 그저 올라갈 곳이 없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하락세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저번 공모전에 발생했던 표절 문제.
델리만쥬의 뻘짓.
뒤숭숭한 회사 분위기.
치고 올라오는 라이벌 기업들까지.
이대로라면, 분명 올해 C&N의 지표는 뻘건 색으로 물들어 있을 것이 뻔했다.
“정 상무.”
“예, 부회장님.”
방구석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정 상무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주타벅스 말입니다, 어떻게 넌텐도와의 라이벌리티를 해소한 줄 아십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둘이 손을 잡았습니다. <코펫몬 Go!>가 그 시작이었죠.”
“<코펫몬 Go!>라면… 게임 아닙니까?”
“맞아요. 플레이어가 직접 걸어서 코펫몬을 잡는 형식의 게임이지요. 이 게임에는 <코펫스탑>이라는 특정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답니다. 보통 랜드마크거나 카페에 있죠. 그러니, 미국에서 가장 많이 널려 있는 카페라면….”
“주타벅스로군요.”
“맞아요.”
윤정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식으로, 넌텐도와 주타벅스는 서로가 라이벌임에도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겁니다.”
“헌데, 이 이야기는 갑자기 왜…?”
“정 상무님, 왜 이러실까. 책 만드시는 분답지 않게.”
정 상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는 편집부에서 일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 회사에 그런 사람도 있었군요? 난 또, 다들 책을 좋아하는지 알았지 뭐야.”
“저는 입사 때부터 감사팀 소속이었죠. 회장님이 그렇게 지시하셨으니까요.”
“그러면 뭐.”
윤정식이 고급 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렸다.
“모든 이야기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간단한 이야기에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처럼, 치매에 시달리는 광인 스무 명이 달라붙어 한 문장씩 돌려가면서 적은 것 같은 작품에도…… 나름의 교훈이라는 게 있단 말입니다. 몇몇 작가는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긴 하지만, 듣는 입장에선 분명히 있단 말이죠.”
“어린아이가 잠에 들기 전 어머니에게 듣는 이야기도 마찬가지겠군요.”
순간 윤정식의 표정이 굳었다.
가끔 세상에는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화두에 해당 사항이 없는 사람이 있는 법이고, 지금의 윤정식은 확실하게 그랬다.
“죄송합니다. 너무 감상적이었나 봅니다.”
그제야 실수를 눈치챈 정 상무가 고개를 숙였다.
“……뭐.”
윤정식이 애써 표정을 고쳤다.
“그럴 수도 있죠. 아무튼, 넌텐도와 주타벅스의 이야기가 저희에게 주는 교훈은… 필요에 따라서는 그 어떤 손도 가끔은 잡아야 할 때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윤정식이 떠올리는 건, 넌텐도 회사가 위치한 국가, 일본이다.
“2차대전 후 일본인들의 문화를 연구하며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펴낸 한 서양인이 그랬다죠. 일본의 도덕은 옳고 그름에 있지 않고, 다만 강함과 약함에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이의 손을 잡으며, 약한 이의 손을 뿌리친다고 말이다.
“그리고 저는… 동아시아의 원시인들이 20세기 태평양을 호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마인드 덕분이라고 믿습니다.”
“위험한 발언입니다.”
“그렇죠. 한국에 뿌리를 박고 장사하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소문이라도 나면, 아주 난리가 날 테니까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여기는 저희밖에 없는데요.”
윤정식은 그대로 의자를 핑그르르- 돌렸다.
스패로우 팩토리의 행사 때 걸린 상품 중 하나가 300만 원짜리 의자라는데… 윤정식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의자는 줘도 안 쓰는 의자라는 거다.
“아무튼… 중요한 건 적의 손을 잡는다는 개념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걸 잘 못 하거든요. 차라리 찍어 누르는게 성미에 맞죠.”
“그건 아마….”
“예, 맞습니다.”
정 상무의 말을 예상한 윤정식이 씩 웃었다.
“제가 지금까지 찍어누를 수 있는 정도로 만만한 적들만 상대해 와서 그렇죠. 하지만, 누나는 달라요. 자신과 비슷한 사이즈의 적을 상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죠. 흐음, 그걸 어떻게 알까요? 누나도 그런 적과 싸워본 적은 없을 텐데…… 아니면 혹시, 내가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는 걸까요?”
“그럴 리가요.”
정 상무가 대답했다.
“……여자들이란 으레 그렇지 않습니까?”
“흐음?”
정 상무의 말에, 윤정식이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거야말로 큰일 날 소리로군요. 요즘 세상에.”
“그런 뜻이 아니라… 제 말은, 때려 부수는 싸움이 아니라 밀고 당기는 싸움은 여자들이 더 잘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정 상무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그런 걸로는 제 집사람을 못 당하거든요.”
“아하핫! 정 상무가?”
“뭐, 다들 그렇다고 하더군요.”
정 상무가 어깨를 으쓱거렸고, 윤정식은 그 말이 참으로 웃기다는 듯 낄낄거리며 웃었다.
“아무튼, 누나의 이번 수는 마음에 들어요. 스패로우 팩토리를 찾아가 담판을 짓고, 뉴튜브를 활용해 중계하다니! 저희의 라이….”
라이벌들, 이라고 말하려던 윤정식은 그대로 말을 멈췄다.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이다.
스패로우 팩토리는 C&N의 라이벌이라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뉴튜브는 너무나 컸으니까.
“…경쟁자들을 잘 활용한 전략이라는 생각뿐이군요. 그나저나 저 투표 결과는 언제쯤 나오는 거죠?”
“이제 곧 나올 겁니다, 부회장님.”
“기대되는군요, 정말 기대가 돼요.”
평소에는 뉴튜브를 잘 즐기지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꽤 흡족한 기분으로 시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맞다. 정 상무, 휴가 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가족끼리 오붓하게 여행이라도 가나 보네요. 잘 놀다 와요.”
꿈틀-
그 말을 들은 정 상무의 입꼬리가 살짝 움직였다.
“지금 시작하네요.”
뉴튜브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윤정식은, 안타깝게도 그 표정을 보지 못했다.
* * *
“후우.”
형우의 입꼬리가 씰룩거리더니, 그 사이를 비집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숨이란, 해석의 여지가 꽤 많은 동작이다.
인간은 답답할 때도 한숨을 쉬고, 그 답답함이 해소되었을 때도 한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 이분법으로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한숨이 나오기도 하는데, 지금의 형우가 딱 그런 모양새였다.
“이것 참… 애매하게 됐네요.”
<월드 배틀>의 마지막 주.
스패로우 팩토리의 학생들은 최선을 다했다.
당연히, 효과도 있었다.
6위 - <정통무협을 유랑하는 21세기인을 위한 안내서> - 정주현
7위 - <깡패가 법을 너무 잘 앎> - 구민효
8위 - <유랑하는 마법사> - 조준구
….
“아까웠어요.”
지원의 표정은 형우보다는 조금 나았다.
이기진 못했지만, C&N을 턱 끝까지 쫓아갔다.
-와, 결국 C&N이 전부 수상했네.
-그래도 스패로우 팩토리가 그 아래는 다 먹음. 이 정도면 졌잘싸 아니냐?
-졌잘싸(무관)ㅋㅋ
-스패로우 팩토리 작가들 죄다 신인이고 C&N은 유망주인데 이 정도면 졌잘싸 맞지ㅋㅋ
-좀 아깝긴 하네. 일주일 더 했으면 몰랐을 듯.
-모르긴 뭘 모름ㅋㅋㅋㅋ
-근데 세계관 자체는 스패로우 팩토리가 더 잘 짠거 같더라. <월드 배틀>이면 세계관 좋은 쪽이 이겨야 하는 거 아님?
-소설을 잘 써야지 세계관만 좋으면 뭐해ㅋㅋ
-이런사람 특) 트렌지포머 4편 5편 좋아함.
-5편이 있음?
-ㅇㅇ있음. 아서왕 나옴.
-ㅋㅋㅋㅋ설마
애초에 지원은 이 싸움에서 승리까지 바라지도 않았다. 지금의 댓글만 봐도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초창기에 C&N과 스패로우 팩토리 사이에서 경쟁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C&N의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C&N과 스패로우 팩토리가 마치 동등한 것인 양 언급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 정도면 잘한 거예요. 처음에 저희가 왜 <월드 배틀>을 했는지 생각해 봐요. 좋은 작가를 키워내고,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서였잖아요? 지금은 그렇게 된 거고요.”
“저도 알아요. 제가 지금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걸. 하지만….”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하진 못하겠어요.”
“말하지 못하겠다뇨?”
“…쟤들한테요.”
형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서는, 스패로우 팩토리의 학생들이 결과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실력이 올라갔다는 것을 내심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치겠네. 한 주만 더 있었어도!”
“하아, 씨. 그때 맞춤법 검사기 한 번만 돌렸어도! 상 하나는 탈 수 있었을 텐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쉬워하고 있었다.
“편집자님, 참 이상하죠?”
학생들을 보며, 형우가 천천히 말했다.
“이제 막 소설을 배운 애들이… C&N을 상대로 이 정도의 호성적을 거두고도 아쉬워한다는 게 말이에요.”
“다들 열심히 했으니까요.”
가끔 영화 같은 데서 그런 말이 나온다.
열심히 했으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련하다- 같은 말.
하지만 형우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열심히 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했는데, 그럼에도 패배했다면… 당연히 속이 쓰리다.
“지금의 스패로우 팩토리 학생들처럼요.”
그러니, 이 정도면 잘했다라던가 처음치곤 훌륭했다는 등의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렇게 말해줘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형우는 짙은 아쉬움을 느끼며, 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늘부로 <월드 배틀>은 끝났습니다! 수상자들은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이어서 인터뷰를… 어어 잠시만요?]
[잠깐 나오라고요? 생방송 중인데?]
[아, 예. 알겠습니다. 저 시청자분들, 죄송한데 잠깐만 자리 좀 비울게요.]
웹타쿠는 약간 분주한 느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
[갑자기 뭐예요?]
[그게 말입니다……]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드문드문 목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끊겨 있는 느낌이었다.
-뭐임? 무슨 일임?
-뭔가 분위기가 심각해 보이는데?
-가면 쓰고 있어서 표정이 안 보이네.
-방금 C&N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채팅이 주르륵 이어졌다.
-뭔데 갑자기 방송 멈춤?
-우리도 좀 알자!
-뭐지? 고난이도 수금 전략인가?
-ㄴㄴ웹타쿠는 그런 거 안 함.
당황한 것은 스패로우 팩토리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일까요?”
“…글쎄요.”
그 순간, 웹타쿠가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상기되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방금 소식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소식인데요…….]
경악에 찬 목소리로, 웹타쿠는 방금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또박또박 늘어놓았다.
-뭐라고? 그게 진짜임?
-아니, 그러면 이거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짓이었던 거 아냐?
-우리 다 속고 있었던 거야?
채팅이 올라오는 속도가 방금보다 다섯 배는 더 빨라졌다.
-미친 거 아냐?
올라오는 채팅들마다 경악이 아닌 게 없었다.